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러 올라가서 2016년 2월 대한족노동단을 최초로 발견하였으니 어느 덧 2년의
세월이 흘렀다.
최근에 일제문서에서 석주 이상룡 선생의 일족(一族) 으로 등장한 이승휘(李承徽)
선생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1914년 당시 일제가 서간도 지역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분류한 명단에서 나온
것이니 만큼 이승휘 선생을 독립운동가로 생각한다.
특히 이승휘 선생이 석주 선생의 일족(一族)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고향이 안동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석주 선생이 서간도로 망명할 때 함께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하여 석주 선생이 고성이씨 참판공파 30세인 반면에 이승휘 선생은 29세가
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촌수는 모르나 항렬로는 석주 선생이 이승휘 선생의 조카뻘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제 그 자료를 다시 보다가 새롭게 발견한 내용이 있어서 이를 소개한다.
석주 선생 가문이 해룡부(海龍府) 간포(干浦)라는 곳에 거주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이 시기가 1914년이니 석주 선생이 가솔들을 이끌고 망명한지 3년이 되는 해였던 것이다.
사실 필자로서는 간포라는 지명자체가 생소한 것인데 그동안 석주 선생 관련 기록에서
전혀 발견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이것은 이미 완독한 석주 선생 일대기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지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간포(干浦)라는 지명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였는지 궁금하게 생각되는
대목이다.
간포(干浦)에 석주 선생을 포함하여 아들,동생과 일족인 이승휘,이문희 선생이 거주한
것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중요한 지명으로 생각되는데 그동안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승휘(李承徽) 선생과 관련하여 석주 선생 집안이라는 것 이외에 관심가는
대목이 있으니 그것은 대한족노동단의 이승연(李承連) 선생과의 동일인물 여부에 있다.
1914년 당시 이승휘 선생이 36세라고 되어 있으니 대한족노동단이 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1923년은 45세가 된다.
물론 이름이 비슷하다고 해서 동일인물이라고 단정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승연 선생도 이승휘 선생과 같은 항렬이라는 것이다.
또한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여러개의 이름을 가진 경우가 많았으므로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설사 이승휘 선생과 이승연 선생이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같은 집안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며, 특히 조카뻘이 되는 석주 선생과 어떤 식으로든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2018년 2월 1일(목) 박관우 역사작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