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과 예의
대화할 때 상대의 치아(齒牙)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민망한 일이긴 하지만 의지만 가지고는 통제가 쉽지 않다. 한동안의 관찰 결과는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은 의치(義齒) 한두 개 없는 이가 드물다는 것이다. 나도 의치를 해 넣을 때가 되어서 내 신경과 눈이 그리로 가는 거다. 조만간에 주위 사람들에게 어느 병원이 잘하고 비용이 싼가를 묻게 될 것이다. 오십 대 후반을 살다보면 누구나 한두 번 이앓이로 고생을 하게 마련이다.
체질적으로 여러 부분이 약한데 치아도 그 중에 하나다. 관리가 철저한 편도 아니라 수시로 걱정을 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 밖의 일로 곤란을 당했다. 얼마 전에 잇몸이 딱딱해지고 아파서 무리를 한 신호가 치아로 오는 줄 알고 조심만 하다가 통증이 있어 어느 순간 만져보니 이가 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랑니가 어금니를 치고 나왔다. 그 고통은 상상보다 컸다. 내가 믿고 전하는 하나님이 전능한 분이시니 그 분께 간구를 했는데도 효과가 없었다. 들어주실 때까지 하려 했다가 인내심에 한계가 있어서 치과에 갈 수밖에 없었다. 잠깐의 고통과 며칠의 불편을 겪은 후 아픔과 헤어질 수 있었다.
내 몸 속에서 긴 세월을 숨어 있다 불현 듯 나타나 내게서 떠나겠다고 며칠 행패를 부리다 떠나간 사랑니. 그런 무례한 녀석에게 왜 어울리지 않는 달콤하고 낭만적인 사랑니란 이름이 붙었을까. 사랑에 눈뜰 즈음인 18∼20세에 대개의 사랑니가 나오기 때문이란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지혜치(智慧齒)라고도 부른다고 해서 가슴 뛰는 사랑이나 특별한 지혜를 기대해 보았지만 별다른 일이 없었다.
지난해에 50년 이상을 나와 함께 했던 중요한 치아 한 개가 나로부터 떠나갔다. 반 백 년을 큰 말썽 없이 일만 했으니 이제는 쉬다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중을 한동안 내게 비쳐 왔다. 의당 평생을 함께 할 줄 알았던 내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그동안 고생만 시키고 잘해준 것이 없으니 미안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내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정(情)을 떼는 과정을 진행했다. 심통을 부릴 신호를 보내고 서서히 뻐근하게 몰아가다가 인상을 쓰게 만들고 먹는 것을 방해하거나 온 신경을 긁어모으게도 하고 두통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병원으로 쪼르르 달려가 곧바로 쫓아내고 오는 것은 50여 년을 하루같이 봉사해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웬만한 아픔과 손해는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이 도리고 얼마간의 헤어짐의 기간은 서로에게 필요할 듯 했다. 때로는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것도 같았다. 온 신경이 그에게로 쏠리기도 했고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기도 했다.
긴 세월의 정(情)을 생각해서 우리 사이에 다른 이를 개입(介入)시키지 않고 원시적인 방법이긴 해도 당사자끼리 적당한 때에 헤어지고도 싶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자 서로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情)도 미련(未練)도 잦아들고 어느 정도 미움이 차올랐다. 서로가 앞날을 생각하고 나누어 섰다.
나의 한 부분으로 긴 세월을 섬겨준 그 존재를 처음 정면으로 마주했다. 친숙한 것 같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주로 일했던 부분이 닳고 상처가 나기도 한, 조금은 누런 빛깔의 광물처럼 느껴지는 길쭉한 물체. 너무도 분명히 이제부터는 나와 별개의 존재. 시대가 변하여 까치에게 부탁하며 지붕에 던지지도 못하고 함부로 버리기도 민망해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어느 날 땅에 묻었다. 내 몸과 영원히 함께 갈 수 없는 것이니 어쩔 수 있으랴.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서로에게 가장 잘하는 일이지 싶었다.
그 때에 가족들이 새 치아를 하라는 것을 차이피일 미루니 약간은 불편하다. 그래도 어떻게 그 긴 세월을 함께 한 녀석이 떠났다고 해서 또 쏜살같이 달려가 다른 것으로 채워 넣을 수가 있나. 최소한의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가진 후에 새로 하더라도 해야지.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녀석이 먼저 떠난 동료의 일을 다 보았다는 듯이 이제는 자신도 자유와 평안을 누리고 싶다고 수차례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하나씩 떠나보낼 때마다 전 과정을 다 거칠 수는 없을 것 같다. 정말로 너무 힘들고 진이 빠진다.
이런 것을 학습효과(學習效果)라고 한다던가. 모두가 피곤한 일을 매번 되풀이 할 일은 아니다. 적당한 선에서 서로 서운하지 않게 예의를 다해 보내고 떠난 다음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고 사는 것이다. 한 평생 살다보면 부모님을 떠나보내고도 살아야 하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들을 겪고도 또다시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이 땅의 삶이요 인생이 아닌가. 나도 이번에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
첫댓글 오늘의 선생님으로 키워(?)준 이를 보내니 어찌 서운하지 않으셨겠습니까. 하나 둘 먼저 떠나보내지 않아야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인생인가요?
맞습니다. 원한다고 잡을 수 있나요. 그러니 인생이지요.
치유 불가능 하다면 하루라도 빨리 헤어지자고 하세요. 그리고 빨리잊으세요. 감상 잘했습니다. 건필 하십시요.
위에 댓글들~~~ 옳으신 말씀입니다`^^
'서로가 앞날을 생각하고 나누어 섰다.' 재밌는 표현이십니다. 멋진 글 감사합니다.
한 녀석이 떠났다고 해서 또 쏜살같이 달려가 다른 것으로 채워 넣을 수가 있나. 최소한의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가진 후에 새로 하더라도 해야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이제 아프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필승!!
때론 단호하게 할 때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물론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도 중요하고 예의도 지켜야 하겠지만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될테니 말입니다...
감상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선생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