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칠순을 맞아 기념으로
책을 내는데 원고 한편을 부탁해 왔다.
거기에 실린 글이다.
나의 여름나기
나의 친구 황성길선생이 7순을
맞아 기념책자를 발간한다하니 졸고(拙稿) 한편을 보탭니다.
살다보니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지라 여름철이라도 의식주를 빼고 쓸 별 다른 게 있나요.
첫째 의(衣)는 될 수 있는 대로 간편한
옷차림이다.
다행히 내가 일주일에 3일 근무하는 두 곳
모두 이런 복장으로 출퇴근이 가능하므로
와이셔츠에 넥타이인 정장차림은 옷장에 고이
모셔두고.
우정 젊게 보이려 주로 T
shirts, 때로는 남방셔츠, 그리고 가벼운 바지를 입고는
한 손에 접는 부채를 들고 집을 나선다.
동네 나갈 때는 반바지
차림이고, 산책할 때도 기능성 쿨맥스 T shirts에 등산용 반바지.
그래도 연수강좌의 좌장, 결혼식
주례나 하객으로 참석할 적은 어쩔 수 없이 정장이다.
집에서 옷차림은?
당연히 식구들만
보는데 타잔 차림이지요.
둘째 식(食)은 삼시 세끼
음식이 가장 중요시하며 간식으로 과일 정도.
한창 더울 때는 식욕도 떨어지지만 출퇴근 때
타는 버스와 지하철,
냉방이 잘되어 있는 두 곳 사무실이나 나의 개인
연구실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니 나에게 더위와 식욕과는 무관하다.
아침이야 늘 처랑 같이 간단하게
먹는다.
커피 한
잔씩을 나는 아메리카노, 처는 카페 라테로.
빵 한 두어 개, 때에 따라 나의 유일한 요리로
계란 반숙, 간혹 요거트.
어쩌다가는 시어리얼이나 뮈즐리에 우유를 부어
먹고.
제철 과일은
빠지지 않고 항상 먹는다.
점심은 월요일만 대연각 빌딩에
출근하는 날은 한층 위 법무법인의 친구 변호사와 식사.
명동을 잘 아는 친구라서 내가
무얼 먹자면 그대로 안내한다.
아니면 회사 직원들과 외식으로. 명동 사무실은
주위에 맛 집들이 많아
내 사무실 앞의 누구, 예를 들면 일본 국적이나
우리말에 유창한 모토미 상에게
‘점심 사줄게. 나가자. 혼자 나오질 말고
여럿이.’
왜냐하면
젊고 예쁜 여직원과 둘이서 식사를 하다 아는 사람에게 들키면
오해를 받기 쉬우니까. 나야 손해날 일이
없지만.
일주일에 이틀 나가는
중앙보훈병원에서는 주로 병원의 구내식당.
맛은 별로나 병원 밥을 먹고 배탈이 난 적은
병원생활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자유배식이라 먹을 만큼 밥과 반찬을 가져다 와서
먹고 국물까지 마시니까
소위 절의 식사처럼 하나도 남김없이 먹는
발우공양을 한다.
내 앞의 직원들이 깔끔하게 먹는 내 식반을
곁눈질하는 걸 나는 잘 안다.
잔반 반납할 때 버려지는 음식들을 아까워하는
나이니까.
한번
씩은 병원 가까이에 직원들과 같이 나가서 먹고 들어올 때는 여름철 눈꽃 빙수도 사주고.
저녁도 역시 외식이 많은 편.
어쩌다 집에서 먹는 경우도 처가 외식을 하자면 군소리 없이 따라 나가야 한다.
평소에 내가 무얼 먹자고 말하면
다 준비를 해주니까.
문제는 이런 외식은 내가 사던, 얻어먹던 잘
먹어 주어야 하니까 활동량이 적은 여름철에는 체중조절이 더 어렵다.
여름철 찬 음식이 시원해서
좋으나 냉면이나 냉 콩국수 등은 먹고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함부로 먹기는 겁나 대부분 더운
음식을 먹는다.
특히 탈이 잘나는 어패류나
게장은 가능하면 피한다.
주(住)는 다행히 내가 30년이 넘게 살고 있는
아파트가 남향에 10층,
베란다와 뒤 창문을 열면 앞뒤로 바람이 그대로
통하니 시원한 편.
이번 여름은 에어컨도 고장이 나서 겨우 수리를
끝내었고,
주로
찬물 샤워와 선풍기로 더위를 견디는 중이다.
이외에도 여름 한철을 건강히
지내려면 운동을 뺄 수가 없다.
젊었을 때는 당일 산행이나 무박의 원정산행도
불사하였고.
야간 산행이 금지되기 전에는 계곡에 띄어 놓은
시원한 수박과 참외를 먹으며 쉬었다가 달빛아래 산에도 올랐다.
이십여 년 전 음력 7월 보름
자정에 백운대에서 내려다보는 황홀한 서울의 야경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우이동 야간 산행 중 비를 만나
계곡 바위 틈 사이에서 비를 피하며 기다리다 억수로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을
뒤집어쓰며 올라 백운산장 개축 시 임시로 설치한
커다란 텐트에 랜턴을 매달고 지낸 하룻밤.
다음날 새벽 일찍 백운대에
도착하여 넓은 바위위에서 살짝 선잠이 든 친구들은 온몸이 햇살에 새까맣게 타버렸다.
어느 8월, 서울의 기온이
34, 5도를 오르내렸을 때.
도봉산 회룡계곡으로 올라 포대능선으로 거쳐
도봉 서원 쪽으로 하산한 적이 있었다.
친구들이 나에게 부쳐준 ‘물보’라는 별명에
걸맞게 페트병 하나는 물을,
또 하나는 배출되는 땀 성분과 비슷한 건강음료
포카리 스웨트를 얼려 가지고 올라갔다.
이 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올라왔다가 탈수되어 얼굴에 소금 꽃이 핀 젊은 아가씨 들.
내 친구를 보고 ‘할아버지 물
좀 주세요.’ 이 소리를 듣고 기분이 나빠진 친구가 대뜸 ‘너 같은 손녀들은 없다.’
이들은 산에는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고 샘이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하고 왔으리라.
나이 든 이즈음 여차하다간
노인 네 산행 중 일사병 운운 하며 뉴스에 나올까봐
보통은 서초동 집 가까운 우면산이나 청계산에
가벼운 등산을 가고,
주로 새벽, 또는 이른 아침 동네나 양재천과
양재시민의 숲 산책을 다닌다.
마지막으로 피서 휴가는 언제나
시간을 낼 수 있는 나의 경우,
도로가 붐비고 숙소의 예약이 힘든 7월 말부터
8월초까지는 피해주는 것이
그 때밖에 갈 수없는 사정을 가진 분들을 위한
예의이다.
대학에 있었을 때도 내과의 제일 위인 나는
아래 사람들에게 ‘나의 휴가는 신경 쓰지 말고 여름휴가 일정을 짜라.’
이번에도 8월 말 일본
아오모리의 오이라세류계곡 트래킹을 갔다 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더위도 마음먹기에 따라 덥지 않게 지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첫댓글 추운 겨울철 여름이야기를 들으니 어느 듯 몸에는 땀이 솓구치는것을 어쩌랴? 나의 자율신경계는 아직도 건재하다. 여름 이야기를하는 것도 피한의 한 방법이 될 듯....
나도, 예전에는 성수기 때에 여행 갈수 밖에 없었지만, 십여년 전 부터는, 무조건 비수기를 골라서 여행 다닙니다. 비행기 값도 저렴하고, 덜 붐벼서 좋고..., 성수기 때는 집근처에서 노는 것이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