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랄한 비판 욕을 먹을지언정...
배신자들 / 조명래
보수의 폐허속에
날개없는 추락은
연일 새로운 기록
나락 중 국민의힘
악몽같은 이 현실
근원적 문제 뭘까
배신자 프레임에
배신자론 주장의
지배적 가치속에
매몰된 의식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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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이 배신자인가?라고 물으면 보수는 대부분 그렇다라고 한다. 한동훈은? 하면 역시 마찬가지다. 똑 같은 질문을 중도층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은 아니다 한다. 오히려 반성도 혁신도 못한 채 멀쩡한 정치인들을 나락으로 보낸 보수를 질타하고 국민의 배신자들은 국민의힘 이라고 한다.
'배신자 프레임'은 윤석열 정부 때도 마찬가지 였다. 특검 수사를 앞두고 있는 원희룡은 지난해 당대표 선거에서 한동훈에게 "차별화와 배신은 종이 한장 차이"라며 '배신자 프레임'을 씌웠다.
나경원은 "사심의 정치가 배신의 정치"라고 한동훈을 공격했고, 당원들은 한동훈이 연단에 오르자 "배신자"를 연호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몇몇 기회주의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적극 옹호한 것은 유승민이나 한동훈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윤상현 의원은 한동훈에게 "나 살자고 대통령 먼저 던지는 건 배신의 정치"라고 비난했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헌재에서 인용된 후엔 국민의힘에 "배은망덕한 패륜집단"이라고 했다.
김문수는 "국회의원 몇 명이 배신해 대통령 파면하는 게 민주주의냐"고 했다. 지난 대선 경선 과정에서 홍준표는 한동훈에 "인간말종"이고 "배신자 프레임에 들어가면 끝"이라고 막말을 했다.
왜 그들은 서로를 '배신자'로 낙인 찍고 사냥해 왔을까? 그 두려움의 근원은 보수 정치에 드리워진 전근대적 의리 정치, 충성 정치, 좀 나쁘게 말하면 조폭 문화같은 행태가 아닐까?
한국 보수 정당에 내재된 집단 무의식의 뿌리는 박정희 대통령으로 한때 보수 정치가 노무현이라는 도전자와 마주했을 때 박정희의 유산을 이명박과 박근혜에 투영해 두번 승리한 경험이 어쩌면 독이 된것은 아닐까?
문제는 2007년~2016년까지 10여년의 '위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계승'이 한바탕 휩쓸고간 자리엔 박정희 대통령의 주술과 같은 '배신자론'만 남은듯 한게 지금의 국민의힘 모습이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여전히 박정희 대통령의 재단 앞에 엎드려서 주술 정치를 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비극적 삶'이 배신의 결과라는 것을 트라우마처럼 여기면서 말이다.
두번의 탄핵, 한 번의 폭군을 경험한 국민의힘은 배신의 늪에 빠졌다. 공포에 질려 한 울타리 안에 있는 동료들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며 잔혹한 생존 게임을 벌이던 습성을 버리지 못한것이다.
그래서 보수는 문재인에 패하고, 또 다시 이재명에게 패했지만 여전히 새로운 가치를 찾지 못한 채 철지난 '우상 정치'에 기대는 게으른 선택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대선에서 경합 지역이나 열세 지역을 빼앗기더라도 우세 지역 TK에선 압도적으로 이겨야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봤지만 실제로는 압도적으로 지켜내지도 지지받지도 못했다.
대선 패배 이후 '당권'을 염두에 둔 행보였다면 수도권이나 충청지역과 같은 캐스팅 보터 유권자들의 눈엔 한심하게 보였을 것이지만, 그들의 세계에선 진지한 일이었다. 중도를 끌어들여 영토를 확장하는 게 아니라, 배신자를 추려내서 조직의 대오를 유지하려 한 것이다.
1990년대, 2000년대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은 확장의 정당이었고, 새누리당까지도 그런 척은 했지만 자유한국당때부터 국민의힘까지의 보수 집단은 스스로가 대로를 두고 막다른 길을 들어서고 있는듯 하다.
보수의 위기는 '리더 없는 무의식적 팔로우십이 초래한 비극'이다. 가치도 철학도 빈한한 리더에 대한 무의식적 '팔로우십'이 무소불위의 대통령을 만들어냈다.
그러한 리더가 국민의힘이라는 보수 집단을 끌어안고 자폭토록 부추겼던 사람들의 굴종적 팔로우십은 '보수 혁명'을 외치며 유승민 같은 합리적 보수주의자를 10년째 두들겨 패고 대선에서 패한 당은 '영남자민련'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인적 청산'은 커녕, 권력 유지를 위해 '배신자' 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유승민이 유약한 정치인이라는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대통령 권한을 견제하고 국회의 권한을 늘리는 법안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10년째 배신자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온당한가? 한동훈은 배신자인가? 그들이 무엇을 배신했는가? TK의 '배신자 용인 불가' 정서는 원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보수 정당 스스로 만들고 선동해 낸 악의적 자해인가?
보수도 국민의힘도 이 물음에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보수의 정당이라는 국민의힘과 그런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이야말로 국민의 배신자들이다.
국민의힘이 살아나는 방법은 이제 근본없는 배신자 프레임을 깨뜨리는 것이다. 새 인물을 찾으려 할 게 아니라 배신자로 낙인 찍은 인물이 어쩌면 보수의 리더들이 아닐까? 생각해 봐야할것이다.
배신자 놀이를 끝내지 않는 한 국민의힘은 또 다른 '신상'을 찾아다니다 스스로 만든 신화에 종속될 것이고, 배신자로 낙인 찍힐까 두려움에 떨며 레밍떼처럼 TK로 달려갈 것이다. 국민의힘이 살려면 유승민, 한동훈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이 점에 있어서 논란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적어도 내 주변의 중도층 시각은 그러하다.
이제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보수를 바라보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졌다는것을 간과한다면 다가오는 선거에서 연전연패할 것이다. 누구나 말하는 위기가 기회라는건 철저한 자기반성과 성찰로 혁신을 하는 자만이 위기가 기회라는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석우개도(石牛開道)라...
석우개도(石牛開道)란 돌로 만든 소가 길을 열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욕심내다 큰 것을 잃는다는 말이다. (石 돌 석, 牛 소 우, 開 열 개, 道 길 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욕심에서 불행이 잉태된다고 예로부터 무수히 선인들이 깨우쳤지만 중생들은 깨우치지 못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오욕(五慾) 중에서 죽을 때까지 따라붙는 재욕, 색욕, 식욕, 수면욕 외에 죽은 뒤까지 이름을 남기려는 명예욕도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욕심은 욕심을 낳는다.
‘남의 밥에 든 콩이 굵어 보인다’고 남의 밥 더 작은 콩이라도 빼앗고 싶은 것이 보통사람의 본성이다.
비유한 성어도 많다.
처음에는 겨를 핥다가 나중에는 쌀까지 먹는다는 지강급미(舐糠及米), 행랑 빌리면 안방까지 든다는 차청차규(借廳借閨), 농서 지방을 얻은 뒤 촉 땅을 넘본다는 득롱망촉(得隴望蜀) 등등이 있다.
작은 것을 욕심내다가 훨씬 더 큰 것을 잃는다는 어리석음을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 많이 쓰는데 같이 나온 말로 돌로 만든 소(石牛)가 길을 열었다(開道)라는 이 성어다.
이 말은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진혜왕(秦惠王)이 서쪽 지방의 촉(蜀)나라를 공격하고 싶어 했지만 길을 열지 못하자 돌로 다섯 마리의 소를 만들어 길을 뚫었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돌소의 꽁무니에 금을 묻히고 황금 똥을 눈다고 퍼뜨린 소문에 어리석고 욕심이 많은 촉왕이 장사를 시켜 길을 열고 옮겨오게 했다. 진나라 군대가 그 길을 따라 들어 와 촉을 멸망시켰다.
6세기 북제(北齊)의 유주(劉晝)가 쓴 신론(新論)에 나오는 내용이다.
당(唐)나라 2대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은 위징(魏徵) 등 명신들의 직간을 잘 받아들여 정관지치(貞觀之治)로 유명하다.
이세민이 신하들과 문답을 주고받은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도 돌소의 이야기가 태종이 말한 내용으로 나온다.
진혜왕이 촉으로 가는 길을 몰랐다. 그래서 ‘다섯 개의 돌소를 조각하여 꼬리에 황금을 달았는데 촉나라 사람들은 황금 똥을 눈다고 생각했다.’ 각오석우 치금기후 촉인견지 이위우능변금 (刻五石牛 置金其後 蜀人見之 以爲牛能便金.) 촉왕은 역사 다섯 명을 보내 돌소를 끌고 왔는데 길은 그렇게 저절로 만들어졌다.
태종은 촉왕을 자신의 거울로 삼을 터이니 신하들도 부패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 세상에 올 때 빈손으로 왔듯이 갈 때도 빈손으로 가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은 자주 인용하는 선에서 그친다.
눈앞의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례가 주변에 심심찮게 보인다. 욕심이 없을 수가 없으니 그 눈높이를 분수에 맞게 조절하면 탈이 안 난다.
대명천지 21세기 문명시대에 대한민국이라는 선진국의 어느 정당이 석우개도해 정권을 헌납한게 아닐까? 잘못된 편견이요 판단이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