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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판서(雜菜判書)
잡채(맛난 반찬)을 만들어 바쳐 관직에 오른 이충을 조롱하며 비웃은 말이다.
雜 : 섞일 잡(隹/10)
菜 : 나물 채(艹/8)
判 : 판단할 판(刂/5)
書 : 글 서(曰/6)
광해군이 외교 수완은 어땠는지 몰라도 내치(內治)는 어지러웠다. 폐모살제(廢母殺弟)는 백성도 죽음을 면치 못할 반인륜적 행위였다. 권력에 눈먼 측근들이 곁에서 이를 부추겼다.
이충(李冲)은 겨울철이면 집안에 온실을 지어 채소를 심었다. 맛난 반찬을 만들어 아침 저녁으로 임금께 올렸다. 이 일로 총애를 입어 호조판서에 올랐다. 그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잡채판서 납신다'며 침을 뱉었다.
한효순(韓孝純)은 산삼을 구해 바쳐 재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산삼각로(山蔘閣老)'라고 불렀다. 각로(閣老)는 정승을 일컫는 말이다.
어떤 이가 시를 지었다. "사람들은 산삼각로 앞다퉈 사모하고, 잡채판서 권세는 당할 수가 없다네."
山蔘閣老人爭慕,
雜菜判書勢莫當.
국조전모(國朝典謨)에 나온다.
이이첨(李爾瞻)은 왕의 총애를 믿고 국정을 마음껏 농단했다. 반대파는 무옥(誣獄)으로 얽어서라도 반드시 해코지했다. 시관(試官)을 제 무리로 채워, 미리 표시를 해둔 답안지만 골라서 뽑았다.
이이첨의 둘째아들 이대엽(李大燁)은 대필 답안지로 잇달아 장원에 뽑혔다. 그는 '정(政)'자와 '공(攻)'자를 분간 못할 만큼 무식한 자였다.
왕비 유씨의 오라비 유희분(柳希奮)은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 일가 다섯이 동시에 급제하기도 했다. 시관의 부채에 '오류(五柳)'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
포의(布衣) 임숙영(任叔英)이 전시(殿試)의 대책(對策)에서 권신의 전횡과 외척의 발호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광해군이 성을 내며 삭과(削科)를 명했다.
시인 권필(權韠)이 격분해서 시를 지었다.
宮柳靑靑鶯亂飛,
滿城官盖媚春暉.
朝家共賀昇平樂,
誰遣危言出布衣.
대궐 버들 푸르고 꾀꼬리는 어지러이 나는데, 성 가득 벼슬아치 봄볕에 아양 떠네. 조정에선 입 모아 태평세월 하례하나, 뉘 시켜 포의 입에서 바른말 하게 했나.
궁류(宮柳)는 외척 유씨를, 꾀꼬리는 난무하는 황금 즉 뇌물을 뜻한다.
권필은 임금 앞에 끌려가 죽도록 맞았다. 겨우 목숨을 건져 귀양가다가 장독(杖毒)이 솟구쳐 동대문 밖에서 급사했다. 훗날 인조반정의 한 빌미가 되었다.
그들은 나라를 위하고 임금을 받든다는 명분을 앞세워 못하는 짓이 없었다. 잡채판서, 산삼각로란 더러운 이름을 일신의 부귀와 맞바꿨다. 지금에 간신(奸臣)의 오명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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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서를 만든 음식, 잡채
우리나라 음식 중에서 잔칫날 빠지면 허전한 음식이 잡채다. 요즘은 비빔밥, 불고기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외국에도 널리 알려졌으니 글로벌 푸드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잡채를 좋아하지만 잡채가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약 400년 전, 광해군 역시 잡채 맛에 빠져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광해군 때 한양에 이런 노래가 유행했다. "처음에는 사삼각로 권세가 드높더니, 지금은 잡채상서 세력을 당할 자가 없다"
배경을 설명하면 사삼각로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큰 전공을 세웠지만 광해군 집권 후 더덕(沙蔘)요리를 바쳐 임금의 사랑을 구했을 정도로 권력에 집착한 좌의정 한효순을 비꼬는 노래다.
잡채상서는 잡채를 만들어 지금의 장관벼슬인 호조판서에까지 오른 이충을 조롱하며 비웃은 것이다. 이충의 집에서 만들었다는 잡채 맛이 기가 막혔던 모양이다.
광해군일기에는 "이충이 진기한 음식을 만들어 사사로이 궁중에 바치곤 했는데 아침, 저녁으로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올리니, 임금이 반드시 이충이 올리는 반찬이 도착한 후에야 수라를 들었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또 "채소에다 다른 맛을 가미했으니 그 맛이 희한하였다"는 내용도 보이는데 이충이 총애를 얻게 된 비결이 바로 잡채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은 이렇게 아첨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역사를 보면 음식 때문에 출세한 인물이 한둘이 아니다. 중국 한나라 때는 양고기를 잘 구워 제후가 된 인물이 있고 당나라 때는 달콤한 참외를 바쳐 벼슬을 한 사람도 있다.
세상 이치가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요리 역시 나쁘게 쓰이면 뇌물이 되고, 패가망신의 원인이 되지만 잘만 활용하면 더할 나위없는 외교의 수단이며, 비즈니스의 도구가 될 수 있으니 광해군 때의 잡채가 살아있는 증거다.
잡채와 관련해 또 다른 의외의 사실이 있다. 광해군이 반했다는 옛날 잡채는 지금의 잡채와는 맛이나 재료가 모두 달랐다.
이때의 잡채에는 당면도 들어가지 않고 고기도 넣지 않았다. 도라지, 오이, 숙주, 무 등 각종 나물을 익혀서 무친 요리라고 했으니 일종의 모듬 나물비빔 비슷한 것 같은데 광해군 무렵의 문집인 '잠와유고'에는 여기에 식초를 가미해 먹는다고 했다.
사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잡채는 지금과 차이가 많았다. 1924년에 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칼라 요리책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잡채는 도라지, 미나리, 표고버섯, 석이버섯 등 각종 채소와 쇠고기, 돼지고기를 넣고 만드는데 여기에다 해삼, 전복을 불려 채쳐 넣으면 더욱 좋다고 했다.
특이한 것은 잡채에 당면을 넣으면 좋지 않다고 했는데 요즘처럼 당면을 넣어 만드는 잡채는 고급음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먹는 잡채지만 이렇게 음식 하나에도 꽤 복잡한 진화의 흔적이 담겨있다.
그러고 보면 새삼 궁금해지는 부분이 있다. 약 90년 전까지만 해도 고급음식으로 쳐주지 않았던 당면으로 만든 잡채가 지금은 한국인, 나아가 외국인의 입맛까지 사로잡고 있는데 예전 광해군이 먹었다는 잡채는 도대체 어떤 맛이었을까?
잡채를 만들어 바친 이충에게 판서라는 벼슬을 내려주고 잡채가 도착한 후에야 비로소 수라를 들었을 정도라는 잡채 맛의 정체가 궁금하다.
▶️ 雜(섞일 잡)은 ❶형성문자로 雑(잡)의 본자(本字), 襍(잡)과 동자(同字), 杂(잡)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새 추(隹; 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集(집, 잡)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雜자는 '섞이다'나 '뒤섞이다', '어수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雜자의 생성과정은 다소 복잡하다. 지금의 雜자는 集(모일 집)자와 衣(옷 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雜자의 갑골문을 보면 단순히 3마리의 새만이 그려져 있었다.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雥(떼 지어 모일 잡)자가 바로 雜자의 초기 모습이었다. 雥자는 색이나 품종이 다른 여러 마리의 새가 뒤섞여 있다는 의미에서 '뒤섞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후에 글자가 변하면서 '모이다'라는 뜻을 가진 集자와 衣자가 결합한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衣자가 쓰인 것은 雜자가 한때 여러 색이 뒤섞여 있는 '옷'을 뜻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雜(잡)은 (1)여러 가지가 뒤섞여 순수(純粹)하지 않거나 자질구레한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제멋대로 막된 보잘것 없는의 뜻을 나타내는 말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섞이다, 뒤섞이다 ②섞다 ③어수선하다, 번다하다(繁多--) ④남다 ⑤꾸미다 ⑥같다 ⑦만나다, 만나게 하다 ⑧모이다, 모으다 ⑨돌다 ⑩뚫다 ⑪거칠다 ⑫천하다(賤--), 낮다 ⑬많다 ⑭갑자기, 졸연히(猝然-) ⑮가장, 아주 ⑯모두, 다 ⑰함께, 같이 ⑱여러 가지 ⑲한바퀴 ⑳옆, 곁 ㉑낭비(浪費) ㉒장식(裝飾) ㉓단역(端役) 배우(俳優) ㉔시(詩)의 한 체(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섞을 혼(混)이다. 용례로는 호를 거듭하며 정기적으로 간행되는 출판물을 잡지(雜誌), 시끄러운 소리로 라디오의 청취를 방해하는 소리를 잡음(雜音), 여러 가지 상품 또는 벌여 놓은 온갖 물이나 상품을 잡화(雜貨), 공역 이외의 여러 가지 일을 잡역(雜役), 고기나 채소나 고명 따위를 뒤섞어서 끓인 국 또는 난잡스러운 물건이나 모양이나 그런 사람을 잡탕(雜湯),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잡무(雜務), 여러 가지가 마구 뒤섞여 질서가 없음을 잡박(雜駁), 여러 가지가 뒤섞인 종류를 잡종(雜種), 여러 가지 쓸데없는 생각을 잡념(雜念), 자질구레하게 쓰이는 돈을 잡비(雜費), 여러 가지가 뒤섞여서 갈피를 잡기 어려움을 잡다(雜多), 온갖 느낌이나 온갖 감상을 잡감(雜感), 대수롭지 아니한 손이나 귀중할 것 없는 손을 잡객(雜客), 온갖 사람들이 섞여 삶으로 내외국 사람이 한 곳에 삶을 잡거(雜居), 쌀 이외의 온갖 곡식을 잡곡(雜穀), 여러 가지 기예 또는 투전이나 골패 따위의 잡된 여러 가지 노름을 잡기(雜技), 여럿이 겹치고 뒤섞여 있음을 복잡(複雜),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뒤섞여 어수선함을 착잡(錯雜), 많은 사람이나 차나 물건 등이 질서없이 뒤섞여 다니기에 불편한 상태에 있는 것 또는 여럿이 한데 뒤섞이어 어수선함을 혼잡(混雜), 말과 행실이 지저분하고 잡스러움을 추잡(醜雜), 번거롭고 복잡함을 번잡(煩雜), 언행이나 솜씨 따위가 거칠고 잡스럽게 막됨을 조잡(粗雜), 사물이 얽히고 뒤섞여 어지럽고 수선스러움 또는 말이나 행실이 불손하고 난폭함을 난잡(亂雜), 그릇된 짓으로 남을 속임을 협잡(挾雜), 일이 얽히고 설키다 갈피를 잡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복잡다단(複雜多端), 모든 잡역을 면제하여 줌을 일컫는 말을 물침잡역(勿侵雜役), 나쁜 입과 잡된 말이라는 뜻으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온갖 욕을 함을 이르는 말을 악구잡언(惡口雜言), 상대에게 온갖 욕을 해대며 큰소리로 꾸짖음 또는 그 꾸짖는 말을 매리잡언(罵詈雜言), 여러 곳의 사람이 섞여 삶을 일컫는 말을 오방잡처(五方雜處), 병을 고치려고 갖가지 약을 시험으로 써 봄을 이르는 말을 잡시방약(雜施方藥), 갖가지 너저분한 짓들을 하는 잡된 무리들을 일컫는 말을 오구잡탕(烏口雜湯), 미묘하고 복잡함을 일컫는 말을 미묘복잡(微妙複雜), 전혀 섞인 것이 없음 또는 꾸밈이나 간사스러운 생각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 말을 순일무잡(純一無雜), 자기 한 몸이 처해 있는 주위에서 일상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을 적은 수필체의 글을 이르는 말을 신변잡기(身邊雜記) 등에 쓰인다.
▶️ 菜(나물 채)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采(채; 물건을 모으다, 고르는 일)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나물'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菜자는 '나물'이나 '반찬'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菜자는 艹(풀 초)자와 采(캘 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采자는 손으로 열매를 따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열매를 채집하는 모습을 그린 采자에 艹자가 더해진 菜자는 '나물을 캐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菜자는 '나물'을 뜻하지만 때로는 나물로 만든 반찬이나 술안주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菜(채)는 ①나물(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 이것을 양념하여 무친 음식), 푸성귀 ②술안주(-按酒) ③반찬(飯饌) ④채마밭(菜麻-: 채마를 심어 가꾸는 밭) ⑤주린 빛 ⑥(나물을)캐다 ⑦채식하다(菜食--) ⑧창백하다(蒼白--), 굶주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물 소(蔬)이다. 용례로는 뿌리나 잎이나 줄기 또는 열매를 먹기 위해 밭에서 기르는 초본 식물을 채소(菜蔬), 푸성귀로 만든 반찬만을 먹음이나 야채만을 먹음을 채식(菜食), 채소 씨로 짠 기름 또는 배추씨로 짠 기름을 채유(菜油), 채소와 과일을 채과(菜果), 야채를 심은 밭을 채원(菜園), 채소를 먹음으로써 위장을 해하는 독기를 채독(菜毒), 채소의 뿌리를 채근(菜根), 나물 밭을 거두는 농사를 채농(菜農), 채칼로 야채나 과일 따위를 가늘고 길쭉하게 채 치는 데 쓰는 칼을 채도(菜刀), 푸성귀의 빛깔 또는 굶주린 사람의 혈색 없는 누르스름한 얼굴빛을 채색(菜色), 채소밭으로 채소를 심어 가꾸는 밭을 채전(菜田), 채소의 씨앗을 채종(菜種), 소채나 무 따위를 섞은 밥이라는 뜻으로 변변치 못한 음식을 이르는 말을 채반(菜飯), 들에서 나는 나물을 야채(野菜), 꿀이나 설탕을 탄 물이나 또는 오미잣국에 과실을 썰어 넣거나 먹을 만한 꽃을 뜯어 넣고 실백잣을 띄운 음식을 화채(花菜), 주로 밭에 가꾸어서 부식물로 먹는 소채류의 나물이나 채소를 소채(蔬菜), 산나물로 산에서 나는 나물을 산채(山菜), 마른 나물을 건채(乾菜), 익히지 않고 날로 무친 나물을 생채(生菜), 잎을 먹는 채소를 엽채(葉菜), 늙은 오이를 잘게 썰어서 양념하여 볶은 나물을 황채(黃菜), 익혀서 무친 나물을 숙채(熟菜), 소금에 절인 채소를 염채(鹽菜), 여럿으로 벼르거나 또는 먹다 남은 반찬을 잔채(殘菜), 거친 음식과 나물국이란 뜻으로 청빈하고 소박한 생활을 이르는 말을 소사채갱(疏食菜羹), 맛이 변변하지 못한 술과 산나물이란 뜻으로 자기가 내는 술과 안주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을 박주산채(薄酒山菜) 등에 쓰인다.
▶️ 判(판단할 판)은 ❶형성문자로 牉(판)과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선칼도방(刂=刀; 칼, 베다, 자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半(반; 둘로 나누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칼로 물건을 잘라 나누는 것으로, 옛날 증문(證文)을 판서(判書)라고 하여, 서로 나누어 가지고는 나중에 맞추어 보았다. ❷회의문자로 判자는 ‘판단하다’나 ‘구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判자는 半(반 반)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半자는 소머리에 八(여덟 팔)자를 그려 넣은 것으로 ‘나누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判자는 이렇게 ‘나누다’라는 뜻을 가진 半자에 刀자를 결합한 것으로 사물을 나누어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判자는 ‘구별하다’나 ‘판단하다’와 같이 진실을 들여다본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나누는 일도 맞추는 일도 判(판)이라고 한다. 그래서 判(판)은 (1)판(版). 책이나 상품의 종이의 길이와 넓이의 규격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판단하다 ②판결하다 ③가르다 ④나누다, 구별하다 ⑤떨어지다, 흩어지다 ⑥맡다 ⑦판단 ⑧한쪽, 반쪽 ⑨판, 인쇄판, 활판 ⑩문체(文體)의 한 가지 ⑪구별이 똑똑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판단할 단(彖), 결단할 결(決)이다. 용례로는 어떤 사물의 진위를 판단(判斷), 선악을 가리어 결정함을 판결(判決), 판단해서 결정함을 판정(判定), 사실이 명백히 드러남을 판명(判明), 판단하여 구별함을 판별(判別), 분명하게 아주 다름을 판이(判異), 뜻을 헤아려 읽음을 판독(判讀), 판단하여 앎을 판지(判知), 아주 없음이나 도무지 없음을 판무(判無), 판단하는 방법을 판법(判法), 아주 환하게 판명된 모양을 판연(判然), 아내가 시키는 말에 거역할 줄 모르는 사람을 농으로 일컫는 말을 판관사령(判官使令) 등에 쓰인다.
▶️ 書(글 서)는 ❶회의문자로 书(서)는 간자(簡字)이다. 성인의 말씀(曰)을 붓(聿)으로 적은 것이라는 뜻이 합(合)하여 글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書자는 ‘글’이나 ‘글씨’, ‘글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書자는 聿(붓 율)자와 曰(가로 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聿자는 손에 붓을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붓’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여기에 ‘말씀’을 뜻하는 曰자가 더해진 書자는 말을 글로 적어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참고로 일부에서는 曰자가 먹물이 담긴 벼루를 표현한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書(서)는 성(姓)의 하나로 ①글, 글씨 ②글자 ③문장(文章) ④기록(記錄) ⑤서류 ⑥편지(便紙) ⑦장부(帳簿) ⑧쓰다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책 책(冊), 글월 문(文), 글 장(章), 문서 적(籍)이다. 용례로는 책 또는 경서와 사기를 서사(書史), 편지를 서신(書信), 글 가운데를 서중(書中), 남이 하는 말이나 읽는 글을 들으면서 그대로 옮겨 씀을 서취(書取), 책을 넣는 상자 또는 편지를 넣는 통을 서함(書函), 글씨를 아주 잘 쓰는 사람을 서가(書家), 글방을 서당(書堂), 글씨와 그림을 서도(書圖), 책의 이름을 서명(書名), 대서나 필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을 서사(書士), 글자를 써 넣음을 서전(書塡), 책을 보관하여 두는 곳을 서고(書庫), 남편의 낮은 말서방(書房), 책을 팔거나 사는 가게서점(書店), 이름난 사람의 글씨나 명필을 모아 꾸민 책을 서첩(書帖), 글씨 쓰는 법을 서법(書法), 유학을 닦는 사람을 서생(書生), 글방에서 글을 배우는 아이를 서동(書童), 글씨와 그림을 서화(書畫), 문서를 맡아보거나 단체나 회의 등에서 기록을 맡아보는 사람을 서기(書記), 글씨 쓰는 법을 배우는 일을 서도(書道), 책 내용에 대한 평을 서평(書評), 글자로 기록한 문서를 서류(書類), 책을 갖추어 두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방을 서재(書齋), 문자의 체제를 서체(書體), 책은 남에게 빌려주지 않는다는 서불차인(書不借人), 편지로 전하는 소식이 오고 간다는 서신왕래(書信往來)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