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은 용인에서 태어났는가
김창현
나는 용인에 와서 문인 모임에 나가서, 수지문학회 회장 이석순 시인이 <수지 향토문화 답사기>란 책을 낸 걸 알았고, 문학회 회원 몇 분이 고기리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할아버지 이백록 옹 묘소를 참배한 걸 알았다. 이백록 옹의 묘소 위치는 낙생저수지 근처다. 그래 2024년 1월 향토사학자 임종삼 경기시조시인협회 부회장과 참배하니, 묘소 위치는 고기초등학교 옆인데 거기 충무공의 조부 풍암(楓巖) 이백록(李百祿)의 묘소와 재실인 덕풍재(德楓齋)가 있고, 조카 이완장군 묘는 백 미터 떨어진 장군봉 자락에 있고, 고기동에 후손이 살고 있어 임 시인은 족보를 본 적 있다 하였다. 그분의 설명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 할아버지는 平市署奉事란 벼슬을 했는데, 성격이 호방해 종로 일대 건달들이 술자리에 자주 응했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해직되어 서울을 떠나 평소 그가 흠모하던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묘소가 있는 수지구 상현동 근처 고기동에 와서 살았다는 것이다. 조광조의 상현동 묘소와 고기동 이백록(李百祿)의 묘소는 직선거리 6km 정도 된다. 임종삼 시인 설명을 들으며 나는 충무공의 탄생지가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일수도 있다는 예감이 문득 들었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철학자 에드워드 카(E. H. Carr)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로 정의한 바 있다. 또 history is interpretation라 해서 '역사는 해석'이라는 주장을 했다. 역사의 객관성(objectivity)과 주관성(subjectivity) 사이에 해석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역사학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인 레오폴트 폰 랑케의 역사학 실증주의도 '엄격한 교차검증으로 사료를 비판하고 과학적인 검증 방법으로 반증 가능한 사실을 기준으로 역사는 서술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옥창열 시인에 의하면 현재 충무공의 탄생지에 대한 정확한 출처의 서술은 덕수 이씨 족보나 조선왕조실록 어디에도 없다. 인공지능 뤼튼에 물어봐도 뾰족한 답이 없다. 다만 두산백과 위키백과 나무위키를 검색해 보면 세 곳 모두 충무공 탄생지를 현재 서울 중구 인현동 1가 31-2로 번지까지 명기하고 있지만, 어떤 출처는 대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동네 지명을 충무로로 바꿔놓고, 중구청에서는 충무공 생가터라고 표지석을 세워놓고 있는 근거가 너무 미약하다. 어릴 때 이순신과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유성룡의 서애집 기록이 전부이다. 어릴 때 살던 동네와 탄생지가 서로 다른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충무공 탄생지가 서울 건천동이라는 추론은 E. H. Carr의 역사철학이나 랑케의 역사 실증주의에 비춰보면 너무 나이브한 추론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선 충무공의 할아버지 이백록(李百祿) 옹이 한양에서 파직되어 용인에 온 것은 1519년이다. 그리고 충무공 탄생 년도는 1545년이다. 충무공이 할아버지 사후 2년 후에 탄생했다는 사실은 기록으로 남아있으니, 할아버지 이백록(李百祿) 옹이 용인에 와서 살았던 기간은 24년이 된다. 충무공의 아버지 李貞은 외아들이니 당시 시대상으로 보면, 당연히 아버지를 모시고 용인에 와서 살았을 것이다. 충무공은 셋째 아들이다. 부친은 용인서 24년 살면서 두 아들을 얻고, 나중에 이백록(李百祿) 옹 사망 2년 후에 충무공을 얻었을 것이다. 아버지 李貞이 24년 전에 한양에서 부친을 모시고 용인으로 왔고, 충무공은 할아버지 사망 후 2년 뒤에 태어났는데, 충무공이 서울 남산 밑 건천동에서 태어났다는 추론은 너무 순서가 맞지 않는다. 모친이 자녀 출산시마다 친정에 가서 몸을 풀고오지 않았다면 충무공은 용인에서 태어난 것이 거의 확실하다. 부친 李貞은 43세 쯤에 자신의 외가와 처가가 있던 아산으로 이사한 사실 자료가 있으니, 거주 순서는 용인 수지, 충남 아산, 그다음 남산 밑 건천동일 가능성이 높다. 부친 李貞은 그때 쯤 벼슬을 얻어 아산에서 네 아들을 데리고 솔가하여 한양으로 입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충무공 이순신은 영국의 넬슨 제독보다 높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군 제독이다. 전 세계 역사서 어디에도 모든 전투에서 전승을 거둔 사례는 없고, 이순신이 유일하다. 일본의 전설적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는 '자기를 넬슨에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나, 이순신에 비교하는 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 했고, 영국 해군 조지 알렉산더 발라드 제독은 '영국인의 자존심은 그 누구도 넬슨 제독과 비교하길 거부하지만, 유일하게 인정할 만한 인물을 꼽자면 한반도의 이순신 공으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실수가 없었으며, 모든 면에서 완벽해 흠잡을 점이 전혀 없을 정도다'라 기술했다. 이런 세계적인 인물의 탄생지가 어디인가? 역사적 자료를 정확히 재검토 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