연미사
연미사의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나온 곳은 1608년 작성된 안동의 읍지인‘영가지(永嘉誌)’에 나온다. 권6 불우(佛宇)조에,연비원불사(燕飛院佛寺)는 안동부(府) 서북쪽 12리 떨어진 오도산 남쪽에 있다. 돌을 세워 불상을 만들었는데 높이가 10여 장(丈)이다. 당(唐)나라 정관(貞觀) 8년(634)에 조성했으며 6칸의 누각으로 위를 덮었는데 그 집 모양이 하늘에 날개를 펴는 날아가는 듯 했다. 후에 두 차례에 걸쳐 중창을 하였는데 기둥과 대들보 등 재목은 다 옛 것을 사용했다.
위의 기록에 따르면 석불과 전각의 조성연대가 634년(신라 선덕여왕 3년)이며, 전각은 날아가는 새의 날개를 활짝 펼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후 그 전각을 두 차례에 걸쳐 중창했는데 기둥과 대들보 등의 재목은 옛 것을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영가지가 편찬될 당시인 1608년에도 연미사 석불과 석불을 덮은 전각은 보전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연미사의 가람은 그 때까지 존재하고 있었는지 확인할 길 없다. 다만 전각의 이름은 없고‘연미원불사’라고만 기록하고 있어서 사찰의 이름은 이미 실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미사의 창건에 대해 다른 견해도 있는데‘삼국유사’ 권 제3‘보장봉로(寶藏奉老) 보덕이암(普德移庵)’조에 고구려 고승 보덕 스님의 11제자 중 한 사람인 명덕(明德)스님의 창건설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보덕법사(普德法師)에게는 11명의 높은 제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 무상(無上)은 금동사(金洞寺)를, 적멸(寂滅)과 의융(義融)은 진구사(珍丘寺)를, 지수(智藪)는 대승사(大乘寺)를, 일승(一乘)은 심정(心正)·대원 등과 함께 대원사(大原寺)를, 수정(水浮)은 유마사(維摩寺)를, 사대(四大)는 계육(契育)과 함께 중대사(中臺寺)를, 개원(開原)은 개원사(開原寺)를, 명덕(明德)은 연구사(燕口寺)를 각각 창건하였다.
옛 대웅전 자리에 새로이 대웅전 불사가 이루어 지고 있는 연미사.
이천동 석불상
보물 제115호
연미사 석불은 속칭 제비원 미륵불 등의 이명(異名)이 있으나 지정문화재로 등록된 공식명칭은 ‘안동 이천동 석불상’이다. 이 석불은 연미사의 서쪽 끝부분, 안동에서 영주로 향하는 국도 바로 옆에 우뚝 서 있는 고려시대 초기의 마애불상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지금부터 1300여년 전 신라 선덕여왕 때 의상조사가 이 곳 5층석탑 앞 토굴에서 수도를 했으며 그 후 의상조사의 문도(門徒) 도선국사가 이 석불을 조각했다고 한다. 전체 높이는 12.38m이며 높이 9.95m, 너비 7.2m의 거대한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몸체를 만들고 머리는 2.43m 크기인 다른 돌을 조각하여 올려놓은 특이한 형태의 불상인데 이러한 형식의 불상은 고려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다. 두부(頭部)의 크기로는 충남의 은진미륵 다음으로 크다. 머리의 뒷부분은 파손되었으나 앞쪽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머리는 소발이 높은 육계를 갖추고 있고, 이마에는 커다란 백호가 양각되어 있다. 얼굴은 아래턱이 아주 완만하게 처리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4각형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전체적인 얼굴 조각 수법은 크고 풍만한 편이며 고려시대 거구의 불상에서 일반으로 나타나는 투박함은 보이지 않는다. 머리와 얼굴 특히 입에는 주홍색이 남아 있어서 원래는 채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법의는 두 어깨를 감산 통견이며 몇 개 안되는 옷주름은 매우 도식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두 손은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어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배에 대고 있는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 수인을 하고 있다. 불상의 발 아래에는 음각된 연꽃으로 대좌를 표현하고 있다. 석불상 앞에는 불상을 막아 서 있는 또 다른 바위가 있다. 석불상을 막고 있는 이 바위는 석불이 새겨져 있는 바위의 절반 정도의 크기이지만 윗부분은 상당히 넓은 평평한 면을 가지고 있다.
연미사 삼층석탑
유형문화재 제99호
연미사의 뒤쪽으로 난 길을 약 30여m 정도 오르면 석불상 뒤편에 약 3m 높이의 삼층석탑이 있다. 도괴되어 주위에 흩어져 있던 것을 복원해 놓은 것으로 단층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기단과 탑신은 아무런 조식이 없는 단조로운 모습이며 옥개석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를 살짝 올려 날렵함을 표현했다. 주위의 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탑으로 석불상과 같은 시기인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된다.
이 바위는 석불상과 3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연미사 대웅전에서 석불상으로 가는 길을 따라 가면 석불상 앞에는 마치 석굴사원과 같은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이 공간은 4평 정도의 크기이며 그 안에 들어가면 완전히 차단된 하나의 방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하나의 기도공간인 셈이다. 불상을 조성한 후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전각이 지어졌다는 전설로 보아 이 바위를 전각을 짓기 위한 초석의 역할로 해석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이 불상은 고려시대 유행하던 지방화된 거구의 불상 가운데 하나로 당시 불상 양식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석불상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이, 석불상 정면에는 쌍사자석등이 놓여 있다.
연미사 찾아가는 길
연미사로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중앙고속도로 안동IC를 빠져 나와 안동 시청 쪽으로 약 10분 정도 달리다 보면 태화 오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영주 가는 5번 국도로 좌회전한다. 이 3번 국도를 가다 서부초등학교를 지나 다시 영주방면으로 좌회전 해 직진만 약 10분 정도 가다보면 오른쪽에 와룡면, 도산서원 가는 도로를 지나 몇 분 정도 가다보면 제비원 가구단지와 왼쪽에 제비원 휴게소가 나오고 곧‘이천동 석불/연미사’표지판이 나오는 오른쪽 길로 500m 정도 가면 오른쪽 길가에 연미사가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