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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창완의 시달림 끝에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사무실 소파에서 잠이든 슬하는 탁자 위의 핸드폰 소리에 의해 잠이 깨었다. 핸드폰 화면에는 장례식장에서 만난 선배의 이름이 띠워져 있었고 슬하는 힘들게 잠에서 깨며 전화를 받았다. 선배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슬하의 목소리가 아직 잠이 깨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슬하가 잠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슬하의 음성이 잠이 들깬 저음에서 평소의 목소리로 돌아 왔을 때쯤 선배는 슬하에게 전화를 건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오늘 자네가 좀 도와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는데 시간을 내 줄 수 있겠나?”
문장의 끝은 의문형이었지만 강요가 포함되어 있었다.
“제가 꼭 필요한 일입니까?”
“글쎄, 필요한 것으로 치면 아마 자네를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더 클 테지.”
선배는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내가 아니더라도 자네는 누군가와 오늘이나 내일 만나야 할 것이고 그럴 바에는 나를 도와주면서 오랜만에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슬하는 선배와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전해 듣고 필히 샤워하고 옷을 갈아 입고오라는 선배의 말대로 갈아입을 옷과 함께 샤워장으로 향했다.
슬하가 도착한 곳은 국립과학연구소 건물 안의 한 사무실 앞이었다. 복도에는 자신에게도 익숙한 면접을 기다리는 응시생들이자 경찰관들이 복도를 메우고 있었고, 복도 끝 면접실로 보이는 곳에서 슬하의 선배는 마중을 나오고 있었다.
“오랜만이지 이곳? 오늘 자네 후배가 될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 면접이 있는 날이라 면접관인 나를 좀 도와주었으면 하네.”
선배는 슬하를 대리고 면접 실 안으로 들어갔고 이미 도착해 있던 다른 면접관 둘에게 양해를 구하고 인사를 하고나서야 면접 실 구석의 자리에서 응시자들의 인터뷰를 참관할 수 있었다.
슬하는 자신이 바라보는 지원자들의 자리에 이전 자신이 앉아 있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첫 면접 대상자가 들어오자 응시자들을 주목해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원자 대부분 경찰에 근무하는 경찰관이었고 몇 년간 모집하지 않았던 외부 지원자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TV시리즈나, 다큐멘터리에서 보였던 이미지 때문인지 최종 면접 전에 이미 서너 차례 걸러졌음에도 최종 면접자의 수가 수십 명을 넘고 있었다.
처음에는 지원동기, 자신이 생각하는 프로파일러의 모습 등과 같은 일상적인 것과 프로파일러에 대한 지식에 대한 질문, 그리고 실제 있었던 모델에 관한 심화 질문을 하는 3단계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많은 지원자로 인해 시간이 지연되자 면접관들의 집중력은 흐트러졌고 앞의 지원동기와 각자의 생각은 건너뛰기 시작했다. 3시간 쯤 흘러 지원자 절반의 면접자 수를 넘기고 나서야 식사와 휴식을 위해 면접은 잠시 중단 되었고, 심사관들과 슬하는 옆에 마련되어 있는 실로 이동해 미리 준비해 둔 도시락으로 식사를 마쳤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선배는 발코니에 나와 슬하에게 담배를 권하였다. 슬하는 사양을 했지만 선배는 괜찮다며 담배 한 개비를 뽑아 슬하에게 건네며, 자신이 훑어보고 있던 면접지원자 서류와 점수표도 함께 전해주었다.
“괜찮네. 면접점수는 외부관계자에게 대외비긴 하나 내 점수는 대세에도 영향도 없고, 그러니까 다른 누군가가 내 점수 표를 봐도 관심도 없을 거네. 자네도 참관 했었으니까 그걸 보고 자네 의견을 말해보게.”
슬하는 선배에게 건네받은 응시자와 점수표를 넘기고 있었다. 슬하는 손에 들린 담배와 종이를 자연스럽게 피고, 넘기면서 자신이 오전에 본 응시자들에 대한 생각을 교차해 내려갔다.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저도 선배와 비슷한 생각입니다. 주로 질문에 대한 답변 실력 위주로 점수를 채점하셔서 이의를 가질게 별로 없습니다.”
“자네까지 그렇다고 하니 내가 점수를 많이 준 사람들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겠군.”
선배는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자네는 이와 같은 면접에서 면접관이 가장 중요시하는 게 무어라 생각하나? 성적? 실력? 스펙? 인맥?”
슬하는 대답 없이 듣기만 하고 있었다.
“다른 곳은 몰라도 경찰에게는 충성심이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하지.”
선배는 난간에 손을 올리고 뒤를 힐끗 돌아보고 말을 했다.
“인사를 나눌 때 이미 말했지만 나 말고 다른 두 면접관 중 한 사람은 본 청 소속의 수사과 차장이고, 다른 한사람은 과학수사대 본부장이네. 현재 경찰 내에서 가장 잘나가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지. 과연 저 사람들에게 필요한 인제란 어떤 것을 사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나? 업무능력이나, 수행능력은 저들의 관심사항이 아닐 걸세. 단지 자신에게 해나, 방해가 되지 않을 인물, 어떠한 일을 시켜도 군말 없이 그 업무만 이행 할 수 있는 충성스러운 인물이 우선 필요할 테지. 그래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고 믿을 수 있는 인맥과 그와 이어져 있는 사람의 스펙 정도가 참고 사항이 되겠지. 거기에 난 구색 좋은 들러리로 앉아 있는 것이고.”
선배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끝을 흐리고 있었고 슬하도 씁쓸히 담배를 비벼 끄고 있었다.
둘은 그렇게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다 면접이 시작한다는 관계자의 말을 듣고 발걸음을 안으로 옮겼다.
“이제 남아 있는 사람들의 면접은 쉽게 끝날 걸세. 앞에 면접 마친 사람들이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쪽에 있는 응시자들 이었다면, 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지인의 부탁이나 각 기준에서 턱걸이로 면접까지 살아남은 나와 같은 들러리가 대부분일 테니까.”
선배는 응시원서와 채점표를 자신의 자리에 놓으며 지정석에 앉았고 슬하도 오전에 앉아 있던 자리로 이동해 있었다. 면접은 사람들이 차례로 들어오면서 시작되었고 선배의 말대로 오전의 면접보다 오후의 면접이 쉽게 끝나가고 있었다. 슬하가 보기에도 오전 응시자보다 뛰어난 사람으로 보이는 응시자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슬하와 선배는 면접을 마치고 자리를 이동해 예전 강연장으로 이용하던 연구소 내부의 강당으로 향했다. 슬하의 손에는 건물 앞에 커피 전문점에서 사온 것으로 보이는 일회용 컵 두개가 들려있었다. 슬하는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선배에게 다가갔고 선배는 슬하가 건네는 컵 속의 향기가 일반 커피 향과 다른 것을 느끼고는 그 안의 내용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홍차입니다.”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모금 마시고 흡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어느 누군가도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홍차를 권하더니 자네도 마찬가지 일세.”
슬하는 선배가 아는 누군가를 짐작 할 수 있었고 선배의 기분 좋은 모습에 슬하도 아직 온기가 충분한 홍차를 한 모금 마시었다.
“어떤가? 옛날 생각이 좀 나나?”
강연장은 슬하가 교육받던 그대로의 모습이었지만 프로파일러로 생활한 시간만큼 그 공간이 낯설게 느껴지고 있었다.
“지원자 수는 많아졌지만 자네가 시험 볼 때만큼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더 많이 뽑아 놓을 것을 그랬어.”
“프로파일러는 시험에 합격한 것보다 어떻게 양성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슬하는 헛웃음을 짓고 있는 선배에게 진지하게 대답했다.
“하긴 당시에는 자네가 워낙 돋보여 다른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선배는 슬하의 진지한 반응에도 연신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여성 최초의 프로파일러.”
선배는 작은 소리로 말을 했지만 적막에 가까운 강연장에서는 선명하게 들려왔다.
“난 자네의 그런 면이 마음에 들었어. 얼굴은 항상 무표정하면서 의외로 상황에 순응 하고 긍정적으로 앞을 내다보는 보는 모습이.”
선배는 슬하도 알고 있는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었다.
“보통은 말이지 남성이 주류인 직업에 여성지원자는 자신이 여성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되지. 간혹 자신의 여성성만을 어필하는 경우도 있어 당혹스러울 때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자네는 그냥 여자라는 것을 애써 남자 같은 말투나 행동으로 감추려하지 않았어. 오히려 자신이 여성으로 불리한 면을 우리와 같이 일정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강연장은 과거의 회상과 함께 이전의 익숙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자네는 성적, 업무 수행과정, 면접에서의 또한 그 실력이 탁월했음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자네에게만 추가 시험이 주어졌을 때, 그러한 불평등에 대한 적대감이나 그것을 깨뜨리고자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어. 오히려 자신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과 같이 자신이 이 자리에 적합한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만 같았지. 결국 자네가 여자라는 이유로 반대하던 면접관은 그런 자네를 보며 ‘인간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궁색한 이유로 반대의 명분을 바꿀 정도였으니까 말이야.”
선배는 코를 만지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때의 내 행동은 자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네. 하하하.”
선배는 참고 있던 웃음을 한 바탕 쏟아 내고 나서야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래도 그러한 일 때문인지 자네에게 관심이 갔고 애착이 보였던 것이 사실이지. 내가 지금 자네와 이렇게 같이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저로 인해 곤란한 상황을 겪고 계시다면 죄송합니다.”
슬하는 선배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
“아니. 아니네.”
슬하의 미세한 하지만 미안한 표정에 선배는 손 사레를 쳤다.
“오히려 기쁘게 생각하고 있네. 자네로 인해 내가 아직은 쓸모가 있고 참 안정되게 살아왔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네.”
하지만 선배의 말에도 슬하의 미세한 표정 변화는 가시질 않았다.
“저 때문에 불필요한 압력을 받으셨다면...”
“경찰 내에서는 압력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네.”
선배는 정색을 하며 슬하의 말을 가로막았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말일세.”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던 선배의 낯빛은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의 얼굴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냥 이 자리는 선배가 후배에 대한 충고의 자리 또는 주의 정도의 훈계차원이라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네.”
선배는 차를 마시며 함께 미소도 머금었다.
“그래도 이러한 자리를 만든 것을 보면 누군가는 자네를 아끼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네. 자네도 알다시피 경찰 내에서 이렇게 완곡한 경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경우일 테니까. 그것이 자네가 필요해서 인지, 아니면 아직 자네의 진짜 진위를 파악하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고 슬하는 선배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면접 때도 잠시 말했지만 자네는 사회 조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선배의 질문은 슬하의 대답을 기대한 것이 아닌듯했다.
“일반 회사도 마찬가지겠지만 각 조직은 계층이라는 것이 있네. 그 중 경찰의 계층은 하위 말단 순경부터 경찰청장 그리고 각 기관의 견제 세력과 그 위의 국가 수장까지 그 위계는 명확히 구분되어있네. 그런데 그 계층의 변화는 밑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보다 위의 변화에 의해 쉽게 휩쓸리게 마련이네. 그러한 요동 속에서 사람들은 그동안 단단히 얽혀 있던 각 계층을 뚫고 올라가려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 인간들의 속성일 것이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에 그러한 요동 속에 자신의 욕망이나 의지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인정하지만, 어느새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자네와 같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책임을 전가하는 쪽으로 바꾸어 버린다는 것이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망각은 이전보다 더 거칠고 무자비한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네. 거기에 어느 순간에 그들이 다수라고 생각되어지는 시점이 도래하면 국가와 안보, 치안과 같은 사회적 정의를 지칭되는 관념적 착시를 자신들의 행동에 덧씌우게 되고, 어느새 자신의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은 그들이 아닌 자네로 이동되어지고, 자네는 조직에 이반하는 이탈자로 낙인찍혀버리는 것이네. 결국 이것이 서로간의 갈등을 촉발시키는 시작점이 되고 우리는 그렇게 시작된 어느 순간부터 서로를 미워하고 싸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 되는 것이네.”
선배는 자신 앞에 있는 강연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일정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면 우리의 격렬한 싸움은 단지 이러한 공간과 같이 한정된 장소에서 시간에 따라 그 위치만 바꾸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네. 우리는 어쩌면 자신의 위치를 이동할 강력한 힘이나, 자신의 위치를 증명할 기준점이 되는 무대 위의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싸우는 동안 망각한 여기에는 없을 본연의 자신을 바라 볼 수 있는 있는 확장된 여백과 같은 새로운 관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 확장된 관점과 지금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상대적이자 절대적 시각. 난 개인적으로 자네가 그러한 관점의 변화를 제공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네. 자네는 서로의 위치나 새로운 배치를 위해 격렬히 싸우고 있는 사람들과 맞서지 않네. 그것은 외면이나 무시라기보다 그들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한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 두며 행동하는 것에 기인한다고 여기고 있네. 그래서 때론 격렬한 싸움으로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재확인 시켜주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끔 하네.”
선배는 잠시 말을 멈추었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자네는 그러한 자신의 방법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이질적이고 배타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네. 그것이 그들에게 무언의 강요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니 말이네. 그리고 무대 중앙에서 그러한 이동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무언가가, 긍정적인 모습으로 보이기보다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네도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
선배는 이제 비어버린 컵을 바라보며 자조 섞인 말투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난 아주 특별한 프로파일러나 수사관이 아니네. 그렇다고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확고한 신념이나 어떤 것에 맞서고 변화시키려는 의지도 별로 생기지 않았네. 그래서 나름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왔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 중 하나가 자네와 같은 후배가 생긴다며 그들이 올바로 정착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이 되었으면 하는 거였네. 난 자네가 어떠한 선택을 하던 그것을 존중하네. 하지만 자네와 같은 후배가 경찰에 남을 수 있는 방법에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동시에 가지고 있네. 그리고 그것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힘이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이네. 물론 비공식 선에서 말일세.”
선배는 끝내 웃음으로 자신의 이야기의 끝을 맺었고 슬하의 기분도 그 이전보도 가벼워져 있었다.
“아무래도 제게 훈계를 하라던 사람은 그 적임자를 잘못 고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섭섭하네. 누군가 자네와의 만남을 물어오면 난 분명 엄중한 경고와 충분한 압력을 가했고, 자네가 알아듣게 설명했으며 자네 또한 그것을 이해했다고 말을 할 걸세. ‘당분간만 그럴 것’이라는 보고는 누락될 테지만.”
슬하와 선배는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동안 이야기를 더 나누고 나서야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하는 선배의 차가 있는 곳 까지 배웅했고 차에 타던 선배는 요즘 창완이가 슬하에게 서운해 한다며 잘해줄 것을 당부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서대문서로 돌아온 슬하는 며칠 동안 연쇄살인 사건현장과 그 주변을 돌며 단서를 찾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배를 만난 지 며칠이 지난 시점에 슬하는 박현호 과장 사무실에서 자신을 호출한다는 소식을 받게 되었다.
박현호 과장은 이전보다 한결 여유 있어 보였고 자신감도 한 층 더해있었다. 박현호 과장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슬하가 들어오기 전부터 하던 통화를 마치고 슬하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요즘 자료조사와 현장 조사를 혼자하고 있다고.”
박현호 과장은 슬하의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제흥동 연쇄살인 사건의 책임자로서 그 수사에 관해서는 자네에게 일임할 생각이네. 나는 언론과 수사발표에 초점을 맞추고 자네는 수사에 전념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슬하는 잠시 생각을 하고 신중히 대답을 했다.
“저는 상관없지만 지금 체포된 용의자도 그렇고 수사팀과 손발도 맞추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팀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체포된 용의자는 어머니에 대한 폭행 및 살인 미수로 변경되어 수사가 진행될 걸세. 그리고 언론에는 당분간 알리지 않을 것이고 때를 봐서 자신이 주목 받기 위한 허위 자백이었다고 발표할 것이네. 수사팀은 우반장과 이야기해본 결과 자네가 수사팀 지휘를 맡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이야기되었네.”
슬하는 박현호 과장의 말에 대해 변화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수사는 언제부터 진행될 수 있습니까?”
“글쎄. 아직 최종결제가 나지 않아서 확답은 못하네만 이삼일 안으로 가동 될 수 있을 것 같네.”
이미 결정은 이루어졌고 준비가 되어있다는 생각에 슬하의 질문은 더 이상 필요 없어보였다.
“그동안 보충된 자료는 우반장을 통해 넘기라고 했고 며칠간만 혼자 수사를 하고 있으면 마무리되는 대로 팀에 합류하면 될 것이네.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에 연쇄살인범도 더 이상의 살인은 하지 않는 걸로 봐서 시간은 충분히 벌고 있는 샘이니 그 다음 자네가 좀 수고해주었으면 하네.”
슬하는 박현호 과장의 말에 알겠다는 짧은 대답을 했고 수사합류 시기는 추후 날짜를 알려주겠다는 말을 듣고 나서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슬하는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그것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사무실에 돌아온 슬하는 이전과 변화된 사무실의 이곳저곳 살피며 기다리고 있는 창완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왜왔어?”
슬하는 창완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했고 창완은 그런 슬하의 태도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우반장님이 선배에게 자료를 가져다주라고 해서 왔어요.”
창완은 자신 팔 옆에 끼고 있던 서류를 던지다 시피 책상에 놓으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동안 추가된 자료하고 선배가 부탁한 국과수 결과래요.”
슬하는 창완의 국과수 결과라는 이야기에 소파에 누우려 했던 자세를 고쳐 잡고 책상에서 서류를 가져와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슬하가 자료를 훑으며 내용을 확인하는 동안 창완은 슬하가 그것을 다 읽는 것을 기다고 있었고, 슬하의 눈이 자료의 끝을 읽어 내려가는 것을 보고 말을 시작했다.
“며칠 전에 최영호 선배 만났다면서요.”
“그런데?”
슬하는 자신이 손에 있던 파일을 내려놓고 다시 소파에 다리를 올려놓았다.
“그것도 내 후배가 될지도 모르는 면접까지 참관 했다면서요?”
“그런데?”
“그런데라뇨? 제가 얼마나 오매불망한 후배들인데 면접에 갔다 왔다고 그동안 저에게 말을 안 한 거예요?”
창완은 분이 난다는 듯 언성을 높이며 말을 했고 슬하는 그런 창완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고 머리를 소파에 기대고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너에게 보고하고 다녀야 했지? 그리고 범죄심리분석관 면접은 매년 있었어. 그중에 네 후배가 되었던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었나?”
“이번에는 일반인 면접도 있었다면서요. 한동안 경찰중의 지원자에 한해서만 자격이 주어졌지만, 일반인에게도 응시 자격을 준 것은 이번에야 말로 제 후배를 뽑아 주려고 하는 것 아니에요?”
창완은 슬하에 대한 분노와 후배에 대한 흥분을 교차해가며 말을 했고 슬하는 눈을 감고 창완의 말에 무관심하게 대응했다.
“우리 때처럼 담당 교육관이나 체계적 시스템을 갖추어 놓은 것도 아니고, 서너 명씩 돌아가면서 2~3주 교육해서 뚝딱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누구처럼 운 좋게 갑작스러운 보결로 발탁될 특별한 케이스의 경우는 더더욱 없어 보이는 것이 내가 바라보는 지금 현 상황이야.”
“뭐에요? 이번에도 강력범죄 대응 뭐라고 하는 대외 홍보용 면접이라는 거예요?”
“아니. 프로파일러 양성이 자신의 후배양성으로 착각해 단 꿈에 부풀어 있는 어느 수사관의 꿈을 앗아가기 위한 음모랄까?”
“이거 왜이래요. 비록 보결로 갑작스럽게 배치되긴 했지만 그만큼 실력이 있었으니까 4년간 전무후무한 수사관으로 발탁 된 거죠. 그리고 사실 다들 말은 안하지만 작은 정부를 표방해 경찰공무원 수를 제한하는 까닭에 현장 근무자 위주로 채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과거 수사방식과 다른 수사기법에서 오는 일선 팀장들과의 마찰과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한 파일링 기술에 수사지휘자의 부담이 작용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저도 알고 있다고요.”
창완은 현 경찰 상황을 막힘없이 설명하는 자신이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대고 있었다.
“난 내 후배가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는 자신의 후배와 그로인해 쓸데없는 일에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보다, 범인을 잡는데 다양한 생각과 상상력을 발휘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어.”
창완은 슬하의 말에 뿔난 목소리로 대꾸를 했고 옥신각신 몇 마디 더 주고받고 난 후에야 슬하는 창완에게 수사 진행 사항에 대해 물어 볼 수 있었다. 창완은 슬하의 질문에 할 말이 많아보였고 무엇부터 설명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선배가 그 사람을 만나고 난 후에 태도가 좀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우리가 묻는 말에 ‘예’, ‘아니오’의 수동적 자세였다면, ‘그건 왜 묻나’, ‘언제 재판하느냐’, ‘감옥은 독방이냐’, ‘과거 자신이 작성한 서류들은 무엇이냐’,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고, 심지어 자신이 처음 만났던 박현호 과장은 어디 있고 이야기하고 싶다며 만약 만날 수 없다면 수사에 협조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수사 상황도 더디게 진행됐어요.”
슬하는 눈을 감고 소파에 기대있었으나 창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박현호 과장이 이틀 전 새벽부터 갑자기 제흥동 연쇄살인 용의자 수사에서 존속 폭행 수사로 틀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다른 형사들은 그 남자의 집이며 이웃들, 컴퓨터 기록에 그 남자 어머니가 수술했다는 병원까지 다시 수사를 진행해야 했어요. 결국 그 남자 어머니는 남자의 상습 폭행으로 인한 외상성 경막하 출혈로 인한 쇼크인 증거들을 확보는 했지만, 존속 살인미수에 대한 심문과정에서 그 남자가 수사 방향이 틀어진 것을 눈치 채고는 심문하는 형사의 멱살을 잡고 죽이겠다며 달려들고, 약속이 어쩌고 하면서 이렇게 감옥에 갈수 없다며 뒤집어엎는 통에 한 바탕 난리도 났었어요.”
창완은 눈을 감고 있는 슬하를 바라보았고 슬하도 창완의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새벽에 선배가 그 사람에게 뭐라고 한 거예요? 그리고 그 남자가 말하는 약속이라는 것은 박현호 과장 사이에서 이루어진 것 같은데 그 내용은 무엇이고, 박현호 과장은 사전에 조사를 한 것처럼 그 남자의 범행 증거들을 어떻게 한 번에 짚어 낼 수 있었던 거예요? 사실 말은 안했지만 그 남자의 심문이 틀어지기 시작하면서 선배 때문은 아닐까 얼마나 노심초사 했는지 알아요?”
슬하는 눈을 뜨고 천정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넌 지금 네 스스로 이야기한 것에서 생각되어지는 것이 없어?”
창완은 자신의 말을 되새기며 머리에 떠오르는 순서대로 나열해 갔다.
“박현호 과장은 그 남자가 연쇄살인범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어떠한 약속을 전제로 남자는 허위 자백을 하게했고, 그러던 중 그게 선배이던 아니던 간에 갑자기 심경이 바뀌어 수사에 협조하지 않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박현호 과장은 그 남자에게 다른 죄목으로 수사의 방향을 틀어 버린 것이다? 뭐 이정도요?”
슬하는 다시 눈을 감고 창완에게 질문을 했다.
“너라면 존속 폭행 또는 폭행치사로 감옥에 가겠어, 아니면 연쇄살인범으로 감옥에 가겠어?”
창완은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존속 관계인 것까지 감안해도 살인미수는 최대 10년, 설사 어머니가 돌아가신다고 해도 그 남자는 초범인 관계로 최대 15년에서 20년의 형을 받겠지. 하지만 연쇄살인 범인 경우 최하 무기징역에서 사형. 과연 이 둘 중에서 어떠한 사람이 연쇄살인범을 선택 할까?”
창완은 슬하가 하는 말에 의미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자신의 죄가 없음을 나중에 밝힐 수 있는 사람이겠지. 연쇄살인범은 잡히지 않았어. 그 남자는 그것을 알고 있고. 나중에 그 범인이 다른 살인이나 범행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지면 자신은 자동적으로 무죄가 성립되게 되는 거지. 설사 연쇄살인범이 종적을 감추더라도 그 남자는 다른 방법을 가지고 있었겠지. 그 남자는 인터넷 도박 중독자였어. 밥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컴퓨터를 들고 다닐 정도였지. 그 남자의 로그인 기록과 위치, 그리고 거래내역만 뽑아 봐도 그 남자는 재심을 청구해 자신이 연쇄살인 범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몇 년간 감옥에 있다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나오게 되면 자신의 수사는 강압수사였고 조작에 의한 사법적 희생자라며 국가에 대해 상대로 소송을 제기 할 수도 있고, 그동안의 금전적 보상은 덤으로 챙길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다는 사실을 그 남자가 말한 약속이라는 것에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거겠지.”
창완은 그제야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선배는 어떻게 그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거예요? 그날 그 사람이 말해준거예요? 아니면 그 사람 말대로 이전에 알던 사람인거에요?”
“조사는 했지만 난 네가 어제 건네준 진술 보고서를 보고 유추했을 뿐이야. 그리고 너도 내게 말해준 것에서 유추할 수 있는 단서들은 존재하고 있어.”
창완은 아직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너는 방금 그 남자가 ‘감옥은 독방이냐’며 묻고, ‘이렇게 감옥에 갈 수 없어’라며 난동을 부렸다는 상황설명을 했어. 그리고 그 남자는 나와 만났을 때도 나를 죽여서라도 연쇄살인 범으로 교도소에 수감되기를 원했어. 그 만큼 그 사람에게는 교도소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거겠지. 감옥에 대한 경험도 없고 존속 상해는 교도소에서도 불편한 심기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상식적으로나 또는 누군가의 경고에 의해 각인이 되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 거겠지. 그럼에도 그 사람은 수감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했어. 마치 자신이 이미 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자신이 두려워하는 교도소를 가기로 했다면 자신이 저지른 죄의 재심, 감형 뿐 아니라 그만한 금전 보상을 염두에 두어두었을 것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추론이고, 나는 그 중에서 가장 높은 가능성의 방법을 이야기한 것에 지나지 않아.”
창완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슬하를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슬하는 벽으로 고개를 돌리며 귀찮다는 듯 어서 가보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창완은 등을 돌린 슬하에게 진작 말해 주지 않았냐는 투정을 부리고 슬하의 사무실을 나섰고 슬하는 창완에게 말하지 않은 몇 가지와 사건의 상황에 마음이 불편해하고 있었다.
(3장 확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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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불편하는군요
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