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1. 1893년 시카고 박람회에 처음 참가하여 출품을 전시하였던 조선 전시관 한옥전경. 기와집 지붕에는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고 전시관 서쪽편에는 진열대, 가마 등이 보인다. |
이 역사적인 1893년 시카고 박람회는 한민족 유사이래 다국가들이 참가하는 국제 행사에 최초로 조선 조정의 대표단이 참가한 행사였습니다. 조선정부가 최초로 파견한 대표인 정경원(鄭敬源, 1841-1898)을 찾아온 사람들은 뜻밖에 현지 시카고에서 나타난 박용규와 서병규라는 두 명의 시카고 코리안들이었습니다. 이와같은 사실은 시카고 최초의 한인 역사를 20년 이상 끌어올릴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나아가 이들은 뚜렷한 신분과 역사적 기록을 가진 최초의 현지인 코리안 동포의 행적을 가진 해외동포역사의 효시로 평가되어 마땅합니다. 이 사실은 시카고 코리안 동포역사가 세계 해외동포역사의 시작의 자리에 서 있다는 뜻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시카고 박람회 출품대원으로 파견되어온 정경원이 고종에게 올린 어전보고 서신(1893년 음력 3월 18일: 양력 5월 3일)에서 당시 시카고 박람회에서 만나 6개월간 현지 고용까지 된 이들 시카고 사람들인 박용규(朴鎔圭) 서병규(徐丙珪)에 대한 <高宗實錄>의 기록과 정경원의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는 당시의 가문 기록들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유학와서 주저앉은 뒤의 사료로서도 분명한 기록이 확실하게 나타나는 최초의 두 명의 해외동포로서 시카고 현지에서 나타난 이들 두 사람의 현지 행적은 재미한인동포 기록의 역사를 19세기말 1893년까지 끌어올리게 함으로써 이민 1백주년을 맞이한 하와이보다 시카고 한인동포 역사를 최소한 10년 더 오래된 110년 이상의 역사를 끌어올리게 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당시 시카고 박람회장 개회식에 참가했던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은 특별히 한국전시관에서 연주하는 조선 악공들의 연주를 듣고 목덜미를 끌어안고 감탄하기까지 했기에 시카고 코리안 동포 역사는 미국 대통령과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열명의 코리안 악공들 가운데 한 사람이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음반을 내기까지 했던 곳도 그 당시 시카고 박람회때였습니다. 시카고는 해외동포 문화역사의 시발지였던 것입니다. 1893년 9월 5일 코리안 전시관이 주최하여 오후 7시 콩그레스 길과 미시간 길에 있는 오디토리움 호텔에서 1백여명이 참가하는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현재의 루즈벨트대학 공연강당인 이 건물은 코리안 최초의 역사적인 해외 국제 연회장이었던 셈입니다.
이같은 사실의 발굴과 더불어 시카고 박람회 당시 한국전시관에 대하여 그동안 분명한 위치를 파악하지
▲사진2. 1893년 시카고 콜롬비아 박람회 당시 한국전시관 자리가 가까이 있었던 현재 시카고 63rd Street와 Lakeshore Drive 인근에 있는 The Statue of Republic 동상의 최근 모습. |
당시의 한국전시관 진열실은 6∼7간 정도의 맞배지붕 기와집이었습니다. 총전시장인 Manufactures and Liberal Arts 빌딩 안에는 총 47개국의 국기들 가운데 주최국인 미국 국기 다음으로 쇄국정책을 풀고 참가한 조선 국기인 태극기가 걸렸던 것은 당시의 시카고 박람회에 조선의 참가가 얼마나 환대를 받고 있었는지를 알게 합니다. 박람회 당시 설계도면은 물론 후버트 밴크로프트(Hubert Howe Bancroft)가 썼던 시카고 박람회 전시 안내 책자인 'The Book of the Fair'(1893)에 따르면 코리아 전시관은 주 전시관 (Manufacture and Liberal Arts building) 내부에 위치하고 있었고 넓이는 899 평방 피트였습니다. 주미조선공사관 서리공사 이채연의 지휘로 총공사비 $500달러로 이루어진 한국 전시관 공사는 1892년 2월(음력 1월) 시작했으나, 박람회 개회일인 1893년 5월 1일까지도 건물공사가 미완인 채 개문하였고 그 나머지는 행사 중에 공사를 완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우리 민족 최초의 해외 현지에 세워진 Corea Exhibit은 불행히도 박람회를 마친 이듬해인 1894년 7월 철도노조원들의 파업으로 박람회 현장인 화이트시티가 불타면서 함께 사라졌습니다. 박람회 당시 전시되었던 한국전시관 물품들의 상당수는 박람회가 끝난 직후 시카고 필드뮤지엄, 뉴욕 피바디 박물관,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에 기증됐습니다. 현재 시카고 필드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는 당시의 한국 전시관의 물품들을 전시할 공간의 마련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일은 세계 코리안 해외동포 역사의 시발지라고 할 수 있는 역사적인 Corea Exhibit 기념물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이미 일본인들은 앞서 일본전시관 기념물을 복원한 마당에 우리에게는 다소 늦은 감마저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전시관이 철도파업으로 화이트시티와 함께 폐허가 된 이래 시카고에 사는 일본계 미국인들은 시카고 박람회 당시 일본전시관 자리였던 산업과학박물관 남쪽에 일찍이 Japanese Tea Garden으로 재정비하고 1981년 다시 손을 보아 작은 정원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후 1992년 리챠드 M 데일리 시카고 시장이 시카고와 오오사카의 자매결연을 기념하여 오오사카 가든으로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시카고 코리안동포들의 입장에서는 이제까지 Corea Exhibit(한국전시관)의 그 오리지날 위치마저 분명히 알 수 없었다가 이제나마 그 역사적 본래의 위치를 찾아내 한국전시관 복원기념비를 건립할 사업회를 결성하게 된 것은 크나큰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외 현지에서 최초로 기와를 구워 올린 한국전시관은 우리민족 역사상 최초의 국제행사와 함께 최초로 태극기가 자랑스럽게 걸렸던 최초의 현지 기와집 건물이기도 했습니다. 63번가와 레이크쇼어 드라이브 인근에 있었던 한국전시관의 복원은 시카고 남부에서 지금도 그 어느 타민족들보다 특히 코리안들의 생업의 현장이기도 한데서 더욱 유서깊은 곳이기에 이러한 역사적 한국전시관 복원은 시카고시는 물론 시카고 한인동포들과 해외동포 모두의 숙원사업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시카고 코리안 동포들의 뜻있는 분들이 힘을 모아 '이민 1백주년의 해'를 넘기기 전에 한국전시관의 기념물로 Corea Exhibit이 있었던 유서깊은 자리에 기와를 올릴 팔각정 기념물을 만들고자 <1893 한국전시관 복원기념사업회>를 발족한 것입니다. 한국정부와 미국정부의 외교적 도움을 터로 향후 하나하나 진척되어 가게 될 본 기념사업은 주시카고한국총영사관의 2004년 3대 후원사업의 하나로 채택되어 추진되고 있는 역사적인 Corea Exhibit기념복원사업이기도 합니다. 본 기념사업을 위하여 시카고 한인회와 더불어 후원에 나서주신 시카고 동포 단체 및 동포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도 각별한 관심과 참여 및 응원을 기대해 마지않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03년 12월 11일
1893 한국전시관 복원기념사업회
고 문: 장영준 (일리노이 주정부 커미셔너) 박규영 (노스이스턴대학 교수)
최진욱 (듀폴대학 교수) 이태영 (Eden 은행그룹 부사장) 조광동 (한미 TV 부사장)
김광정 (전 웨스턴일리노이대학 교수) 김정일 (기독교방송 방송위원)
권호연 (노스팍대학 교수) 김창범 (미주 한인총연 이사장)
회 장: 김 성 규
실행위원: 이 진 (알바니팍 프로그램 디랙터) Julie Choi Shin (CEO, Dooco INC)
Jane Lee (한미시민연합시카고지회장) 김경이 (한인사회복지회 쇼셜워커)
Christie Jang (DPD staff, City of Chicago)
후 원: 한인상우협의회, 한인상공회의소, 시카고한인무역인협회,
주시카고한국총영사관, 시카고 한인회,
1893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
The Corea Exhibit Memorial Monument Association (CEM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