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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 유두암 0.8 전절제-여의도 성모병원
5.2010 9월 29일 수술대에 오르다
당일입원,당일수술이라는 속사천리 스케쥴이 내게 던져졌다. 내 나이가 젊은 편이라 그렇단다. 나의 수술시간은 오후 2시경. 오전 중엔 나이 많으신 분들, 아이들, 중환자, 여자 순으로 수술순서가 정해지는 모양이다. 당일입원, 당일수술 스케쥴은 입원기간이 짧아져서 좋긴 한데 전날 밤부터 금식하여 수술 후 4시간까지 금식이니 거의 20시간 가까이 금식을 해야하는 어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불편이 있다.
1인실로 옮겨 TV를 보는둥 마는둥 시간을 초조하게 보내고 있는데, 10시쯤 레지던트가 들어와서 수술설명을 하고 동의서에 사인을 받는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라는데 이미 내가 박사가 된지 오래라 그닥 물어보고 싶은 것도 없다. 조금 후 간호원이 와서 수액 링겔을 꽂는다. 그러고 나니 좀 환자꼴이 난다. 기분도 좀 나른해 지면서 환자느낌이다.
12시 2분쯤인가…간호원이 급히 들어오더니, ‘수술 들어가실께요…’한다. 예정보다 2시간이나 앞당겨지니 당혹스럽지만, ‘그래, 빨리 매맞고 치우자’ 싶으면서 괜히 방안에서 하릴없이 초조하게 기다리느니 잘됐다 싶었다. 소변을 보고 수술에 들어가는게 좋다는 글을 읽은 바 있어서 소변을 간단히 보고 바퀴달린 침상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간다. 데굴데굴 침대바퀴 굴러가는 질감이 등줄기로 옮겨진다. 그 기분이란….. 아직은 사지육신이 멀쩡한데 굳이 꼭 이 꼴로 수술실에 가야하나 싶다.
‘금방 끝날꺼야’, ‘기운내’ 친구와 누나가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며 헤어지는데, ‘마취되서 뷁~ 죽어있을텐데 무슨 기운을 내 ㅋㅋㅋ?’ 너스레를 떨어 그들을 안심시키며 수술실로 입장한다.
나는 이번이 전신마취수술 세 번째이다. 그래서 별로 떨림이 없을 거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었다. 수술준비실에서 뒤집어 입은 병원복 상의를 벗기고 따뜻한 온기가 어린 담요를 덮어준다. 머리를 수건으로 정리해준다. 이름과 주민번호를 확인한다. 의치나 의안을 했는지 물어본다. ‘아니요’하고 대답한다. ‘들어갑니다’라는 레지던트들의 구령에 맞춰 드라마에서나 봤던 초록색 장비와 라이트로 가득한 수술실로 들어간다. 별로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어떤 것들이 내 주위 있는지 확인하고 싶지 않다. 젊은 의사들이 내 몸에 심전도기 등을 부착한다. 마취과의사가 내 이름을 다시 중복 확인한다.
‘오늘 무슨 수술하시죠?’
‘어머나 그것도 모르고 절 마취 하려하셨나요?’ 하고 농담하려다가 혼날 것 같아서
‘갑상선이요’ 짧게 대답한다.
그런데 실눈을 뜨고 보니
‘박교수님은 마취 전에 못 뵙나요?’
‘마취 후에 들어오십니다’ 마취과 의사의 성의없는 대답
‘박교수님이 직접 집도하시니 걱정마세요’ 간호원 언니의 센스있는 대답이 이어진다.
저 멀리 오른쪽 방에서 박교수의 목소리가 이쪽으로 넘어온다.
‘다 달았냐?’
‘네에~’ 제자들 일동 대답하는데 내 왼손바늘을 통해 들어오는 차가운 마취액의 쏴~한 이 느낌, 오랜 만이다. 죽을 때 이런 느낌일까? 수면마취건 전신마취건, 마취가 되는 순간은 항상 흥미롭다.
그리고는 잠시…2시간 동안 죽는다.
…….
아무것도 없다.
마취의학기술이 만들어 낸 無다…..
6.싱거운(?) 회복과정
의식이 돌아오면서 회복실에 누워 필사적으로 목소리부터 내본다. 가장 두려운 부작용은 아무래도 성대마비가 아니던가…
‘아~ 아~’
소리가 잘난다. 가성도 내보고 고음도 시도해본다. 그건 좀 목이 땡긴다. 욕심내지 말자 싶어 이 정도면 만족이고 감사할 일이다 생각하고 짧게 감사기도를 해본다. 직업이 가수는 아니지만 노래하는 것을 많이 좋아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말로 먹고 사는 나에게 목소리는 여러모로 절대적인 재산이다. 누구에게는 아니겠냐만은…
수술부위가 생각보다 많이 아팠다.
‘진통제 놔주세요~’
‘진통제 맞으면 헤롱헤롱해서 잠와서 안돼여, 심호흡 하세요’ 회복실의 의사가 무 자르듯 잘라버린다.
‘에이쒸~ 아픈데~’
수술실을 미끄러지듯 빠져 나온다. 누나와 친구가 달려 붙는다. 목을 확인한다.
‘목주름에 맞춰 절개해서 흉도 많이 안지겟구먼’ 누나가 안심한다.
‘몇 시야?’
‘두 시’
수술이 길게 걸리지 않은 것 보니 전이나 뭐 안 좋은 상황없이 수술이 간단하게 잘 끝났다는 증거다. 목에 피주머니조차 없다.
‘수술자리를 꾀멘게 아니라 본드 같은 걸루다 붙여놨네?’ 누나가 말한다.
거울로 보니 정말 봉합이 아닌 본드질이었다. 흉도 덜 남고 방수기능이 있어 수술 다음날부터 샤워가 가능하단다. ‘세상 많이 좋아졌죠?’ 수간호원님께서 자부하시며 어깨를 으쓱이신다.
입원실로 들어와 결국 진통제를 맞았다. 죽도록 참으라면 못참을리 없었겠지만 그렇게 미련하게 참을 필요 없다는 선배 환우님들의 글을 읽었던 차라 강하게 요구해서 진통제 한대를 맞았다. 그랬더니 금세 많이 편해졌다. 진통제를 맞으니 확실이 좀 졸렵긴 했다. 졸음참는게 젤 힘들었다. (마취깨고 내서 피곤하다고 자면 안 됀 답니다. 네 시간 쯤은 정신차리고 심호흡해야 회복이 빠르고 마취 후유증도 없데요)
네 시간쯤 흐르고 빨대로 물을 마셔본다. 목이 열라 아프다. 왜 아니겠나? 생살을 떼어냈는데(전절제)…그래도 조금씩 마신다. 수술이 끝나면 갈증이 많이 난다. 수술 직후에는 보호자가 젖은 거어즈로 입을 적셔주면 도움이 많이 된다. 물이나 죽을 넘길 때는 고개를 좀 숙이고 먹으면 덜 아프다. 꼭 기억하시길….빨대는 필수다. 고개를 뒤로 제쳐 뭘 먹는게 불편하니 그렇다. 아이스크림이나 요플레가 가장만만하다. 하지만 솔직히 회복이 너무 빨라 저녁나절이 되니 밥도 먹을만 했다. 수술 이튿날엔 수액 링겔도 뽑아버린다. 바늘은 남겨둔다. 항생제나 거담제, 진해제를 계속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수술 받은 당일 밤엔 이미 병원 로비나 주차장을 서성거리며 산책이 가능했고, 이튿날엔 ‘내가 굳이 입원을 해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며 답답증이 밀려왔다. 회진을 돌던
친구들이 공세하는 아이스크림과 조각케익에 매몰되어 나는 몸무게가 늘어 퇴원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퇴원한 어제 짐을 정리하고 저녁나절에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누나한테 전화가 왔고 폭탄선언을 듣는다. 방금 전 부모님께 이야기 했다는 것이다. 고모가 수술하기 전 많이 불안해 하니 한번 문병을 가야겠다는 말씀에 누나가 못 참고 입을 열어버린 것이다.
‘거기 갈 시간 있으면 아들먼저 챙겨보심이…’ 뭐 이런 식이 었다나…
저녁 일곱 시쯤, 얼굴이 흙빛이 된 부모님이 들이 닥쳤다. 30분에 걸쳐 왜 늦게 이야기하기로 누나와 합의했는지, 수술이 아주 잘 끝났음을, 갑상선 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일장연설 해가며 발등의 불을 껏다. 수술 끝나고 퇴원한 환자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해도 싶은가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부모님의 흙빛 얼굴에 핏기 다시 서리는 것을 보고 늦게 이야기하기로 한 게 나쁜 선택은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저 극심한 고민을 한달 가까이 부모님께 굳이 안겨드릴 이유도 혜택도 없다. 부모님의 극심한 걱정을 그렇게 두 세 시간으로 줄인 것은 아무래도 잘한 것 같다. 끝까지 묻어 둘 수는 없지만 연로하신 부모님께 괜한 불면증을 안겨드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말씀 드리면 부모님께선 분명 약간의 황당한 배신감을 느끼실 수는 있어도 분명 마음 고생은 덜하신다. 4일날 수술에 들어가는 고모를 제가 직접 찾아뵙고 안심시켜드리겠다는 약속까지 들으시고 함께 저녁식사를 마치고 부모님께서 집으로 돌아가셨다.
7. 터널을 지나…시험 듦의 의미찾기
지난 한 달은 어둡고 긴 터널이었다. 평탄하지만은 않은 삶이었지만 이렇게 까지 괴롭게 고민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암 선고는 분명 죽음의 맛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대조효과를 통해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의미 또한 극명하게 드러낸다. ‘하필이면 재수없게 내가 도대체 왜…’하고 괴로워하면 그 뿐이다. 그냥 괴로움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소중한 많은 것을 챙기기로 했고 또 실제로 얻어진 것이 많다.
가장 큰 것은 신과의 관계를 회복한 것…만사를 신께 맡기고, 많은 부분 그냥 내려놓기로 한 것…심지어 ‘예수님께서 이번 수술 직접 집도하세요’ 하고 뻔뻔하게 기도를 드리는 수준이 되었다. 신께서도 좀 당혹스러우시려나….ㅋㅋㅋ…
담배를 끊은 것도 큰 수확이다. 사망률이 1%도 안돼는(신종플루나 폐렴 같은 병보다도 사망률이 낮다)병에 걸렸다고 인생 파김치 된 줄 알며 벌벌 떠는 놈이 담배를 피며 온갖 몹쓸병의 인자를 몸에 끌어대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금연을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이번처럼 금단현상 한번 없이 대번에 담배를 끊게 될 일이 내게 생길 줄이야…심지어 신께서 내게 담배를 끊어 버리시려고 이 병을 내리셨나 싶기도 한다.
건강과 몸의 소중함에 대하여,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에 대하여, 내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에 대하여 알게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 갑상선 암은 역설적으로 축복일 수도 있다. 받게 될 암보험금을 차체하고서라도 말이다. 그까짓 돈이 무슨 의미랴… 수술실에서 도려낸 것은 내 인생의 오만, 건강무감증, 회의주의, 근거없는 우울증, 기도하지 않는 삶, 감사할 줄 모르는 건방짐 같은 것이었을 수 있다.
환우여러분! 2010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갑상선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아예 한 명도 없다고 봐도 될 정도라고 합니다. 오죽하면 요즘 나오는 암보험들은 갑상선 암은 보장조차 안 해 주겠습니까? 암도 아니라는 거죠…물론 당사자가 느끼는 충격은 엄청나죠…하지만 지나가는 터널이라고 생각합시다. 사실 선고 이후 저를 가장 괴롭게 했던 것은 ‘과연 수술을 꼭 해야 할까’하는 마음 속의 갈등이었습니다. 잘들 아시겠지만 일본에서는 이렇게 1센치도 안되는 갑상선 유두암은 수술도 안 한다죠? 나도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거 아닌가 하는 고민이 가장 괴롭더군요…노환으로 그냥 자연사한 시체를 부검해도 10명 중 세 명에게서 갑상선 유두암이 검출된다는데 나도 그냥 모르고 살다 죽었을 수도 있는데 하는 그런 미련…괜히 건강검진에서 초음파 기계 목에다 대는 바람에 이 난리가…하는 후회…그런 것들이 마음을 괴롭게 했죠…하지만 수술이 끝난 지금 깨닫고 있습니다. 이 모든게 신께서 미리 짜두신 스케쥴이었다는 것을… 제가 그 건강검진을 통해 이 작은 암덩어리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줄담배를 피고 있었을 것이며, 교회에 나가 감사기도 할 줄도 모르며, 30대 중반 평탄한 직장생활을 하는 독신남의 쓸데없는 인생회의 주의에 빠져 말초적인 자극이나 찾아다니며 살았겠죠… 이것을 불운이라고 여기며 괴로워 할지, 인생의 재조명을 위한 기회로 여길지는 우리의 손에 쥐어진 선택권임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는 갑상선 암을 이겨낸 환우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지 않을까요? 그냥 막 살기에는 제대로 위기를 느껴본 우리들이 더 조심스럽게 몸을 챙기며 살테니 말이죠.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느라 계절이 바뀐지도 몰랐습니다. 베란다 창 밖으로 가을이 꽉 찬 하늘이 펼쳐져 있네요. 저런 것도 놓치고 살기 십상이었는데…
'본드'라고 불리우는 접합제로 붙인자국 수술 이틀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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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감동적인 글 잘보았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맘이 우울해서인지 글보면서 눈물이 흐르네요 ㅜㅜㅜ
정말 잘 읽었습니다. 수술 몇일 앞두고 아주 죽겠습니다.큭큭...저랑 같으신게 아직 어머니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분명 아시면 불면증에 시달리실껀데...계속 말하지 않는게 나을지...크극...건강하세요
얼마 안있으면 수술이라 많이 불안한데 님의 글을 읽고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하고... 글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오늘에서야 이글을 읽었군요...
정말 가슴에 와닿는 글입니다.
수술을 앞두고 있는 제게 많은 힘이되는군요...
감사합니다...
제가 재일 늦게 읽은 사람이 되겠군요.
수기 잘 읽었습니다.
환우들에게 많은 힘이 될것 같습니다.
행복한 날들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