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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A매치 109경기 31골
(국대전적 109경기 75승 27무 7패)
리그
보르도 145경기 28골
유벤투스 161경기 23골
레알마드리드 146경기 36골
리그 최다골 10골
가장 임팩트 있는 골
98월드컵 결승 헤딩 2골
01-02 챔스 결승 발리슛
주요커리어
발롱드로 1회 FIFA올해의 선수상 3회
쳄피언스리그 최우수 선수 2회
월드컵 MVP 1회 유로 MVP 1회
리그우승 3회 준우승 6회
챔스 우승1회 준우승 2회
월드컵 우승 1회 준우승 1회
유로 우승 1회
개인,팀커리어 총망라
1994 올해의 프랑스 영플레이어 수상
1995~1996 시즌 UEFA컵 준우승
1995~1996 시즌 UEFA컵 최우수선수
1995~1996 시즌 동료 프로축구 선수 선정, 프랑스 올해 최고의 선수
1996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1996~1997 시즌 유러피안 수퍼컵 우승
1996~1997 시즌 토요타컵 우승
1996~1997 시즌 세리에 A 우승
1996~1997 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996~1997 Calcio Oscar [시즌 세리에 A 최우수 외국인 선수]
1997 FIFA 올해의 선수상 3위
1997~1998 시즌 이탈리안 수퍼컵 우승
1997~1998 시즌 세리에 A 우승
1997~1998 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997~1998 시즌 챔피언스리그 최우수선수
1998 월드컵 우승
1998 월드컵 올스타 선정
1998 올해의 유럽 미드필더
1998 올해의 선수(World soccer紙)
1998 올해의 유럽 플레이어
1998 올해의 프랑스 축구선수 수상
1998 올해의 프랑스 스포츠맨
1998 유럽 골든볼 수상
1998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1회)
1998 옹즈 몽디알(Onze Mondial) 선정 1위
1999~2000 세리아A 준우승
2000 유럽 선수권 우승
2000 유럽 선수권 MVP
2000 유럽 선수권 올스타 선정
2000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2회)
2000 옹즈 몽디알(Onze Mondial) 선정 1위
2000~2001 세리아A 준우승
2000~2001 Calcio Oscar [시즌 세리에 A MVP]
2000~2001 Calcio Oscar [시즌 세리에 A 최우수 외국인 선수]
2001 Italian Footballer Of The Year
2001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6400만불)
2001 수페르코파컵 우승
2001 옹즈 몽디알(Onze Mondial) 선정1위
2001~2002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2001~2002 시즌 UEFA 최우수선수
2001~2002 시즌 챔피언스리그 최우수선수
2001~2002 시즌 프리메라리가 최우수 외국인선수
2002 FIFA 올해의 선수상 3위
2002 올해의 프랑스 축구선수 수상
2002 UEFA MVP 선정
2002 인터콘티넨탈 컵 우승
2002~2003 시즌 UEFA 수퍼컵 우승
2002~2003 시즌 인터콘티넬타컵(토요타컵) 우승
2002~2003 시즌 프리메라리가 우승
2002~2003 시즌 프리메라리가 최우수 외국인선수
2003 수페르코파컵 우승
2003 분데스리가 선수들 선정 최우수 선수
2003 영국 4-4-2
선정 레알마드리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2위 (라리가 2년차)
2003 FIFA 올해의 선수 수상(3회)
2004 UEFA 50년간 최우수 선수(1위)
2004 유럽 선수권 올스타 선정
2004~2005 프리메라리가 준우승
2005~2006 프리메라리가 준우승
2006 독일월드컵 준우승
2006 독일월드컵 골든볼
2006 독일월드컵 MVP
2006 독일월드컵 BEST11 및 올스타
2006 FIFA 올해의 선수상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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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단, 그는 누구인가?
"나에게 있어 축구는 내 인생의 전부다."
"언제까지나 시합이 끝나지않고 이대로
플레이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볼과 일체가 되어, 자유로운 기분을 즐기는 것은 최고다."
존경하는 축구선수 - 엔조 프란체스콜리(Enzo Francescoli)
지네딘 지단이 처음으로 프로생활을 시작한 것은 프랑스의 군소 클럽이랄 수 있는 AS칸이었다.그는
만 열일곱에 첫 1부 리그 경기를 가졌지만 실제 팀의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는데는 2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했다. 그의 포지션은 대부분 공격적인 창조력을 가진 이의 첫 출발 포지션이 누구라도 그러하듯 나중에 그가 위치하게 될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니라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활약을 했었다고 한다.
AS칸의 2부 리그 강등이 결정된 92년 지단은 팀을 옮긴다. 지단이 새 둥지를 튼 포도주의 도시 보르도는 프랑스인 지단이
프랑스 리그를 경험한 마지막 구단이었다. 지단은 여기에서도 미드필더보다는 공격수로 활약하는 일이 더 많았다.
소속팀에서 호흡을 맞추던 투톱은 지금까지도 지단과 절친한 크리스토프 뒤가리였다.
지단의 A매치 데뷔는 94년으로 알려진다. 첫 상대는 동구의 강호 체코였는데 아주 박력적이고 인상적인 신고식을 한다. 2-0으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교체 멤버로 투입되어 만회골과 동점골을 그 자신 스스로 일구어 내었다.
지단은 후일 이 두 골의 감동을 무덤에 들어가서라도 잊지 못할 감격이라고 누누이 강조하곤 했다.
보르도는 프랑스 리그에선 그럭저럭 현상유지를 해 주는 팀이긴 하지만 유럽 전체 무대에서 한 끗발을 날리기엔 많이 부족한 팀이다. 실제 지단의 경우 이 팀에서 일구어낸 최대의 업적이 챔스보다는 그 명성에서 한 포인트쯤 처지는 UEFA컵에서 준우승을 한 차례 한 것이 고작이었다.
지단이 날개를 달기 위해서는 더 가능성이 큰 구단이 필요했다. 때마침 이탈리아 세랴의 명문 유벤투스가
지단을 영입했고 지단의 토리노 생활은 이렇게 시작된다. 96년 지단은 유벤투스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당시 유벤투스는 유럽의 제왕이었다. 지단을 영입하기 전 시즌 스쿠데토와 리그의 우승을 동시에 거머쥐었는데
이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동시에 유베팬들에겐 너할 나위 없는 환희를 가져다 준 일이었다.
유베는 바로 이전까지만 해도 세랴내의 위상에서 만년 2인자일 수 밖에 없었다. 이유인 즉슨 80년대말에서 90년대초 AC밀란이란 팀이 보여준 경이적인 포스 때문이었다. 그 때의 밀란은 "밀란 세대들"이란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유명한 오렌지 삼총사와 바레시와 말디니 도나도니같은 아주리의 거인들...그리고 현대 축구에서 "압박"의 개념을 정초한 명장 아리고 사키가 완벽한 조화를 과시하며 최강으로 군림했었던 때였다. 이 밀란 전성시대를 지나 유베의 리그 우승을 일구어내었던 당시의 감독은 10년 뒤 푸른 제복의 아주리
군단을 이끌고 이탈리아의 네번째 월드 챔프 등극을 견인하게 되는 명장 "마르첼로 리피"였다.
지단이 유베로 왔을 때 리피감독은 여태까지 지단이 프랑스 리그에서 고수했던 포지션이 변동을 모색했다.
당시 유베의 공격진은 최전방에 크로아티아의 저격수 "알렌 복시치"와 아주리산 파워 스트라이커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포진해 있었다. 지단이 이들과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선수 자원의 낭비이다. 왜냐하면 이 세 선수 중 두 명은 벤치에 앉아야 하기 때문이다. 쉐도우에는 이미 알레산드로 델피에로라고 하는 유베의 "프랜차이즈"가 존재했다. 당시 델피에로의 판타스틱함은 경이적이었다는 표현이 무방하리라.
그는 이미 팀내에서 전대의 "판타지 스타" 바지오를 밀어내어 타구단으로 이적시켰고 득점력 또한 폭발적이었다.
리피의 지단 활용의 복안은 대충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차라리 네가 델피에로보다 더 포지션을 낮추어 주어라. 지금 우리팀에 필요한 건 스트라이커의 파괴력이 아니라 바로 그 포지션의 선수이다. 그걸 소화하고 못하고는 네 능력에 달려 있다. 하지만 나는 네 가능성을 충분히 믿는다.
리피는 지단에게 80년대 지단의 대선배이자 유베의 "레전드"라 할 만한 "미셸 플라티니"의 역할을 요구했었던 것이다. 플라티니가 80년대 유베에서 해 주던 역할은 최전방에 위치했던 82년 월드컵의 영웅 로시나 폴란드의 축구명인 보니에크를 한
포인트쯤 뒤에서 받쳐주며 전체 게임의 공격 흐름을 관리하던 "플레이메이커"였다.
플라티니나 지단의 경우를 생각하면 우리는 세랴가 다른 빅리그와 유별나게 차이나는 "전술에 관한 선진성"에 대한 편린을 엿볼 수 있다. 플라티니도 지단도 원래는 스트라이커였다. 만일 그들이 끝까지 스트라이커로 특화된 보직을 수행했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덜한 평가를 받을 확률이 극히 높았을 것이다. 어떤 선수들에겐 선수 생활의 치명적인 무덤이 될 수 있는 세랴에서 그들은 "보직을 변경"함으로 한 개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반열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물론 감독들이 한 선수에게 "보직 변경"을 요구하는 경우는 포지션 이동 이후 대성할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에 그걸 주문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억지심술에 불과하리라.
유베에 복시치나 비에리가 있었다는 건 그래서 지단에겐 다행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단쯤 되는 명인도 새로운 포지션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적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그러나 슈퍼스타 지단은 그 극복시기가 다른 누구보다도 빨랐다. 지단이 유베에서 새로운 보직에 대한 소화가 끝났다는 건 그 리그에 유베가 보여준 성적에서 기인한다. 리피는 세랴를 2년 연속 제패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제 세계 축구계의 "마에스트로"로의 힘찬 비약을 시작하는 지단이 있었다.
유베생활은 그렇다 치고 지단의 조국 프랑스에게 당장 필요한 건 자국에서 열리는 98년 월드컵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사실 98년 당시 프랑스의 공격라인을 보면 월드컵에 우승할 수준의 선수로 구성되었던 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앙리나 트레제게는 당시에는 아직 풋내기였다. 이건 명백하게 "기록"이 말을 해준다. 앙리가 기록한 골 모두는 조별리그에서 한끗발 아래로 여겨지던 상대들에게서 뽑은 골이었다. 프랑스가 상대했던 나라는 덴마크 정도만이 버티어 볼만한 상대였고 나머지는 남아공이나 사우디같이
승점 올리기에 정말 쉬운 상대들이었던 것이다. 그 이외에 파워 스트라이커인 뒤가리와 그럭저럭 활동력을 가진 기바르시가
공격라인을 주도했는데 사실 이 두 선수를 초일류라고 부르기엔 어색함이 있을 것이다.
지단의 경기력은 정말로 훌륭했다. 메이저대회 생방을 통해 본 그라운드에서 지단이 가진 움직임은 아주 이색적인 것이었다.
지단은 그 체구나 용모 거기에 걸맞는 헤어스타일을 보았을 때 테크니션이란 느낌은 절대 들지 않는 선수이다. 그러나 지단이 공을 한번 잡으면 그는 정말 공을 뺏길 줄 모른다. 그가 서 있는 포지션에서는 아마 지단만큼의 "하드웨어'를 가진 사람은 없다고 보아야 무방하리라. 이 좋은 신체조건은 일단 상대가 압박대형을 전개했을 경우 꽤 많은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대개 플레이메이커를 담당하는 테크니션들은 몸집이 작다. 굳이 마라도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루마니아의 하지나 대한민국의 윤정환처럼 "특화된 중앙 공미 플레이메이커"는 대부분 체구가 아담하다. 이 대회에서 지단만큼의 공간수 능력을 보여준 또 하나의 선수 아르헨티나의 플레이메이커 "아리엘 오르테가" 역시 신장이 작다. 그 큰 몸빵에서 그리 유연한 발재간이 나온다는 건 쉽게 매치시키기가 어려운 일이다. 내가 유베시절의 지단을 첨 보았을 때 느끼던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는 지단의 몸동작이 너무 낯익어 별 이상한 일도 없는 일이겠지만 저런 큰 덩치가 물 흐르는 듯한 볼 터치와 개인 테크닉을 구사한다는 건 매우 생경한 풍경이었다.
아마 지단을 압박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쉽게 몸싸움에서 지지 않는 그의 하드웨어도 큰 몫을 했을 거라 본다.
우리의 영웅은 이 조별리그 사우디와의 대전에서 "쓴 경험"을 맛본다. 98년 월드컵을 본 사람은 지단이 저지른 비신사적 행위를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퇴장이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지단이 피파로부터 처벌받은 출장정지가 16강까지였다는 사실일게다. 16강전 파라과이의 대전에서 지단이 없는 프랑스는 거의 압도적인 골 점유율을 보이며 파라과이를 압박했지만 프랑스는 이를 끝장내어 줄 골잡이가 없었다. 미적미적 승부는 연장으로 돌입했고 프랑스의 골키퍼 바르테스의 머리에 키스를 하는 유명한 장면을 자주 연출하던 센터백 블랑이 일을 내었다.
센터백 블랑의 과감한 쇄도는 결국 골든골을 잡아내고야 만다.
8강전 이탈리아와의 승부는 이 대회 프랑스가 우승을 하기 위한 최대 고비였다.
엄밀히 말해 당시의 이탈리아 수비진의 힘을 단신의 힘으로 농락할 네임밸류의 공격수가 프랑스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프랑스가 노릴 수 있는 득점 전략은 2선에서의 무브먼트로 카테나치오의 빗장을 열어버리는 것이었는데 그 날은 유리 조르카에프의 움직임이 정말로 좋았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골문은 탄탄했다.
당시 이탈리아의 "지단을 막는 해결법"은 음미해 볼 만하다.
이탈리아의 체사레 말디니 감독은 지단을 막지 못하면 대책은 없다라는 신념이 매우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놓은 전략이 과감한 "알베르티니 선발 제외"카드였다.
알베르티니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90년대 아주리 중원의 패싱력의 뼈대를 구성하던 선수였다. 알베르티니의 패싱감각을 못 쓰는 한이 있다라도 "지단"의 기를 꺾어야 한다는 작전이었다. 알베르티니보단 대인 압박 능력이 좋았던 디노 바지오-루이지 디비아지오로 후위 허리를 구성하고 둘의 공조 압박으로 지단을 묶으란 특명이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유로 2000당시 지단을 묶는 디노 조프의 방법과는 약간 다르다.
이 방법은 약빨이 먹혔다. 아주리를 대표하는 압박맨들이 둘 씩이나 달라붙자 아무래도 지단의 움직임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후반이 되자 디노 바지오를 빼고 알베르티니를 투입한다. 이건 16강전에서 파라과이와 연장승부를 가진 프랑스의 체력적 요소를 공략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사람이란 한 번 움직임이 둔화되는 흐름을 타면 그 흐름을 곧장 되돌리기가 어렵다.
지단도 사람인 이상 전반의 흐름을 당장 반전시키기는 힘든 것이다. 비록 마크맨이 한 명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대신 지단 묶기의 반사이익으로 떨어진 것이 조르카에프의 "활동반경"이었다. 지단마크에 신경을 쓰다보니 지단의 근거리에 위치한 조르카에프에게 열린 공간이 많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이 경기에서 조르카에프의 움직임은 누구보다도 돋보였다.
98년 당시 프랑스의 포백라인은 아주리에 비겨 전혀 꿀리지 세계 최고의 수비진영이었다. 에메 자케가 비난을 무릅쓰고 전대의 스타들을 과감하게 엔트리에 탈락시킨 이유 중 하나는 이 든든한 포백라인에 대한 믿음에서 연유한 점도 있다. 최소 포백라인이 나의 기대대로 해 준다면 설사 공격조작에서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그리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란 이야기이겠다.
4강전 크로아티아전에서는 프랑스의 흑인 수비수 "튀랑"의 활약이 발군했다. 당시 프랑스의 포백라인은 리자라쥐-드사이-블랑-튀랑의 평행 포백이었는데 수비수들의 전투력이 상당히 강했다. 코너킥이나 세트피스시 블랑이나 드사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공격에 가담했고 리자라쥐는 오버래핑과 맨마킹 능력이 모두 일정 수준에 들어간 일꾼이었다. 아마 분데스리가팬들은 리자라쥐가 독일의 "상징'이랄 수
있는 뮌헨의 좌측공간에서 얼마나 지속적이고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는지를 잘 알 것이다.
당시 파르마에서 부폰과 칸나바로와 함께 환상의 수비 3인방으로 불리우던 튀랑은 사실 그 경기 역적이 될 뻔한 선수였다. 수케르의 선취골은 따지고 보면 튀랑의 판단미스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것은 이 승부근성 강한 흑인선수의 분발을 촉구해 준 것 같다. 튀랑의 맹활약으로 프랑스는 크로아티아게 짜릿한 2-1 역전승을 거두며 프랑스 역사에서는 처음으로 월드컵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만들어내었다.
결승전 브라질전은 한마디로 프랑스의 "압승"이었다. 사실 그 날의 브라질은 우리가 알던 브라질이 아니었다. 프랑스는 결승 당일 주전 센터백 블랑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기력에서 브라질을 압도했다. 98년의 브라질은 수비 융화도에서 문제가 많은 팀이었다. 매경기 실점을 하는 약한 수비진의 부족을 공격수들의 재능으로 메워야 했던 그런 팀이었다.
준결승 네덜란드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전에서 체력소모도 많았다.
이날 지단은 그 경기의 수훈갑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박력적인 헤딩골 두 방...엄밀하게 말해 지단은 플레이메이커치고는 공중전 능력이 상당한 선수이다. 이건 과거 그가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소화해낼 때부터 깆춘 능력이었다.
그해 지단은 영웅이 되었다. 비록 조별리그에서의 퇴장 행위로 월드컵 최우수선수를 놓쳐 버리긴 했지만...
소속팀 유벤투스에서 차분히 내실을 다지던 지단은 유로 2000이라는 메이저 대회에서 또다시 일을 내었다.
유로 2000...아마 이 시기의 프랑스가 지단이 활약하던 뢰블레 시절 중 가장 전력이 탄탄했을 때가 아닌가고 생각해본다.
이 때에는 이미 앙리가 여물어 있었기에 2년 전보다는 공격력이 월등 배가되었었다.
유로 2000때에 프랑스가 채택했던 전형은 국제대회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4선화 포메이션이었다.
기존의 포백 위에 더블 보란치로 노련한 데샹과 급성장을 해버린 비에이라를 위치시켰다.
최전방 바로 아래에 지단이 위치하고 양쪽으로 앙리와 조르카에프가 늘어선 후 최전방은 뒤가리란 식인데 공격옵션의 다변화가 가능했던 건 순발력과 스피드 있는 돌파를 주무기로 하는 윌토르와 전통적 의미에서의 "타겟맨"이라 개념에 가장
근접해 있던 트레제게가 언제든지 대기상태로 있었기 때문이다.
자 여기서 잠시 이야기의 물줄기를 최초의 지점으로 돌려보자.
프랑스가 세계정복을 위해 내 놓았던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플라티니 시대에도 이루지 못한 그 부족한 2%말이다.
이번 2006년 월드컵 결승전을 생중계때가 생각난다.
경기 시작전 위대한 프랑스 혁명의 "테마송"이자 프랑스 국가이기도 한 "라마르세에즈"가 연주될 때 카메라는 라마르세에즈를 따라 부르고 있었던 프랑스 선수들을 잡아주었다...놀랍게도 베스트 멤버의 절반 이상이 "흑인"이었다. 바로 이것이다. 프랑스 축구가 돌파구로 찾은 것은 예전 식민지국에서 받아들인 흑인의 탄력을 전통적인 프랑스 축구와 "접목"시키는 작업이었다.
흑백이 조화된 컬러의 이상향은 누가 무어래도 영원한 축구왕국 "브라질"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역시 88년 유로대회를 우승하던 네덜란드도 유럽에선 흑인의 탄력을 뿌리내려 제대로된 결과물을 뽑은 나라이다. 그 중에서의 실전효과에 대한 완벽한 견본품은 다름 아니라 지단시절의 "프랑스"였다.
강한 팀과 약한 팀의 차이는 무엇일까? 물론 잘 이기는 팀이 강한 팀일 것이다. 하지만 축구도 사람이 하는 경기인 이상 질때 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보는 강한 팀의 요건은 "질때 지더라도" 완패하지 않는 팀이 강한 팀이다. 경기 전체 내용이 손발이 안 맞고 선수들이 신체 컨디션을 그 경기에 맞춰 조절하는 걸 게을리한다거나 해서 부진한 건 이해를 해 주어야 한다. 일상 생활을 하는 우리도 일년내내
아니 평생 지속적으로 똑같은 수준의 최고치 컨디션을 동일하게 유지시켜 주기는 진정 불가능하다.
흔히 포르투갈이나 체코는 강팀이라고 한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물론 그렇겠지만 컨디션이 나쁠 때 그들의 경기력을 보면 과연 그러한가란 의문이 든다. 그들이 초일류가 되지 못하는 건 잘할때와 못할때의 경기 내용 편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질 때 지더라도 상대에게 "우리는 질 수도 있었다."는 느낌을 주는 팀. 비록 "석패"는 당할지언정 "완패"는 당하지 않는 팀이 진정으로 강한 팀이다. 강호라고 소문이 나서 맞짱을 떠보니 컨디션이 최하일 때 "뭐야 붙어보니 별 거 아니잖아?"란 느낌을 주는 경기가 한 경기라도 더 많은 팀은 그렇지 못한 팀보다 전력이 열세인 것이다. 팀이나 구성원 모두 최고조의 상태일 때의 "이 한판"이라고
한다면 너도나도 나를 최고로 뽑아달라고 아우성을 칠 팀들이 즐비하다.
지단시절의 프랑스가 이전의 프랑스와 다른 건 흑인의 탄력을 접목하여 바로 이런 점에서 2% 부족한 내용물을 채워넣었기 때문이리라. 더구나 지단 자신 알제리계의 혈통이란 사실 자체에서도 이런 측면을 부각시켜보면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유로 2000때의 프랑스는 진짜 강했다. 공격-중원-수비 어디 나무랄데가 없는 팀이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이었던 결승전에서 지단은 디노 조프가 지단 묶기 작전으로 내어놓은 디노 조프의 카드에 고전하긴 했었다. 그 전략이란 전반에는 디비아지오에게 지단 "전담마킹"을 시키고 후반에는 디비아지오를 교체하여 "암브로시니"에게 전담 블로킹맨을 시키는 방법이었다. 45분 동안 너희 체력을 다 탈진해서라도 그를 막아라가 그 작전이었던 것이다.
유로 2000결승에서 이탈리아를 누른 프랑스의 승인은 윌토르나 트레제게 같은 숨은 공격 옵션이 다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선수자원의 승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경기 후반 패색이 짙어갈 무렵 마지막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선수 모두의 정신적인 바탕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이건 확실히 지단 이전 세대들이 가지지 못했던 장점이다. 20세기말에서 21세기에 이르는 이 시기 위대한 뢰블레의 전사들은
조국 뿐만이 아니라 세계 축구사에 잊혀지지 않은 굵은 족적을 남겼던 것이다.
아마 지단쯤 되는 선수도 자신의 조국 프랑스나 수년간 터전을 잡고 있었던 세랴와는 많이 다른 스페인식 플레이 스타일과 축구정서에 처음에는
적응을 하지 못했었다. 오죽하면 지단이 안 나와야 레알이 이긴다는 비아냥을 들었겠는가?
인간이 진화론의 최고서열인 이유는 다른 능력이 아니라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능력이 어떤 종보다 우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단은 생경한 풍토에서 약간의 시행착오를 겪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그는 축구계에 있어서 "진화론"의 최고서열에 위치하는 선수인지라
자신에 대한 비아냥을 환호로 바꾸는 데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01/02시즌 챔피언스 리그에 팀이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는데에 큰 역할을 한다. 결승전 레버쿠젠전에서
보여준 환상적인 왼발 결승골 작품을 아직까지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의 지단은 부상이나 컨디션 조절도 문제이겠지만 우선 정신적으로 안이해졌던 것 같다.
챔스 우승을 이루어낸 상황에서 지단은 개인이 이루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다는데에서 온 심리적 포만감이 그 자신을 뭉툭하게 만들어 버렸다.
여하튼 지단이 없는 프랑스와 그렇지 않은 프랑스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 대회가 2002년 월드컵이었다.
불과 2년전만 하더라도 프랑스는 세계 최강이었는데 말이다.
월드컵 전대회 우승국은 지역예선을 치르지 않는다는 조항이 폐지된 건 2006년부터인데 개인적으로는 찬성의 입장이다. 월드컵 지역예선을 치르지 않는다는 것은 구성원들의 정신적 일치감을 무디어지게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기껏해야 현상유지로 만족할 수 있는 친선 A매치와 월드컵 본선 티켓이라는 가치가 걸린 경기는 아예 그 차원이 다른 경기이다.
4년 동안 이런식의 경기를 한 번도 가지지 않는다는 건 크게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2002년의 프랑스는 무기력했고 모든 이에게 실망을 주었으며 드디어 지단도 한 물 가지 않았는냐는 말이 유포되기 시작한 때였다.
이 때쯤 지단은 국가대표에서 은퇴하겠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축구인생은 클럽활동으로 전념하겠다는 생각이기도 했지만 상황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2년 뒤 유로 2004가 시작되자 "구관이 명관" "미워도 다시 한번 지단"의 정서가 다시금 팽배하기 시작했다. 유로 2004의 지단은 전성기에 버금가는 활동력을 보이며 다시 한번 컴백했다. 특히 잉글랜드전에서 보여준 지단의 활약상은 세간의 화제거리가 되었다.
팀동료 베컴의 페널티킥 삽질이 함께 오버랩되면서 그의 마술같은 프리킥과 페널티 결승골은 당시 수일간 전세계의 스포츠면을 강타했다.
이 대회 돌풍의 핵 그리스는 대회준비를 무척 잘했다는 느낌이 든다. 프랑스가 그리스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적을 경시해서 생긴 일종의 오만에 대한 댓가였을 게다. 프랑스를 잡은 그리스는 체코와 포르투갈까지 잡으며 무풍질주 했다. 유로대회에서 축구변방국이 우승한 것은 92년 덴마크 이후 처음이었다.
아마 누구나가 그랬고 지단 자신도 그 대회가 메이저대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2006년 월드컵 지역예선이 시작되자 지단이 없는 프랑스는 비틀거렸고 프랑스는 은퇴를 준비하던 레전드에게 다시 구원의 요청을 보냈다. 지단은 심사숙고 끝에 이 제의를 받아들였는데 사람들은 지단이 주축이 된 프랑스를 보고 "노인부대"라고 놀려대기까지 했다.
조별리그 프랑스는 썩 좋은 출발을 하지 못했다. 스위스와 대한민국에게 간신히 무승부를 기록했는데 그 때에는 이에 대한 고찰을 별로 해 보지 못했으나 대회가 끝난 후 이점을 뜯어보니 사실 당시의 프랑스는 대회 일정에 맞추는 전체 팀 사이클 조절을 상당히 세련되게 한 느낌이 난다.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인 토고전을 기점으로 프랑스는 경기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시점이었고 반면 토너먼트 승부에 서툴기도 하고 대회초반 너무 급작스럽게 컨디션을 끌어올렸던 스페인은
16강전을 치루는 시점에서 컨디션 사이클이 이미 하락지점으로 돌아서고 있었단 느낌이 강하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프랑스의 불리를 점쳤는데 예상외로 손쉽게 승부가 났다. 3-1 프랑스의 쾌승이다.
8강전의 상대는 브라질이었다. 영원한 축구제국 브라질전에서 보여준 지단의
위상은 이제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할 그에게서는 "회광반조" 이상의 강렬함을 보여 주었다.
이 대회전 브라질을 보고 사람들은 환상의 4중주니 뭐니 떠들어 대었지만 실상 축구를 하는데에 있어서 필요한 건 공격적 재능이 충만한 네 명보단 이 부류의 선수 두명 정도와 성실하고 묵묵한 압박 전문 요원 두명으로 구성하는 것이 실전적으로 훨씬 효율적이다. 축구나 우리의 단체 생활이나 중요한 건 언제나 유기적인 시너지 효과와 상보적인 협력으로 결과물을 뽑아낼 때라야 최선의 목표치가 설정되어 나온다는 점이다. 한 부류의 고수들만 왕창 뽑아 놓아보았자 그건 말 그대로 "빛 좋은 개살구"에 "요란한 빈 수레"일 뿐이다.
프랑스와 지단은 함께 웅비하기 시작했다. 지단 프리킥-앙리 골 결정이란 한 방이 거함 브라질을 "집으로" 돌려 보내며 이번 경기가 지단의 일생 마지막 경기일 거라고 호통을 치던 상대 선수들의 자신감을 한낱 허풍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4강전 포르투갈전에서 승리를 움켜쥐고 결승에서 만나게 된 상대는 비타주리가 가장 좋아하는 특정팀 아주리 군단이었다.
개인적으로 판단해 볼 때 나는 이 경기의 결과는 골키퍼의 실력에서 승부가 갈렸다고 본다.
사실 프랑스가 얻어낸 페널티킥은 약간은 미심쩍은 데가 있었다. 그건 그렇다쳐도 마테라치의 동점골은 바르테스의 정면으로 날아오는 골이었다. 아마 바르테스 이외의 대부분의 골키퍼도 못 막을 것이었겠지만 부폰이라면 막아냈을 것이다. 실제 경기 후반부 지단이 날린 회심의 헤딩슛은 마테라치의 그것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했으며 그 공이 날아가는 궤적까지 마테라치의 골과 흡사했다. 그러나 부폰은 그걸 선방했다. 아마 지단도 놀랐을 것이다. 분명 들어갔을 거라 확신했는데...어떤 사이트에서는 이 때의 지단을 "지단이 눈이 돌아버리더라"고 표현한 문장을 본 기억이 난다.
10년 후 우리는 어쩌면 "펠레 이전시대"-"펠레 시대"-"베켄바워/크루이프 시대"-"마라도나 시대"의 계보를 잇는 "지단시대"와 그 다음 보너스로 "지단 이후 시대"를 거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지단은 그만큼의 가치를 내재한 아주 특출한 플레이어이고 21세기 이후 지금에 이르도록 꼽을 수 있는 단 한 명의 선수로 부족함이 없는 레전드 중의 레전드이다.
그 누가 무어라 한들 그가 보여준 위대함의 가치는 결코 하락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그에 대한 내 평가이기도 하고 신념이기도 하다.
출처 - http://blog.naver.com/jjjb1889/14003687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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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단에 대한 평가
나에게는 그가 가장 위대한 선수다, 그와 비교될 자가 없을 것이다
브라질의 축구 황제 호나우도
그와 함께 플레이한다는 것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제가 본 최고의 선수입니다"
황금의 오른발 데이비드 베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대적할 상대는 아닙니다.
그는 틀립없이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입니다.
팀메이트들로부터 신뢰도 두텁고 테크닉, 전술안, 패스 등
모든것이 일급, 게다가 엘레강트 합니다. 그렇게까지 게임을 컨트롤할 수 있는
미드필더는 그 외에는 없을거예요. 사실, 나도 그의 팬 중 한 사람입니다.
전차군단의 사령관 미하엘 발락
그는 내가 상대한 선수 중에서 가장 완벽한 선수다. 나는 그가 지금 축구계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지치지 않는 활동량 우아한 드리블
최고의 슛팅능력, 게임 장악 능력... 나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지난 시즌 지단이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날린 발리슛을 보았는가 ? 그것은
최고의 선수가 최고의 경기에서보여준 최고의 슛이었다.
맨유의 레전드 로이킨
그는 내가 본 선수중에서 최고의 선수다. 이때까지 그와 같은 플레이어는 본 적이 없다.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 알프레드 디 스테파뇨
다음에 언젠가는 내가 세계 최고의 플레이 메이커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단과 대전해 보고 싶어요.
그와의 대전은 나에게 있어서 커다란 도전이 될것입니다
자신이 자기를 판단해서 지네딘 지단보다 뛰어난 선수가
있을까요? 아마 나는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울것입니다
리버풀주장 스티븐 제라드
저는 죽을 정도로 지단의 플레이가 좋아요. 텔레비젼에서 레알의 경기가
있을때는 반드시 보고 있구요 . 절친한 친구인 호나우도는 지단에게 많은 좋은 패스를 받아서 부러울 뿐입니다.
언젠가 지단과 함께 플레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겟어요
브라질 아드리아누
지금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축구선수는 틀림없이, 지단 유베에 입단한 당시 '지주의 후계자'라고 불렸던 것은 끔찍했어요
체코의 레전드 네드베드
지단은 축구계의 엘레강스. 지금까지 내가 봐온 중에서 가장 최고의 선수입니다. 어쨋든 테크닉이 발군이에요.
보는 사람들 모두를 즐기게 만들수 있는 유일무이한 플레이어라고 말해도 좋겠죠
어쨋든 시합중에 상대팀 선수가 감동한 적도 있을 정도고 우리팀메이트들도 그의 플레이를 굉장히 즐기고 있습니다
레알마드리드 주장 라울 곤잘레스
지주는 현재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입니다. 그는 여전히 다른 별에서 온 선수 같습니다.
30살을 넘겼어도 더더욱 진화를 계속하고 있어요
물론 스트라이커로서 그의 패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최고의 기쁨입니다. 그와 처음 함께
플레이했을 때 그 기분은 믿을 수 없을 정도 였어요. 그러나 이건 대표팀에서 한한 이야기.
'앙리가 레알로의 이적희망을 입에담다' 라는 식으로는 부탁이지 쓰지 말아주세요
FC바르셀로나 티에리 앙리
다른 사람들은 호나우딩요가 최고의 선수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엔 최고의 선수는
레알마드리드의 지네딘 지단이다. 그는 이미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존재
후안 로만 리켈메
가장 존경하는 선수는 펠레도 마라도나도 아닌 지네딘 지단이다
브라질 시싱요
지네딘 지단은 너무나 환상적인 선수다. 그는 항상 나를 매혹시킨다
그는 호나우딩요와는 다른 의미의 최고의 선수이다
아르헨티나의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
지난 10년 간 최고의 선수는 지네딘 지단이다. 그의 플레이는 다른 선수들과 다른 레벨이다
축구황제 펠레
지단과 앙리 중 누가 더 나은 선수냐고? 지단은 이미 최고의 선수이고 ,
앙리는 곧 최고의 선수가 될 선수이다 비교는 무의미하다 게다가 지단을 어느 선수와 비교할 수 있을까...
전 프랑스 국가대표 임마누엘 프티
이탈리아에서 지단이 없다. 지단. 지단이라는 존재의 유무가 이탈리아와 프랑스와의 차이점이다
사뇰
나는 경기 중에 어디로 패스해야될 지 모를 때 지단에게 패스한다
리자라쥐
그의 몸짓과 플레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정말로 배우고 싶다 (세계올스타전 전반후 인터뷰때)
외계인 호나우딩요
그는 축구에 있어서 신적인 존재였지만 인간적인 면을 모두 없애지는 못했다 ( 결승전에서 지단의 퇴장에 아쉬워하며...)
알제리 대통령 압델 아지즈 부테플리카
지단은 독보적이다. 그는 공과 함께 춤을 추는 댄서이자 현역 최고의 선수다. 발락은 아직 그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미드필드에서 지단만큼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선수는 없다
독일 축구의 레전드 베켄바우어
축구와 함께 살아온 나의 인생에서 여지껏 지단같은 선수는 보지 못했다. 경기 직전까지 그를 막을 수 있는 방책을 생각해 봐야겠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스벤 고란 에릭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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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및 절친
와이프
아버지삘나는 지단 형
형제
첫째 아들(엔조 지단)
둘째 아들(루카 지단)
셋째 아들(떼오 지단)
넷째 아들(엘라즈 지단)
베컴아들과 지단
절친
크리스토프 뒤가리 리베리 미하엘 슈마허 베컴 앙리
지단 본가
95년생 엔조 지단 (레알 유스vs바르샤 유스)
지단의 마지막 축구화
첫댓글 3분4초...동영상..엔조지단..아버지 뺨세리는데..ㅋ
진짜 이기적인 스펙이구만
지단은 지단없는 월드컵 프랑스 16강 탈락.........98월드컵우승팀이......지단을 설명해주지 않나요 ?
발롱드로?ㅋ
넷째아들까지있었구나
그 아버지의 그 아들 ㅎㄷㄷㄷㄷ
떼오 너무 귀여워 ㅋㅋㅋㅋㅋㅋ
떼오 얼굴에서 스콜스의 얼굴이보인다
나의 우상 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