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와 분열의 시대,
비통의 기억을 직면하고 나아가는
부드럽고 단단한 한걸음
소설가인 루시는 본인도 이해하기 어려운 심경의 변화로 인해 예정되어 있던 이탈리아 북투어를 돌연 취소한다. 북투어를 하기로 했던 3월이 되자 이탈리아에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뜻밖의 소식이 들려오지만 루시는 그 일이 뉴욕에까지 영향을 끼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바이러스는 3월이 다 가기도 전에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하고, 루시의 전남편이자 친구인 윌리엄은 루시에게 함께 도시를 떠나자고 제안한다. 아직 남편 데이비드의 죽음에서 회복하지 못한 루시, 그리고 아내가 떠난 뒤 찾아온 급격한 건강 악화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이부누이의 존재로 인해 중년의 혼돈기를 겪고 있는 윌리엄은 서로를 구하기 위해 메인의 한 바닷가 마을로 향한다.
돌이켜보면 이상한 점은, 그저 내가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어떻게 모를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24쪽)
작품은 일상적인 대화와 파편적 일화를 통해 모두가 경험했던 팬데믹 초기, 혼란의 풍경을 생생히 그려낸다. 격리와 거리두기, 마트에서의 물건 사재기, 타지역 사람들에 대한 배척, 재택근무, 백신 등…… 쉽게 익숙해질 것 같지 않던 일들에 점점 무뎌지고, 적막과 외로움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가던 기억들을 이야기 속에서 발견하면 물러나 있던 감정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스트라우트는 특유의 절묘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아직 소화되지 않은 장면들을 현재로 소환한다. 때론 또렷이 떠올리기 두려워 “묘하고 노르스름한 색깔들”로 치환되고 마는 극한의 공포와 슬픔의 순간들까지도.
또한 『바닷가의 루시』는 그때 우리 곁에 쉽게 거처를 옮길 수도 없고, 외로울 때 전화를 받아줄 누군가가 부재한,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계단을 오를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러한 곤란과 결핍은 결코 추상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가장 구체적인 묘사로서, 내 가족과 내 이웃에게, 길에서 나와 매일 인사하던 사람에게 일어난 일들로서 무참히 드러난다. 그렇게 스트라우트는 지난한 일이 될지라도, 우리가 고통의 기억을 직면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함께 그 힘겨운 시간을 지나온 모든 이들에게는 분명, 그 기억에서 길어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삶이라는 미지의 아름다움 속
육 피트의 거리를 넘는 일에 대하여
『바닷가의 루시』는 극히 제한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지만, 소설 속엔 전작에 못지않게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루시는 자신의 작품을, 그리고 자신이 지나온 어린 시절의 가난을 온전히 이해하는 밥 버지스를 사랑하게 되고, 그의 아내인 마거릿과도 친해진다. 그들의 자동차 번호판에 “여기서 꺼져 뉴요커! 고 홈!”이라고 써붙인 것으로 의심되는 노인과 정답게 인사하는 친구가 된다. 정치적 성향이나 백신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샬린 비버와 주기적으로 만나 산책하고, 벤치에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서로의 인생사를 나눈다. 쉽게 포옹하거나 만날 수도 없는 딸들과 관계가 완전히 뒤바뀌는 변곡점을 맞이하기도 하며, 평생 알지 못했던 언니 오빠의 진심을 알게 되기도 한다. 언제나 ‘삶’ 그 자체를 온전히 예술로 승화하는 스트라우트의 소설답게, 『바닷가의 루시』에서는 삶이기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상하고 아름답고 슬픈 만남과 헤어짐이 계속된다.
밥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나를 흘끗 보았고, “당신 말 듣고 있어요, 루시” 하고 말했다.
우리는 아름다운 작은 만이 바라보이는 벤치에, 육 피트는 되지 않았지만 거리를 두고 그는 한쪽 끝에, 나는 반대쪽 끝에 앉았다. 태양은 찬란한 노란색으로 빛났다. (115쪽)
어쩌면 이 소설을 관통하는 문장은 “알 수 없다” 그리고 “듣고 있다”일 것이다. 문장 사이의 적절한 여백과 반복, 그리고 투명할 만큼 명료한 대사들은 우리에게 삶이란 도저히 예측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방향으로 마구 흘러가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실을 남긴다. 세번째 부인에게 막 버림받은 전남편과 바닷가 집에 고립되어 함께 반 고흐의 자화상 퍼즐을 맞추게 되는 일. 그렇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우리 앞에 계속해서 펼쳐질 것이기에 인생은 두렵지만 흥미로운 어떤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내가 모르는 세상 쪽으로, 더 멀고 낯선 어딘가로 기꺼이 산책을 떠나보는 것일 테다. 그곳에서 바다의 음색 사이로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것. 그들과 나 사이에 육 피트의 거리―코비드 19의 규제 조치―가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 우아하고 격동적인 소설의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하는 것 역시 그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여기 ‘루시’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는다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거대한 위기 앞에서도, 끝을 알 수 없는 삶이 무작정 두렵기만 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