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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약 1,000만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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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점 | 몽골 270만 중국 580만명 러시아 100만명 |
언어 | 몽골어, 중국어, 러시아어 |
종교 | 샤머니즘, 티벳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
관련민족 |
몽골족(몽골어: Монгол үндэстэн, 중국어: 蒙古族, 러시아어: Монголы, 영어: Mongol people)은 몽골,
러시아, 중국(주로 내몽골 자치구)에 거주하는 민족이다.
약 800여만 명이 몽골어를 쓴다. 통계적으로 약 260만 명이 몽골에, 400만 명이
내몽골 자치구, 200만 명이 러시아나, 다른 지역에 거주한다. 중국 북부와 러시아에 거주하는
다우르족, 부랴트족, 도르호트인, 칼미크인 등의 몽골계 민족도 포함된다.
[숨기기] |
현재의 몽골족은 동호족을 기본으로 북방에 존재하던 여러 이민족 북적, 산융, 흉노족, 돌궐족의 혼혈 민족이다.
중앙아시아 북부을 장악한 흉노족은 크게 아리아계 유럽 인종과 몽골로이드 아시아 유목 민족이 있었다.
흉노 무덤에서는 아리안과 몽골로이드 유골이 함께 출토되었다.
흉노족은 지배 세력은 아리아 종족이었으며, 하부 피지배 민족으로 말갈, 갈족, 동호족이 있었다.
4~5세기 아틸라의 유럽 정복으로 상징되는 훈족의 서진, 그리고 중국에 남하하여 5호 16국 시대를 기점으로
흉노족은 공중 분해 된다. 이 시점에 동호족이 흉노족이 중심지였던 바이칼, 울란바타르로 이동하였다.
이후 동호족과 이 지역에 남아 있던 흉노족, 말갈, 갈족, 타타르와 여진족과 만주족,
중국에서 넘어온 한족, 러시아인들이 여러 시대에 걸쳐 몽골 민족에 흡수되었다.
몽골 문자(중국 내몽고에서 사용)와 키릴 문자(몽골에서 사용) 두 가지로 표기한다.
현대 몽골어는 러시아어 차용어가 소수 있다. 파스파, 전통, 쇼온보, 키릴 문자 등이 있다.
청나라의 강희제는 몽골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몽골을 내몽골과 외몽골로 분리시켰다.
이후 내몽골은 중국과 호흡을 같이하고 외몽골은 중국에서 신해 혁명이 일어난 1911년에 신정 군주제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1917년 이후 한때 러시아 내전의 여파에 휘말렸으나 1921년 담딘 수흐바타르가 전란을 수습하고
1924년 국호를 몽골 인민 공화국이라 함에 따라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 이후 소련의 영향력이 막강해졌으며 중국과 소련의 분쟁이 발생할 때 옛 소련을 지원하였다.
그에 힘입어 코메콘 가맹 국가도 몽골에 경제적 지원을 해 주었다.
1992년에 복수정당제를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변화, 공산주의 체제를 버리고 민주주의 경제를 도입했다.
몽골과 중화인민공화국의 몽골족 자치 구역
중국의 자치구인 내몽골 자치구는 몽골족 자치구이지만, 이 지역의 다수 민족은 한족이다.
러시아에도 몽골족 자치 지역이 있는데 칼미크 공화국과 우스티오르딘스키부랴트 자치구,
아긴스크부랴트 자치구, 부랴트 공화국이 바로 그것이다.
백식은 유제품을 말하고 홍식은 육류(주로 소, 양, 낙타고기 등)를 말한다.
백식은 몽골어로 순결하고 고상한 음식이라는 뜻으로 귀한 손님이 오면 통상적으로 반드시 접대하며
가족이나 친지 중의 한 사람이 먼 길을 떠날 때도 백식을 먹게 하여 안전한 여행을 기원한다.
홍식은 몽골어로 붉은 음식이라는 뜻으로 시집을 갈 때는 반드시 삶은 양의 가슴고기를 먹음으로
가족들과의 이별을 나타낸다. 몽골인의 대부분은 라마 불교를 믿는다.
몽골(蒙兀爾)
오정윤(꿈나무미래학교 교장, 한국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몽골의 원류는 여럿에서 비롯된다. 가장 이른 몽고인의 원류는 동호(東胡)이다.
동호족은 흉노의 동쪽에 거주한 부락연맹체이다.
동호족의 후예로는 오환, 선비, 유연, 거란, 실위, 달단이 알려져 있고 몽골족도 깊은 관련이 있다.
북한의 역사학자인 이지린은 동호의 주체세력으로 고구려의 원류가 되는 고리족으로 본다.
[사기]에 따르면 선비는 동호의 일파로 처음에 서랍목륜하의 유역에 거주하였다. 후한 말기에 선비족의 수령인 단석괴(檀石槐)는 동부, 서부를 통일하고 막남, 막북에 강력한 유목민족 국가를 세웠다. 서기 3세기 중엽에 선비족은 여러 부로 분열된다. 주요한 부(部)로는 모용씨, 단씨, 탁발씨, 우문씨가 있으며 이중에서 탁발씨가 세운 북위정권이 동북아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북위 시기에 동호의 옛땅에는 거란족이 거주하였다. 이들은 주요한 거주지는 서랍목륜하와 노합하의 유역이며 8부로 구성되었다. 당나라 시기에 거란족의 거주지역에는 송막도독부(松漠都督部)가 설치되었고, 도독은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이씨 성을 받았다.
이후 강성해진 거란족은 당나라와 수차례 전쟁을 치루었고 이웃으로 동진해온 돌궐에게 부속되었다. 돌궐의 세력이 약해지고 주력이 서진을 하자 거란족은 다시 당나라에 예속되었다. 8세기 중엽에 이르러 거란은 회골왕조(回鶻王朝)의 통치를 받았다. 907년에 이르러 야율아보기는 거란국을 세우고, 916년에는 황제가 되었으며 926년에는 발해를 멸망시키고 동북아의 패권을 차지하였다.
거란족의 언어는 선비어와 계통이 같다. 동호, 오환, 거란족은 같은 언어를 사용한 사람들이다. 또한 선비족, 거란족의 머리모양은 머리의 주변은 모두 깎고 가운데 부분만 상투를 틀거나(髻) 땋아 드리우는(辮) 형태의 곤발(髡髮)이다. 거란족이 남긴 무덤벽화의 구체적인 신체조건과 얼굴모양등은 몽골인과 비슷하다.
실위족은 호륜패이초원, 대흥안령산맥, 동액이고납하, 서액이고납하와 흑룡강 양쪽에 거주하였으며 거란의 별종(別種)으로 알려져 있다. 6세기에 이르러 실위족은 5부로 나누어졌는데, 당나라 시기에 실위족은 서실위, 대실위, 몽몰실위등 20여부로 늘어났다.
이중에서 몽올(蒙兀)은 당음(唐音)으로 망고트로 오늘날의 몽골(Mongghol)의 원음이다. 송나라, 요나라, 금나라 시기에 한자의 표기로는 맹고(萌古), 몽골(朦骨), 몽고리(蒙古里), 모갈(毛褐), 맹골자(盲骨子)등이 있다. 몽고(蒙古)라는 표기는 [양왕강상록(煬王江上錄)]의 기록을 인용한 [삼조북맹회편]에 처음 나타난다. 그 뜻은 [사집(史集)]의 훈역을 보면 ‘유약하고 순박’하다는 뜻이다.
실위족은 달달(達怛)이라고도 한다. 732년에 세워진 퀠테킨비(闕特勤碑)에는 둘궐어로 30성달달(三十姓達怛)이란 기록이 나타나며 그들의 거주지는 골리간(骨利干)과 거란(契丹)의 사이이다. 그 지리적 위치는 여러 사서의 기록에 나타나는 실위족의 거주공간과 일치한다.
당나라 시기의 여러 사서에 등장하는 달달(達怛)은 [구오대사]와 [요사]에는 달단(達靼), 달단(達旦), 탑단(塔旦), 달단(韃靼)등의 이름으로 나타난다. 퀼테킨비와 중국의 여러 사서에 등장하는 달단은 몽올실위 내의 실위인을 가리키며, 이들이 본래의 몽골인이다. 그들의 언어는 돌궐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본래의 동호언어와 방언을 유지하였으며 이 언어가 원래의 몽골어이다.
이제까지 여러 학자들은 몽골족의 원류를 동호설, 흉노설, 돌궐설, 달단설, 토번설, 한몽동원설, 혼합설등 여러 갈래로 주장하였지만, 이제까지의 논의와 근거를 종합하면, 몽골족은 동호족에서 기원하였으며, 몽골족의 핵심을 이루는 부락은 실위-달단인으로 돌궐화를 거치지 않은 원래의 몽골인이다.
몽골족은 오랜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었다.
실위-달달인은 호륜패이초원에서 몽골고원으로 서천을 하였으며 몽골족의 형성과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당나라 시기에 외몽골지역은 주로 돌궐어족의 세계였다. 돌궐과 회골은 이 지역의 주인이었다. 745년에 회골(回鶻)은 동돌궐한국(東突厥汗國)을 멸망시켰고, 이 시기를 틈타 일부의 실위-달달인은 몽골고원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735년에 돌궐어로 제작된 피카칸비(毗伽可汗碑)에 나타나는 9성달달(九姓達怛)은 비교적 빠른 시기에 외몽골고원으로 이동한 실위-달달인일 가능성이 높다. 840년에 회골한국(回鶻汗國)이 키르기스에 망하고, 키르기스는 곧이어 거란에게 밀려 예니세르강으로 쫒겨갔다. 따라서 이때에 강력한 주인이 사라진 이곳에 실위-달달인들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이때 거란인들은 이들을 조복(阻卜) 또는 술불고(術不姑)라 하였으며, 여진인들은 조박(阻박)이라고 하였다.
옛날 전설이 증명하듯 몽골인들은 무리가 늘어나고 발전하여 점차로 두 개의 큰 부락집단을 이루었다. 곧 니로온몽골(尼魯溫蒙古)과 질열열근몽골(迭列列斤蒙古)이다. 니로온몽골은 징기스칸의 14대 조상인 아란활아(阿闌豁阿)에서 비롯된 부족이다.
니로온몽골에 속하는 부족은 합답근(合答斤), 산지올(散只兀), 태적오(泰赤烏), 적나사(赤那思), 올로(兀魯), 망올(忙兀), 팔린(八鄰), 걸안(乞顔)등 여러부족이고, 질열열근몽골은 날고사(捏古思), 홍길랄(弘吉剌), 올량합(兀良哈), 역걸열사(亦乞列思), 연지근(燕只斤), 허올신(許兀愼)등 여러부족이 속해있다.
이들 니로온몽골과 질열열근몽골은 서로 통혼을 하였고, 질열열근몽골은 철륵인(鐵勒人), 거란인, 여진인, 한인등과 접촉하면서 이들을 집단성원으로 흡수하였다.
니로온몽골과 질열열근몽골은 합칭으로 합목흑몽골(合木黑蒙古)- 곧 모든 몽골인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몽골족은 합목흑몽골 이외에도 수많은 원류가 있다. 주요한 족속으로는 찰랄적아(札剌赤兒), 탑탑아(塔塔兒), 멸아걸(蔑兒乞), 외랄(外剌), 팔아홀(八兒忽)등이 있다. 또한 요나라와 금나라 시기에 몽골초원에는 돌궐어를 사용하는귀족이 통치하는 강력한 세력을 가진 3대 부락이 있었다. 곧 극렬부(克烈部), 내만부(乃蠻部), 왕고부(汪古部)이다.
9세기에서 12세기에 몽골고원으로 이동한 실위-달달인들은 경제, 문화 방면에서 돌궐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실위-달달인들은 원래 유목수렵경제를 하는 부족으로 양(羊)이 없고 말(馬)은 적었다. 몽골고원으로 이동한 뒤에 그들은 돌궐족으로부터 유목경제를 배웠다.
처음에 몽골이라고 부른 세력은 몽골어족의 여러 부족의 일부였다. 징기스칸은 소년시절부터 고난의 과정을 겪었고 여러차례 전쟁에 나섰다.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1206년에 몽골한국9蒙古汗國)을 세웠다. 건국후 징기스칸은 천호분봉제(千戶分封制)를 실시하고 언어가 서로 다른 여러 부족을 천호(千戶)에 따라 새로운 조직을 편성하였다. 원래의 씨족 부락은 심각한 타격과 혼란을 겪었고 점차로 몽골의 백성으로 변화하였다. 이로부터 새로운 민족공동체인 몽골족이 형성되었다.
금나라와 서하가 멸망한 후 몽골고원의 막남과 막북은 몽골족의 거주지가 되었으며, 막북지역은 원나라가 통치하는 행정구로 영북행성(嶺北行省)이라 불렀다. 영북행성은 동쪽으로 대흥안령산맥에 이르고, 남쪽은 대과벽에 닿았으며, 서쪽은 알타이산맥, 북쪽은 예니세르강에 미쳤다. 막남지역은 왕고부, 홍길랄, 역걸열사, 찰랄적아, 망올, 올로등의 부족이 거주하였다. 오로도스와 녕하, 감숙 지역은 몽골의 여러 왕들에게 분봉하였다.
몽골의 귀족들은 대외확장과 약탈전쟁을 통하여 몽골민족의 면모를 크게 변화시켰다. 징기스칸이 호라이즘(花剌子模)을 원정한후, 큰 아들 술적(術赤)과 그의 계승자인 발도(拔都)는 복이가하(伏爾加河) 유역에 킵챠크칸국(欽察汗國)을 세웠고, 둘째인 찰합태(察合台)는 오늘날의 신강 길목사이 경내인 별실팔리(別失八里) 서쪽에서부터 아모하(阿姆河) 유역에 챠카타이칸국(察合台汗國)을 세웠다. YPT째인 와활태(窩闊台)는 오늘날 신강 서북부 지역에 오고타이칸국(窩闊台汗國)을 세웠으며, 징기스칸의 손자인 욱열올(旭烈兀)은 페르시아 지역에 일칸국(伊利汗國)을 세웠다.
몽골족은 이와같이 여러 차례 정복전쟁을 통해 여러 지역으로 흘러갔고, 4대칸국의 민족구성은 복잡하게 변하였다. 많은 몽골인들은 돌궐화, 이슬람화를 거쳤고 그 지역의 거주민과 융합하였다. 현재 중앙아시아의 돌궐어족의 여러 종족가운데는 몽골의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아프칸의 막고륵족(莫古勒族)은 욱열올왕조(旭烈兀王朝)의 귀족들의 후예이다. 운남에 사는 몽골족은 원나라 시기에 이곳을 지배하고 살았던 몽골족의 후예들이다.
정복전쟁은 몽골인들의 외국 이주와 함께 많은 종족들이 몽골지역으로 유입되었다. 유입된 인구는 몽골귀족들이 포로로 잡아온 장인, 병사들이었고, 주로 중원에서 잡아온 한인, 거란인, 여진인들이었고, 그중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잡아온 캄챠크인(欽察人), 아속인(阿速人), 알라사인(斡羅思人), 페르시아인(波斯人), 아랍인(阿拉伯人)들이었다. 이들은 오랜 기간동안 몽골화의 과정을 거쳐 몽골족에 융합되었다.
몽골족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서 유목목축업은 비교적 크게 발전하였고 동시에 농업과 수공업, 상업과 도시가 출현하였다. 경제생활에서 그들은 주로 천막에서 사는 유목민족이었고, 문화생활중에서 몽골문자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명나라 시기에 몽골과 명나라는 오랜기간 대치하였다. 이 시기에 몽골은 달단(韃靼)과 와랄(瓦剌)로 양분되었다. 달단부는 대한(大汗)이 직접 통치하는 여러 부와 대한을 보호하는 속부(屬部)로 구성되었다. 대체적으로 막북과 막남지역이 이들의 통치지역이었다. 와랄부는 원나라 시기의 역랄부(亦剌部)의 후예들이다. 주로 막서(漠西)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서몽골(西蒙古)라고 부른다.
명나라 시기에 달단부와 와랄부는 주도권을 놓고 장기간 전쟁을 치루었고 봉건 할거상태를 이루었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이르러 징기스칸의 직계 후예인 답언한(答言罕;달연한達延汗이라고도 한다)과 그의 손자인 엄답한(俺答汗)은 몽골을 통일하고, 경제, 문화 방면에서 빠른 발전을 이루었다. 원나라 마지막 임금인 원순제가 북쪽으로 패하여 이동할 때 많은 한인, 색목인들은 몽골족에 융합되었고, 원나라가 망한뒤에 많은 몽골족이 거주하였던 북경, 남경, 하남, 하북, 산서, 사천, 운남지역의 몽골인들은 한족과 여러 민족에게 동화되었다.
청나라 초기에 몽골은 3대부로 나뉘었다. 그 하나는 막남몽골(漠南蒙古)로 그 안에는 찰합이(察哈爾), 토묵특(土黙特), 악이다사(鄂爾多斯), 파림(巴林), 찰로특(扎魯特), 나만(奈曼), 옹우특(翁牛特), 객라심(喀喇沁) 부족이 포함된다. 다른 하나는 막북의 객이객몽골(喀爾喀蒙古)로 토사도한부(土謝圖汗部), 찰살극도한부(扎薩克圖汗部), 거신한부(巨臣汗部)가 주요 구성원이다. 마지막으로 막서의 액로특몽골(額魯特蒙古)로 그곳에는 준갈이부(準噶爾部), 두이백특부(杜爾伯特部), 화석특부(和碩特部), 토이호특부(土爾扈特部)의 4부가 포함된다.
막남, 막북, 막서의 몽골족은 청나라에 차례대로 정복된다. 청나라 정부는 몽골지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중앙에 이번원(理藩院)을 설치하고 지방에는 장군, 도통, 대신의 직함을 두었다. 또한 몽골지역은 맹기제도(盟旗制度)를 시행하였다. 기(旗)란 몽골지역의 기본적인 군사, 행정단위로서 몽골의 봉건영주가 영지를 세습하는 제도이다. 몽골의 봉건영주는 여전히 몽골사회의 통치계급으로 몽골내의 여러 종족들은 하나의 몽골로 융합되어 갔고 오늘날의 몽골족으로 한차원 높은 민족단위를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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