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환의 돈황벽화로 읽는 불교경전
22. 유마경변③-막고굴 제220굴
‘유마경’으로 새롭게 정의된 ‘정토로 가는 관문’
서벽 석가모니불 중심으로 남·북에 아미타·약사여래 정토 배치
예토 벗어나야 도달 가능한 대척점에 정토 자리한 듯 보이지만
동벽 ‘유마경변’ 등장시켜 ‘중생 마음에 달렸다’는 정토관 표현
정토는 어디에 있는가? 중생에게 정토는 차안(此岸)에서 도달하지 못할 염원의 대상인가? 막고굴 제220굴은 석굴에 들어선 참배객에게 끊임없이 정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지난 연재에서 몇 차례 220굴에 들어서서 정토를 이야기했지만, ‘유마경’을 들고 다시 220굴의 입구에 선다.
220굴은 본래 주실의 벽면 전체가 북송 시기에 덧칠한 천불(千佛)로 장식되어 있었다. 1943년 돈황예술연구소가 4면의 천불벽화를 거두어 내니, 그 밑에 잠자고 있던 정관 16년(642)에 그려진 벽화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서벽의 감실에 모셔진 석가모니불상을 주존으로 하고 남벽에는 무량수불이 주재하시는 서방정토를(6회 참조), 북벽에는 약사칠불이 주재하시는 동방정토를 묘사하였다(10회 참조). 이 정토의 세계들은 서벽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와 대척하며, 여기 예토(穢土)의 중생들을 내세와 현세 양면에서 구제한다.
이처럼 220굴에서 공간적으로 정토를 사유하자면, 문득 의문이 들 수 있다. 서방의 아미타불이든 동방의 약사여래이든, 여느 부처님의 세계는 이토록 청정하고 즐거운데, 어째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도하신 ‘지금 여기’는 이토록 청정하지 못하며 괴로움이 가득한 것인가? ‘유마경’에서 사리불은 마치 중생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마침 220굴의 동벽에는 유마경변이 장식되어 있다.
220굴 동벽 유마경변의 전체적인 화면 구성은 지난 회에서 살펴본 막고굴 103굴의 유마경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입구를 사이에 두고 좌측의 문수보살과 우측의 유마힐이 마주 보는 구도로 중심을 잡고, 그 아래 병문안을 온 황제와 각국의 왕자들을 그렸다.
후대의 덧칠로 인하여 마모된 변상의 상태에도 유마힐의 모습은 여전히 뚜렷하다. 중후한 풍채의 유마힐은 화려하게 장식된 평상 위에서 궤안(几案)에 기댄 채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이고 있다. 손에는 변재(辨才)를 상징하는 주미를 들고, 두 눈썹은 잔뜩 치켜올린 채 눈빛은 형형하며, 붉은 입술은 한창 열띤 별론을 펼치듯이 벌리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맞은 편에 수미좌에 정좌한 문수보살의 단정한 모습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그 밖에 103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리불과 천녀를 각각 문수보살과 유마힐 앞에 배치하여 관중생품(觀衆生品)을 표현하고, 곳곳에 유마힐의 신통을 그려 넣어 각 품을 표현하였다. 입구 상단에는 중앙에 의좌불(倚坐佛)을 중심으로 삼존불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아래 남겨진 방제(傍題)에는 이 석굴이 석가모니불(서벽)을 모신 곳이라 명시하고 있다.
또한 내용 중 ‘미륵’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입구 상단의 삼존불은 미래에 성불하는 미륵불의 용화3회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마경’의 유통분에 해당하는 ‘촉루품’에서 경전의 유통을 미륵에게 부촉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20굴은 사바세계(서벽)를 중심으로 서방과 동방, 현세와 내세의 시ㆍ공간적 정토가 응축된 곳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바세계는 예토로서 정토들과 대척점에 놓인 관계이며, 정토는 “지금 여기”를 벗어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세계이다. 이제 ‘유마경’의 정토관에 의해 주실에 장엄된 정토세계는 새롭게 관계짓고 의미를 발현한다.
‘유마경’의 ‘불국품’에서 보적(寶積)이 “어떻게 불국토의 청정을 얻는가?”를 묻자, 세존은 “중생이 곧 보살의 불국토”라고 설하신다. 왜냐하면 보살이 청정한 국토를 취하는 것은 모두 중생을 이익되게 하려는 데서 기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만약 보살이 청정한 국토를 얻고자 하면 반드시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 하며, 그 마음이 청정함을 따라서 곧 불국토가 청정해진다”고 설하신다.
이때 사리불은 내심 의문을 품는다. ‘만약 보살의 마음이 청정하면 곧 불국토가 청정하다고 한다면, 이곳 사바세계는 어찌하여 이리도 부정(不淨)한 것일까? 우리 세존께는 과거에 보살이었을 때 마음이 부정하였다는 말인가?’
세존은 “나의 이 국토는 청정하지만, 그대가 보지 못한다”고 답하신다. 사리불이 이 국토에서 울퉁불퉁한 구릉과 구덩이가 이어지고, 가시와 모래와 자갈과 흙 산 등 온갖 거칠고 추한 것으로 가득한 모습만 보는 것은 사리불 자신의 마음에 높고 낮음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미타불의 서방정토가 성립하는 것은 법장보살이 고해(苦海)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생의 현실에 맞춰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세운 서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중생이 없다면 정토의 필요성도 제기되지 않으며, 중생에 따른 구체적 서원도 성립하지 않으니, 마치 “허공에다 궁궐을 짓는 것”처럼 허망하고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사람의 마음이 청정하면 곧 이 국토의 청정함과 공덕과 장엄을 보게 될 것이라 하신다. 그렇다면 정토의 소재는 결국 중생 자신의 마음에 귀결되는 것이다.
‘유마경’에서 설하는 이와 같은 정토사상을 고려할 때, 220굴의 동벽에 유마경변을 배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더욱이 돈황석굴에서 220굴이 주실의 동벽에 유마경변을 장엄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을 고려할 때, 석굴 조성자의 의도적인 설계 하에 배치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제 220굴 내에서 사바세계는 더 이상 타방 혹은 피안의 정토와 대척점에 자리한 예토가 아니다. 스스로 청정한 마음을 찾지 않으면, 아무리 강력한 서원에 기댄 가피를 받더라도 정토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그곳’일 뿐이다. 반면 청정한 마음을 견지하면, 마치 낮은 습지의 진흙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번뇌의 진흙 가운데에서 불법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을 깨닫는 순간, 차안과 피안, 예토와 정토, 서방과 동방의 구별도 모두 무의미해진다. 220굴에서 유마경변이 입구에 해당하는 동벽에 그려진 이유는, 중국학자 위샹동(于尙東)이 지적했듯이, 진정한 정토에 도달하는 관문은 곧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지나는 것, 즉 중도(中道)의 이치를 깨닫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1659호 / 법보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