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5일 다해 부활 제3주간 목요일 (요한 6,44-51)
복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44-5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생명의 빵’이 되려면: 이웃을 하느님처럼!>
사람이 창조자의 삶을 살아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자면 반드시 ‘생명의 빵’이 되어야만 합니다. 생명의 빵이 되는 것이 창조자의 삶이고 남의 생명을 먹는 삶이 피조물의 삶입니다. 피조물은 죽지만 창조자는 영원히 삽니다. 예수님은 창조자로 어떻게 피조물이 창조자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지 몸소 생명의 빵이 되시며 보여주셨습니다.
어제는 생명의 빵이 되는 사람은 자신을 내어주어야 하는 대상을 ‘아버지께서 보내주셨다’라는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도 이와 관련된 것인데, 나에게 보내주신 이를 대하는 방식이 곧 아버지를 대하는 방식과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요한 6,44-45)
나에게 맡겨지는 이는 이미 주님께서 나에게 그 사람을 보내주시기 위해 낳으시고 기르시고 가르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 안에는 이미 그 사람을 보내주신 분이 들어있다고 보아도 됩니다. 이렇게 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곧 그 사람을 보낸 이를 대하는 방식과 같아집니다.
이옥란(67세) 씨에게는 여섯 살 유치원생 윤하라고 하는 유치원 딸이 있습니다. 폐지를 주워 팔고 쪽방촌에서 사는데 윤하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 다닙니다. 윤하는 엄마가 리어커에 자신을 태우고 가도 밝고 똑똑한 아이입니다. 할머니라 불리는 엄마를 너무나 따릅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이옥란 씨는 가끔 한 건물을 기웃거립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보자 급히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피합니다. 이옥란 씨가 가끔 찾아가 멀리서 얼굴만 바라보는 사람은 45세 민지원 씨입니다. 민지원 씨는 변호사로서 잘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옥란 씨의 친딸은 민지원 씨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라고 하는 사람이 지원 씨를 찾아와 3천만 원만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원 씨는 3천만 원이 애들 장난이냐며 돌아섭니다. 그러자 이옥란 씨는 그 어머니를 찾아가 통장을 주며 어려움이 있으면 지원이보다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합니다. 통장을 받은 엄마는 지원이는 자기 딸이라며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소리칩니다. 이옥란 씨는 이렇게 누구에게나 죄인입니다.
멀리서만 딸을 지켜보던 이옥란 씨는 자신도 모르게 지원 씨에게 다가갔고 급기야 자신이 친엄마라 고백합니다. 지원 씨는 매우 화를 내며 자신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느냐며 매몰차게 친엄마를 몰아세우고는 떠납니다.
이옥란 씨가 몸이 아파 누워있을 때 제작진은 민지원 씨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가 아프다고 말합니다. 민지원 씨는 엄마가 있는 쪽방촌에 처음으로 찾아옵니다. 그러나 손녀딸로 보이는 윤하를 보고는 또 화가 치밉니다. 자기는 남의 집에 버려놓고 결혼해서 손녀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가 가증스러워 보였던 것입니다.
사실 윤하는 딸도 손녀딸도 아닙니다. 쪽방촌 이웃인 술집 여자가 맡겨놓고 나중에 찾으러 온다고 하고 도망친 것입니다. 이옥란 씨는 스물두 살 때 아기를 갖습니다. 남자는 도망쳤습니다. 친정에서 쫓겨나 어린 나이에 아기를 키울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살았던 시골 마을 제일 큰 부잣집에 아기를 몰래 놓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 집엔 아이가 없었고 덕분에 하늘이 내려준 딸이라 믿고 지원이란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잘 키웠습니다.
옥란 씨는 서울로 올라와 일하며 몇 번이고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딸을 한 번이라도 만나고 죽겠다는 심정으로 굳은 일을 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비록 쪽방촌에 살지만, 윤하를 남부럽지 않은 비싼 유치원에 보내고 원하는 것을 다 해줄 수 있었던 것이 어느 정도는 재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알게 된 지원 씨는 윤하를 보며 엄마가 지금까지 자신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을 버린 죄책감을 버려진 윤하를 통해 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지원 씨는 부잣집에서 자랐지만 부모가 아이를 낳자 구박 덩이로 바뀌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갖은 궂은일을 다 해야 했습니다. 양어머니는 시험 전날에도 일부러 지원 씨에게 일과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지원 씨는 우연히 옆집 어른들에게 자신이 친딸이 아님을 듣게 되었고 지원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독립하여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변호사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를 키워준 부모의 가세는 기울었고 이제는 지원 씨에게 와서 돈을 구걸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지원 씨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와 키운 어머니 중 누구를 택할까요? 지원 씨의 선택은 친엄마입니다. 친엄마는 자신이 아이를 버린 경험이 있기에 버려진 아이를 대하는 모습이 곧 자기 친딸을 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반면 지원 씨를 키워준 엄마는 지원 씨를 버려진 아이를 자기가 키워준다는 생각으로 키웠습니다. 이런 마음 안에는 그 버린 어머니에 대한 판단이 들어있습니다. 지원 씨의 친엄마를 죄인으로 여긴 것입니다.
지원 씨가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오열하는 모습은 코끝을 찡하게 합니다. 얼마나 먹고 싶은 밥이었을까요? 지원 씨의 친어머니는 윤하를 대하는 모습으로 지원 씨를 어떻게 대했을 것인지를 지원 씨가 믿게 했습니다. 이옥란 씨는 딸을 버렸지만 진정으로 생명의 빵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카카오 TV ‘모큐멘터리 진짜 사랑 5’에 소개된 사연입니다. 여기에 달린 댓글 중 하나입니다.
“지원 씨 양부모한테 아무것도 해주지 마세요. 그들은 지원 씨한테 부모 역할을 제대로 안 했어요. 차라리 고아원에 버렸으면 거기서 고등학교까지 공부시켜주고 적어도 집안일 다 시키지는 않았겠죠. 그리고 나중에 돈도 안 뜯어가고요. 어차피 고등학교까지만 살고 나와 혼자 알바하며 이 악물고 공부한 건데 양부모가 왜 지원 씨한테 돈을 요구하나요? 앞으로는 절대 아무것도 해 주지 마세요. 고마운 사람들 아닙니다. 지원 씨와 윤하 그리고 어머니,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이 댓글에 많은 동감을 표시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대하는 방식은 그 사람을 나에게 보내주신 하느님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에게 주이진 이들을 대하는 방식으로 내가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나에게 보내주신 사람을 좋지 않게 대해서 그 사람을 보내주신 하느님을 죄인으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에게 맡겨진 이들이 귀찮은 존재라면 나는 그 사람을 보내신 주님을 귀찮은 존재라 여기는 것입니다.
지원 씨의 양부모는 지원 씨를 처음엔 하늘이 보내주었다고 여겼지만, 나중에는 지원이를 키우며 그 하늘을 원망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이에게 생명의 빵이 될 수 없습니다. 아이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가 됩니다. 그러면 모기로 심판받게 됩니다.
교회에 맡겨진 이들은 하느님께서 그 교회에 머물 수 있도록 이미 교육하시고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마치 교회가 대신 키워주는 것처럼 여겨서는 교회가 그들에게 생명의 빵이 될 수 없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며 나는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더라도 그들을 하느님처럼 대해야 합니다. 신자들을 하느님처럼 대하지 않는 교회는 그래서 생명의 빵이 될 수 없고 그러면 나중에 하느님도 고마움보다는 질책을 하실 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 되기 위해 나에게 오는 이들을 그 보내주신 하느님처럼 보려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마다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하느님!”이라고 해 보십시오. 내가 생명의 빵이 되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웃을 대하는 방식이 그 사람을 나에게 보내주신 분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출처: 원글보기; ▶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