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내일의 산 소망(1:3-12)
③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④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⑥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 ⑦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⑧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⑨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⑩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⑪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 하니라. ⑫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1:3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삼위일체 하나님, 특히 성부(聖父)와 성자(聖子)의 관계를 나타낸다.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서로 구별되시지만, 신적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시다. 이것이 성경이 밝히 계시하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신비이다.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께서는 그 많으신 긍휼대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 우리들의 거듭남(중생, 重生)은 하나님의 전적인 긍휼로 된 것이다. 또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중생의 근거이다. 죄의 형벌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즉 대리적 형벌의 속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씻음 받았다. 그것에 근거하여 영원한 새 생명이 우리 속에 심어진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모든 사실을 확증하고 보증하였다.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성령의 중생케 하심도 다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은혜의 결과였다.
1) 찬송하리로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게토스'는 동사 '율로게오'에서 변화된 형용사이다. 문법적으로 본문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술어 동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스토'(하게 하다)나 '에스틴'(...이다) 혹은 '에이에'(...지어다)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내려온 유대인의 송영에서는 찬양의 대상이 하나님일 경우 술어 동사를 사용하지 않고 표현하였다. 베드로는 아마도 이러한 전통을 따라 표현한 듯하다.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호 데오스 카이 파테르 투 퀴리우 헤몬 예수 크리스투)에서 '퀴리우'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 있다. '주'는 승귀된 그리스도에게 부여된 칭호로서 초대 고회의 신앙 고백이었다.
* 롬 10:19 -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 고전 12:3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 고후 4:5 -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 빌 2:11 -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성부 하나님은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배하시는 대상이며,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시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Michaels).
'그 많으신 긍휼대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시고 아버지가 되시는 근원을 시사한다. 그 근원은 '하나님의 긍휼'이다. '긍휼'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그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어 구원을 얻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이 되게 하는 근본적인 요인이다.
이것은 '은혜'(카리스)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나 '은혜'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나타내는 반면에 '긍휼'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자 하는 동기를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구원하신 것은 자신의 풍성하신 긍휼을 따라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다.
3)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예수 그리스도의...부활하심으로'(디 아나스타세오스 예수 크리스투)에서 '예수 크리스투'의 속격은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 주격 소유격으로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를 의미한다.
Ⓑ 목적격 소유격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셨다'를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의미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 절 전체가 하나님이 주체로 언급되기 때문이다(Michaels). '아나스타세오스'는 '산 소망'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게 하사'와 연관된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거듭나게 하사'(아나겐네사스)는 동사 '아나겐나오'의 부정과거 능동태 분사로 거듭남의 사건이 과거의 역사적인 사실임과 동시에 현재에도 구체적인 사실로 중명됨을 시사한다. 신약성경에서는 '거듭난다'에 해당하는 헬라어에 대해 일반적으로 '팔링게네시아'를 사용한다.
그런데 본 절에서 '팔링게네시아'가 아니라 '아나겐네사스'를 사용하였다. 그 이유에 대해 혹자는 베드로가 기독교의 구원에 대한 이해보다는 이교의 영향을 받아 이 단어를 사용했다고 주장한다(Bigg). 왜냐하면 당시 신비주의나 스토아 학파에서는 '깨달아 거듭난 삶'을 아는 자를 '아나겐네사스'란 단어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 같은 이유로 '아나겐네사스'를 사용했다기보다는 본서에 강하게 비쳐지는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옮기려 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Michaels).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거듭나다'를 '겐네데 아노덴'으로 표현하셨다.
* 요 3:3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것은 '아나겐나오'와 같은 어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겐네데 아노덴'에서 '아노덴'이 '다시'(again)라는 의미로 사용되든 '위로부터'(from above)라는 의미로 사용되든 모두 '아나겐나오'와 같은 의미가 된다. 따라서 베드로는 본서에서 예수께서 이미 사용하신 단어를 다시 사용하므로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여 강조하고자 했던 거듭남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 요 3:3-8 - ③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④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⑥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⑦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⑧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남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소유하신 생명과 같은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Stibbs).
4)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산 소망'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된 결과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나는 새 생명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으로 4절의 '기업'이나 5절의 '구원'을 가리킨다(Michaels). 이 '산 소망'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이미 마련한 것이다(Blum).
1:4 -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성도는 거듭남으로 산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죄의 결과는 죽음과 멸망이었다. 거기에는 두려움과 절망만 있었다. 그러나 이제 죄 씻음과 영원한 생명을 얻은 성도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그 소망은 결코 헛되지 않은 산 소망인 것이다.
세상의 것들은 다 썩고 더러워지고 낡아진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102:26에서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라고 말하였다.
또 이사야 40:6-7은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성도들을 위해 하늘에 간직된 기업, 즉 천국은 썩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는 거룩하고 선하고 영광스럽고 영원한 나라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 천국을 유업으로 상속받을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 롬 8:17 -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기업'(클레로노미안)에 대해 구약성경에서는 '거룩하게 구별된 소유물'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는 '현재에 이미 누리는 소유물'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Hort). 그러나 '클레로노미안'이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용례를 정리해 보면 대략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1) 하나님 나라
* 마 25:34 -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 엡 5:5 -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2) 영생
* 마 19:29 -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 막 10:17 -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눅 10:25 -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3) 구원
* 히 1:14 -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4) 약속
* 히 6:12 -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5) 축복(3:9).
이러한 기업은 '산 소망'과 연결된 것으로(3절) 거듭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Michaels, Blum). 따라서 본 절의 '기업'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로서 현재에 누리는 것이 아니다.
* 롬 8:18 -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 갈 4:7 -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미래에 주어질 것을 가리키며 이때 성령은 미래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질 기업의 보증이 되신다.
* 롬 8:11,18-23 - ⑪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⑱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⑲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⑳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 엡 1:14 -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는 이러한 기업의 온전함에 대해 부정접두어 '아'로 시작하는 세 단어, 즉 '아프다르톤'(썩지 않고), '아미안톤'(더럽지 않고), '아마란톤'(쇠하지 아니하는)을 사용하여 설명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미래에 완전히 소유하게 될 '기업'이 지상의 것과는 달리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임을 시사한다(Lenski, Robertson).
2)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늘에'는 복음서에서 '하늘나라'와 연관될 뿐만 아니라 예수의 특정한 말씀과 연결된다.
* 마 5:12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마 6:19,20 - ⑲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⑳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 눅 12:33 -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질 기업이 영원할 뿐만 아니라 전혀 손상되지 않으며 모든 위험으로부터 안전함을 시사한다(Lenski, Robertson).
'간직하신 것이라'(테테레메넨)은 완료시상으로 이미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업을 마련해 두셨음을 시사한다(Blum).
|
첫댓글 귀한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