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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확장
슬하가 외부에서 돌아온 저녁 즈음부터 복도에서는 부산한 움직임이 들려왔다. 서장을 필두로 참모진들이 계단을 오르내렸고, 박현호 과장 사무실에도 경찰서에 있는 간부들이 드나드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박현호 과장과 회의실에 있는 본청 직원들도 바쁘게 움직였고, 박현호 과장의 비서는 결재 서류를 들고 이쪽저쪽 오가며 연신 구두 소리를 복도에 울려 퍼지게 하고 있었다.
슬하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주의를 기울였지만 자신의 방에 붙여 있는 제흥동 연쇄살인 사건의 집중하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슬하는 피해자들의 신상, 부검 소견서, 범행 현장, 피해자 사진 등을 반복해서 보았지만 20대 중반에서 후반의 여성피해자라는 것이 외에는 이렇다 할 단서가 될 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피해자는 6명으로 모두 여성으로 같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 외에는 나이, 출신학교 등 상관관계가 없었으며 피해 여성 모두 성폭행을 당한 후 납치 4~7일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고, 사망 원인은 줄과 같은 끈으로 목을 조이는 기도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판단되고 있었다. 피해자들은 사망 후 양쪽 팔과 다리, 목이 절단되어 나체로 제흥동 주변의 산과 자연공원 쯤 되는 야산에 암매장 되었으며 암매장할 당시 시신의 모습은 각 절단된 부위를 원래 피해자의 모습으로 맞추어, 머리 부분을 제외한 사람이 엎드려 누워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피해자가 누워있는 모양을 따라 파놓은 것 같은 구덩이는 시신의 등 부분이 외부로 노출될 수 있을 정도로 낮게 파여져 있었고, 주위의 흙과 낙엽, 나뭇가지 등으로 시신의 육안으로 보이는 부분에 덮어놓은 상태였다. 팔목과 발목은 묶여 있었던 흔적이 남아있었고, 시신의 피부는 알코올로 소독된 상태로 절단된 끝부분 근처 피부에만 소량의 혈흔이 남아 있었다. 여성들의 질 속에는 콘돔의 점액 성분이 발견되었지만 정액과 체모는 발견되지 않았다. 목격자와 지문 역시 발견되지 않았으며 야전삽으로 자신의 족적을 지운 흔적이 미세하게 남아 있었고, 다른 신체와 달리 하늘을 향하고 있는 얼굴의 눈은, 눈꺼풀을 커터 칼로 잘라 놓아 피해자의 모습을 더욱 흉측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슬하는 자신의 책상과 벽 그리고 화이트보드에 붙여 놓은 사진과 서류를 오가며 분주하게 보내고 있었고, 시간이 흘러 늦은 밤이 돼서야 사무실 밖이 조용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슬하가 사건 자료를 머리에 숙지했을 때쯤 핸드폰이 울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전화를 건 상대방은 박현호 과장이었고 슬하를 자신의 사무실로 부르는 내용이었다. 슬하는 박현호 과장 사무실로 향했고 퇴근 후 비어있는 비서관의 자리를 지나 노크를 하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슬하가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에는 박현호 과장은 지쳐있는 모습이었고, 자신의 책상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누워 있었다. 슬하가 들어오는 모습을 본 박현호 과장은 슬하를 소파에 앉게 하고 기운을 내려는 듯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기 위해 정복의 끝을 강하게 당기고 자리에 앉았다.
“내일부터 수사는 한 팀으로 갈 것이네.”
슬하는 무덤덤했고 박현호 과장은 딱딱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밖에 있는 특별수사본부를 내 지휘 하에서 움직이게 할 것이고 사건이 마무리 될 때까지 모든 결제는 내 전결로 이루어 질 것이네. 사건 프로파일러는 박창완 경위와 함께 할 것이고 자네는 잠시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주면 하네.”
박현호 과장은 슬하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 같았지만 슬하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일련의 과정들로 생각하는 바가 있겠지만 한 가지는 약속해 줄 수 있네. 자네나, 자네 후배인 박창완 경위에게도 어떠한 불이익을 감수시킬 생각은 없네.”
박현호 과장은 슬하의 반응을 재차 기다렸지만 결국 포기를 하고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는 듯 이야기했다.
“난 자네가 대기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하네. 하지만 자네가 어떠한 일을 한다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네. 난 자네가 해도 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 할 수 있다고 생각고 있네. 하지만 만약 내 생각과 달리 자네가 그것을 구분 짓지 못하거나, 그것을 무시하게 된다면 난 자네를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네.”
박현호 과장은 슬하를 더 압박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그 이상의 말이 슬하에게 어떠한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워 보였고, 슬하의 묵묵부답인 상태에 불편한 기색이 보이고 있었다. 박현호 과장은 불편해진 슬하와의 자리를 그만 나가보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책상 의자로 돌아가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고 슬하는 돌아앉은 박현호 과장의 뒤에서 경례를 하고 문을 닫고 나와 1층 주차장 옆에서 담배 한 모금을 깊숙이 들여 마시었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은 슬하는 경찰서 내에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무실 밖은 물론 창가에서 들리는 어수선한 소리는 경찰서 전체가 시끄럽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슬하는 자신의 컴퓨터 앞에 앉으며 핸드폰으로 TV를 켰고, TV소리와 함께 뉴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TV소리와 검색된 뉴스에는 ‘제흥동 연쇄살인 용의자 검거’가 함께 교차 되고 있었고, 뉴스 채널에서는 정부의 담화문 발표 다음으로 이번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었다. 인터넷에서는 용의자의 사진이 벌써부터 돌아다니고 있었고, 뇌혈관 질환으로 쓰러진 노모를 학대하고 방치한 폐륜아의 연쇄살인이라는 자극적 제목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체포된 용의자가 사이코패스 지수가 35점이라는 기사들과 함께 케이블 TV에서는 사이코패스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예능 프로도 방송되고 있었다. 보도채널은 정신분석학 박사들이 출현해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등 정신분석학적 문제가 있는 범죄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피력하기도 하는 등, 언론 매체를 중심으로 인터넷 여론도 형성되어가고 있었다.
슬하는 TV뉴스와 인터넷 검색을 어느 정도 하고나서 아직 눈곱도 때지 못한 얼굴만 간단히 씻은 뒤 제흥동 연쇄 살인 피해자가 발견된 사건 현장으로 향했다.
슬하는 6명의 피해자들 중 최근에 일어난 사건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예전에 대형 입간판 설치되어있었다는 이유로 일명 광고 산으로 불리 우는 동산쯤 되는 곳이었다. 그 높이는 밑에 서 40~50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낮은 산이었고, 넓이는 동산을 가운데 두고 그 둘레로 여러 동네들이 형성될 정도로 서울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넓은 규모의 뒷산 쯤 되는 곳이었다. 슬하는 사건 현장에 가기위해 동네 안쪽까지 들어섰지만 좁은 주택 골목과 집 앞에 서있는 차들 때문에 주차를 하지 못하고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의 공터에 주차를 하고나서야 현장으로 걸어 갈 수 있었다. 양쪽으로 늘어선 주택들을 10여 채 지나고 오른편으로 주택이 중간에 이가 하나 빠진 것처럼 공간이 비워져 있는 짧은 골목이 나아있었다. 길이가 10m 쯤 되는 짧은 골목의 끝은 산에서부터 시작된 작은 지류를 흘려보내는 하수도 위에 개천의 다리처럼 오래된 돌로 된 난간이 그 골목길의 끝과 산으로 가는 길의 접점을 이루고 있었다. 폭이 4~5m 되는 골목은 주차된 차로 인해 더욱 비좁게 느껴지고 있었고, 슬하는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난간을 넘어 산 쪽으로 들어갔다. 산 정상 부분의 암반들과 달리 밑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뒤엉켜 숲과 같은 형태를 이루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생긴듯한 길이 그 안쪽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평지와 같은 길을 10분쯤 걸어 들어갔을 시점에 경찰이 쳐놓은 노란색 폴리스라인을 발견할 수 있었고, 길이 나있는 곳에서 50m 쯤 벗어난 사건 현장은 허리를 숙여 숨으면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에 위치 해 있었다. 슬하가 다다른 사건 현장에는 피해자 시신이 발견 된 형태로 현장 표시가 되어있었다.
슬하는 가방에서 현장사진을 꺼내어 사진의 각도와 현장을 대조해 보면서 그 주위도 살피기 시작했다. 슬하가 올라온 길과는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주위의 나무들로 그 외의 시야는 막혀있었고, 검사관과 형사들이 드나들어 현장 주위는 손상되어 있었지만 시신의 매장된 현장은 양호한 상태로 보였다. 슬하는 여전히 주변에서 찍은 현장 사진들과 같은 곳에서 비교해 보며 이미 수습된 시신과 당시 현장의 상황을 가상해 현재의 상태에 대입해 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시신이 매장된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고 시신이 놓여있던 구덩이가 무너지지 않게 한 발쯤 물러나 허리를 굽혀 그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구덩이 깊이는 10cm 남짓의 일정하게 사람의 모양대로 파져있었고, 발뒤꿈치가 튀어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인지 시신의 발이 위치한 끝 부분만 20cm 정도로 구멍을 더 깊이 파놓았다. 슬하는 그 암매장한 구덩이를 전체적으로 훑어보고 팔과 다리의 절단되어 있던 부분들을 보다 세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슬하는 자신의 속주머니에 미리 준비해둔 면장갑을 꺼내어 손에 끼고 몸과 다리가 놓여있던 자리에 손을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슬하는 각 절단, 이음 부위를 만져 본 후 그 부분들을 카메라로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만큼의 최대한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고 나서야 허리를 피며 일어났다. 슬하는 현장에서 자신이 올라 왔던 길 뿐 아니라 반대로 접근할 수 있는 길과 또 다른 접근로를 찾기 위해 현장 주위를 맴돌았고, 동네와 이어지는 넓게 펼쳐진 공터의 철조망과 테니스장 등으로 가로막힌 주위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슬하의 이런 행동은 다른 희생자의 시신이 발견된 사건 현장에서도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
슬하는 그렇게 사건 현장과 사무실에 오가며 사건 상황과 현장조사의 일련의 과정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슬하가 그렇게 무관심 속에 사건에 접근하는 며칠 동안 세상은 여러 가지 사회적 뉴스들로 보다 빨리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고, 상대적으로 슬하의 공간은 그러한 세상과 별도로 느린 속도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현장과 사무실만 오간 슬하는 새벽 공기를 마시며 쓰레기장 옆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선배! 어디 갔었어요?”
창완은 1층 입구 계단에서 뛰어 내리며 서둘러 슬하에게 다가왔고 창완의 말투에는 서운함을 넘어 서러움과 반가움이 교차되고 있었다.
“뭐에요? 낮에는 찾아가도 자리에 없고 도대체 전화기는 왜 꺼놓은 거예요?”
슬하는 창완의 모습을 슬쩍 보고는 다시 허공에 담배 연기를 내뿜었고, 창완은 그런 슬하의 모습에 씩씩거리고 있었으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변하며 슬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즘 뭐하느라 그렇게 바쁜 거예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고는 있는 거예요? 선배는 제가 요즘 어떤 상황에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요?”
슬하는 여전히 창완을 바라보지 않았고 그런 슬하에 태도가 창완의 볼 맨 소리를 더욱 키우고 있었다.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네.”
“잘 지내긴요. 엉망이에요.”
슬하의 한마디에 창완의 표정은 금세 누그러졌지만 어두운 표정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그제야 슬하는 창완의 모습을 잠시 살펴보는 듯했다.
“상황은 어떤데?”
창완은 슬하의 말에 더 우울해 보였고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주춤거리었다.
“선배가 그렇게 물어보니 설명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네요.”
창완은 고개를 떨어뜨렸고 자신이 걱정하던 것과 다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갔다.
“범행도구는 찾지 못했지만 용의자는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시인을 했고, 집에서 피해자 것으로 보이는 속옷이 발견되고 시신이 유기되었을 시간과 범행 장소 근처에서 용의자로 보이는 사람이 찍힌 CCTV도 확보했어요.”
슬하는 창완이 말하고 있는 상황과 달리 무거운 분위기로 창완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검거될 당시 취조실에서는 강력히 범죄혐의를 부인하던 용의자가 박현호 과장이 형사들을 다물리고 2~3시간 면담하고 나서는 자신이 범인이라고 순순히 시인했어요. 그리고 취조하는 형사들의 질문에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면서 취조에 응하고 있는 상태에요. 물론 밖에서 보기에는 수사가 잘 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도 있겠지만, 오히려 용의자는 형사들의 질문 속에서 범행순서와 상황을 외우고,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그런 오락가락한 피해자 진술에도 사건 진행 사항은 수시로 발표되고 이러한 상황에서 수사관들은 초조해 지는 반면에 용의자는 시간이 갈수록 여유 있는 행동을 보이기까지 하고 있는 상태에요.”
창완은 전 보다 깊은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용의자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피해자 속옷, 사건 현장 근처에서 찍혔다던 CCTV 모두가 저희 수사팀에서 발견한 것이 아니고 여기 경찰서에서 수사하던 팀이 확보해 넘겨 준 것이라 그 증거들에 대한 기초자료가 없다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용의자 진술 외에 모두 정황 증거뿐인 상황에서 범행도구의 행방을 찾지 않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이건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수사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수사팀 분위기는?”
슬하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창완에게 질문을 했다.
“다들 뭔가 걸리는 게 있는 눈치인데 박현호 과장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수사를 진행시키고 있어서 누구도 문제 제기를 못하고 있는 상태에요. 그리고...”
창완은 슬하의 눈치를 보며 망설이고 있었다.
“취조실에서 김동욱 경감과 면담이 있기 전에 그 남자가 말하기를 여자 형사가 자기에게 사건을 뒤집어씌운 것이라고, 며칠 전에 찾아온 그 형사를 데리고 오라며 소란을 피웠는데 남들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지만 전 그 여형사라는 사람이 선배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어요.”
창완은 슬하를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찾아 헤매던 용의자가 하루아침에 나타나 자백을 하고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이코패스라며 기사를 써대고,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처리되어야 할 수사과정이 실시간, 아니 오히려 수사 진행 상황보다 더 빨리 발표되고, 이런 상황에서 선배는 태연히 무언가 계속해서 수사하는 것 같고 지난번에 사이코패스이야기도 그렇고...”
창완은 슬하에게 미안한 것처럼 말끝을 흐렸지만 슬하는 그것에 괴이치 않았고 오히려 창완에게 질문을 하는 것으로 대화를 계속했다.
“그래서 네가 생각했을 때는 어떤데?”
“뭐가요?”
창완은 슬하의 질문에 슬하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용의자가 사이코패스인 것 같으냐고.”
“글쎄요.”
창완은 잠시 생각을 하고 나서야 대답을 했다.
“다들 그렇다고 하고 그렇게 보니까 그런 건 같긴 해요. 사이코패스인지, 소시오패스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는 맞는 것 같아요. 말 그대로 그냥 사이코에요.”
“내가 잠시 만나 볼 수 있을까?”
슬하는 다른 형사들이 사우나를 갔다는 창완의 말을 듣고 취조실 열쇠를 건네받아 경찰서 지하실에 있는 취조실로 향했다. 취조실 앞에는 경비를 서고 있는 경찰관이 있었고 슬하는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섰다. 취조실에는 방음 판으로 된 벽이 둘러져 있었고 맞은편 방에서 지켜볼 수 있는 대형거울이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용의자는 이틀 동안 쉬지 않고 취조를 당해서인지 수갑을 찬 채로 두 손을 탁자에 올리고, 그 위에 머리를 얹어 엎드려 자고 있었다. 슬하가 맞은편에 앉는 소리가 나서야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며 남자는 일어나고 있었다. 용의자는 슬하가 만났던 뇌혈관 질환으로 쓰러져있던 애완견을 키우던 남자였고 이틀 동안 잠을 제대로 못자서 인지 슬하가 만났을 때보다 초췌한 모습이었다.
남자는 얼마동안 슬하를 바라보고 나서야 자신과 구면인 것을 알아채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나타나셨네.”
남자는 슬하를 비웃으며 의자 뒤에 등을 기대었다.
“왜 나를 잡아 놓고 내가 자백을 했다고 하니 지금에서야 보러온 건가?”
슬하는 남자의 눈을 건조하게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난 당신을 잡아넣지 않았어. 어차피 당신은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죄 값을 치러야 하겠지만.”
“죄 값? 내가? 왜? 무엇 때문에?”
남자는 의자에서 등을 떼고 슬하를 노려보며 이야기했다.
“할망구의 똥 수발을 들지 않아서? 그래서 내가 이런 죄 값을 치러야 한다는 건가?”
슬하는 남자의 위협적이 태도에 아무런 미동 없이 말을 이어갔다.
“아니. 물론 존속 학대도 포함되지만, 존속상습폭행에 이 상태로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폭행치사까지. 그리고 동물학대는 별도로 포함해서 말이야.”
“폭행? 살인? 동물학대? 무슨 헛소리야?”
남자는 흥분해 탁자를 내리쳤고 손목에 있는 수갑의 쇠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슬하는 음성은 고저 없이 이야기해 나갔다.
“당신 집에는 개밥그릇이 없어. 당연히 사료 또한 없고. 하지만 당신의 집에 있는 강아지의 건강 상태는 양호한 편이야. 자신을 위해 밥을 해먹지 않는 사람이 밥그릇도 없는 강아지에게 다른 영양식을 해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현재 강아지는 자연 발생되는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으로 추론이 가능하지. 개 입주위에서 나는 악취, 링거 줄과 함께 묶여 있는 강아지 목줄 그리고 당신의 어머니가 용변을 본 뒤 강아지의 반응을 보면, 당신의 집에 있는 강아지는 식분증, 그러니까 당신 어머니의 변을 먹고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
남자는 얼굴이 굳어갔고 슬하의 말투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뇌혈관질환. 정확히 말하자면 외부 충격으로 인한 외상성 경막하 출혈. 당시 담당 의사는 폭행으로 인한 경막하 출혈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쓰러진 장소와 시간, 목격자, 당신이 병원에 들이 닥쳐 어머니를 살려내라고 울고 불며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통에 그것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지. 하지만 어머니가 수술한 뒤에 병실 보다는 주변 PC방에 살다 시피한 당신의 행동과, 보험금이 지급되자 제일 먼저 최신 컴퓨터를 구입해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서 날려버린 일련의 과정, ‘쿵쿵’ 거리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당신 집 벽에 나있는 군데군데의 구멍의 모양과 어머니의 두상이 일치 할 것이라는 추측은 상당히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이지.”
남자는 경직된 몸에서 애써 태연함을 섞어 말을 하려는 듯했다.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렇게 나에게 이렇게 죄를 뒤집어씌운 건가?”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난 당신을 잡지도, 죄를 뒤집어씌우지도 않았어. 오히려 난 어느 시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사건에서 당신을 빼낼 생각이야.”
슬하의 말에 남자는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았고 그런 자신에 대해 화가 나는 것 같았다.
“무슨 수작이야? 엊그제 찾아와 나한테 과분한 제안이라며 떠들고 간 놈은 뭐고, 이제 와서 나를 빼내겠다는 너는 또 뭐야?”
“난 당신이 한 가지만 해주었으면 좋겠어. 자신이 이번 사건과 관계없이 체포된 것을 억울해 하던지, 아니면 그 ‘과분한 제안'이라는 것으로 자신을 연쇄살인범이라 자청하던지.”
남자는 슬하의 말에 흥분 상태에서 냉정을 되찾고 있었다.
“좋아. 나를 떠보기 위해서라면 효과는 있었어. 만약 나를 떠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내가 연쇄살인 범이 되지 않아도 될 당신만의 제안이 있나 들어보고 싶어지는군.”
“착각하지 마.”
슬하는 냉정히 남자의 말을 잘랐다.
“당신에게는 자신의 죄를 선택 할 권리는 없으니까.”
“착각은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남자가 슬하의 말을 비웃으며 말을 잘랐다.
“당신을 보아하니 내게 제안을 한 사람은 당신의 상관일 법한 사람이고, 난 그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자백을 한 거야. 난 당신보다 높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고 그에 합당한 선택을 했어. 이미 난 내 선택대로 지금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착각인거야. 당신은 체포되었을 당시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였어. 그것은 당신이 어떠한 행동을 하던 변하지 않았을 거야. 단지 당신의 협조로 그것이 수월해 지느냐, 좀 불편해 지느냐의 차이가 생길 뿐이지. 당신이 선택한 것은 죄의 선택이 아니라, 협조와 비협조에 대한 선택에 지나지 않아. 그 내 상관이라는 사람은 당신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제안을 했을 것이고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인 것 외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없는 거야.”
남자는 슬하의 말에 대꾸를 하지 못했고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화를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럼 당신은 왜 나를 찾아온 거야. 지금 내가 놀아나고 있다고 경고해 주기 위해서 찾아오기라도 했다는 거야?”
“아니. 당신에게 몇 가지 물어볼게 있어 온 거야.”
슬하의 말에 남자는 참고 있던 화를 쏟아내 듯 소리를 질렀다.
“장난해 지금!? 웃기는 소리하지 마. 기껏 찾아와 지금까지 헛소리를 해대며 뭘 한다고? 내가 지금 당신이 묻는 말에 대답해줄 것 같아?”
“내가 장난이라면 당신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해줄 필요가 없겠지.”
슬하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고 남자는 슬하의 그러한 모습에 어느 순간부터 압도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말들로 당신에게 바뀐 상황은 없어. 애초에 당신은 죄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결정을 했어. 그것이 다른 사람의 의도가 어떠했고,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당신이 알던 모르던 간에 상관이 없는 것들이야.”
다시 남자의 화는 잦아들었고 슬하의 말에 알 것도, 모를 것도 같다는 표정으로 슬하의 요구에 대한 완강한 거부보다는 들어보기라도 하겠다는 태도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슬하는 그러한 남자의 표정을 읽어내고 있었고 질문을 시작했다.
“나 이전에 경찰 그러니까 형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찾아 온 적 있나?”
“아니. 없어.”
남자는 슬하의 질문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았지만 별거 아니라는 듯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말 잘하는 것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가치에 대해 자랑하고 다닌다.’, ‘거짓말은 나쁜 것이 아니다.’ 이런 종류의 질문을 경찰서에 오기 전에도 받아 본적 있나?”
“없어.”
“똑같은 문장이 아니더라도 설문지, 인터넷 등에서라도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을 작성한 일도 없었나?”
“없어! 없다고!”
남자는 슬하의 알 수 없는 질문과 취조하는 말투에 기분이 나빠졌는지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여기 끌고 오자마자 대뜸 작성하라고 해서 써주었을 뿐이야. 내가 할 일 없이 설문조사나, 인터넷 심리테스트나 하고 다니는 사람으로 밖에 안보여?”
슬하는 잠시 생각에 잠기었다가 자신의 질문은 여기까지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고, 남자는 별 시답지 않은 질문을 하고 일어난다는 것처럼 슬하에게 불만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당신이 어떤 이유에서 인지는 몰라도 나를 감옥에서 빼낸다면, 난 어쩌면 당신을 살해할지 몰라. 당신 말대로라면 난 최소한 엄마를 죽이려 했던 악마이고, 그 죄로 인해 다시 감옥에 가야 한다면 연쇄살인 범으로 들어갈 생각이거든. 그것도 형사를 죽인 연쇄살인범으로 말이야.”
남자는 취조실을 나가려는 슬하 등 뒤에서 자신을 집에서 내쫓을 때와 같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협박을 하고 있었고 슬하는 해맑은 미소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했다.
“꼭 그렇게 해주었으면 좋겠어. 난 이 근방에서 살인 사건이나 발생하거나 당신 연령대, 당신 용모와 비슷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해치고 범죄를 저질렀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당신을 제일 먼저 생각 할 거야. 그리고 난 혹시나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 지내야 하는 지금의 내 마음이 내키질 않아. 그런데 그런 걱정을 덜어 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생각하고 경고까지 해주니 난 당신에게 감사할 따름이야. 다시 한 번 당부하건데 당신이 말대로 꼭 그렇게 해주었으면 해.”
남자는 슬하의 진심어린 미소에 슬하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는 듯했다.
슬하는 취조실 문을 나섰고 문을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취조실 거울 맞은편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박현호 과장은 취조실 내부를 녹화하고 있던 캠코더 메모리카드를 꺼내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있는 모습은 알지 못했다.
슬하는 취조실에서 나와 1층 중앙 문에 있는 자판기로 향했고 창완은 그곳에서 정문과 슬하가 올라오는 계단을 번갈아 보며 슬하가 올라오는 모습에 안도하는 모습을 내비치고 있었다. 슬하는 그런 창완을 외면하고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들고 자신이 담배를 피던 쓰레기 통 옆으로 가기 시작했다. 창완은 그런 슬하 뒤에서 자신에게 해줄 말이 없냐는 듯 슬하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고, 몇 발자국을 참지 못하고 슬하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슬하는 그에 따른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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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 슬하형사 매의눈을 가졌네요.
박현호 과장은 얼마전 막내린 드라마에서의 문희만 부장을 떠올리게 하네요. 잘 읽고 있습니다~
날카롭네요
정말 재미있네요~
기대가 됩니다~
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