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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차이[시차가 있는 글]
2006년 시조창 명인부 상장 5장에는 모두 ‘명인’또는 ‘名人’이라고 되어있다.
어머니는 나보다 16살이 더 많으셨다..
이사진은 글을 쓴 후 한국 방문시 제게 주신 것으로 나중에 첨가한것이 됩니다.
세대차이
올해는 12간지 중 가장 작지만 으뜸으로 꼽는 子자가 들어간 쥐띠의 무자년이 되는데 쥐는 밤에 활동하니 날짜가 변경,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을 자정(子正)이라 하는 것일까?
12가지 짐승 중 ‘子’가 들어간 말을 제일 많이 사용하고 사람들에게도 으뜸가는 현자에게 ‘자‘를 사용하는데 중국에는 공자, 주자, 맹자, 한비자등이 있고 글자위에 갓을 씌우니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수 없듯 인간사회와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글자(字)가 된다.
인간이 끝없이 추구하는 것이 오복인데 끝자락에도 자(多男子)가 들어가는 것은 노동력을 가진 아들이 제일인 셈인데 姉 者 自 ?등 여러 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子’ 의 가치관이 최고이기에 육갑의 첫 번에 온 것일까?
“육갑(六甲)짚는다(touch).”고 하는데 실은 60갑자이며 오른쪽 손의 엄지 손톱로 검지의 끝마디를 시작으로 짚어나가면 새끼손가락의 아랫부분에서 딱 맞아 떨어지니 묘한 인연(?)이 된다.
사람은 소유욕 때문에 사랑이고 물건이고 당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니 손가락 4개로는 당기고 1개로는 미는 셈인데 옛날에는 왜 10진법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5각형은 불안정 이미지인데 미국의 길거리 소화전이나 맨홀커버의 나사는 보통렌치로는 풀지 못하게 5각형인데 복도 길이를 합치면 세계에서 가장 긴 미국 국방성도 동서쪽이 햇갈려서 적국이 넘보지 못하게 5각형으로 만든 후 “Pentagon[오각형]"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일까?
12진법을 반으로 가르면 안정감의 짝수가 나오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열두 띠(zodiac), 열두 달, 열두제자, 꼬불꼬불 열두 고개(인생살이), 12인치(1 feet;한 발길이)등이 있다.
공주에서 오신 ‘빤드시’라고 항상 발음을 하셨던 이한영 중학교 국어선생님에게서 배워서 아는 나왔던 박목월의 오래된 시에도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 닢 피어가는 열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이 있다.
망년회는 동생네 집에서 했는데 친인척을 포함하여 3대가사니 어린아이부터 환갑을 넘긴 노년 까지 합쳐 20명이 넘게 모여들었다.
인터넷으로 뽑은 희귀한 요리로 된 드물게 먹어보는 식사로 포식을 한 후 거실에서 여흥으로 상품이 걸려있는 윷놀이를 하게 되는 데 두 살 반짜리 외손녀가 “나, 는, 싫, 어 요(I don't like it)!”라고 영어로 단어마다 간격을 두며 검지로 사람들을 가리키며 또박또박 오른팔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강력히 항변을 여러 번 반복 하며 외치는 것을 보았는데 어른들은 비록 그의 귀를 거스를지라도 아랑곳 않았고 일제히 일어나는 즐거운 여흥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은 상품이 걸려있기 때문이었다.
영어권에서는 입속에서 혀를 굴리는 조용한 음성에 조용한 환경에서 살던 아이가 겨울철 빈 논에 앉았던 갈 까마귀 떼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소리 비슷한 침이 튀는 함성을 일제히 반복하니 거부감이 일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것으로 1년 전에 할머니가 밥을 떠먹이니 배는 부른데 말을 못하니 궁여지책으로 옆에선 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말을 시작 할 즈음에는 배가 부르면 핫 핫(hot)이라고 여러 번 반복했는데 뜨겁다는 말로 할머니를 속이려했던 것인지 아니면 말이 짧았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단 먹을거리가 가장 중요하니 올리브기름을 발라 구운 김을 좋아 했는데 가장 먼저 배운 말은“김 엔드 밥”이었다.
탁아소에 맡기니 말을 빨리 배우게 되는데 “good job(잘했습니다)”이라고 말하니 그 후부터 여러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가 “굳 잡”이라는 말을 계속 많이 사용 한단다.
탁아소에서 찍은 사진을 내놓으면 여나문명 되는 동료들 이름을 모두 기억 하니 가관이다.
내가 어릴 때는 어머니께서 내 저고리에 빨강색 긴 고름을 겨드랑이 밑으로 둘러서 매어주어도 불평을 못했는데 외손녀는 비록 똥오줌은 못 가릴지라도 싫은 것만은 가릴 줄 알아서 싫으면 싫어한다고 개성이 뚜렷한 아이가 되니 부모님 밑에서 할말을 숨기고 살아온 우리와는 두 배의 세대차이(generation gap)가 있다.
태어나자마자 양가의 할머니 할아버지에 부모 등 여러 명의 사랑을 독차지하니 인기도는 최고 인 셈이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부모로부터 얻어지는 인기도가 높아진 셈인데 1950년대 가족계획이 없든 시절에는 평균 자식이 6명이었으니 밥 먹을 때는 따로 챙기지 않고 양푼에 밥을 비벼 줄을 긋고 자기 몫만큼의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들은 이야기로 어떤 사람은 그가 어린 시절 많이 먹으려고 얇은 알루미늄 양푼을 서로가 당기니 타원형으로 변했다고 했다.
나는 그 당시 사용했던 장인들의 망치 자국으로 울퉁불퉁한 그 방짜 용기(容器)를 골동품처럼 귀중히 보관한다.
한국의 경우 1983년에는 자녀가 2명으로 되니 인구의 팽창이 있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출산율이 1.1명이 되어 4촌이 없어져 버린다는데 평균수명(82.7세)이 길어지니 당분간 인구에는 변화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계속 줄어든다는 것이다.
전초 조짐을 보이는 것으로 지금은 반 지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기야 물자가 귀하여 종이 부족시대를 산 조상들은 상상력을 이용하는 게임이 있을 수 없으니 나무를 깎아서 만든 윷으로 설날의 여흥을 대신 했던 것 같다.
먹고 자고 일만 하던 조상들의 생활상이 500년 동안 또박또박 윷놀이의 ‘도’ 처럼 변화가 없는 불행의 연속이다가 '윷'이나 '모'가 나오면 한 번 더 덤으로 불로소득의 행운이 얻어지니 이 인기게임이 조상들에게는 전통오락으로 딱 맞았던 것은 아닐까?
윷놀이가 끝난 후 영업용 가라오케(업소용은 가정용과 달라 켜고 끄는 메인스위치가 뒤쪽에 위치한다)를 틀어놓으니 손자 손녀는 화면 속에 나오는 가수들의 경쾌한 율동에 동화되어 몸을 신나게 흔드는 것이 아닌가?
살아오는 동안 한번도 여흥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우연히 이날을 계기로 처음으로 생각나게 했다.
지금 4세대가 살고 있는 셈인데 한국에 계시는 어머님께서는 시조를 하시지만 우리들은 윷놀이 아들들은 다이닝룸에 그들끼리 따로 모여 카드를 사용 몸짓을 보고 알아 맞추는 상상력을 키우는 게임, 2년 반 된 외손자와 외손녀 둘은 들은 율동이 가미된 음악 이니 취미가 4가지로 분류가 되는 것이다.
외할머님의 18곡은 ‘강남달.
아버님곡은 ’서귀포 칠십리,
어머님곡은 ‘창살없는 감옥,
나의 곡은 ’삼팔선의 봄‘이 된다.
세대의 흐름은 개울물처럼 변화나 아무생각 없이 그냥 낮은 곳만 찾아서 이리저리 흐르다가 시간이 지나면 물고기도 만나고 교량도 만나고 또 다른 줄기에서 내려온 물을 만나 양이 많아지다가 금방 하늘에서 내려온 연약하고(tender)신선한 빗물을 만나 화합물의 바다가 된 셈인데 내가 생각했던 세대는 동화된 하나의 가족이었는데 지금에 와 자세히 관찰 해보니 순식간에 혼합가족으로 바뀌니 아무리 섞어도 변하지 않는 샐러드인 셈이다.
어머니께서는 시조창을 배우셨으니 동호회원들과 어울려 생활도 엔조이하고 단전호흡이 곁들여져 건강에 도움도 되시니 일석이조인 셈인데 음성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셔서 티끌 없는 순수한 이슬마냥 아직도 카랑카랑하고 깨끗하시어 듣는 이로 하여금 호감을 갖게 한다.
지금생각하면 30년 전의 어머니는 멋쟁이 시었던 것은 아침식사 이전에 화장을 하셔야 밥맛이 난다고 하셨는데 조반을 먹을 때 식품에서 화장품냄새가 나서 나는 불평했고, 화려한 양단 옷은 세탁소에 갖다 맡기면 옷에서 향내 같은 것이 났는데 내가 세탁소를 산후에 보니 비단옷은 물빨래를 하면 탈색이 되니 드라이클리닝을 하니 그 당시의 냄새는 퍼크라는 솔밴트 종류 이었다.
그 후 말년[晩年]에는 살기가 낳아지시니 금비녀, 금목걸이, 금반지, 보석귀고리를 가져셨다.
내가 미국으로 가져온 마지막 상장은 2006년 10월 18일 제천 문화원에서 개최한 시조창 경연 명인부에 혼자 참가하셔서 3등상장과 상금을 받으신 것을 용돈을 보태어 동네친구노인들과 자축 연회를 가지신다고 하셨다.
내용에는 “貴下는 義兵倡義 111周年 堤川義兵祭 記念 第 7回 全國時調歌詞歌曲競唱大會에서 頭書와같이 入賞하였으므로 이에 賞狀과 副賞을 드립니다.”로 되어 있다.
("귀하는 의병창의 111주년 제천의병제 기념 제 7회 전국 시조가사가곡경창대회에서 두서와 같이 입상하였음으로 이에 상장과 부상을 드립니다")
작년에 내가 한국을 방문했을 적에 2006년 한해에 받으신 4개의 상장을 가져왔는데 내가 장자이니 돌아가신 후에는 귀중한 유품이 될 것이다.
나는 시조에 취미가 없고 어머니는 가요에 관심이 없으시니 한 세대일지라도 취미만은 세대마다 대단한 차이가 있음을 이번 망년회 때 외손녀의 외침을 계기로 처음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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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 야유기념이라고 되어있는데 장구를 가지신 분이 어머님이신데
장고[長鼓:긴북]춤학원을 나가셨지만 하차를 하시고 시조창 학원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셨단다.
미국에 오셨을적에 Rockville 소재 Grand Hyatt호텔 볼룸에서 열린 영남향우회에 참석을 하셨다. 사진에서 중간분.
나와 16세 아들이 클레이 추렢사격에서 사대에 있다.
아들은 청소년팀애서 1등을 하여 플로뤼다주의 '디즈니랜드'가 있는 올렌도 왕복비행기표를 땄고 나는 2등상을 받았다.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Bull Run Park Shooting Range 에서 한인 사격대회가 열렸다. 2정 모두 구형의 5연발 엽총.
맨 윗쪽의 엽총은 무광[光]으로 짐승들에게 노출을 피하는것인데
350달러에 팔았다.[30년전의 사진, 지금은 17개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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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글 잘 보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격장에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좋아보입니다.
좋은 글
옛날 사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