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출신 변호사" 평범했던 2030 성공인들의 ‘얌체 공부법’
기사입력 2008-01-09 14:35
[신동아]
▼ 대학 때 ‘굿모닝’ 처음 써본 체육특기생, 변호사 되다! - 이중재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뭐, 그렇게 생각했죠”
“개나 소나 사법시험 준비한대.”
올 초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경기 김포시 사우동에 나눔법률사무소를 연 이중재(32·사법시험 46회) 변호사가 7년 전, 사법시험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이랬다.
단지 어려운 시험이어서가 아니라 축구밖에 모르고 살아 학교 공부도 제대로 한 적 없는 그에게 사법시험은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한때 촉망받는 축구선수였다. 김포 통진종고 시절 경기도지사로부터 최우수선수상을 받았고, 체육특기생으로 홍익대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전공 수업을 빼먹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건축학과 입학이 허용됐어요. 그래서 일반 학생들을 접할 일이 많았는데, 제 수준이 한참 떨어진다는 걸 깨달았죠. 한 번은 신촌에서 미팅을 하기로 해서 나갔는데, 약속 장소인 ‘파라다이스’ 카페를 찾을 수 없었어요. 휴대전화도 없을 때라 한참을 헤매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알고 보니 간판이 영어로 씌어 있어 못 찾은 거였어요.”
이 변호사는 ‘Good morning’을 대학 때 처음 써봤다고 했다. ‘러닝’ ‘인사이드’ ‘아웃사이드’ 같은, 입에 밴 단어조차 말로만 할 줄 알았지 쓸 줄 몰랐다.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새는 좀 달라졌다고 하지만, 그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학교에서조차 운동선수는 운동만 하면 된다는 분위기였다.
겉만 대학생이지 기초지식조차 없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던 신입생 시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목뼈가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축구선수로서의 자부심이 많이 사라졌을 때라 재활의지가 없었다. 결국 1994년 8월에 축구를 그만뒀다.4개월 만에 공인중개사 합격. 간신히 1학년을 마치고 결국 휴학했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신설동의 단과학원. 6개월간 중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그해 겨울 군에 입대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1998년에 복학했지만 사정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나마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던 동기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없었다. 제 실력으로 대학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축구도 그만뒀는데 대학을 계속 다닐 자격이 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축구선수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반학생이 될 수도 없는 처지를 비관하며 허우적대기를 1년.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공인중개사 시험 안내서를 접했다. 뭐라도 해보자 싶어 시험공부를 시작했는데, 뜻하지 않게 재미를 발견했다.
“전에 배운 게 없어서 그런지 하나하나 알아가는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특히 민법과목이 그랬는데, 일상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공인중개사 시험 교재를 잡은 지 4개월 만에 자격증을 땄다.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자 자신감이 생겼다. 얼마 후 또 다른 시험 과목에도 그가 좋아하는 ‘민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가 서점에서 본 건 ‘사법시험 가이드’였다. 군대 시절, 고시생들이 신림동에 모여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게 기억나 짐을 싸서 무작정 신림동으로 향했다. 2000년 1월이다.
시간에 대한 강박을 버려라
“고시원에서 처음 6개월은 밥 먹고 공부만 했어요. 근데 지옥이더라고요. 집에 와서 ‘하루 12, 13시간씩 공부하는데 지옥이 따로 없다’고 얘기하니까 아버님이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라’고 하시더라고요. 같은 시간까지 아침 6시에 일어나 밭을 간 양과 8시에 일어나 밭을 간 양을 비교해봤더니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하시면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다 공부에 쓰이는 건 아니니까 효율을 생각해서 적당히 하라고요. 그 뒤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과 공부 양을 따져보니까 제겐 하루 예닐곱 시간이 가장 능률이 높다는 걸 알고 딱 그만큼만 했어요.”
그는 잡념이 들면 펜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머리를 식혔다. 언뜻 듣기에 편하게 공부한 듯하다. 그럼에도 2004년 사법시험 1, 2차에 한꺼번에 합격했다. 그 사이 법무사시험에도 응시해 2002년 ‘수석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굿모닝’도 쓸 줄 모르던 그의 어디에서 이런 저력이 뿜어져 나왔을까.
“그렇게 어려운 시험이라는 걸 몰랐으니까 무모하게 덤빈 거죠. 이것저것 재지 않고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라고 생각한 게 자신감을 북돋운 것 같아요.”
법조문엔 한자가 수두룩하다. 그에겐 한자 또한 영어만큼이나 높은 산이었다. 처음엔 여자친구가 민법책에 나와 있는 한자에 일일이 독음을 달아줬다. 여자친구가 달아준 독음 덕분에 우리말로 읽을 수는 있게 되자 내용을 반복해 읽으며 한문의 의미를 추측했다.
그는 소설책 읽듯 법서를 읽었다. 모르는 단어는 위아래 맥락으로 대충 짐작했다. 여자친구가 옥편 찾는 법을 가르쳐줬지만, 모르는 한자의 뜻을 일일이 찾아볼 순 없었다. 다행히 같은 한자가 여러 번 반복해서 나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독음을 달지 않은 한자의 음과 뜻도 알아갔다. PC방에 갈 때마다 법서에서 자주 봐서 기억하는 한자의 음을 한글로 치고 한자로 변환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짐작한 게 맞는지 확인했는데 틀린 적이 거의 없어 그 방법을 계속 밀어붙였다.
영어 과락, 법무사 수석합격
하지만 2001년, 2002년 연달아 1차에서 고배를 마셨다. 영어가 문제였다. 40점도 안 되는 점수를 받아 과락을 면치 못했다. 뭣 모르고 시작은 했다지만, 이쯤 되면 자신의 능력으론 역부족임을 깨닫고 나자빠져야 하는 것 아닌가.
“아뇨, 오히려 승산이 있겠다 싶었어요. 중·고등학교 수업 제대로 받고,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도 70~80점 받는 걸,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도 구별 못하던 제가 공부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40점 받으면 잘한 거 아닌가요. 좌절할 이유가 없었지요.”
하지만 주위 사람들 생각은 달랐다. 아무래도 그가 영어를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아 보였다. 2001년 사법시험 1차 불합격 소식이 전해지자, 고시촌에서 가깝게 지낸 형이 그에게 법무사시험을 보는 게 낫겠다고 충고했다. 그는 2개월여 남겨두고 법무사시험을 준비해 1차에 합격, 그 이듬해 수석으로 최종 합격했다.
법무사시험 합격은 그에게 또 한번의 자신감과 더불어 부담감을 안겨줬다.
‘법무사 수석합격자가 사법고시엔 떨어졌다고 하면 법무사 실력을 얕보겠지….’
이제 영어라는 산을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왔다. 이 변호사는 그 산을 어떻게 넘었는지 말하기를 머뭇거렸다. 2004년부터 사법고시 1차 영어시험이 토플로 대체됐는데, 이 변호사는 토플 교재 한 권을 통째로 외웠다고 털어놨다. 그의 표현대로 ‘무식하게’ 영어를 자빠뜨리고 나자 2004년 사법시험 1, 2차에 잇달아 합격했다.
토플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우다니…. 이 변호사는 축구선수 시절에도 경기에서 지고 나면 그날 경기를 처음부터 돌이켜보며 패인을 찾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 머리가 좋다 안 좋다보다 집중력과 노력의 차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흔히 천재성이다 하는 것도 결국 집중력과 노력의 결과인 것 같아요. 사법연수원에서도 불성실한 사람은 보지 못했거든요.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노력을 쏟아 부으면 안 될 일이 없죠.”
사법시험에 통과한 사람들이 시험 준비를 위해 읽은 책의 양을 따져보면 대략 20만~30만쪽에 이른다고 한다. 그냥 한번 세어보기도 어려운 양을 읽고, 이해하고, 그중 상당부분은 암기도 해야 할 터. 초등학교 이후로 공부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그가 이 많은 양의 책을 읽어냈다는 것부터가 놀라운 일이다. 이 변호사는 “늦었지만 내게 맞는 걸 찾고, 좋아서 열심히 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묵묵히 기다려준 부모님
“법은 정해진 답이 있다기보다 여러 학설이 있고 저마다 나름의 논리로 타당성을 증명해가는 게 재미있었어요. 수험생이 보는 책은 보통 20~30년의 연구 결과를 함축시킨 거라 그 안에 내포된 의미를 다 이해하려면 적어도 10번은 읽어야죠. 민법책은 30번쯤 읽었어요. 같은 문장도 다시 읽으면 방점이 찍히는 위치가 달라지는데 그런 게 오히려 재미있었어요.”
이 변호사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듬해 결혼해 두 살짜리 딸을 뒀다. 딸을 어떻게 키울 생각일까.
“부모님이 초등학교만 나오시고 강화에서 농사지으세요. 공부 못한 게 한이었기에 제가 축구하겠다고 했을 때 반가워하지 않으셨죠. 하지만 결국 제 손을 들어주셨고, 제가 축구를 그만두고 무모하게 사법시험을 보겠다고 했을 때도 묵묵히 지켜봐주셨어요. 전 제가 이룬 것들이 저 혼자 힘으로 된 거라고 생각지 않아요. 부모님이 그렇게 믿고 기다려주셨기에 가능했죠. 저도 제 자식에게 그럴 거예요. 제 만족을 위해 자식을 키우진 않을 거예요.”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너무나 특이한 이력이라 퍼왔다.
한국의 현실 상 대학교때 까지 운동선수를 했다면 학문의 기초는 거의 없다고 봐야하는데 그 어려운 법전을 읽고 해석했다는
자체가 실로 엄청난 노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어를 정복하기 위해 토플책 한권을 다 외웠다니...후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의 가능성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운동선수라고 하면 주된 편견이
"머리가 나쁘다" 라는 것이 주된 의견 아닌가. 나는 좀 다르게 보고 싶다.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을 빌리자면 운동선수는 운동감각적지능이 대단히 발달했다고 볼 수 있다. 가드너의 이론에서는 8가지
지능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단편적인 지적수준(언어, 수리 등)만이 지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고의 선수가 되려면 지능이 뛰어나야 한다. 순간적인 판단력, 공간인지능력, 상황이해력 등 최고의 운동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은 매 순간이 생각의 연속이다. 그것이 자동화되고 훈련된 육체와 결합되는 것이다. 실예로 박지성, 박찬호, 박세리 등 한국을 대표하는 운동선수들의 지능은 절대 나쁘지 않다. 또한 거기에 고도의 집중력과 포기하지 않는 집념을 가지고 있다. 만약 이들이 운동을 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했다면 분명히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한국의 교육여건상 운동선수들이 공부를 안해서 그런 것이지(여러가지 사정이 있다. 경기 출전이나합숙훈련 등)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최소한의 학습기회의평등을 주지 않는 한국의 학원스포츠의 엘리트 체육위주의 정책이 문제라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모든 선수가 프로로 진출할 수 없기 때문에 대학에서도 일정의 학점을 받아야 경기에 출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선수생활을 마치더라도 다양한 직업군으로의 선택을 가능하기 하기 위함이며 최소학습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주는 다양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외국의 선수들은 한국처럼 엘리트 위주의 전문적으로 길러진 선수들 보다는 생활체육을 통한 대표선수 선발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스포츠선진국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직업이 다양하다. 변호사, 의사, 약사, 회계사 등...참 부러운 체육정책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엘리트체육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실정이 안타까울 뿐이다. 운동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 국가대표로 차출되고 선수도 올림픽이 끝나면 자신의 본업으로 복귀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것인가. 운동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수촌에서 오로지 운동만 해서 메달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인 우리나라와는 운동을 받아들이는 입장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의 운동은 생활 그 자체이며 운동을 사랑할 줄 하는 진정한 "스포츠인"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체육정책이 생활체육 위주의 건강중심의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운동선수도 공부할 수 있는 어건을 만들어 주어야한다. 그것이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되더라도 낙오된 선수들에게 다른 진로를 열어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초등~대학 스포츠까지의 체육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또한 그 계획도 체계적이고 치밀해야 한다. 독일이 70년대 골든플랜을 세워 생활체육 위주의 정책으로 전환하였듯이 한국도 그럴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국민소득도 2만불 시대에 도달했고 이제는 건강과 스포츠가 중요하게 인식되어 질 시기 이므로 레저, 스포츠 전반적인 시설 확충과 프로그램 개발에 힘써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의 체육정책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많지만 여기서 줄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