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통신 16보> - 월드컵의 함성이 그리워
답답한 가슴 달랠 길 없다.
이곳 상하이 스포츠 채널과 CCTV에서는 매일같이, 그것도 하루 종일 월드컵 축구 경기를 직접 중계하고, 또 재방송하고 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겨우 몇 단어뿐이니 답답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소식을 접해 보면, 우리나라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고 하는데, 거기에 동참할 수가 없으니 또한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다.
내 아무리 이곳에 중국어 공부하러 왔다고 하지만 전 세계가 축제로 즐기는 이 분위기를 나만이 빠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와 2006년 독일월드컵 때도 나는 대구의 명소인 범어네거리에서 붉은악마가 되어 그 즐거움을 마음껏 즐겼더랬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의 흥분을 자아내게 하는 이런 거대한 축제의 물결에는 반드시 함께 해야 속이 다 시원해지지 않겠는가?
매일같이 수업 시간에 가게 되면 한다는 얘기가 모두 월드컵 축구 얘기뿐이다.
어젯밤 있었던 자기 나라 축구 경기와 친구 나라 축구 경기에 대해서는 모두가 한 마디씩 거든다.
이럴 때 우리가 이기고 나면 신이 나고, 또 친구 나라 축구 경기가 지고 나면 같이 애석해 한다.
그러니 이보다 더 세계인과 바로 소통하는 일들이 있을까.
비록 우리 모두가 초급반이다 보니 누구나 할 것 없이 더듬거리며 얘기를 한다 해도 말이다.
게다가 말이 안 통하는데도 서로 기쁨과 아쉬움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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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어떤 식당에는 중국팀이 못 나가도 바깥에 대형 TV를 설치하고 매일 생중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첫 경기가 있던 그 날 우리 부부는 일찌감치 숙소에서 분위기를 잡고 TV를 틀었다.
아니, 그 전에 영빈관 직원을 불러서 항의부터 했다.
영빈관 숙소에 한국 학생들이 제일 많을 텐데 어떻게 한국방송이 나오지 않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 직원도 학교에서 운영책임을 지고 있는 터라 자기도 어쩔 수 없다며, 채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해 보더니, 안타까움만 표시하고 그냥 가 버린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한국 방송이 나올 텐데 정말 아쉬웠다.
어딜 가나 영어 방송은 잘만 나오니 말이다.
그런데, 그 중국 방송에서 어떤 방송은 아나운서가 한 명이 중계하고, 또 어떤 방송은 해설가와 더불어 두 명이 중계한다.
중계방송을 들으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 수가 없다.
우리 선수들은 신인들이 많아서 누가 누군지 알 수도 없고, 반칙을 했다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다가 우리 팀이 한 골을 넣고, 또 한 골을 넣고 할 때는 우리도 흥분해서 죽도록 목청을 높여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쯤 한국 방송 같으면 아나운서와 해설가가 서로 기쁨을 주고니 받거니 하면서 흥분을 하고 있을 테고, 그러면 그걸 듣고 있는 우리도 감정이 북받쳐 어쩔 줄 모를 텐데, 둘만이 얼싸 안고 아무리 기뻐해 봐도 썰렁하기만 했다.
중국 아나운서는 뭐라고 뭐라고 하면서 쉴 새 없이 중계를 했지만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화면만 쳐다봐야 하는 우리는 정말 답답하기만 했다.
(과외 선생님이 중국말로 축구 용어가 어떻게 되는지 설명한 것. 역시 어려워. 히히)
이튿날 과외 시간에 당장 과외 선생님한테 중국 아나운서가 말하는 중국의 축구 용어부터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선생님은 젊은 여자 선생님인데도 불구하고 축구용어를 잘 안다며, 조그만 칠판에 신나게 그림을 그려 가면서 축구 용어를 설명해 주었다.
페널티에리어, 반칙, 페널티킥, 핸들링, 헤이딩슛, 슛, 옐로우카드, 골키퍼, 포워드, 골, 쓰로잉, 그리고 포워드 등 거의 모든 축구 용어를 가르쳐 주었다.
다른 용어는 몰라도 어제 우리나라 경기를 중계할 때 아나운서가 ‘따먼(打门), 따먼’ 하며 소리를 지르던 그 말이 슛이라는 걸 알고 나니 어느 정도 답답함이 가라앉았다고나 할까.
이제 속이 좀 시원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성에는 차지 않았다.
아무리 축구 중계 용어 몇 가지를 알았다고 한들 재미있게 축구를 즐길 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 부부는 다시 인터넷을 찾았다.
이곳 상하이에서 한국인들이 모여서 응원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찾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슬픈 소식이 있었다.
중국이 월드컵을 나가지 못 한 마당에 외국인들이 단체로 거리에 모여서 응원을 하며 시끄럽게 한다는 것은 허락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하이 교민회에서나 몇몇 단체에서 한 곳에 모여서 단체 응원을 하기로 했다가, 중국 공안의 공문을 받고는 모두 취소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법을 선택한 것이 한국인 식당 같은 곳에서 소규모로 응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왼쪽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대형 슈퍼마켓 1004마트, 오른쪽은 중국집 도원식당 포스터)
나는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또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어디가 그런 곳인지 찾아봤다.
그 해답은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홍차오 거리에 가면 그런 곳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짐을 챙기고는 사전 답사에 나섰다.
그 많은 한국인 식당 중에서 우리가 즐길 만한 곳이 어디가 적당할지를 찾아 나선 것이다.
한여름이 가까워 오는지 날씨는 무척이나 더웠지만, 우리는 걷고 또 걸으면서 여러 식당들을 찾아서 돌아다녔다.
여러 식당들마다 월드컵 응원 손님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월드컵 공식지정 막걸리집 OOOO, 대형화면으로 즐기세요."
"2010 월드컵은 OO에서 HD로 즐기세요. 6월 12일 대한민국 첫 경기 선착순 20명 붉은악마 T셔츠 증정, 승리의 함성 하나 된 한국"
식당마다 붉은 전지에다 커다랗게 문구를 넣은 포스터를 만들어 붙이고는 한국을 응원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또 모든 식당들은 위성 안테나를 통해서 그런지 생생하게 한국 방송 그대로를 중계하고 있었다.
게다가 커다란 스크린을 따로 설치한 곳도 있었고, 대형 TV 그대로 중계하는 곳도 있었다.
또 어떤 슈퍼마켓은 ‘가자, 승리의 남아공!’이란 커다란 문구 밑에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고객님들! OO마트가 응원합니다!' 라고 하고는, 자사 상품 세일 소식을 전하고 있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한국인 거리를 한 바퀴 돈 후, 월드컵 응원 장소를 물색하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막상 두 번째 경기인 아르헨티나 경기가 있는 날이 되자 사전 조사한 것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옆 반에서 공부하는 한국인 학생 중 한 명이 자기 집에서 우리나라 학생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학생들이 같이 모여서 응원하기로 했으니 그리로 오라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그만 그렇게 하기로 하고 말았다.
비록 시장 조사는 헛수고가 되고 말았지만, 아는 학생들끼리 같이 큰소리로 웃으며 응원하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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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 스포츠 채널.우리나라와 아르헨티나 경기 중계 화면. 아래에 한국응원 자막이...)
하지만 이 또한 허사가 되어 버렸다.
아르헨티나와 경기할 시간이 다 되어 학교 옆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주머니에 돈이 하나도 없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금쯤 많은 학생들이 모여서 응원 준비를 하고 있을 텐데, 나이도 많은 우리 부부가 빈손으로 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서둘러 여기저기에 있는 현금인출기를 찾아서 몇 번이나 시도를 해 봤지만, 야간인 데다가 은행도 내가 가진 카드와 서로 달라서 현금 인출이 되지를 않았다.
현금을 찾는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동안에 이미 게임은 시작되어 버렸고, 학생들은 왜 안 오느냐고 계속 전화를 걸어왔지만 우리는 도저히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용을 썼던지 땀이 쭈르륵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만 발걸음을 우리 숙로도 다시 돌리고 말았다.
숙소에 돌아오자 이미 경기는 진행 중이었고, 우리 팀은 계속 밀리고 있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중국 아나운서와 해설가의 중계가 시끄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중국 TV의 화면 아래에는 한국을 응원하는 중국인들의 단문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중에는 ‘한국이 힘이 너무 빠졌다’, ‘아시아의 대표 주자, 힘내라’ 등의 응원 메시도 있었지만, 아르헨티나를 응원하는 문구도 엄청 많았다.
아마 이곳 중국인들한테는 아르헨티나의 현란한 묘기 축구가 정말로 멋지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리하여 우리는 두 번째 경기마저도 알아듣지도 못 하는 중국 TV 중계를 통해서 썰렁하게 보고 말았다.
한국에서처럼 신명나는 응원 한 번 해 보지도 못 하고, 벌써 두 번째 경기를 그냥 보내고 말았던 것이다.
게다가 이번 두 번째 경기는 지고 말았으니 그 썰렁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겠고.
다음 번 경기는 새벽에 열린다는데 이 일을 또 어찌 할꼬······.
2010년 6월 20일
상하이에서 멋진욱 서.
첫댓글 어쨋든 열심히 응원합시다. 상하이의 여름은 대구보다 더 할텐데 걱정이군요. 실내는 에어컨 빵빵 나오는지요?
전 회장님, 안녕하시지요? 지금까진 상하이의 여름맛을 제대로 못 느끼고 있습니다. 7,8월이 38도까지 올라간다니까 그전에 도망갈 생각입니다. 실내 에어콘 시원합니다.^*^
중국말로 슛~!! 하고 골인~!! 하고를 뭐라 그래요? ㅎㅎㅎ 이날 저도 무지 열 받았는데 ㅋ~^^
슛~!!은 따먼(打門)이라고 하고요... 골인은~!!찐치우(進球)라고 합니다. 한 골 들어가면 찐이치우(進一球)라고 하죠. 우리나라 아나운서가 외래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여기 방송에는 영어를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팅똥(聽憧)하는데 한참 힘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