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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그림자 /황지우
맑은 물 아래
물고기는 간데없고
물고기 그림자들만 모래 바닥에 가라앉아 있네
잡아묵세, 잡아묵세,
마음이 잠깐
움직이는 사이에
물고기 그림자도 간데없네
눈 들어 대밭 속을 보니
초록 햇살을 걸러 받는 저 깊은 곳,
뭐랄까,
말하자면 어떤
神性같은 것이 거주한다 할까
바람은 댓잎새 몇 떨어뜨려
맑은 모래 바닥 위
물고기 그림자들 다시
겹쳐놓고,
고기야, 너도 나타나거라
안 잡아묵을 텡께, 고기야
너 쪼까 보자
맑은 물가 풀잎들이 心亂하게 흔들리고
풀잎들 위 풀잎들 그림자, 흔들리네
시집 - 게 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사진 - 네이버 포토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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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 (본명 황재우)
1952 전남 해남 출생.
1979 서울대 인문대
철학과(미학전공) 졸업 및 동 대학원에 입학.
1980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연혁>이 입선.
1980 계간
≪문학과 지성≫에 시 <대답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발표하여 등단.
제3회 김수영 문학상 제36회 현대문학상
제8회 소설시문학상 제1회 백석문학상
대산문학상 수상 등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이며, 미술평론가로도 활동 중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나는 너다>
<게 눈속의 연꽃>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아지매는 할매되고 / 허홍구
염매시장 단골술집에서
입담 좋은 선배와 술을 마실 때였다
막걸리 한 주전자 더 시키면 안주 떨어지고
안주 하나 더 시키면 술 떨어지고
이것저것 다 시키다보면 돈 떨어질 테고
그래서
얼굴이 곰보인 주모에게 선배가 수작을 부린다
"아지매, 아지매 서비스 안주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주모가 뭐 그냥 주모가
되었겠는가
묵 한 사발하고 김치 깍두기를 놓으면서 하는 말
"안주 안주고 잡아먹히는 게 더 낫지만
나 같은 사람을 잡아
먹을라카는 그게 고마워서
오늘 술값은 안 받아도 좋다." 하고 얼굴을 붉혔다
십수 년이 지난 후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아줌마 집은 할매집으로 바뀌었고
우린 그때의 농담을 다시 늘어놓았다
아지매는
할매되어 안타깝다는 듯이
"지랄한다 묵을라면 진작 묵지."
허홍구 시인
대구출생
국제 PEN 클럽,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집]
사랑 하나에 지옥
하나 (혜화당 96년)
네 눈으로 나를 본다 (도서출판 대일
98년)
내 니 마음 다 안다 (도서출판 솟대 2001년)
[수필집]
손을 아니 잡아도 팔이
저려옵니다 (도서출판 대일 96년)
만점 남편 / 이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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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취하려 안 취하려 하다가
사람들 너무 좋아
그만 고주망태기로 돌아와 누운 밤
오늘도 어김없이
아내는
바가지를 긁는다
당신, 이럴 줄 몰랐어요
정말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
이렇게 한심한 사람인 줄 몰랐어요
저 혼자
실컷 왜장 치다가
저 혼자 실컷 핏대 올리다가
저 혼자 실컷 신경질 내다가
이것만 지키면 만점 남편이라며
아내는
순식간에 몇 항목 종이에 쓴다
쓰고 큰 소리로 읽는다
- 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것
- 이, 술 마시지 말고 빨리
귀가할 것
- 삼, 제 물건은 제 자리에 - 책, 담배, 양말 등
- 사, 하루 삼십 분 가족들과 대화할 것
- 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목욕할 것
하고, 목청 높여 읽다 말고
아이고, 답답한 이 남편네야
아이고, 폭폭한 이 서방네야
아이고, 철없는 이 신랑님아
하며 내 갈비뼈와 엉덩이
마구 꼬집는다 주먹 꼬나쥐고
팍팍 쳐댄다 아이고, 사람
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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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봉 시인
1953년 충남 공주 출생
숭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1983년 <삶의 문학> 제5집에 평론 시와 상실의식 혹은 근대화를 발표
1984년 창작과비평사 17인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에 <좋은 세상>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함
시집 <좋은세상> <봄 여름
가을 겨울> <절망은 어깨동무를 하고> <무엇이 너를 키우니>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 <길은
당나귀를 타고 >등
평론집 <실사구시의 시학> <진실의 시학>
<시와 생태적 상상력> 연구서 및 시론집 <한국현대시의 현실인식> <화두 또는 호기심>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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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며느리년에게 콩심는 법을 가르치다 /
하종오
외지 떠돌다가 돌아온 좀 모자란 아들놈이
꿰차고 온 좀 모자라는 며느리년을 앞세우고
시어미는 콩
담은 봉지 들고 호미 들고
저물녘에 밭으로 가고
입이 한 발 튀어나온 며느리년 보고
밥 먹으려면 일해야 한다고 핀잔주지는 않고
쪼그려 앉아
두렁을 타악타악 쪼고
두 눈 멀뚱멀뚱 딴전 피는 며느리년 보고
어둡기 전에 일 마쳐야 한다고 눈치주지는
않고
콩 세 알씩 집어 톡톡톡 넣어 묻고
시어미가 밭둑 한 바퀴 다 돌아오니
며느리년도 밭둑 한 바퀴 뒤따라 돌아와서는,
저 너른 밭을 놔두고 뭣 땜에 둑에
심는다요?
이 긴 하루를 뭣 땜에 저녁답에 심는다요?
며느리년이 어스름에 묻혀 군지렁거리고
가장자리부터 기름져야 한복판이 잘
되지,
새들도 볼 건 다 보는데 보는 데서야 못 심지
시어미도 어스름에 묻혀 군지렁거리고
다 어두운 때에 집에 돌아와 아들놈 코고는 소리 듣고
히죽 웃는 며느리년에게 콩 남은 봉지와 호미 쥐어주고
시어미가 먼저
들어가 방문 쾅 닫고
하종오 시인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에 「사미인곡(思美人曲)」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80년 『반시(反詩)』 동인으로 참가.
1981년 첫시집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간행 이후, 『사월에서
오월로』(1984) 『넋이야 넋이로다』(1986) 『분단동이 아비들하고 통일동이 아들들하고』(1986) 『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1989)
『정』 『깨끗한 그리움』 『님시편(詩篇)』(1994) 『쥐똥나무 울타리』(1995) 『사물의 운명』(1997) 『님』(1999) 등의 시집이
있다.
1983년 신동엽창작기금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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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등이 있는 풍경 / 문정희
이내
조등이 걸리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어머니는
80세까지 장수했으니까
우는
척만 했다
오랜
병석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가 죽었다
내
엄마, 그 눈물이
그
사람이 죽었다
저녁이
되자 더 기막힌 일이 일어났다
내가
배가 고파지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죽었는데
내
위장이 밥을 부르고 있었다
누군가
갖다준 슬픈 밥을 못 이긴 척 먹고 있을 때
고향에서
친척들이 들이닥쳤다
영정
앞에 그들은 잠시 고개를 숙인 뒤
몇
십 년만에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니,
이 사람이 막내 아닌가? 폭 늙었구려."
주저없이
나를 구덩이 속에 처박았다.
이어
더 정확한 조준으로 마지막 확인 사살을 했다
"못
알아보겠어.
꼭
돌아가신 어머니인 줄 알았네."
첫댓글 초록 햇살을 걸러 받는 저 깊은 곳, 뭐랄까, 말하자면 어떤 神性같은 것이 거주한다 할까
어떻노 니캉 내캉 홀딱 벗어 뿔고 고마 확 센 놈 한번 돼 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