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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이끌어 내었다
창 15: 1-17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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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볼 수 없는 한 사람이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앞에는 ‘나는 어려서부터 보지 못합니다.’라는 팻말이 놓여 있었습니다. 한 신사가 그 앞을 지나면서 도움을 주려 했지만, 옷을 갈아입고 나오느라 돈이 없었습니다. ‘내가 지금 돈이 없으니 다른 것을 해드리겠습니다.’ 하고는 팻말을 돌려놓고 갔습니다.
신사가 다녀간 후 매상이 네 배나 올랐습니다.
다시 신사를 만난 그가 물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였기에 제 수입이 네 배나 올랐을까요?’
신사는 팻말에 쓰인 글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봄이 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보지 못합니다.’
봄이 되었지만 그 봄을 보고 느끼지 못하는 그의 처지가 사람들의 연민을 자아낸 모양입니다.
봄이 왔는데도 정작 봄이란 것을 느끼지 못하고 여전히 겨울을 산다면 그건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혹시 우리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오늘 우리가 아브라함을 통해서 함께 나누려는 주제입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난 지 얼마나 지난 후인지 정확한 시간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10년은 아직 되지 않은 시간이라 하겠습니다. 그가 자기 아내의 시중을 들던 이집트의 여종인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낳으려 시도했던 것이 대략 그의 나이 85세가 되던 해였으니까요.
그동안의 아브라함은 그래도 괜찮아 보였습니다. 상남자라고 할까요?
대범한 아브라함의 모습을 우린 읽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이지요.
롯을 분가시켜야하겠다는 판단이 섰을 때. 둘이 선택할 수 있는 땅이라는 게 너무 차이가 심하게 나서 한 편은 살기에 아주 좋은 기름진 땅이지만, 다른 쪽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이럴 경우엔 누가 먼저 선택하는가? 선택의 우선권을 잡는데 중요할 텐데요.
아브라함은 큰 아버지로서 먼저 좋은 땅을 차지할 수도 있었지만, 웬일인지 조카에게 양보를 하였고. 롯은 염치도 없이 기름진 땅을 자기가 차지합니다.
우린 여기서 아브라함이 그렇게 쩨쩨하고 자기 욕심만 차리는 사람은 아니로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됩니다.
얼마 후 아브라함은 조카가 소돔 지역의 세력 다툼의 와중에서 재산을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사병들을 이끌고 기습적으로 적들을 공격합니다.
아브라함은 큰 승리를 거두었고, 조카뿐 아니라 잡혀갔던 사람들과 그들의 재산을 다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도 용기 있는 행동이지만, 그는 승자가 당연히 차지할 수 있는 전리품을 챙기는 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일종의 자존심이라고 할까요?
적어도 남의 것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소리를 아브라함은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들이 그가 고향을 떠난 후 오늘에 이르는 동안에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일입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아브라함은 관대하고, 용기 있고 그리고 자기의 자존심이나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는 걸 우린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찾아 오셨을 때 오늘 우리가 대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조금은 다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선 자존심 세우고 빈틈을 보이기를 아주 싫어하는 게 아브라함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오늘 여호와 하나님 앞에선 그런 아브라함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오래 동안 기다리고 바라던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인지는 몰라도 어느덧 아브라함은 처음에 보여 주었던 대범함은 없어지고 초조해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v.1)
환상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살면서 이런 시간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것이 기도하는 중이든... 예배하는 중이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시는 일말입니다.
‘아브람아...’ 이렇게 나의 이름을 불러주실 때 우린 얼마나 흥분하고 감격해할까요?
게다가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렇게 말씀해주신다면 정말 그 땐 우리에겐 어떤 두려움도 다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나는 너의 방패다.’ 하나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처럼 마음 든든한 일도 없겠지요.
하나님이 나의 방패가 되셔서 나를 보호하신다면
사랑하는 여러분.우린 정말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 하나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보상이란 상급이라는 말로도 읽을 수가 있겠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앞으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하여 많은 좋은 것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정말 아무 것도 염려하거나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시고, 나의 인생의 모든 미래를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시니까요.
게다가 하나님은 이렇게 내가 어느 곳에 있는지 나를 찾아 오셔서 나를 불러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하시는 분이 다름 아닌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오늘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직면할 미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방패이시고 나의 미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 주님, 주님이야말로 내가 받을 유산의 몫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필요한 모든 복을 내려주십니다. 나의 미래는 주님이 책임지십니다.’(시편16:5)
예전에 어떤 신앙인은 이렇게 자신의 오늘과 미래를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찬양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정도 했으면. 이젠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그 마음이 시인이 고백한 것처럼 확신에 가득차야 할 텐데요.
웬일인지 아브라함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예전의 아브라함이 아니었습니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자식이 아직 없습니다. 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식이라고는 다마스쿠스 녀석 엘리에셀뿐입니다.’(v.2)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나님께 내뱉습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께 무슨 말을 하고 있지? 내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게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인가?’
지금 그에겐 이런 경우를 따지는 일조차도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아오면 꼭 이렇게 말할 거야. 마음 먹은 사람처럼 자기 심중에 두었던 말을 끄집어냅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자기에겐 아직 자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에겐 아직 자식이 없습니다.’
이게 바로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께 대해서 섭섭한 마음을 가지게 된 이유입니다.
생각해보면 아브라함은 바로 이것을 위해서 모든 관계나 안정을 포기하고 이렇게 낯선 땅에서 고생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가 조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존심을 세우고 사사로운 욕심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난 적어도 너희들과는 다른 사람이야. 나에겐 소중한 하나님과의 약속이 있어. 오로지 하나님만이 채워 주실 수 있는... 너희들이 꿈도 꾸지 못하는 희망이 있어...’
지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따지듯 이야기하는 자식은 그야말로 보통 자식이 아닙니다.
그의 삶을 아주 특별하게 하고, 가치 있게 하고 존귀하게 만들어 줄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존재하는 약속의 상징입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아브라함은 참 예리하고 깨어 있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설혹 그가 세상에서 아무리 부자가 되었다고 하여도,전쟁에 나가서 적군을 물리치고 남들에게 인정받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그가 세상에서 추구하는 전부는 될 수 없습니다.
그에겐 오로지 하나남만이 주실 수 있는.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것이 있었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인생을 거기에 걸고 길을 떠난 사람인 거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게 아브라함을 힘들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약속하셨는데요.
그게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밥을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즐거운 일이 있어도 결코 즐거울 수 없습니다.
봄이 왔는데도 여전히 그는 춥고 시린 겨울을 보내고 있는 셈인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얻기까지는 아직도 많이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 오랜 기간을 아브라함은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살아야만 하는 걸까요?
아브라함을 따스하고 빛나게 해줄 봄은 도대체 어디쯤 와 있는 걸까요?
‘그 아이는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너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v.4)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대응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불쾌하게 느끼실 수도 있었는데요.
하나님은 정작 그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아직 얻지 못해서 초조해하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하게 아브라함을 설득시키기로 마음 먹으셨습니다.
그와 맺은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다른 어떤 인간적인 방법이나 수단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것. 하나님은 이것을 아브라함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말로만 아브라함을 설득하려 하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를 장막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시더니 하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v.5)
이 대목에서 눈을 감고 잠시 그 광경을 상상해 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운 것일까요?
의기소침한 아브라함을 지켜보면서 말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에게 다시금 소망을 불러 일으켜주고 다시금 믿음을 심어주고 잃어버렸던 기쁨과 희망을 다시 찾게 해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마음속에 새기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사실은 우리들 자신보다 지켜보시는 하나님께서 더 안타까워하십니다.
새해 첫 주일 설교를 하면서도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아브라함이었는데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러 사흘 길을 걸어가는 아브라함 말입니다.
‘여호와 이레’란 말이 거기서 나오게 되었는데요.
거기엔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뜻도 있지만, 여호와는 보신다는 뜻도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들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온전한 희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나는 주다. 너에게 이 땅을 주어서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너를 바빌로니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내었다.’(v.7)
하나님은 이번에는 아브라함에게 땅에 대한 약속도 일깨워 주셨습니다.
이번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주 나의 하나님,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v.7) 6절의 말씀과는 좀 다른 아브라함의 태도입니다.
6절에선 아브라함이 주님을 믿었다고 하였는데요... 7절에선 다시 흔들리는 아브라함을 우린 볼 수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제물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와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 한 마리씩을 가지고 오라.’(v.9)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의 무슨 뜻인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짐승들을 잡아서 그들의 몸통을 쪼개어서 희생제물로 드리는 준비를 합니다. 비둘기들은 몸통을 쪼개지 않은 채로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제단 앞에 앉아서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참으로 인상 깊은 광경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지시하신 일은 물론 희생제사라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는 해도.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약속을 맺을 때에 행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특히, 아브라함은 제물로 드려질 짐승들의 몸통을 둘로 쪼개었는데요.
여기엔 하나님의 비장함이라할까요?
어떻게 해서라도 아브라함을 믿음의 세계로 초대하려 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만일 내가 너하고 맺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나는 이 제물처럼 될 것입니다.”
마치 제물의 몸통이 반으로 쪼개어진 것처럼...
만일 내가 너하고 맺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나도 제물들처럼 몸통이 반으로 쪼개어질 것이라는 비장한 각오와 다짐이 여기엔 담겨 있습니다.
‘송아지를 두 조각으로 갈라 놓고, 그 사이로 지나가 내 앞에서 언약을 맺어 놓고도, 그 언약의 조문을 지키지 않고 나의 언약을 위반한 그 사람들을, 내가 이제 송아지와 같이 만들어 놓겠다.’(렘34:1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 그에게 하셨던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인지... 아브라함이 자신의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길을 떠난 것처럼... 그 약속은 하나님께도 참 중요하다는 것... 그 약속은 지키면 좋고 지키지 않아도 할 수 없는 장난 같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은 여기에서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지키지 않으신다면 하나님 자신이 이렇게 제물처럼 쪼개어진다는 각오로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는 대목입니다.
‘해가 질 무렵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가운데, 깊은 어둠과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v.12)
다시 어둠이 찾아 왔지만 조용한 침묵뿐입니다.
아브라함은 때론 잠에 들기도 하고 때론 깨어나기도 하면서 점점 더 깊은 두려움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희생제물 앞에서 기다려야만 하는 것인지... 두려움 속에서도 아브라함은 제단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해가 완전히 기울고 어둠이 짙게 깔리게 되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연기 나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로 하나님은 임하셔서 그가 쪼개놓았던 희생 제물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마음에 깊이 새기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토록 높고 존귀하신 분이 오직 한 사람을 위해서... 지금 실의에 빠져 있고... 신경이 곤두서 있는 한 사람이 다시금 믿음을 찾게 되고...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잘 걸어 갈 수 있도록... 어둠이 짙게 내린 시간에... 그가 준비하여 놓은 제물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 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널 더욱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다. 내가 너와 맺은 약속은 내게도 참 소중한 약속이고... 나는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룰 것이다.”
깊은 어둠 속에서 두려움과 공포로 위축되었던 아브라함의 마음이 따스해지고, 자기의 길에 대해서 확신과 용기가 생기는 순간입니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아주 오래 전에 한 가수가 불렀던 노랫말인데요...
오늘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마음을 우린 여기서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약속을 지키시지 않는 걸 보면... 하나님께 난 아무 것도 아니야... 하나님은 나와 맺은 약속을 까맣게 잊고 계신 게 분명해...’
아브라함이 이렇게 마음이 닫혀 있고 실망했을 때 하나님은 “ 그게 아니라고 여전히 난 널 사랑하고 있고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며 너와 맺은 약속은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는 걸... 하나님은 이렇게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아마 아브라함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바라볼 때마다 그날 밤 손수 하늘을 가리키시면서 수많은 별들을 보며 말씀하셨던 하나님과의 일을 잊을 수가 없었겠지요.
그 후에도 아브라함은 참으로 여러 번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희생 제사를 바쳤을 텐데요.
그 날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을 때에 친히 그 낮은 곳까지 내려오셔서 제물 사이로 지나가시던 여호와 하나님을 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모든 말씀들은 하나같이 생명력을 지니고 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를 테면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v.1)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처음엔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신뢰가 가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거칠게 반응을 했었는데요.
적어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그것은 어떤 정치가가 표에 눈이 어두워서 하지도 못할 공약을 남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내가 하려고 보낸 일을 성취하고 나서야, 나에게로 돌아 올 것이다.’(이사야 55:11)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모든 말씀... 모든 약속엔 하나님의 깊은 생각과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아브라함이라는 한 개인이나 이스라엘이라는 한 특별한 민족에게 국한 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을 믿음의 세계로 불러 주셨다면, 그리고 이렇게 아브라함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약속하시고, 말씀하여 주신다면. 그것은 결코 그냥 헛되게 사라지는 말은 결코 아니란 걸 마음에 새기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브람이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v.1)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도 여기엔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지켜 줄 테니... 그리고 네가 가는 길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좋은 것들을 준비해 놓고 너를 기다릴 테니... 너는 결코 네가 직면한 오늘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네가 걸어갈 길에 대해서... 조금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나님은 오늘의 아브라함처럼 위축되기도 하고 실망스런 마음으로 힘없이 길을 가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힘을 내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이끌어 내었다.’ 7절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는 주다. 너에게 이 땅을 주어서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너를 바빌로니아의 우르에게 이끌어 내었다.’(v.7)
지금 아브라함이 서 있는 땅은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거기엔 하나님과의 약속이 있고 내일에 대한 꿈과 비전이 있는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서 그리고 자신의 미래와 오고 올 후손들을 향해서 열려 있는 땅이란 오로지 세상에 여기밖엔 없습니다.
단지 넓고 기름진 땅만 생각했다면 아마 아브라함은 이렇게 모함을 걸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 이 곳 하나님이 전지하신 이 곳에 설 때 아브라함은 아주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내가 너를 이끌어 내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 말씀은 그래서 참 소중하고 아브라함에겐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그냥 더 좋은 곳을 찾아서. 일단 집을 사 놓으면 부동산의 가치가 엄청나게 올라갈 것 같아서, 그가 자기 맘대로 떠돌아다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목적도 없이 아주 평범하게 살아가던 아브라함을 전혀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집트에서 아무런 의미나 뜻도 없이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끄집어내신 것과 비슷한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소중한 목적과 뜻을 가지고 시작하신 여정... 그게 바로 아브라함의 가는 길이고.오늘 우리가 걷는 길이라는 것을 마음에 깊이 새긴다면 우린 지금보다는 더 깊은 기쁨과 감사로 우리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내가 너를 이끌어 내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여기엔 “너의 앞길을 내가 책임지고 인도하여 주겠다...” 이런 하나님의 약속도 담겨 있다는 것을 우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길을 떠나긴 했지만 아직은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광야의 길을 걷는 우리들은 지루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쉽지 않은 오늘을 보내고 있습니다. 과연 잘 가고 있는 걸까? 우리의 오늘과 내일에 대해서 우린 이런 불안함이나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이끌어 내었다.’
“너를 이곳까지 인도한 것도 나 주 여호와이고 앞으로도 네가 갈 길을 끝까지 내가 인도할 거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히브리서12:1)
일찍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살던 우리의 신앙의 선배도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여정은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시작하셨고 그분이 우리를 목적지까지 인도하여 주신다고 그러니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에 주님을 바라보며 산다면 그게 우리의 삶의 비결이라고 불안함을 떨치고 우리의 여정을 즐기며 희망 속에서 걸어가게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내가 너를 이끌어 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이 말씀 속에 오늘을 즐기며 내일을 기대하게 되는 삶의 비결이 담겨 있습니다. 우린 이미 봄날을 즐기며 살고 있는 셈입니다.
우린 지금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우린 지금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향하여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희망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