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인 1964년, 공원의 코앞인 대학정문 인근에서 하숙을 했지만 공원은 그림의 떡이었다. 주경야독하면서 시간을 아끼기 위해 학교 가까이서 지냈는데도 당시 공원은 그랬다. 공원이 생겨난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20세기 초 시민들의 식수를 마련하기 위해 구덕산과 엄광산 계곡에 2개의 수원지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4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수원지 일대가 자연공원으로 지정된다. 그런데도 수원보호를 위해 시민들의 출입은 허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24년 세월이 흐른 1968년 2월에야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되었다. 낙동강 물이 부산의 상수도 수원이 된 때문이고 이때 근린공원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대신공원'이란 이름까지 얻었다.
그해 말에 중앙공원에 편입되면서 ‘옛 대신공원’이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뿌리 찾기 운동으로 옛 명칭을 찾아 복원하는 시대의 흐름에 한참 어긋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 공원 입구의 아치간판이나 군데군데의 시설물엔 '옛'자가 붙질 않았다. 비록 길지 않은 역사지만 공원 명칭은 이곳의 옛 지명인 대신동을 안고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좋으리란 생각이다. 공원이 개방되고 난 뒤로 은퇴한 직장의 선배들이나 바깥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지내시느냐고 물어보면 대신공원을 산책한다는 말들을 했다. 그런데 마음을 먹고 찾아가더라도 공원은 접근하기가 결코 쉽질 않다. 우선 지하철이 닿지 않고 버스 노선마저도 아직은 많이 불편하다.
그래도 변화하는 계절 따라 공원을 찾는 시민들이 어느 공원보다 많은 것은 도심에서 떨어져 있어서 조용하고 평지 구간이 길어 산책하기가 수월한데다 백세시대를 맞아 매스컴이 앞장서 홍보하는 치유의 숲도 이곳에 많기 때문일 것이다. 공원엔 광복이 되면서 대대적으로 심은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빼곡하게 하늘을 찌르고 봄이면 군락을 이룬 벚나무들이 화사한 꽃으로 찾는 이들을 반긴다. 그런데 공원의 경관을 해치며 볼썽사나운 펼침막이 여럿 내걸렸다. 자세히 보니 ‘구덕산 치유의 숲’ 조성을 결사반대한다는 산악단체들의 호소였다. 내용을 잘 모르면서 입을 열긴 조심스럽지만 현재의 숲만 잘 보존해도 피톤치드 양은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러는 지자체끼리 경쟁하느라 더러는 어느 특정 토목 건설업체를 봐주기 위해서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하는 걸 심심찮게 봐온 터라 걱정이 되는 것이다. 처서를 지난 지 열흘이 되었지만 한낮의 기온은 여전히 여름에 머물러 있다. 안동에서 온 교우에게 부산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아내와 함께 공원을 찾았다. 두 사람 다 걷는 걸 힘들어하며 미리부터 엄살을 부리는 바람에 오늘은 엄광산 정상을 밟겠다는 욕심은 일찌감치 접었다. 우리 일행이 산을 오르는 초로의 사내들과 반농으로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뒤를 따랐다. 사내들은 부산사람답게 말이 거칠었다. 무엇이든 ‘주어 넣으면 된다’고 했다. 이제 할망구가 된 마누라가 병이 나더라도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면 그만’이란 말을 ‘조 너면 끝’이라고 말한다.
묵묵히 듣다가 어찌 저럴까 싶어 한마디 던졌다. “바닥에 흘린 돈이야 주어서 호주머니에 다시 넣으면 되겠지만, 평생의 반려자를 어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지금의 세태 때문에 자기들도 너무 열 받아서 한 말이란다. 늘어난 노령인구를 말해주듯 세 군데의 체육공원 이용객은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헬스기구에 매달린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맑은 공기 속 훌륭한 시설을 갖춘 공원에서 이렇게 행복한 노년을 보내리라고 그들이 젊었을 땐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공원 매점과 붙은 계곡의 나무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앉은 중년의 남녀들은 고스톱에 정신을 빼앗겨 카메라가 자신들을 찍는 줄도 몰랐다. 도박까지야 아니겠지만 공원의 미관을 어지럽히는 추태가 아닐 수 없으니 말려야 할 것 같다.
지역주민이 쓴 글인지는 몰라도 시비에 새겨진 작품 중에는 문학의 향기를 전하기에 역부족인 것들도 눈에 띈다. 비석을 어울리지 않게 크게 만들어 주변 경관을 해치는 것까지 보인다. 명색이 예술작품인데 감수를 않고 바로 세웠는지 글자를 새긴 사람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가분수처럼 크게 넣은 것도 있다. 전력회사에서 만든 ‘산림녹화’ 펼침막을 만나 반가웠으나 훼손이 심했다. 에너지로 지역을 이끌어가는 공기업인 만큼 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편익시설을 설치한다면 공원 이용객인 고객에게 큰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구미의 금오산은 한국 최대기업인 S전자에서 맡아 관리하는 걸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 전 어느 산악인이 산이 좋고 나쁜 것을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난 그때 ‘나쁜 산도 있느냐’고 동문서답을 했었다. 그랬더니 그는 물이 없는 산이 바로 나쁜 산이라고 했다. 그땐 반신반의했지만 그럴 것 같다. 이곳 대신공원엔 약수터가 여럿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제1약수터 제2약수터 옥천약수터 장수천약수터 석탑약수터 대동약수터까지 무려 6개나 있다. 끊임없이 물이 솟아나려면 이처럼 숲이 우거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공원 들머리에서 충무공영묘비를 만나고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야영장과 청소년수련관 궁도장 양묘장 자갈마당 봉수대 헬기장까지 이어진다. 혼자서 찾았더라면 이 코스를 순차적으로 밟고 엄광산 정상을 밟을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여기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첫댓글 오랜만에 대신공원을 봅니다~~
못보든 시비(글돌)가 많네요~ 이렇게 좋은 휴식공간이 우리들 가까이에 있다는것은 너무 감사한 축복입니다! 느낌이 좋은 가을의 포토에세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이니 일차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