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가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1~3)
마태오 복음 6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자들이 일상 생활 가운데서 추구해야 하는 자신 스스로의 경건과 의로움과 관련된 규정을 다루었다면, 마태오 복음 7장 1~6절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지켜야 하는 대인 관계의 규정을 다루고 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에 해당하는 '메 크리네테'(me krinete; do not judge)는 단도직입적인 매우 강력한 의미를 지니는 명령문이다.
여기서 '심판하지'로 번역된 '크리네테'(krinete)는 복수 2인칭 현재 명령형이다.
희랍어에서 현재 명령형은 생활 습관이나 기준을 새롭게 제시할 때 사용되는데,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계속해 왔던 심판하는 일을 그만두고, 심판을 금하는 새로운 생활 기준을 가지라는 말이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는 율법이나 자신들이 만든 계율로 이웃을 단죄하는 풍조가 만연했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심판 혹은 비판은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정당한 판단을 가리키지 않는다.
여기서 금하는 심판(비판)은 유익하고 지혜로운 선악의 구별이 아니라 이해심이나 동정심없이 상대방을 근거없이 헐뜯는 것을 말하며, 절대 공의(公義)로 심판권을 행사하시는 하느님과 같은 위치에서 다른 사람을 단죄하는 교만한 태도를 말한다(로마2,1~3; 야고4,11.12). 그리고 이렇게 무책임하게 형제를 심판하는 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 사실은 마태오 복음 7장 1절의 '심판을 받다'에 해당하는 '크리테테' (krithete; you are judged)가 수동형이라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이 단어에서 동작을 받는 대상은 복수 2인칭 으로서 지금 이 말을 듣고 있는 자들이지만, 비판을 하는 주체는 나타나지 않는다.
여기서 불공정하게 심판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단죄하시는 분이 바로 공의로우신 하느님이시라는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7장 2절은 마태오 복음 7장 1절의 보충설명이며 재강조의 성격을 가진다.
여기서 '심판받고'에 해당하는 '크리테세스테'(krithesesthe; yo u will be judged)의 원형 '크리노'(krino)는 사사로운 단죄나 헐뜯는 것을 가리키지만, 판결하고 언도하는 사법적 의미로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또한 '그 되로 받을 것이다'에 해당하는 '메트레테세타이'(metrethesetai; it will be measured)의 원형 '메트레오'(metreo)는 양이나 길이를 재는 것을 가리키는 '메트론'(metron)에서 유래하여 물건 거래와 관련하여 사용되는 경제적 용어이다.
이처럼 마태오 복음 7장 2절은 사법적 용어와 경제적 용어를 사용하여 이웃에게 가혹하게 대하는 자는 동일한 처우를 받게 될 것을 강조한다.
두 단어가 모두 수동태로 사용되어 상대방을 향한 심판과 되질함이 하느님에 의해 자신에게 되돌려질 것을 보여 준다.
한편 마태오 복음 7장 3절은 '형제의 눈 속'과 '네 눈 속', '티와 들보', 그리고 '보면서'와 '깨닫지 못하느냐'가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는 기교적인 문장이다.
'티'에 해당하는 '카르포스'(karphos; mote; speck)는 '시들다'는 뜻을 가진 '카르포'(karpho) 에서 유래하여 지푸라기나 왕겨 등을 뜻한다.
그리고 '들보'에 해당하는 '도코스'(dokos; the beam; the plank)는 '받치다', '지탱하다'는 뜻이 있는 '데코마이'(dechomai)에서 유래하여 건물을 받치는 기둥, 재목 또는 서까래를 뜻한다.
타인의 조그마한 결점을 상징하는 '티'와 자신의 큰 허물을 상징하는 '들보'라는 서로 대조되는 단어를 대구시키는 과장법을 통해 교훈이 전달된다.
예수님께서는 타인의 작은 도덕적 잘못이나 교리적 오류에 대해서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 예리하게 지적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갖고 있는 더 큰 잘못, 즉 마치 들보와 같은 결함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는 자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시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대표적인 들보와 같은 결함은 자신이 가진 죄악을 보지 못하는 영적 무지와 형제에 대하여 사랑이 없는 가혹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 7장 1절과 2절에서는 동사가 복수 2인칭으로 사용된 것과는 달리 마태오 복음 7장 3절에서는 동사가 단수 2인칭으로 사용된 것이 대조를 이룬다.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7장 3절에서 지금 말씀을 듣고 있는 자들 개개인이 바로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지적하는 심정으로 단수 2인칭을 사용하신 것이다.
출처: 피앗사랑, rig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