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의 토기
청동기시대 하면 대개 ‘화려한 청동기’나 ‘거대한 고인돌’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박하게만 느껴지는 선사토기는 어쩌다 한 번 있을법한 특이한 자료 (예를 들어, 토기에 그림이 그려졌다든지)가 아니고서야 언론보도에 사진 한 장 실리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고고학자는 이렇게 천대 아닌 천대를 받는 그 흔한 토기조각에 늘 주목한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무문토기(무늬없는 토기)는 청동기시대의 가장 대표적이자 보편적인 고고학 자료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우선 토기는 시기 구분의 틀을 제공한다. 무문토기(무늬없는 토기)는 오늘날의 그릇과는 달리 강도가 약해서 잘 깨진다. 그러다보니 다른 도구에 비해 자주 제작하게 되고, 그런 만큼 그것이 가지는 특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 간다. 어떤 한 세대에서 만들어진 토기의 문양이나 형태가 다음 세대의 토기제작에 동일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또 재료의 물리적인 성질상 흙으로 만드는 것은 돌이나 금속에 비해 가변성이 대단히 높아 형태변화가 일어나기 쉽다. 오늘날의 물건을 보더라도 휴대폰이나 자동차와 같이 모델변경이 잦은 것은 다른 제품에 비해 시간에 따른 디자인의 변경이 두드러진다.
다음으로 무문토기는 집단식별 혹은 영역 식별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청동기 시대의 그릇은 오늘날의 그릇과는 엄청나게 다르고, 삼국, 고려, 조선시대의 토기나 도기와도 제작방법이나 유통 면에서 차이가 많다.
요즈음의 그릇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어 광역적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같은 모양의 그릇이 지역에 상관없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생산자와 사용자는 일치하지 않는다. 잘 깨지지도 않을뿐더러 깨지더라도 같은 제품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이미 생산되어져 있다. 또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그릇은 그 형태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선사시대의 그릇은 역사시대나 현대와는 달리 사용자가 직접 생산하고, 파손되면 그때그때 제작하기 때문에 같은 기형의 그릇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모양이 조금씩 바뀔 수 있고, 또 개량에 의해 그럴 수도 있다.
이처럼 무문 토기는 사용자 혹은 사용집단이 직접 제작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사용집단 특유의 습관이나 버릇이 표현된다. 무문토기가 지역이나 시기마다 다양한 토기조합과 형태를 보이는 데에는 이와 같은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또 무문토기는 그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가장 근본적인 자료가 된다. 토기의 기형과 기종, 그것들의 조합관계는 계속해서 변화해 나가면서, 석기와 함께 생활문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무문토기는 음식의 조리, 식사, 저장이라고 하는 생활의 필수품이었을 뿐만 아니라, 조상의 제례나 의례에도 사용되었다.
무문토기(無文土器)란?
무문토기란 모양이 없는 토기와 함께 공렬문(孔列文)이나 구순각목문 등의 문양이 새겨진 토기는 물론, 적색마연토기, 흑색마연토기, 마연토기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태토는 삼한, 삼국시대에 비해 조질(粗質)이지만, 적색마연토기의 경우 대단히 정선된 점토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문양(文樣), 기종(器種)과 기형(器形)
신석기시대의 토기에 비해 무늬가 없다고 해서 무문토기라고 부르기 시작했지만, 사실 남한의 무문토기에는 이중구연(二重口緣), 거치문(鋸齒文), 돌대문(突帶紋), 공렬문(孔列文), 구순각목문(口脣刻目文), 사선문(斜線文) 등의 대표문양이 있다. 이중구연과 돌대문 외에는 도구로 새긴 것이며, 모두 구연부 주변에 한정된다.
이들 각각의 대표문양은 다시 그 속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로 나누어진다. 단독으로 시문되기도 하지만, 2-3개의 문양이 서로 하나의 토기에 복합되어 시문되는 경우도 많아,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다 고려하면 무문토기라고 해도 문양의 종류는 예상외로 많은 셈이다.
무문토기는 신석기시대에 비해 기종이 다양해지는데, 심발(沈鉢: 깊은 그릇), 천발(淺鉢: 얕은 그릇), 옹(甕: 단지), 호(壺: 병), 고배(高杯) 등으로 구분된다. 이들 기종 내에서도 세부적인 형태나 크기에 따라 여러 가지 기형으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기종과 기형은 토기의 지역색은 물론 용도와도 관련되어 있다.
일상토기
주로 주거지에서 출토되는 생활용토기로서 고배형토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종이 포함될 수 있는데, 식기(食器)는 물론 취사와 저장에 사용되었다. 심발형토기의 상반부에 그을음 라인이 형성된 것은 자비(煮沸: 삶고 끓이는 일)에 사용된 직접적인 증거이다. 또 주거지 한 쪽 모서리에 놓이는 대형의 저장용 토기들은 몇 점이 모여서 출토되며, 그 속에서는 실제 곡물이 담겼던 흔적이 확인되기도 한다.
제사토기(祭祀土器)
제사에 사용되는 토기는 주거지, 무덤, 하천이나 구(溝: 도랑, 해자)에서 출토된다. 종류로는 적색마연토기, 채문토기(가지무늬토기), 고배형토기 혹은 대부토기(臺附土器)를 들 수 있으며, 완형이 아닌 편(片)으로 출토되기도 한다.
무덤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적색마연토기가 대표적인데, 토기 자체도 그렇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물에 더 큰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출토되는 위치를 보면, 관 밖에 따로 부장공간을 마련하여 놓거나, 피장자를 안치하고 관(棺: 널)을 덮은 뚜껑 위에 놓기도 한다. 무덤 주위나 퇴적토 속에서 출토되는 토기편들은 장송의례에 사용한 토기를 깨뜨려서 뿌리거나 흙과 함께 묻은 것이다.
지역별 무문토기의 종류
신암리식 토기 - 호형(壺形)토기가 발달, 압록강하류역 미송리형 토기 - 긴 목과 가로 붙은 손잡이와 침선문, 압록강유역-대동강유역, 요동-길림 공귀리형토기 - 동체부에 고리모양 손잡이가 세로로 부착, 압록강상류역과 길림지역 팽이형토기 - 팽이와 유사한 모양, 옹(甕)과 호(壺)가 조합, 대동강유역 가락동식 토기 - 이중구연에 단사선문이 결합, 금강유역 역삼동식 토기 - 공렬문과 구순각목문으로 조합된 토기, 적색마연토기, 남한 전역 흔암리식 토기 - 가락동식 토기와 역삼동식 토기의 요소가 혼합, 남한 전역 송국리식 토기 - 부푼 동체부에 외반(外反)하는 구연부, 호서, 호남, 서부 경남지역 점토대 토기 - 구연부에 단면 원형이나 삼각형의 점토띠를 부착, 남한 전역
편 년
-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청동기실 배진성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와의 대화, 제87회, 2008년 5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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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원문보기 글쓴이: Gijuzzang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