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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 07, 동아시아
시간과 공간
시간이란 시계로 읽은 두 사건 사이의 간격이다. 공간이란 자로 읽은 두 지점 사이의 거리다. 이 정의에는 시간과 공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들어 있지 않다.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시간과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기술하는 물리량을 의미한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니까.
우리가 느끼는 시간과 공간은 측정 결과 얻어진 결과물이다. 여기서 거리란 공간을 점하는 어떤 크기를 말한다. 이것 없이 어떻게 물리적인 공간을 생각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건에 대해 움직이는 사람이 잰 시간 간격이 정지한 사람이 잰 시간 간격보다 크다면, 움직이는 사람의 시계는 실제로 느리게 가는 거다. 측정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시간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따름이다.
시간과 공간을 측정한다는 것
오늘날 1미터는 빛의 속도와 시간으로 정해진다. 정해진 시간 동안 빛이 이동한 거리가 1미터라는 식으로 말이다. 시간으로 길이를 정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1초는 어떻게 정하는가? 시간의 기준도 빛으로 정한다. 현재 1초의 정의는 세슘 원자가 내는 특정 진동수의 빛이 9,192,63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시간의 역사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의 단서는 빅뱅이 일어난 순간에 있을 거다. 현대물리학은 빅뱅 이후 1000억분의 1초가 지난 다음부터 적용할 수가 있다. 그 이전의 엄청나게 짧은 시간 동안을 기술할 수 있는 물리이론은 아직 없다. 물리학의 성배나 다름없는 통일장이론 혹은 양자중력이론이 나온다면 1000억분의 1000억 곱하기 1000억분의 1초까지 빅뱅에 접근하여 우주를 기술할 수 있게 된다. 이 찰나와도 같은 시간 속에서 우리는 우주 존재의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까? 스티브 호킹이 쓴 <시간의 역사>의 마지막 문장이다.
“만약 우리가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의 답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인간 이성의 최종적인 승리가 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 현상은 원자들의 운동
산소는 반응성이 큰 원자다. 다른 원자를 만나면 바로 결합한다. 따라서 산소가 홀로 몸속을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 산소가 몸을 이루는 원자들과 마구 결합하여 망가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산소를 활성산소라 부른다. 노화의 주범이며, 죽음의 이유이기도 한다. 아이러니하지만 몸의 모든 세포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산소를 필요로 한다. 헤모글로빈은 위험물 산소를 운반하는 특별호송차량인 셈이다. 산소 이외의 원자들은 그냥 혈액을 타고 이동한다. 산소만 예외다.
헤모글로빈의 구조를 보면 정확히 산소 분자에 들어맞는 빈 공간을 가지고 있다. 질소나 염소 같은 다른 분자는 여기 들어갈 수 없다. 산소만을 위한 열쇠구멍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산소와 비슷한 크기의 분자가 오면 실수로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일산화탄소가 그 예다.
똑같은 것은 똑같지 않다
인간 DNA에는 32억 개의 염기서열이 있다. DNA 한 개를 복제하는 것은 전 세계 인구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장부에 옮겨 적는 거랑 비슷하다. 더구나 사람의 몸에는 30조 개 정도의 세포가 있고, 세포마다 DNA가 하나씩 있다. 세포가 복제될 때는 DNA도 복제되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실수가 일어난다. 결국 쌍둥이조차 세포 수준에서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다는 의미다.
모든 전자는 똑같다
전자는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물질의 최소 단위다. 우리는 숨을 쉴 때마다 한 번에 500밀리미터 정도의 공기를 들이마신다. 여기에는 대략 아보가드로수의 전자가 들어 있다. 아보가드로수란 1뒤에 0이 23개나 붙은 어마어마하게 작은 숫자다. 그런데 이 많은 전자들은 서로 완전히 똑같다. 똑같아 보이는 물체들이 사실 다르다고 하더니, 전자는 완전히 똑같다고 하는 이유가 뭘까? 전자는 물질의 최소 단위다. 전자는 색도 모양도 없다. 그 내부에 더 작은 세부구조 따위도 없다. 그래서 모든 전자는 똑같다. 많은 원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일상의 물체들은 똑같이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물체를 이루는 원자의 수준으로 내려가면 전자 같은 기본입자들은 서로 구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똑같다. 우리가 보는 물질은 그 자체로 실체가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장의 일부분, 형상의 결과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카오스에서 엔트로피로
자연이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 법한 상태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열역학 제2법칙이라 부른다. 이 과정을 정량적으로 표현하면 ‘엔트로피는 증가할 뿐이다’가 된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진행한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카오스가 일어나고 있으며, 지수함수적으로 빠르게 초기조건에 대한 정보가 사라진다. 그래서 엔트로피는 무지의 척도다. 통계적 상태에 도달하면 초기조건에 대한 기억은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많은 것은 다르다
환원주의는 이렇게 주장한다. 원자물리는 입자물리의 응용에 불과하고, 화학은 원자물리에 불과하고, 생물학은 화학에 불과하고, 인간은 생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만약 입자에서 원자, 화학, 생명, 인간으로 층위가 높아짐에 따라 이전 층위에서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법칙이 출현한다면, 환원주의처럼 단순히 말하기는 힘들다. 우리 몸은 원자로 되어 있다. 성인의 경우 원자의 수는 7 × 0이 27개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주로 탄소, 수소, 산소, 질소의 네 종류다. 양자역학은 이들 원자를 완벽하게 기술한다. 하지만 아무리 원자 각각을 들여다본들 소화불량이 무엇인지 알아낼 방법은 없다. 원자들이 모여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이 되고, 이들이 모여 세포가 되고, 세포들이 모여 위장이 되는 과정에서 무엇인가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뜻이다.
물질에서 상전이를 통해 얼음이 물이 되거나 물이 수증기가 되듯이, 상전이 이전에 물질이 갖지 않았던 속성이 새롭게 생겨난다. 이처럼 구성요소에서 없던 성질이 전체 구조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창발이라 부른다. 창발의 예는 찾아보기 쉽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자동차가 움직이고 커피가 끓고 있다. 인간행동, 사회현상도 모두 여기 포함시킬 수 있다. 이것들 가운데 원자로부터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모두 창발이가 보면 된다.
물리에서 인간으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아니다. 아무 의미 없이 법칙에 따라 그냥 도는 것뿐이다. 지구상에서 물체가 1초에 4.9미터 자유낙하 하는 것은 행복한 일일까? 4.9라는 숫자는 어떤 가치를 가질까? 4.9가 아니라 5.9였으면 더 정의로웠을까? 진화의 산물로 인간이 나타난 것에는 어떤 목적이 있을까? 공룡이 멸종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화에 목적이나 의미는 없다. 의미나 가치가 인간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 우주에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는 없다.
그렇지만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론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