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소년 (클리앙)
2023-12-13 16:49:07 수정일 : 2023-12-13 17:25:40
한가한 주말 집에서 뒹굴거리느니 알바나 해볼까 해서 당근으로 알바를 찾던 중에 서울의 모처에서 보안알바를 구한다는 글을 보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야간조 인원을 구하길래 저는 토-일 근무를 지원했습니다. 알바 후기들을 보니, 누군가 그동안 했던 알바에 비하면 보안알바는 개꿀이다, 라고 글을 썼더군요. 후기를 보고나니 저도 꼭 뽑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얼마 후 업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to 일요일 근무가 아니라 일요일 to 월요일 근무는 안되냐고 묻더군요. 월요일에는 출근을 해야해서 무리일 것 같았습니다만, '개꿀'을 경험해보고 싶은 열망이 더 강했습니다. 그렇게 일요일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하게 된 빌딩은 대형 쇼핑몰과 업무, 주거공간, 심지어 호텔까지 연결되어 있는 매우 규모가 큰 곳이었습니다. 도착하니 담당자분(이하 사수)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수가 제게 유니폼(조끼)과 무전기, 그리고 출입증을 주었습니다. 기대했던 삼단봉이나 매그넘 같은 건 없었습니다. 업무는 빌딩 순찰과 상황실 CCTV 관제 업무를 한시간 교대로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는 휴식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때 잠깐 눈을 붙일 수 있게끔 대기실에 2층 침대가 있었습니다. 저는 낯선 곳에서 잠을 잘 못자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 수 있을 거라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순찰업무는 크게 어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사수를 따라다니며 건물 주변의 불법주차 차량이나 지정된 장소 외에서 흡연하는 사람들을 단속하는 업무였습니다. 건물 한편에 설치된 흡연실이 아닌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사수가 '여기서 담배 피우시면 안됩니다'라고, 굉장히 근엄하면서도 힘이 실린 발성으로 외치면, 흡연자들은 마치 학생주임 선생님이라도 만난듯이 혼비백산 하였습니다. 그렇게 건물 근처와, 지하 하역장, 그 밖에 주요 시설물들을 고루 순찰하면 얼추 1시간이 흘렀습니다.
다음으로 사수를 따라 관제실로 갔습니다. 역시나 규모가 매우 컸습니다. 영화에서 본것처럼 커다란 벽에 크고작은 CCTV 화면이 128개 정도 붙어있었습니다. 건물의 출입구, 층계참, 엘리베이터, 건물 외부, 주차장 부근까지 구석구석을 카메라가 비추고 있었습니다. 제 앞의 PC를 조작하면 각 CCTV 화면을 제어 가능한 것으로 보였지만, 괜히 손댔다가 문제가 될 것 같아서 그냥 보기만 했습니다. 하염없이 화면을 보고 있자니 빅브라더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신기한 것도 잠시, 금방 지루해 지더군요. 특히 밤 9시가 넘어가자 가게들은 문을 닫고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어 카메라는 그저 텅빈 공간을 비출 뿐이었습니다. 다만 주거용 건물의 엘리베이터만은 계속해서 바삐 움직였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엘리베이터에 커플이 타면, 그리고 그들이 둘만 남게되는 상황에서는 매우 높은 확률로 스킨십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뭐 심한 것은 아니고 그냥 껴안거나 그랬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몰래 훔쳐보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창피한 행동은 해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정 휴식시간부터 아침까지는 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위에 언급한 대로 낯선 곳에서 잠을 자는 것이란 쉽지 않은 것이었고, 3시에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순찰시간이야 찬바람을 쐬며 걸으니 잠을 물리칠 수 있지만, 관제실 근무는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니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낯선 곳이 주는 묘한 긴장감 덕에 다행히 졸지는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순찰과 관제업무를 두 번 씩 더 하고 나니 어느새 날이 밝았습니다. 오전조가 도착했다는 것은 곧 저의 근무시간이 끝났다는 의미였죠. 사수가 12시간만에 처음으로 미소를 보이며, 수고하셨다, 이제 가셔도 된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퇴근하여 집에서 푹 쉴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일요일이 아니라 월요일 아침이었기 때문에, 그길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본업을 하러 회사로 향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보안알바는 과연 누군가 남긴 후기대로 그동안 경험해 본 알바 중에 편한 축에 속했습니다. 신체적으로 무리가 가는 일도 없고, 또 사람을 상대할 일도 별로 없으니까요. 다만 낮밤이 뒤바뀐 근무라는 점이 조금 힘들 뿐이었습니다. 대기실에 붙어있는 근무표에 따르면 저와 함께 일한 사수는 주간-야간-비번 이렇게 교대근무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과연 그것도 쉽지만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댓글 댓글 중---
스탠킴
일당은 얼마를 받으셨나요?
돌소년
@스탠킴님 최저시급보다는 많이 받았습니다만, 그렇게 많지도 않았습니다. 아마 절 고용한 업체에서 소개비를 떼어간 것 같더라구요.
moolboradada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호텔도 있고 주거에 쇼핑몰도 있다시기에 신도림 디큐브를 상상하며 읽었습니다. ㅎ
돌소년
@moolboradada님 네 보안상의 이유로 어딘지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가 어렵지만, 생각보다 저런 구조로 된 곳이 많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