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환의 돈황벽화로 읽는 불교경전
21. 유마경변②-막고굴 103굴
문수·유마 대칭 배치로 ‘유마경’ 내용 대부분 표현
장면 간 유기적 구성으로 경전의 핵심 전달하며 확장까지
표면상 다르게 보이지만 문수·유마 각각 지혜·방편 상징
‘분별상’ 역할 맡아 조연으로 등장한 사리불 모습도 흥미
막고굴 103굴 동벽 유마경변.
‘유마경’의 내용과 교리를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 수대(隋代)에 등장한 돈황석굴의 유마경변은 서벽의 주존상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문수·유마 대칭구도의 도상을 형성하고, 이로써 ‘불이법문(不二法門)’이라는 ‘유마경’의 요의를 명확히 드러냈다. 당대에 들어서 선학과 교학을 함께 중시하는 사조 속에서 ‘유마경’의 인기는 여전했고, 이에 따라 돈황석굴에서도 더욱 풍부한 내용을 담은 변상들이 속속들이 등장하였다.
막고굴 제103호굴의 유마경변은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천보연간(742~756)에 건설된 103굴은 주실의 입구에 해당하는 동벽 전체를 유마경변으로 장식하였다. 이때 동벽 가운데 뚫린 입구를 사이에 두고 문수보살과 유마거사는 자연스럽게 대칭을 이루고 이를 중심으로 세부 내용들이 표현되었다. 경전의 흐름에 맞춰 도상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① 불국토품: 동벽 입구의 상단, 즉 문수-유마의 사이 중앙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의좌(依座)에 정좌하시고, 양쪽으로 제자와 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그 앞에는 일산을 들고 좌측에 나란히 서있는 이들이 보인다. 이것은 비야리성 암라수 동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법을 하실 때, ‘보적’을 비롯한 500명의 장자의 아들들이 부처님께 칠보 일산을 공양한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때 부처님은 위신력으로 그 모든 보배 일산을 합쳐 하나의 일산으로 만드시니, 그 일산이 삼천대천 세계를 두루 덮으며, 삼천대천 세계의 모든 유위상과 제불이 모두 일산 가운데 나타났다.
② 방편품: 비야리성의 장자 유마힐은 “방편으로써 몸에 병이 있음을 드러냈다.” 경전에서는 이에 “국왕·대신·장자·거사·바라문 등, 그리고 모든 왕자와 그 밖의 관속 등 무수한 사람들이 모두 가서 문병하였다”고 설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유마경변의 중국화된 도상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다. 침상에 앉아 손에 주미를 쥐고 있는 유마힐은 고대 중국의 사대부 복장을 하고 있다. 화면의 하단에는 유마힐을 문병온 국왕과 각국의 왕자들을 그렸는데, 좌측 문수보살 밑에는 중국 황제를 배치하였고, 유마힐의 밑에는 당시 중국 주변국들의 왕자들을 배치하였다.
③ 문수사리문질품: 유마힐의 변재(辯才)를 감당하지 못하는 제자와 보살들을 대신하여 문수보살이 유마힐을 문병한다. 화면 좌측에 단좌한 문수보살 뒤로 문수와 유마 간에 벌어질 묘법의 담론을 듣고자 따라온 제자들이 운집하였다. 문수보살은 왼손의 손가락 둘을 치켜올리며 문병 중에 불이법문을 나누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수보살이 “그대의 병은 무엇으로 인하여 생긴 것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유마힐이 답한다. “일체중생이 병에 걸린 까닭에 저도 병에 걸렸습니다. 중생의 병이 소멸하면, 곧 저의 병도 소멸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한 까닭에 생사에 들어가고, 생사가 있으므로 곧 병이 있기 때문입니다.”
④ 부사의품: 부처님 제자 가운데 ‘지혜제일’인 사리불은 본래 바라문 출신이라는 신분상의 특성 때문에 종종 소승의 한계를 드러내 주는 역할을 담당하곤 한다. ‘유마경’에서는 이러한 성문(聲問)으로서의 사리불 역할이 더욱 두드러지며, 103굴의 유마경변에도 반영된다. 화면에서 유마힐의 침상 위로 다수의 사자좌(獅子座)가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이 보인다. 경에서 사리불이 대제자와 보살들이 앉을 자리를 걱정하자, 유마힐은 신통력으로 수미등왕 부처님의 불국토에서 삼만이천 개의 사자좌를 얻어와 아무런 방애(妨碍) 없이 모두 방 안에 들여놓았다. 이른바 “수미산이 겨자씨 안에 들어있음”을 보는 “(대승)보살의 불가사의해탈의 능력”을 표현한 것이다. 사리불은 성문의 지위에 머물렀기 때문에 수미등왕의 사자좌에 스스로 오를 수가 없었다.
⑤ 관중생품: 103굴 변상에서 사리불은 어디에 자리하는가? 경전에서 차지하는 사리불의 비중을 볼 때, 응당 홀로 문수보살의 좌측에 선 제자가 사리불일 것이다. 그렇다면 홀로 유마힐의 옆에 자리한 제자의 형상은 누구일까? 또한 양측의 제자 옆에 각각 서 있는 여인의 형상은 누구인가? 경전에서 유마힐의 방에 있던 한 천녀(天女)가 뿌린 하늘꽃이 유독 제자들의 옷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사리불이 이것을 떼어내려 하자 천녀는 그것이 분별상에서 비롯한 탐착임을 지적한다. 이어서 남과 여를 분별하는 사리불에게 자신과 사리불의 형상을 뒤바뀌게 함으로써 중생을 볼 때 분별상을 떠날 것을 일깨운다.
⑥ 향적불품: 벽화에서 한 보살이 무릎을 끓은 채 유마힐의 하단 각국 왕자들에게 발우에 담은 음식을 올리고 있다. 이것은 유마힐이 보살을 만들어내어[化作] 멀리 향적불(香積佛)이 계신 청정국토에서 얻어 온 향반(香飯)을 공양하는 것이다.
⑦ 보살행품·견아촉불품: 벽화에서 중앙의 석가모니 부처님 우측을 보면 유마힐이 신통력으로 대중들과 사자좌를 오른손에 올려놓고 부처님 계신 암라수원으로 나아가는 장면이 그려졌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좌측에 또 한 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데, 이것은 유마힐이 신통력으로 본래 자신이 주(住)했던 묘희세계의 무동여래(아촉불)를 모셔온 것이다.
이상의 도상분석을 통하여, 103굴 유마경변이 경의 거의 모든 품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경변을 구성하는 각각의 장면은 그에 상응하는 경전의 내용을 반영할뿐 아니라, 장면 간의 유기적 관계를 통하여 경전이 전달하는 요의를 명확히 전달하고, 또 확장한다. 문수-유마는 표면상 경에서 가장 두드러진 ‘다름’을 드러내는 관계이지만, 양자가 상징하는 바는 ‘지혜’와 ‘방편’이다. 양자는 경에서 누차 강조하듯이, “방편이 없는 지혜는 결박이고, 방편이 있는 지혜는 해탈이며, 지혜가 없는 방편은 결박이고, 지혜가 있는 방편은 해탈이다.” 여기서 해탈의 자리는 곧 석가모니불이며, 결박은 중생이 아니라 분별상(分別想)의 역할을 맡은 사리불, 즉 성문의 견해이다.
[1657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