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현행 한국이라는 국가의 역사영역에 온전히 들어갈수 있느냐 문제에서 좀더 이성적으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관찰자님은 아래에 두개의 글을 썼습니다.
충분히 고민을 한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님이 견해에 결정적 오류가 있군요.
국가의 역사영역이란 표현을 하였는데, 과연 국사란 것이 무엇을 기준으로 한 역사냐는 것입니다.
님의 글에서는 다분히 현재의 한반도의 역사가 곧 국사라는 지극히 영토 결정론적인 입장에서만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의 인간의 역사 = 한국사 는 절대로 아닙니다.
현재의 정권이 차지한 지역의 역사만을 곧 국사로 보는 나라는 과연 몇 나라나 될까요.
터키사를 볼까요. (대한교과서주식회사에서 나온 세계각국사 16번째 책으로, 1993년 초판이 나왔습니다. 저자는 유명한 이희수 교수이니다. 그는 이스탄불대학에서 공부했고, 그의 저서는 현재의 터키 역사학계의 보변적인 역사관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터키사를 보면 터키인들은 결코 소아시아반도에서의 역사를 서술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처음에 투르크의 종족적 원류와 발상지를 말하고, 민족 이동을 말합니다.
흉노제국을 시작으로 유럽 훈제국, 위구르 제국, 키르키즈, 쿠르키스, 칼룰국, 오우즈, 그리고 유럽의 투르크국가들, 서아시아의 이슬람 국가들 (카라한조, 가즈나조, 하레즘샤국, 대셀루크)를 지나서 터키 셀주크조, 오스만제국으로 이어져서 서술을 합니다.
만약 님의 견해대로 본다면 그들은 트로이의 역사, 앗시리아제국, 페르시야제국, 알렉산더제국, 리사마코스조, 페르가몬왕국, 로마제국, 동로마제국, 비잔틴제국, 일한국, 등의 역사를 서술한 후에 오스만제국을 서술해야 옳을 것입니다. 하지만 터키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님의 견해는 중국인들의 역사 서술과 비교해 볼 때 더욱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중국의 역사서에는 분명 외국의 역사를 설명하는 파트가 있습니다. 소위 동이전, 서융전, 남만전, 북적전입니다. 이것의 역사과 과연 중국의 역사인가요.
분명 과거의 중국인들은 이것을 외국의 역사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인들은 사방의 땅을 넓히자, 갑자기 과거의 조상들의 역사인식이 잘못되었다면서 분명한 이민족의 역사를 자국사로 편입시키려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만주를 지금 차지하고 있었다면 어떠했을까요. 1945년에 한민족의 힘으로 해방이 되었다면, 그리고 우리가 일본의 관동군을 물리치고, 소련과 협상을 잘했다면, 최소한 간도 정도는 차지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지금 님의 고민은 전혀 불필요한 것이 되었겠지요.
시간은 신입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역사는 인간에게 내일의 새로운 시간이 열림을 이야기하고, 내일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 지를 알려주는 경험의 보물창고입니다.
역사는 현재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알려주는 것도 있지만, 앞으로의 미래의 시간을 열어주는 미래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의 정권이 차지한 영역이 곧 영원불멸의 것으로 착각하고 여기에서 벌어지는 것만이 곧 국사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우리가 형성되어 온 수많은 과정들이 모두 잘리어 나가는 역사가 되고 맙니다.
역사는 현재의 고정된 입장으로만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만주에 수많은 동포들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또 간도문제와 같이 아직도 미해결된 영토문제도 남아있습니다. 역사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땅의 소유 역시 고정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국사라는 것이 정권과 연관된 땅의 역사만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해주십시오.
우리가 이런 현재의 영역이 만고불변하다는 관념으로 역사를 해석한다면, 우리에게 만주는 영원히 잃어버린 땅이 되고 말 것입니다. 언제부터 만주가 중국의 땅이었습니까.
민족주의적 사고 방식을 떠나 아주 객관적으로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우리 역사를 인식했는가를 생각해보십시오. 고려는 곧 고구려였습니다. 삼국사기는 고구려를 백제, 신라와 함께 우리의 역사의 주인공으로 서술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중국 책에도 고구려를 자기 역사의 주인공으로 서술한 책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고구려를 우리 역사로 주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근거이기도 합니다.
최근들어 몇몇 논자들이 고구려를 우리 역사에서 배척하자는 논의를 할 때마다 나는 가슴이 아픕니다.
역사는 현재에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구려를 버린다면, 고구려는 사라집니다.
님의 이런 생각은 고구려가 우리로부터 버려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넝마꾼인 중국인들에게는 너무나도 환영받을 생각입니다. 님의 고민에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시간이 신이며,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는 개념을 갖고 지나치게 우리 역사가 고정되어 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고려와 조선 역시 남만주 일대로 수시로 진출을 했었습니다. 우리의 활동무대가 결코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으로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님의 이런 생각이 자꾸 확산되면, 나중에는 휴전선 이남의 땅의 역사만이 우리 역사라는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역사관이 뿌리를 내릴 수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고민해주기 바랍니다.
고구려 역사가 실패한 역사가 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가 고구려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해주고, 우리의 미래모델로서 고구려 역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나는 영국이 불과 1천만도 안되는 인구로 전세계의 절반을 지배했던 역사를 기억하며, 불과 5백만의 만주족이 1억의 명나라 사람들을 지배했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첫 번째 요인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넓은 세상을 바라보았다는 점입니다.
현재의 한반도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세상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송시열과 같은 우물안 개구리만 양산될 뿐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