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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환영(幻影)못 ―
*괴로움을 이기려면 죽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 나폴레옹 (프랑스의 황제)
나하르로 출발한지 오늘도 삼일 째. 우리 일행은 진영와 크레인의 말싸움과 계속되는 전투(?)로 지쳐 있었다. 그리고
또...
" 에이씨- 또야? "
" 싫으면 가버리던지. "
" 누가 싫대? 싸우면 될 거 아냐 싸우면!! "
" 둘 다 그만 안 둬!! "
진영과 크레인의 말싸움을 말려주는 사람은 인화뿐. 일행모두 인화에게 매번 얼마나 감사히 여기는지... 자존심 센 진영과 지기 싫어하는 크레인 덕에 모두들 귀가 멍멍할 지경이다.
" 지금은 전투중이니 좀 그만둬!! "
" 칫- "
" 선두는 딘이 맡아 줘. 마차 후위는 아르. 그리고 우측은 네타와 엘. 좌측은 나와 브릿이 맡을게. 민트와 린은 가운데서
움직이지마. "
" 이봐- 나는?!! "
진영은 크레인을 한마디로 무시해 버렸다. 우리들은 진영의
말대로 섰다. 지금 우리의 상황을 얘기하자면 자객들에게 포위된 상황.
각자 충실히 싸움에 임했다. 영이와 인화는 두 사람 몫은 충분히 하니까 문제없었고 나도 검술은 좀 익힌 편이라 당하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울이도 정령으로 도와주니까. 좌측은..
미라의 화려한 단검 던지기 솜씨. 지팡이를 창처럼 휘두르던
진영은 겁먹고 도망가는 몇몇 자객을 보고 외쳤다.
" Bind!! "
그리고 또 다시 외쳐지는 시동어.
" Flame! "
마법이 발동하자 거의 대다수의 자객들에게 도망가려는 조짐이 느껴졌다. 이럴 땐..
" Fire ball!! "
" Ice piece!! "
" 실프! 사라만다! "
" Cyclone!! "
" Ice missile!! "
" Wind storm "
" 와우- 다들 대단하네-! "
크레인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로써 자객들은 몰살. 살려두면 되돌아가서 우리들에 대한 정보를 넘길 수도 있기 때문에 살려둘 수가 없었다. 사람을 죽인다는 게 꺼림직하기는
하지만 적이고. 이젠 너무 당해서 짜증나 죽을 지경이다.
"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야? "
모두들 그래도 열심히 수련한 덕에 약간의 개인차는 있지만
기초적인 공격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울이는 정령이 있으니 별 필요가 없고, 은지는 사제이기 때문에 신력을
사용해서 마력을 사용하면 융합이 되지 않아 위험하다고 하는 바람에 익히지 못했고...
[ 휘익- ]
어디선가 단검 하나가 진영을 겨냥해서 날아왔다. 가뜩이나
크레인 덕에 열 받아 있던 진영은 바람 마법을 이용해 날아오는 단검의 방향을 손쉽게 바꾸고는 말했다.
" 제길, 마침 기분도 더러운데 잘 걸렸어. 피보다도 붉고 아름다운 화염 속의 용이여. 볼 수 있지만 만질 수 없는, 만질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는 신비한 존재여- "
진영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단검을 던진 쪽 풀숲에서
자객 세 명이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능숙한 솜씨로 진영과 인화, 영이를 공격을 했다. 하지만 셋 모두 간단하게 피해버렸고 약속이나 한 듯 인화와 영이가 뒤로 빠져주자
그 때까지 주문을 읊조리던 진영의 공격이 이어졌다.
" 그대의 포효를 나에게 빌려다오!! 화이어 브레스! "
진영이가 뻗은 지팡이로부터 엄청난 화염이 자객들을 향해
쏟아졌다. 일대가 대 폭발이 일어났다. 진영은 보란 듯이 크레인을 한번 노려보고는 말했다. 크레인은 넋이 나가 있었다. 아무래도 필요이상의 힘을 쓴 이유는 크레인 때문인 것
같다.
" 가자- "
" 응... "
다들 축 쳐져서는 다시 말에 올랐다. 하루에 두세 번씩이나
급습하는 자객들에다가 때론 괴물들까지... 며칠씩 밤새며
달릴 때보다 더 힘든 것 같다.
"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 다들 힘내. "
저 말을 몇 번이나 들은 건지... 하긴 주위 풍경을 보니 나하르가 멀지 않은 것 같긴 하지만...
" 조금 있으면 해가 질 거야. 물가 근처에 물가가 있으니 그곳에 닿으면 야영할 준비하자. "
열심히 지도를 들여다보던 미라가 말했다.
" 연못이야? 아니면 호수? "
영이가 기대에 찬 듯이 물었다.
" 작은 샘 같아. 그런데도 이름이 있네... 이름이 환영(幻影)못?? "
" 이름이 너무 웃긴다. 들어본 것 같기도 하긴 한데... "
" 지금 환영못이라고 했어? "
영이와 미라가 웃으며 얘기를 나누는데 진영이 놀란 듯이
물었다.
" 응. "
" 휴- 거기 말고 쉴만한 곳 없어? "
" 그런 거 같애. 여긴 평원지대라... 왜? 좀 씻을 수도 있고
좋잖아- "
미라의 물음에 진영은 아무 말이 없었다. 왜 그러지? 무슨
사연이라고 있나??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 무렵 우리는 그 샘가에 다다랐다.
샘가에 다다르자 진영은 모두에게 경고했다.
" 결코 물 속을 들여다보지마-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물도 퍼서 사용해. "
" 왜?? "
" 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했더니 여기가 바로 그
샘터였군. "
영이가 갑자기 손뼉을 치며 말했다.
" 무슨 소리야? "
" 언젠가 책에서 본 건데 이 샘은 자기가 가장 그리워하는 보고싶어하는 원하는 모습을 보여줘. 한마디로 환영을 보여주는 거지- 물론 그것뿐이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일단 한번 그것에 빠지게 되면 헤어나지 못하고 샘만을 계속 바라보거나
물 속에 몸을 던진다나 봐. "
" 그래. 아주 바보 같은 일이지. 존재하지도 앉는 헛것을 바라보고 빠진다니. "
영이의 말에 진영은 덧붙이듯 말하며 조소했다.
" 자- 다들 야영준비하자. 몇 명은 나뭇가지 좀 주워 오고 몇
명은 요리하고 몇 명은 물 좀 길어오고... "
영이와 크레인은 나뭇가지를 모으러 갔고 은지와 울이는 요리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진영과 미라는 잘 자리를 마련하느라 돌이나 뾰족한 것들을 없애고 풀을 베어다 깔았다. 나와 인화와 린은 물을 긷기로 하고 물가로 다가갔다.
" 기분 나쁘다- 얼른 긷고 가자. "
" 응. "
샘은 되도록 보지 않으려고 애쓰며 가져온 통에다가 물을
길었다. 다행히도 큰 통 하나를 마차에다 싣고 왔는데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은. 근데 좀 궁금한데? 내가 가장 원하는 모습은 뭘까?
" 언니- 샘.. 들여다보고 싶어요?? "
린은 내 옆에 다가오더니 호기심 어린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 으응? 아니... "
" 거짓말. 보고 싶으면서. 보고 싶으면 그냥 보면 되잖아요.
"
" 아니- 보고 싶지 않아- 자, 물도 다 길었으니 가자. "
나는 린에게 빙긋 웃으며 손을 잡고 얘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물을 당연히 인화가 한 손에 번쩍 들고...
맛있게 저녁도 먹었고, 비록 손발과 얼굴, 머리감는 것 정도가 다였다고는 하나 씻기도 했기에 기분이 매우 좋았다. 혹시 퍼 온 물 속을 들여다봐도 그런 게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 좋아- 기분도 좋은데 오늘은 내가 특별히 불침번을 서지-
다들 자. "
나는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음 번 불침번은 인화가 서기로 하고 다들 잠이 들었다. 막상 다들 잠이 들고 혼자 남게
되자 조금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자꾸만 뒤쪽에 있는 샘에 마음이 끌렸다.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샘... 어느새 나는 샘 근처까지 가 있었다. 마치 뭔가에 홀린 듯이 조심스럽게 손을 물에 담그며 샘을 들여다보았다.
-인화
" 하암- 몇 시지? 내가 불침번 설 때가 된 듯한데.. 잠을 하도 조금 자버릇해서 이젠 잠도 안 오는 건지. 네타야- 시간
안 됐어도 내가 일찍 설 테니 먼저 자- "
내 말에 들려오는 건 적막한 바람소리뿐이었다.
" 네타야? 왜 대답이 없어?? "
' 졸다가 잠들었나?? 이상하다. 그럴 리 없을 텐데... '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하나의 잠자리 쪽으로 향했다.
" 네타야- 어? 아무도 없잖아?? 이 시간에 얘가 어딜 갔지?? "
난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런데 너무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 Light! "
헤헤... 이럴 땐 마법 잘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니까!! 나는
작은 빛으로 주위를 비추어보았다.
" 어? 네타야- 거기서 뭐해? "
혼자서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 거지? 얼마 멀지도 않은 거린데 내 목소리가 안 들렸나? 다른 땐 크다고 뭐라고
하면서.
" 네타야- 뭐해?? 어서 와서 자- "
하나는 내 말을 씹은 채 계속 그 무언가를 보는데 열중했다.
치- 내 말이 그렇게 맛있나?
" !! "
잠깐!! 저...저긴... 샘이잖아! 저 바보 뭘 하고 있는 거야-
난 하나를 향해 잽싸게 달려갔다. 하나는 더 고개를 숙여 샘을 보았다. 완전히 물에 빠지기 일보직전...
" 유하나-!!! "
난 아슬아슬하게 하나는 낚아챘다. 휴- 너무 당황했더니 본래 이름을 말해버렸네. 아무도 들은 사람 없겠지??
" 이 바보야- 너 뭐 하는 거야!! "
하나는 동공이 풀린 채 멍한 눈으로 날. 아니,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 네페르타리! 아니- 유하나! 정신 차려!! "
-하나
유...하나? 그건, 그건... 내 이름?
" 이...인화? "
" 휴- 그래 이 바보야- 이제 정신이 든 거야?? "
날 마구 흔들던 인화는 내 말에 날 놓은 채 주저앉으며 말했다.
" 왜...왜 그래?... "
" 왜 그러냐니- 네가 저 샘 들여다보고 빠지려고 하는 거 구해줬더니! "
샘? 아... 그러고 보니 샘을 들여다봤었지. 나도 모르게...
"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잖아- 뭘 그렇게 열심히 봤어? "
내가 본 거? 내가 본 거는... 내가 본 건... 그건, 그거는...
" 하...나야?? "
" 으응? "
인화는 황당한 얼굴로 날 불렀다.
" 왜 그래? "
" 뭐가? "
" 너 왜 울어. "
" 내... 내가? "
나는 손을 들어 눈가를 닦아냈다. 물기... 내가 울었나?
" 왜 그래? 무슨 일이야?? "
" ...... "
눈물을 흘렸다는 걸 알게 되자 좀 멍했던 정신이 돌아오는
듯 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 흑- 흐흐흑... "
" 하나야... "
계속 우는 나를 인화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놔둬 주었다.
나는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리려는 듯이 울고 또 울었다.
" 이제 다 울었어? "
" ...... "
" 왜 그래? 무슨 일이야?? "
" 나 저 샘을 보고 뭘 봤는지 알아? "
" 뭘 봤는데? "
" 처음에는 양아빠, 양엄마... 그리고 다음에는 학교에서 너희들과 떠들고 있는 평범했던 내 모습... 그리고 우리 세계에서 대학 졸업날 친 부모님과 너희들과 웃으며 또 다른 친구들과 웃으며 사진 찍는 모습. 내가 원했던 건 아름다움도 이런 힘도 아니었던 거야- 난 그저... 그저 그렇게 모두와 행복하기를 원했던 것이었는데... 그랬는데... "
" 하나야... "
" 이젠 모두 끝이야-! 이젠 이루어 질 수 없어-!! 우리 세계로 돌아갈 방법도 알 수 없고 설사 돌아간다 해도 난 이미 사망처리 되었을 거고.. 그리고.. 내 고등학교 시절도 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시기도 이미... 이미... 사라진 거야... 흑-
난... 나는... 이런 걸 원한 게 아닌데!! 내가 원했던 행복은
이게 아니었는데!! "
왜 나는 부모님도 내 친구들도 잊어버린 채 행복했다고 믿었었던 걸까? 사실 난 행복했던 게 아닌데...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하룻밤의 꿈 같이 느껴지는 이 세계에의 일들... 난
재미있는 일이라고 만화처럼 게임처럼 생각했지만 사실 이건
현실이었던 거야. 세월은 흘러 5년이나 지나버렸지만 내 시간은 흐르지 않았고 그래서 난 이게 현실이라는 걸 인식할
수 없었어...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내 시간은 아직 16살 그대로 멈췄던 거야... 내 성장하지 않는 겉모습처럼 내 모든
것이 이 세계로 오면서 성장을 멈춰 버렸던 거야... 왜... 이제서야 알 수 있게 된 걸까...
" 하나야... "
인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내 손을 꼭 잡고 인화도 같이 울었다. 멈춰버린, 정지해버린 우리들의 시간에 가슴 아파하며...
문득 의문이 들었다. 다른 얘들은 우리보다 먼저 이 사실을
깨달았기에 변했던 걸까? 이 인정할 수 없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변했던 것일까?
-인화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하나에게 난 할 말이 없었다. 괜한 위로는 마음만 아프게 할 뿐... 난 그저 조용히 가만히 앉아 하나의 울음이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 이제 다 울었어? "
" ...... "
내 물음에 하나는 대답이 없었다.
" 왜 그래? 무슨 일이야?? "
" 나 저 샘을 보고 뭘 봤는지 알아? "
예상치 못한 질문...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내게 더없이 궁금한 점...
" 뭘 봤는데? "
" 처음에는 양아빠, 양엄마... 그리고 다음에는 학교에서 너
희들과 떠들고 있는 평범했던 내 모습... 그리고 우리 세계에서 대학 졸업날 친 부모님과 너희들과 웃으며 또 다른 친구들과 웃으며 사진 찍는 모습. 내가 원했던 건 아름다움도 이런 힘도 아니었던 거야- 난 그저... 그저 그렇게 모두와 행복하기를 원했던 것이었는데... 그랬는데... "
" 하나야... "
" 이젠 모두 끝이야-! 이젠 이루어 질 수 없어-!! 우리 세계로 돌아갈 방법도 알 수 없고 설사 돌아간다 해도 난 이미 사망처리 되었을 거고.. 그리고.. 내 고등학교 시절도 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시기도 이미... 이미... 사라진 거야... 흑-
난... 나는... 이런 걸 원한 게 아닌데!! 내가 원했던 행복은
이게 아니었는데!! "
" 하나야... "
끝내 하나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나도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말 대신 난 하나의 손을 꼭 잡았다. 나도 하나의 그 말을 들으니 너무 슬펐다. 이 세계에 온 뒤로 한번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난 강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진정한 강함이 아니었고
난 컸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도 큰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버지, 어머니라 믿고 따랐던 사람들은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이었고 내가 노력해서 얻었다고 생각했던 힘도 인간들의 운명을 선택해야 한다는 대가로 주어진 것이었다. 내가 믿었던 것들은 부정되고... 보이는 것은 냉혹한 현실뿐. 그래, 사실 난 아직 16세의 어린 소녀에 불과했던 것이다.
-미라
하나를 부르는 인화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눈을
뜨여졌고 난 몸을 일으키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그 때, 누군가 나를 잡는 손이 있었다.
" 이카미스... "
진영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는 일으키려던 몸을 다시 뉘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주변을 둘러보니 왠지 다들
깨어있는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하나를 부르는 인화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 후에는 몇몇 대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의 흐느낌이 느껴졌다. 인화? 아니, 인화라기 보다는 하나일 꺼 같은 느낌이 더 들었다.
울음소리는 한참동안 이어졌다. 잠시 그친 울음소리. 또다시 말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진 않았지만.
얼마 후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러움에 복받쳐, 슬픔에
복받쳐서... 소리지르는 말...
" 이젠 모두 끝이야-! 이젠 이루어 질 수 없어-!! 우리 세계로 돌아갈 방법도 알 수 없고 설사 돌아간다 해도 난 이미 사망처리 되었을 거고.. 그리고.. 내 고등학교 시절도 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시기도 이미... 이미... 사라진 거야... 흑-
난... 나는... 이런 걸 원한 게 아닌데!! 내가 원했던 행복은
이게 아니었는데!! "
대충 무슨 이야기일지 예상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흐느낌...
난 별이 빛나는, 정말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눈은 감고 있어도 사실 잠들어 있지 않을 진영을 향해 말했다.
" 네가 언젠가 내게 물었지? 난 무작정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처음에는 간절히 원했지만 이제는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난 계속 방법을 갈구하고 있다고. 바로
그 이유가 뭐냐고 말이야... 나 이제 알 것 같아. 그 해답을... 답은... "
나는 눈을 잠시 감았다가 떠서 다시 밤하늘을 보았다.
저 밤하늘은 아름답지만, 우리의 세계에 비해 너무나도 아름다운 밤하늘이건만... 내게 아름답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주지 않아... 우리 세계에서의 밤하늘은 이렇게 무수히 많은 별들이 있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아름답지 않았지만, 별
하나만 보아도... 하다못해 평범한 달 하나를 보더라도... 아름답다는 생각은 물론 그와 함께 뭔가 가슴이 뭉클하고 감동
받는 듯한 느낌도 들었었어...
지금의 난 능력 있고 뭐하나 부족하다라고 할게 없지만 그게 다야. 더 이상 내가 모든 길드원들의 최고의 위치에 있다는 뭔가... 자부심, 벅찬 느낌 같은 것은 전혀 들지 않아. 그래서 길드의 가장 중요한 명단을 넘길 수 있을 정도로 길드에 소홀히 할 수 있었던 거야. 남에게 맡겨버릴 정도로. 안
그랬다면 내가 힘들게 이룬 이 길드를 그렇게 쉽게 생각을
할 순 없었겠지. 남에게 내팽개칠 생각은 전혀 못했겠지. 노력했어도, 그만한 결과를 얻었어도 그 뭔가가 없었기에 책임을 느끼지 못했어.
난 이 곳에 있지만 또한 이 곳에 존재하지 않아. 이 곳에서
살고 있는 난 감정을 느끼지만. 우리 세계에서와 같이 느낄
순 없어... 이 세계를 우리의 세계와 같이 느끼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 이 세계는 우리가 존재할 곳이 아니니까.
그래서, 그래서... 내 눈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껴도 내 영혼은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고. 내가 높은 자리에서 부족함 없이 있었다 해도 내 영혼에게는 그 자리가 평범한 자리와 다름없었던 거야...
-진영
하나의 흐느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마치 세상이 그대로
정지한 것처럼 느껴졌다. 멈춰버린 것처럼...
" 이젠 모두 끝이야-! 이젠 이루어 질 수 없어-!! 우리 세계로 돌아갈 방법도 알 수 없고 설사 돌아간다 해도 난 이미 사망처리 되었을 거고.. 그리고.. 내 고등학교 시절도 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시기도 이미... 이미... 사라진 거야... 흑-
난... 나는... 이런 걸 원한 게 아닌데!! 내가 원했던 행복은
이게 아니었는데!! "
난 겁쟁이다-
두려웠다. 모든 것을 안 뒤, 진실을 안 뒤... 하루, 이틀, 삼일... 그리고 한달, 두달, 세달... 그렇게 1년, 2년... 전혀
변하지 않는 나. 언제까지나 성장하지 않을 날 보는 것이 두려웠다.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세계에서는 기억이 떠올려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난 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성별까지도... 내가 이 세계에 처음 와서 보았던 반짝이는 호수의 색으로. 밤에 보았던 호수의 색을 머리색으로, 낮에 보았던 호수의 색으로는 눈동자 색으로. 그 깨끗하고 아름다웠던 호수처럼- 내 마음속 두려움도 깨끗이 지워
내주기를 바라며...
왜... 우리는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선택되어야만 했을까?
왜... 우리는 원하지도 않는 것을 얻게 된 걸까?
왜... 우리는 원하지도 않았던 것에 많은 것을 잃어야 했을까?
왜... 우리는 이런 괴로움을 느껴야 하는 걸까?
왜... 우리는 존재할 수 없는 곳에서 헤매는 걸까?
왜... 우리는 육체도 영혼도 성장할 수 없는 걸까?
왜... 우리는 지난 17년간의 삶을 잃게 된 걸까?
왜... 우리는 변해야만 했을까?
왜...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선택을 해야 할까?
왜... 우리는... 도대체... 왜!! 어째서!! 이런 삶을 살아야만
하는 건지...
......머릿속을 맴도는 건 단지 「왜」라는 말 뿐...
매일 밤 나는 바라본다. 아름다운 밤하늘을. 그러나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기에 더 없이 슬픈 하늘을...
-울이
피곤했다.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피곤했다. 하지만 나는 어쩐 일인지 그 와중에 잠에서 깨어났다. 무언가 슬픈 느낌에... 그리고 들리는 소리, 소리들... 두 사람의 오가는 대화
중 들리는 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가 유일하게 들을
수 있었던 건...
" 이젠 모두 끝이야-! 이젠 이루어 질 수 없어-!! 우리 세계로 돌아갈 방법도 알 수 없고 설사 돌아간다 해도 난 이미 사망처리 되었을 거고.. 그리고.. 내 고등학교 시절도 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시기도 이미... 이미... 사라진 거야... 흑-
난... 나는... 이런 걸 원한 게 아닌데!! 내가 원했던 행복은
이게 아니었는데!! "
내가 원한 행복...
난 가끔 꿈을 꿨다. 너무나도 그리웠던 시절을... 그 땐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더없이 행복했고 즐거웠던
시절... 밝게 웃고 장난치고 떠들 수 있었던 시절을... 그들
속에 있었기에 난 항상 행복했었고, 항상 밝을 수 있었다. 그
때는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리라 생각했고 그렇게 지냈다.
그리고 어느 날 혼자가 되었을 때, 꿈이라 믿고 싶은 현실은
정말로 냉정했고 그 만큼 무서웠다. 처음 보는 종족... 멸시하는 시선들... 자꾸 움츠러들고, 웃을 수 없게 된 나... 내
나약함이 원망스럽고 괴로웠던 때, 어쩌면 난 그 때 벌써 내가 원한 행복을 포기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영이
인화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어쩐지 일어서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귀가 밝은 나는 모든 이야기들을
다 들을 수 있었다.
" 이젠 모두 끝이야-! 이젠 이루어 질 수 없어-!! 우리 세계로 돌아갈 방법도 알 수 없고 설사 돌아간다 해도 난 이미 사망처리 되었을 거고.. 그리고.. 내 고등학교 시절도 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시기도 이미... 이미... 사라진 거야... 흑-
난... 나는... 이런 걸 원한 게 아닌데!! 내가 원했던 행복은
이게 아니었는데!! "
하나의 이 말이 끝나는 순간 난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 우리가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이젠 이루어 질 수 없는 소망들이고 우리 세계로 돌아갈 방법조차 알 수 없는 상황... 꿈이라고 애써 생각해 왔던 건 현실이고. 이제 더 이상
현실은 우리가 그것을 꿈이라고 받아들이길 원하지 않지.
알 것 같아- 이제는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선택을 해야 될 날이 머지 않았다는 걸. 왠지 그냥 그런 느낌... 그리고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공포도 차츰차츰 다가온다.
자고 싶지 않아- 이대로 자버리면 우리들의 미래를 볼 것
같아서. 느끼고 싶지 않은 괴로움을 느낄 것 같아서... 지금의 내가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은지
" 하나야.. "
' 인화 목소리?? 아직 밤인 것 같은데 왜 벌써 깬 거지?
아... 불침번이어서 인가?? '
" 이젠 모두 끝이야-! 이젠 이루어 질 수 없어-!! 우리 세계로 돌아갈 방법도 알 수 없고 설사 돌아간다 해도 난 이미 사망처리 되었을 거고.. 그리고.. 내 고등학교 시절도 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시기도 이미... 이미... 사라진 거야... 흑-
난... 나는... 이런 걸 원한 게 아닌데!! 내가 원했던 행복은
이게 아니었는데!! "
' 이...이건... 하나 목소리 같은데... '
비교적 하나와 인화 쪽에 가까이 있었던 나는 고개를 조금
돌려 둘을 보았다. 샘 근처... 하나는 매우 서럽게 울고 있었다. 인화도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고. 대충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을지 예상이 됐다. 나는 살그머니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풀벌레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한 밤이었다. 기분이
씁쓸했다. 문득 예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너무 괴롭고 슬플 때, 신이 왜 내게 이런 운명을 주었는지
신조차 미워지고 원망될 때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거라. 네가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너와 그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너는
그것만으로도 축복 받은 아이란다.」
나도 하나처럼 괴로워할 때 신전 한쪽 구석에서 울고 있는
나를 향해 프로이드 대사제 님이 해주신 말씀이다. 지금 내겐 이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나를 제외하고도 여섯
명이나 있다.
모두들 이런 현실을 원망하고 있을 테지만 난 원망은 그만
두기로 그 때 결심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은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악영향만을 끼칠 뿐이니까. 이 여섯 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현실을 극복할 힘을 받은 것이니... 아마 모두들 다 뛰어나고 강하기에, 이 사실을... 절실히 필요해지기
전에까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모포 속에 있는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여느 때보다도 간절히 진심과 염원을 담아 모두를 위해 기도했다.
모두... 내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괴로움을 딛고 홀로 설
수 있기를, 자신을 믿고 서로를 믿을 수 있기를, 뒤에만 연연하지 않고 앞을 향해 달려나갈 수 있기를...
그리고 지금의 고통이 후일의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기를...
<<7>>
― 나하르 ―
*인간이란 거의 전부가 머지 않아 비료로서 땅 속에 묻힌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벌레가 먹고 녹이 슬고 도둑이 들어가 훔치는 재물을 모으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 솔로 (그리스의 정치가·시인)
-미라
" 하암- 다들 잘 잤어? "
" 응- "
다들 왜 이렇게 힘이 없는 건지...
" 얘들아-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내가 기운 나게 노래 불러줄까?? "
" 해봐-!! 와아!! "
크레인은 박수까지 치며 내게 말했다. 흠흠- 그럼 이 꾀꼬리께서 한 곡 뽑아야지-!
" 요리보고∼ 조리 봐도∼ 흐음∼ 알 수 없는∼ 둘리∼ 둘리∼ "
" 브릿-!! "
아아- 아파라...
" 야- 아프잖아- 그렇다고 가방을 던질 것까지는... 너 내 목소리를 시샘하는 구나? "
" 네 목소린 트럭째 갖다줘도 사양이야- "
인화는 날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분명해- 내 천상의 목소리를 시샘하는 게. 흥∼
" 저리 안 꺼져? "
" 왜 그래? 도와 주겠다는데.? "
휴- 또또 시작이군.
" 네 도움 따윈 필요 없다니까! "
" 왜 도와주겠다는 데도 그래? 남 성의를 그렇게 무시하는
게 아냐. "
" 네 성의 따위는 무시해도 상관없어. "
도대체가... 저렇게 싫다는데 크레인은 왜 자꾸 달라붙는 거야? 게다가 진영은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지 왜 저렇게 까다롭게 구는 건지- 쯧-
" 왜 내 성의는 무시해도 되는 건데? "
" 얘기할 가치가 없는 인간이니까- "
" 당연하지- 난 인간이 아니라 엘프라고. "
" 그래. 말을 정정하지. 얘기할 가치가 없는 엘프니까- "
" 그-- 만--- 해--------!!!!! "
역시 언제나 수습은 인화구나. 어쨌든. 그 뒤로도 둘간의 몇
번의 말다툼이 있은 후 우리는 겨우 사태를 수습하고 출발을
할 수 있었다.
" 브릿- 뭘 그렇게 열심히 봐?? "
옆에 있는 은지가 물었다. 아- 지금 좌석(?)을 간단히 말하자면 인화와 진영은 한 말에 한 명씩 타고 영이와 크레인, 린이 마부 석에 끼어서 탔고 하나, 울이, 은지와 나는 마차에
탔다.
" 편지- 저번에 길드에 갔더니 내가 오면 전해 주라고 했다고 편지를 주더라고. "
" 아- 그래. 누구한테서 온 편지인데? "
" 네히라고... 길드를 맡기고 온 사람이야. "
" 응- "
나는 계속해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뭐... 내용이라고 해봤자 거의 불평불만. 어차피 내가 길드에 있을 때도 난 거의
하는 일이 없었고 대체로 네히가 다 해결했으니까.
" 네타는 뭐 하는 거야?? "
" 음- 서류 확인. 아무리 내가 집을 비었다지만 이제 내가 주인인 이상 서류가 통과하려면 내 확인이 있어야 하거든. 내가 언제쯤 어딜 지나가니까 보내놓으라고 하면 그곳으로 서류를 보내주니까... "
" 응... "
그래서 하나가 마을에 들를 때마다 어딜 갔다오는 건가? 편지를 다 읽은 나는 다시 지도를 펼쳤다. 지금이 여기쯤이니까...
" 얘들아- 잘하면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겠어. "
" 정말?? "
" 응- 지름길을 찾았어. 여길 봐봐- 이 강을 이렇게... 가로질러 가면 며칠의 시간을 벌 수 있어. "
나는 얘들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말했다.
" 하지만 그렇게 큰 강을... 우선 배가 없잖아- 설사 여객선을 탄다해도 이 말과 마차는?? "
" 그래서 잘하면 이라고 했잖아. 그리고 이거 그냥 팔면 되지
않을까? 나중에라도 다시 사면되니까. "
서류를 뒤적거리던 하나가 갑자기 물었다.
" 거기 강 이름이 뭐야? "
" 나하시르트강. "
" 좋은 방법이 하나 있어- 그 강으로 가자. "
하나는 우리를 한번 쓱 쳐다보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마차 밖으로 머릴 내밀고 진영은 불렀다.
" 이카미스!! 지름길이 생겼어- 나하시르트강으로 가- "
" 지름길? 강을 건너게? "
" 그래- 좋은 방법이 있으니 그리로 가- "
결국 우리는 강으로 향했다. 막상 도착해서보니 말이 강이지.. 바다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컸다-
" 헤엣? 이게 강이야 바다야-?? "
" 얼간이- 강이란 소리 못 들었냐? "
" 얼간이라니!! 너 아까부터 자꾸 나보고 얼간이, 얼간이 하는데 얼간이가 도대체 무슨 뜻이야- "
아... 이 세계에서는 얼간이라는 말이 없나?
" 모르니까 얼간이라는 거다- "
" 그게 무슨 소리야!! "
끝내 진영은 발광(?)하는 크레인을 무시해버렸다. 그래그래- 우리한테도 도움 주고 현명한 방법이야.
" 자- 모두들 가자. "
하나는 앞장 서 가며 말했다. 그리고 우리보고 기다리라며
어떤 건물로 들어갔다.
" 어이- 빙- "
저...저건 또 무슨 소리래?
" 네가 자꾸 나한테 얼간이라고 하면 나 너한테 빙이라고 할
꺼야- "
" 빙이 무슨 뜻인데?? "
옆에서 울이가 물었다.
" 응? 엘어 중에 얼음의 빙(氷)말이야- 쟤 꼭 얼음이 연상되니까- "
겨우 그걸 지은 거라고 지은 건가. 하긴 발음상 좋지는 않지만... 꼭 우리 세계 말 중에 빙X―차마 쓰지는 못하겠음- 그래도 소설인데...―이 떠오르는 군. 흠흠-
항상 느끼는 건데 여기의 언어체제는 참 특이하다. 옛날 엘프들이 썼던, 그러니까 고대 엘프어. 일명 엘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한자로 되어있고 마도사들이 쓰는 마법어는 거의가 영어. 그리고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은 발음상 한글이고
문자는 한글과 전혀 다른 것이다. 그나마 발음상이라도 한글이 여기 말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문자 익히는데 좀 고생
아닌 고생을 했지만. 지금도 모르는 글자가 너무 많다.
" 겨우 생각 수준이 그것밖에 안되니 얼간이지- "
" 그러는 넌 생각 수준이 얼마나 높기에 그러는 건데 이 빙아-! "
" 너 같은 건 감히 얼씬도 못할 정도의 수준이다. "
잠잠하다 싶더니 또 시작이군.
" 도대체 왜들 저렇게 싸우는 건지- "
은지는 한숨을 푹푹 쉬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울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 사람은 누구나 천적이 있대. 아마 이카미스의 천적은 크레인이었나 보지. "
" 크레인은 사람이 아니잖아. "
" ...... "
" ...... "
이럴 땐 뭐라고 말해야 하나.
" 얘들아-! "
때마침 하나가 나왔다. 음- 하나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
" 자- 가자. 어느 배죠? "
" 저기. 저쪽의 배입니다. "
우리는 대답한 사람이 가리키는 배를 보았다. 어...엄청난
규모... 장난 아닌걸.
" 네타야- 어떻게 된 거야?? "
" 몰랐어? 우리 집안은 대상인 집안이야- 당연히 무역업은
필수고. 이런 강이라면 우리 배가 몇 척이나 있는데... "
" 아... "
그래. 잊고 있었다- 하나는 갑부란 걸.
" 자- 다들 가자- 아마 마차와 말도 실을 수 있을 거야- "
우리들을 배로 향했다. 와- 배라곤 월미도에서 코스모스호
밖에 안 타봤는데 이게 웬 횡재더냐-!!
배는 우리들을 태운 채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 시간이 얼마나 걸릴 거 같애? "
" 글쎄 이 강 건너면 바로지? 이 강 건너는데 한 두시간 정도면 될걸? "
" 음... "
진영은 골치 아프다는 듯이 머리를 짚으며 크레인을 흘깃
쳐다보았다. 크레인은 배 가장 앞쪽에 서서 마구 소리지르고
있었다.
" 이카미스- 왜 그래?? "
" 그게... 나하르의 영주가 초대한 건 신의 사자야. 그런데...
"
" 그런데 뭐?? "
" 휴- 지금 우린 라티엘이 빠진 신의 사자라고. "
그게 무슨 소리지? 라티엘이 빠진... 그렇지만 울이는 여기
있잖아?
" 무슨 소리야?? "
" 모르겠어? 울이를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그런데 저 얼간이가 있으면 어떻게 해- "
아... 크레인은 엘프였지. 울이를 엘프라고만 믿고 있고.
" 하는 수 없지 뭐... 사실대로 말해. "
울이는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 그래도 괜찮겠어?? "
" 응... "
진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 크레인이 우리들 쪽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 와- 배라는 거 정말 재미있다! 그런데 다들 왜 그렇게 심각한 분위기야?? "
" 얼간이는 몰라도 돼. "
" 뭐...뭐야!! 빙! 너 정말 그 딴 식으로. "
진영은 크레인의 말을 깨끗이 무시하며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일행도 하나 둘 따라서 들어갔다.
" 야- 빙! 너 그렇게 날 무시할 꺼야? "
" ...... "
" 야- 빙! 너 이제 내 말도 무시하는 거야? "
이럴 때 보통 우리라면 말을 씹는다 먹는다 등으로 표현했겠지. 그리고 진영은 지금 말을 씹는 게 아니라 마법을 준비하는 것 같은데.
" 크레인... 할 말이 있는데. "
" 응? 왜 라티에르?? "
순간 크레인은 마치 한 마리의 말 잘 듣는 개 같아 보였다.
" 나 사실 인간이야. "
" 응?? 무...무슨 소리야?? "
크레인의 황당해 하는 물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진영의
주문이 들려왔다.
"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거짓- 그대의 모습을 부정하나니... "
" 빙!? 뭐, 뭐 하는 거야? "
" 절대적인 힘이며 어둠보다 두렵고 빛보다 찬란한 진실이여! 내게 모습을 드러낼 지어다. "
주문이 끝나자 울이는 엘프의 모습에서 원래 우리가 아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 라...라티에르? "
" 라티에르가 아니라 라티엘이야- 신의 사자 중 한 명. "
" 거...거짓말. "
항상 낙천전인 크레인도 이번에는 정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모두들 심각한 얼굴로 그 다음 크레인의 행동을 예상해보았다. 과연 크레인의 행동은?
" 아- 알았다! 빙! 너 그런 식으로 치사하게 나올 꺼야? "
" ?? "
무...무슨 소리야... 갑자기!! 진영도 할 말을 잃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크레인을 노려보았다.
" 야- 너. 라티에르의 모습을 인간으로 바꾸어 놓고 「사실은 인간이니까 포기해라-」 그렇게 하려고 했던 거야? 내가
그런 잔꾀에 넘어갈 꺼 같애? 어떻게 꼬드겼기에 라티에르가
내게 거짓말을 하게 만든 거야!! 어서 라티에르를 본 모습으로 돌려놔!! "
" 역시... 얼간이 맞군. "
진영은 그 말을 끝으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저런 바보.
사실을 말해줘도 안 믿다니.. 도대체 뭐야- 이 황당한 전개는... 울이도 정체가 탄로 나는 것이기에 나름대로 심각했을
텐데. 이건 너무 어이없잖아!!
" 야-!! 너 라티에르 돌려놓고 가라니까!! "
크레인은 진영을 따라 뛰어나가며 소리질러댔다. 남은 우리들... 할 말을 잃었을 따름이다.
배에서 내릴 무렵. 대략 두 시간 동안 울이를 본래 모습으로
돌려놓으라며 난리 치는 크레인을 말리느라 무지 지쳐있었다. 하지만...
" 돌려놓으라고!! "
" ...... "
계속 묵묵히 씹는 진영. 아- 존경스러워- 우리는 귀가 멍멍해 죽을 지경인데.
" 앗- 빙!! "
순간 크레인은 진영을 제치고 진영의 옆을 지나가던 어떤 남자의 손목을 비틀었다. 남자의 신음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 으윽- "
[ 채챙- ]
경쾌한 쇳소리와 함께 은지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 저...저건 칼이잖아?? "
" 이것 봐- 나도 도움이 되는 데가 있잖아? 나한테 빚진 거다. "
" 쳇- "
진영은 크레인의 도움을 받은 것 때문인지 얼굴이 뭐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 누가 보냈어? "
" ...... "
멱살을 잡은 진영의 질문에 그 남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저렇게 성질 더러워져 있을 땐 안 건드리는 게 상책인데.
" 말 안 하면 여기 이쪽 손가락부터 하나하나씩 부러트려주마. "
" ...... "
진영은 화가 났는지 그 남자 손가락을 잡고 힘을 주...려 하는데 남자가 지레 겁먹고 소리질렀다.
" 말할게요- 말할게요-!! "
" ...... "
" 브루인경이요.. "
브루인이라면.. 나하르의 영주?? 그자가 왜..??
" 나만 이냐? "
" 아...아니오. 당신을 암살하고, 네페르타리님을 납치해오라고 하셨습니다... 그...그리고 아르나드님과 카르딘님는 기회가 되면 암살하라고. "
왜 우릴 초대해 놓고는??
" 여긴 아무래도 괜히 온 것 같군. 반란 같은 건 애초에 없었을 거야- 그런데... 날 노리는 건 왕위 때문에 그런 것 일 테고... 아르와 딘도 그렇겠지만. 네타는 왜? "
" 우리 집 재산이 탐났겠지- 우리 집 재산정도면 나라도 살
수 있을 테니... "
돈이 그...그렇게 많단 말이야??? 그런데 왕위라니??
" 그런데 왕위는 무슨 소리야? "
" 아. 너희들한테 말 안 했지... "
진영은 신경질적으로 멱살을 쥐고 있던 남자를 구석으로 집어던지며 말했다.
" 들은 건 딘뿐인가.? "
" 아- 나 딘한테 들었고 네타한테도 말했었는데... "
영이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 그럼 너희가 길가면서 말해 줘- 어서 가자- "
결국 나는 인화를 통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진영,
영, 인화, 하나 모두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었던 거야?? 이런... 그런 자리는 내가 딱이라구- 딱!
" 아- 이 아름다운 미모와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내가 왕위자리에 딱인데... "
" 브---------릿----!! "
치- 인화 무서워서 어디 말이나 꺼내겠어∼?
" 빙-! 너 그러면 잘하면 왕이 될 수도 있다는 소리네? "
" ...... "
" 나중에 왕 되면 나 잊지 않고 불러 줄 거지?? "
" 꿈 같은 소리해. "
" 너 나한테 빚진 거 갚아야지-! "
" ...... "
지...진영이 말싸움에서 지다니... 이...이런 일이...
[ 타악- ]
그 때 갑자기 진영이 지나가던 옆 사람에 팔목을 잡아당겼다. 그 사람의 손에는 예리한 단검이 들려있었다. 그 때 인화가 놀란 듯이 말했다.
" 어? 너도 잡았어? 나도 지금 방금 여기 한 명... "
인화는 팔을 뒤로 비틀어 잡은 한 남자를 가리켰다. 진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휴- 젠장, 왕 좀 해보겠다는 데 귀족이라는 게 아주 잘도
대접해주시는군. 도대체 몇 명이나 숨겨논 거야? "
" 이게 마지막인가봐- "
영이가 재빠르게 하나 쪽으로 다가가 한 사람을 발로 걷어차며 말했다. 그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린 채로
어디론가 도망가 버렸다.
" 더 이상 주변에서 느껴지는 살기가 없거든. 나한테 숨겨봤자지. 자- 어서 가자. "
영이의 말에 진영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브루인 영주의 저택으로 향했다.
" 어서 오십시오. 신의 사자 여러분- "
우욱- 저...저건 뭐, 뭐야... 기름이 덕지덕지한 저 아저씨는...
" 감사합니다. 미리 보내주신 환영인사는 잘 받았습니다 "
진영은 비꼬는 듯한 말투로 띠껍게 말했다.
" 무...무슨 말씀이 신지? "
" 시치미 떼지 마시죠. 부둣가에서 검을 몰래 쓰는 실력이 뛰어난 자 여럿이 마중을 나왔더군요- 아주 맘에 드는 환영이었습니다. 저희는 이만 피곤해서 쉬도록 하겠습니다- 그 자의 엄청난 환영 덕에 무지 피로하군요. 용건은 내일 듣도록 하죠. "
진영의 말에 브루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옆에 있는 울이에게 조용히 귓속말로 물었다.
" 저렇게 막 하대해도 되는 거야? 그러다가... "
" 걱정 마- 저자는 우리들보다 신분이 훨씬 낮으니까- 우린 말 그대로 신의 사자잖아? "
울이는 걱정 말라는 듯이 내게 웃으며 말했다. 곧바로 우리들은 쉴 방으로 인도되었다. 한 사람당 방 하나- 와- 천국이
따로 없네-!!
그 날밤- 우리들은 위험할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진영의
충고를 듣고 잔뜩 긴장한 채 잠들었지만 예상외로 별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저 기름덩어리 아저씨와 같이 식사중이다- 휴-
" 모두들 많이 드십시오. 이렇게 저의 영지에 찾아와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
저 기름덩어리 제발 웃지 좀 말았으면 좋겠어. 느끼해서 식사를 못 하겠잖아!!
" 네페르타리님. 그새 더 아름다워지신 것 같습니다. "
" 별 말씀을. 감사합니다- "
하나는 벌레 씹은 듯한 얼굴로 마지못해 대답해주었다.
" 현자 이카미스님. 지난 밤 편하셨는지요. "
" 어제와 같은 식의 깜짝 파티가 있지 않을까 좀 걱정했지만그런 대로 잘 쉬었습니다. "
진영의 가시 돋친 말에 기름덩어리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졌으나 이내 실실 웃으며 은지에게 말을 걸었다.
" 대사제 스페민트님, 음식이 입맛에 맞으실 지 모르겠습니다. "
" 아... 예. 맛있습니다. "
" 다행이네요- 아르나드님, 실제로 보니 소문보다 더 멋있으시네요. "
" ......가...감사합니다... "
영이는 잠시 얼어붙었다가 간신히 말했다. 저 기름덩어리...
아첨은 상대를 봐가며 해야지. 영이는 사실 여자라고.
" 라티엘님, 전 대륙에 한 명밖에 없는 정령사 분을 뵙다니
영광입니다. "
" 아. 저야말로... "
늦잠 자는 크레인. 안 끌고 나오길 잘했지... 안 그랬으면
울이가 사실은 엘프라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해댔을
거야-
" 카르딘님, 실제로 보니 더 늠름하시네요. "
" 네에... "
왠지 인화가 기운 없어 보인다- 좋은 말로 하면 늠름하다고
나쁜 말로 하면 힘맨?!?
" 숨겨 논 정보꾼이었다니 가장 놀랐던 분이에요 브릿티나님. 실제로 보니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
" 아- 그거야 뭐... 윽- "
" 예? 아니 왜 그러십니까?? 어디가 편찮으시기라도... "
" 아...아닙니다... 하하... "
이뛰- 김인화. 발은 왜 밟아!! 말도 못하게 해- 인화 옆에
앉은 게 잘못이야!!
기름덩어리 덕에 좀 느끼한 아침을 끝낸 나는 잠깐 짬이 생인 틈을 타 길드에 다녀오기로 했다. 얘들에게 말한 뒤 나는
옛날을 회상하며 마을 쪽으로 향했다. 하도 오랜만에 와봐서... 이곳에 길드가 어디 있더라.
결국 얼마간을 헤맨 뒤 겨우 길드를 찾을 수 있었다.
" 여기 길드의 두목이 누구지? "
" 누구냐? 감히 두목을 찾다니. "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놈이 날 노려보며 말했다.
" 흠- 모든 길드의 두목이라고 해야 하나? "
" ...... "
그 남자는 별 미친 놈 다 본다는 듯한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기분 나쁜 걸... 나는 빠르게 그 남자 허리에 달려있는
검을 채가서 그 남자 목에 갖다대며 말했다. 사실 말이 빠른
거지 그 남자 눈에는 전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 스피드는 그야말로 전광석화 아니겠어∼
" 브리제베나라고 하면 알아듣겠나? "
" 서...설마... "
" 그 설마가 맞을 테니 여기 두목이나 불러- "
그 남자는 어느새 태도가 확 바뀌어 내게 꾸뻑 인사까지 한
뒤 길드 안쪽으로 허둥지둥 뛰어갔다. 그리고...
" 브리제베나님! 어서 오십시오. 여긴 웬일로? "
" 그것보다 다리가 아픈데... "
" 아. 이쪽으로 들어오십시오! 이봐- 어서 의자 갔다 드려!!
"
다들 놀라 허둥지둥 대며 바삐 움직였다. 난 어떤 한 놈이
가져다 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 지나가는 길에 들렀을 뿐이야- 그 보다 궁금한 게 있는데.
"
" 네- 얼마든지... "
" 이 영지에서 혹시 반란의 기미가 있나? "
난 우선 애들이 알아보다고 한 것부터 물어보았다.
" 글쎄... 조사해본 건 아니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죠. "
" 왜지?? "
" 브루인이라는 영주가 워낙 사람들을 못살게 굴어야죠. 그보다 악덕한 영주는 없을 겁니다. 필요하다면 자세히 조사
해다 드릴까요? "
" 그래. 간단하게 해줘. 될 수 있다면 지금 즉시 해줬으면
해. "
두목이란 놈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휴- 결국은 우리들은 괜히 여기 온 거란 소리군. 왠지 열 받는데?
" 아! 그리고 정말 자세하게 조사해 줘야 할 게 있어. "
-인화
" 얘들아- 나왔어! "
미라가 밝게 웃으며 우리들이 모여있는 방안으로 들어왔다.
" 어때? "
" 이상무-! "
진영의 물음에 미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자 하나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 그럼 그렇지- 역시 시간 낭비였어. 괜히 여기까지 와서는
헛고생이나 하... "
[ 콰당-! ]
" 카르딘니임-!! 카르딘니임-!!!!!!! "
하나의 말 도중 갑자기 문이 엄청난 굉음을 내며 열렸다. 그리고 눈물까지 그렁그렁한 채 소리 지르는 저 소녀는...
" 세...세레나? "
" 카르딘님!! 몇 일 동안 별일 없으셨죠?? 정말 걱정이 되어서... "
이...이럴 수가... 세레나가 여길 어떻게...
" 그 동안 제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세요? 흑- 그 기나긴 날을 생각하면... "
윽-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세레나! 여긴 어떻게 온 거야? "
" 전하께서 신의 사자가 브루인경의 성으로 향했을 것이라고. 그곳에 가면 카르딘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셨어요- "
휴- 나는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하께서 말씀하셨다는
데 뭐라 하리요.
" 그 동안 잘 지내셨지요? 어디 다치진 않으셨어요? 식사는
제대로 하셨는지.. "
세레나의 물음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니지.
대답할 시간이 없었다. 물음이 쉴새없이 계속 날아오는 바람에... 휴- 걱정이 태산이군. 다른 얘들은... 처음에는 황당한
듯이 보고 있다가 나중에는 다들 얼굴이 뻘개져서 웃음을 참느라들...
" 어이-! 다들 너무해!! 늦잠 잔다고 나만 빼놓고 아침 먹기야?? "
그 때 마침 등장한 또 하나의 골칫덩어리...
" 어이? 다들 손으로 입 가리고 뭐해? 그리고 어? 딘? "
" 으응? "
" 그 여자 애는 누구야?? "
" 아... 이 사람은... "
크레인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내게 매달려 있는 세레나님을 보았다. 마침 옆에 있던 울이가 대답해 주었다.
" 그 전에 얘기한 적 있잖아- 딘의 애인. 세레나님이셔- "
이...이런... 울아-!!
" 아- 그렇구나. 우와- 정말 귀여운 애인이네? "
" 크레인- 그게 아니라... "
그러나 내 변명은 말도 하기 전에 무참히 씹혔다.
" 안녕하세요? 세레나라고 해요- 카르딘님 친구 되시나요? "
" 아... 응. 만나서 반가워- 난 크레인이라고 해! 딘은 좋겠다 이런 애인도 있고. "
" 그게 아니라... "
" 아니긴- 좋으면서. 다들 이런 때는 자리를 비켜주는 게 예의라고- "
내 말은 무참히 씹은 크레인의 말에 모두들 자리를 떠났다.
" 헤헤- 어때? 나 고맙지? 좋은 시간 돼! "
마지막 말과 함께 크레인은 문을 닫으며 나가버렸다. 저 쓰벙놈!! 이런... 욕이 또 도지는 구나. 힘들게 고쳤는데...
" 세레나- 있잖아. "
" 왜요? 카르딘님?? "
내 말에 세레나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날 올려다보았다.
으으-
" 아...아냐. 저기... 난 일이 있어서... "
" 카...카르딘니임―!!! "
난 세레나를 뿌리치고 눈썹이 날리도록 토꼈다. 내 신세가
왜 이리 됐노...
" 딘! 세레나님은 어쩌고? "
" 미...민트... 나 좀 살려줘∼ "
그 때 마침, 그 무엇보다도 공포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카르딘니임∼♡ 어디 계세요?♡ "
" 하하핫... 나중에 보자. "
은지는 재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은지가 저렇게 빠를 줄은... 결국 나는 오전 내내 세레나를 피해 도망 다녔다. 그러나... 지금 브루인경과 우리 신의 사자 7명이 함께 나눌 얘기가 있기에 모인 이 자리 덕에 난 간단히 붙잡히고 말았다. 물론 지금 같이 들어올 순 없어서 문 밖에서 날 기다리고 있겠지.
" 브루인경, 저희를 부른 것에 대해 이유를 알고 싶군요. "
" 이유를 듣고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
진영의 물음에 브루인은 움찔하며 굽실거리며 말했다.
" 저희를 너무 과소평가 하신 것 아니십니까? "
" 예? 무슨 말씀이 신지?? "
브루인의 말에 진영은 고개를 돌려 미라에게 눈짓을 주었다.
" 나하르는 강이 근접한 만큼 엄청난 경제적 이익이 있는 영지죠. 그런 곳에 빈민은 다른 마을에 비해 약 32%가 더 많습니다. 레이클린 전체적으로 볼 때 재산적 이익이 세 번째로 많은 도시인데 반해 빈민은 끝에서 두 번째로 많더군요.
물론 빈민이 제일 많은 도시는 경제적 이익이 가장 적은 산지지역이며 괴물의 출몰까지 많은 티르가였구요. 이것은 물론 공식적으로 보고된 거짓 결과가 아닌 사실적인 결과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곳 사람들은 그런 헛소문보다 먹고 살
길에 더 관심이 많은 듯 하군요. 조사된 결과 실제로 반란의
여지가 있으나 그것은 악마니 뭐니 하는 헛소문보다 악덕 영주에 관한 불만이 원인인 것으로 보입니다. "
" 어...어떻게... "
" 모르셨습니까? 브릿티나는 국가에서 숨겨놓았던 최고의 정보요원이란 것을. "
놀라워하는 브루인을 향해 하나는 비꼬는 듯이 말했다.
" 이제 저희를 왜 부르셨는지 알고 싶은데요? "
브루인이 말을 하지 못하자 영이가 나서며 말했다. 모두들 엄청 화가 난 듯이 보였다. 간만에 쉴 수는 있었으나 그것보다는 한시라도 급한 문제 때문에 치를 곤욕에 생각해서 일 것이다. 물론!! 난 더 불만이다. 이 곳에 안 왔으면 세레나도 안 만났을 거 아냐!!
" 그...그건... 여기 계신 분들은 반란이라는 것을 막기 위해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도움을 구하고자... "
흥- 뚫린 입이라고 막말하는군. 나는 뻗치는 열은 참을 수가 없었다.
" 우리가 무슨 당신 같은 악덕 영주를 뒤치다꺼리나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입니까?!! 저희는 어디까지나 소문에 관해
들떠 있는 민심은 안심시키고 그 소문의 주모자를 찾아 내는 것이 일입니다! 그런 뒤치다꺼리를 원하시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을 알아보시죠! "
휴- 오랜만에 옳은 소리하려니 힘드네- 민심을 안심시키고
소문의 주모자를 찾는 다라... 이거 신의 사자의 공식적인 의무라며 외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요긴하게 쓰이네-
" ...... "
" 좋습니다- 저희가 막아드리죠. 일단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도 뭐하고.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
하나는 선심 쓴다는 듯 거만하게 말했다.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수그리고 있던 브루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우리들은 모두 놀라서 하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작 리더격인 진영이 가만있었기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 무...무엇입니까? "
" 삼일간 이 성의 모든 책임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
브루인은 잠시 고심하는 듯 해 보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어 서류를 만들고 도장을 받았다. 다들 방을
나온 뒤 은지가 물었다.
" 네타!! 도대체 어쩌려는 거야- "
" 이 곳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 그랬어. 이렇게 그냥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잖아? 어차피 우리들도 돌아다닌다고 뾰족한 방법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잠시 이곳에
머무르면서 조사를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모두들 은근히 진영을 쳐다보았다. 그때가 되도록 아무 말이 없던 진영은 그 시선을 의식했는지 한마디 내뱉었다.
" 별로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 어차피 이 곳에서 반란이 일어난다면 우리도 골치아파지니까. "
" 그렇다 해도 어떻게 해서 반란을 막으려고? "
" 걱정 마- 다 생각이 있어. "
하나가 짓는 미소에 어쩐지 마음이 불안해짐을 느꼈다.
다음날 해가 뜨자마자 하나은 굳게 닫혀있는 창고 문을 개방했다. 그리고는 농민들은 모아 그것들을 배분하여 나눠주기 시작했다. 물론 브루인은 얼굴이 하얗게 떠서는 하나를
제지하려 했으나 하나가 보여준 한 장의 종이 덕에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 그 동안 열심히 일해주신 여러분들에게 그 동안의 사례를
하고 싶으시다며 오늘 특별히 브루인경이 여러분께 돈과 여러 가지를 나눠드리고 있으니 모두들 어서 오세요!! "
우리들은 모두들 신나서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모았다. 칫-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우리들을 생고생 시켰겠다-? 브루인, 너도 한번 당해 봐라!!
" 모두들 어서 오세요!! "
그리고 저녁 무렵. 창고 안은 예전에 비해 1/3로 줄어 있었다. 모두들 흐뭇해하며 기분 좋게 잠을 청했다.
또 다음날. 다른 지역보다 배는 더 높은 나하르의 세금은 반으로 줄였다. 물론, 우리가 간 뒤에도 바꾸지 못하도록 국왕의 동의 없이 바꿀 수 없다고 선포했다. 마을 주민들은 모두
모은 자리에서 선포했으니 증인은 100명도 넘지.
그리고 오늘은 권한을 쓸 수 있는 마지막 날.
" 네타- 오늘은 뭘 할거야? "
" 뭘 할거냐니? "
" 그 동안 골탕먹일 짓 많이 했잖아- "
" 골탕먹일 짓이라니. 엄연히 반란 저지를 위한 것이었어. "
하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지만 그 누가 모르리요- 진실은 숨겨져 있다는 것을.
" 다들 조심해-!! "
[ 휘익- ]
" 앗- "
" 딘-!! "
영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칼이 내 어깨를 스쳐갔다.
" 괜찮아? "
" 아- 응. 그런 대로. 그런데... "
왜 이렇게 어질어질 하지?
" 이런, 독이야- "
바닥에 꽂힌 칼을 뽑아서 보고는 진영이 말했다. 은지는 급히 내 쪽으로 와서 치료를 시작했다. 머리가 너무 어질어...질...해....
" 딘!! 정신차려!! "
여긴 방안인가?
" 카르딘님!! 저 카르님이 죽는 줄만 알았다고요. 흐흑- 카르딘니임. 으어엉- "
" 세...세레나. "
옆에서 세레나가 마구 울어댔다. 그 소리에 머리가 더 어질어질하다.
" 이제 괜찮아?? "
" 아...아르형. "
영이가 걱정스러운 듯이 다가왔다. 오랜만에 형이라고 부르려니 좀 이상하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세레나도 있는데...
나는 괜찮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일어나려했다. 그런데...
" 아직 일어날 순 없을 거야- 몸이 마비되는 독이었거든. "
―아무래도 브루인경의 짓 같아. 더 이상 자기에게 곤란한
짓을 못하게 하려고 안 것이겠지. 사실 표적은 그 동안 이것저것 일을 계획했던 하나였던 것 같은데 잘못 되어서 그 옆에 있던 네가 맞은 거야.
영이는 세레나 때문에 말하기 곤란한지 전음을 보냈다. 나도 운도 되게 없네. 내가 표적도 아니었고... 어떤 놈인지 몰라도 칼 하나 제대로 못 던지나- 휴-
" 네가 맞고 난 뒤 브릿이 재빨리 쫓아갔는데 놓쳤나봐. "
" 응. 지금 몇 시야? "
" 이제 저녁이야- "
히익- 벌써?? 그렇다면...
" 오늘은 어떻게 됐어?? "
" 그...그게 말이지. "
영이는 황당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 어떻게 됐는데?? "
" 열 받은 네타가... "
" ??? "
" 성의 빈방 중 50%를 집이 없는 사람들이나 고아들이 쓸
수 있도록 해 놨어. 그야말로 성의 삼분의 일은 농민들의 것이 되어 버렸지 뭐... "
하하... 정말 할말없군...
" 딘- 정신 차렸어? "
문이 열리며 다른 얘들이 모두 들어왔다.
" 응- 떼로 몰려오네? "
" 내일 떠날 거 의논하러왔어. "
울이가 침대 곁으로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 얼간이- 넌 그만 가라고 했잖아! "
" 왜 그래? 나도 일행이라고. "
" 누가 너 일행으로 쳐준대? "
저 둘은 또 싸우는 군. 그 때 린이 내 쪽으로 다가와 물었다.
" 딘오빠, 많이 아파요? "
" 아니- 괜찮아. 걱정해주는 거니? "
린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나이에나 볼 수 있는 귀여움이야-
" 오빠는 오빠를 공격한 그 사람이 미워요? "
" 글쎄... 밉다면 밉고 아니면 아니지. "
린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당연히 미운 거 아닌가요? "
" 흠... 그렇진 않아- 그들도 명령을 받아서 그런 걸 테고. "
" 그럼 그 명령을 한 사람이 밉겠네요?? "
꼬마애가 참 호기심도 많네.
" 아니- 별로. "
" 왜죠?? "
" 글쎄... 인간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
" 그럼 오빠도 그래요? "
" 아니라고 말한다면 거짓이겠지-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냐- "
린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난 웃으며 말했다.
" 크면 알게 될 거예요- 꼬마 아가씨- "
어린애들한테 말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이야- 크면 알게 된다라는 말 어릴 때 많이 들었었는데... 그나저나 저 둘을 언제까지 싸우려나-?
" 내가 왜 일행이 아닌지 타당한 이유를 대봐-! "
" 몰라서 묻냐-? 넌 일행이 아니라 그저 쫓아다니는 것뿐이잖아- "
" 내가 언제 쫓아다녔다고 그래?!! "
흠- 결국 내가 나서야 겠군. 숨을 들이키고...
" 그만 좀 싸우지 못해!!!!!!!!!!!!!! "
결국 둘은 입을 다물었다. 환자한테 싸움 말리는 것까지 시키다니 너무하잖아.
" 휴- 내가 먼저 말할게. 날짜가 정해졌어. "
미라는 어울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날짜? "
" 그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집단이 반란을 일으킬 날짜.
"
괴...괴집단? 언제 그런 이름이 붙어버렸나-
" 정확히 일주일 뒤- 장소는 성지인 메이블- "
" 우와- 브릿. 너 그런 건 어떻게 알았냐? "
" 이 밤의 요정 브릿님이 모르는 게 어디 있겠어?? 호호호호∼ "
말을 건 내가 바보지...
"가만 오늘이 99년 12월 25일이니까... 열흘 뒤면... "
은지의 말에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 어머? 그러고 보니 오늘이 크리스마스였네! 이 곳은 크리스마스 같은 게 없으니까 잊고 살았어- "
"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열흘 뒤면 3000년 1월 1일 이라고.!! "
" 새천년을 시작하는데 반란을 도모하다니 그 놈들 너무하네- "
" 그게 아냐-!! 그 날은, 그 날은... "
은지는 거의 울상이 되어 버렸다. 그 날이 도대체 무슨 날이기에 그러지?
" 성지 메이블에서 엄청난 모임이 있을 거야- "
내 궁금증을 미라가 풀어주었다- 하지만 그 대답은 또 다른
물음을 낳았다.
" 모임?? "
" 다른 나라가 이 나라를 침범하지 않는 이유... 알아? "
"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
진영은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을 했다. 그 말에 은지가 답했다.
" 성지- 메이블 때문에 그런 거야. 제 1대 왕이 마지막으로
알바키아들과의 전쟁을 끝낸 곳이지. 사람들은 왕이 악마들을 물리쳤다고 믿고 있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그 제
1대 왕은 하늘에게 보내준 뭐, 신이다 그렇게들 믿게 된 거야. 어쨌든 그래서 신이 세운 나라다. 신이 악마를 몰아내고
얻은 축복 받은 땅이다. 그렇게들 메이블을 부르게 된 것이지. 게다가 1대 왕이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 곳도 그곳이잖아? "
" 그래. 그래서 모두들 그 땅을 숭배해. 또 그런 만큼 매 해년 성지에서 열리는 기도는 어마어마하지- 이 나라 왕족은
물론 다른 나라 왕족까지 모두가 모여 기도에 참여해- 게다가 올해는 3000년이 되는 해이니 만큼 더 규모가 클 거야- "
" 그거 큰일이군. "
진영의 말에 울이가 간단하게 소감을 말했다. 이 나라 사람들 신이라고 하면 사족을 못 쓰던데 진짜 큰일이네.
" 어쩌지? "
" 어쩌긴 싸워야지- "
기사 정신이 발휘된 것인지 영이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두 번 있어. "
미라가 손가락 두 개를 펴며 말했다.
" 좋은 기회? "
" 그래- 그들을 저지하려면 무엇보다 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어야 해- 평소에는 분산되어 있으니 처지하기가 힘들어- "
" 그럼 어떻게? "
" 내가 알아본 결과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전 모임이 딱 두
번 있어- 바로 내일 모레와 반란을 일으키기 전날. "
미라, 어디서 저렇게 잘 알아 왔지? 보기보다 유능하네.
" 첫 번째 모임은 네르오빌에서. 그리고 두 번째 모임은 메이블에 가장 근접한 도시인 피젠에서 있을 거야- "
" 좋아- 그렇다면 네르오빌로 다시 가야겠군- "
영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그런데 말이지- 정말 도대체 알 수 없는 건 그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느냐야. "
미라를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속을 알 수 없다니까- 내가 몇몇 얘들 시켜서 스파이 짓도
해봤는데 알아내기가 어렵더군- "
" 그...그럼, 그 날짜랑 장소도 스파이 짓을 해서? "
" 물론이지- "
내 물음에 미라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휴- 하긴
그렇게 라도 안 하면 알아내기 어려웠겠지.
" 목적을 알아야 그들을 회유시키기 편할 텐데... 어쨌든- 빨리 출발해야 하는 거 아냐? "
하나는 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자 진영이 몇몇을 노려보며 말했다.
"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
" 해야 할 일? 그게 뭔데? "
" 걸러내기... "
예상 밖의 대답에 모두들 어리둥절해졌다.
" 뭐??? "
" 말 그대로야- 걸러내기- 이번 일은 정말 위험해. 죽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그러기 위해선 지금 일행을 걸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
이 일에 관련 없는 사람은 나가라 그 소린가?
" 개인적으로 우리 7명을 제외한 나머진 빠져주었으면 좋겠어. "
" 왜? 어째서?? "
역시- 크레인. 왜 안 나서나 했어.
" 알아본 결과 상대는 거의 500명 정도 돼- 솔직히 말해서. 승산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냐- 넌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에 죽고 싶어? "
" 그렇다면 우리 쪽도 일행이 한 명이라도 더 느는 게 도움이
되는 일 아냐? 그리고 상관없다니? 내가 아는 사람이 위험한데 상관없는 일이라며 내빼라는 거야? "
어떤 말을 해도 진심으로 화를 내지 않던 크레인이 웬일로
정말 화를 내며 말했다.
" 설사 내뺀다고 해도 아무도 너를 비난하지 않아- 오히려
빠지지 않는 게 이상한 거니까- 괜한 영웅심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어. 게다가 너와는 종족도 다르잖아? "
[ 탕-! ]
" 종족 따위가 무슨 소용이야- 그게 그렇게 대단해? 내 친구의 목숨보다 대단해? 넌 어떤지 모르지만. 난 내가 아는 한,
위험한 걸 아는 한 회피할 순 없어- "
크레인은 주먹으로 옆에 벽을 치며 말했다. 크레인이 저런
면도 있었다니... 꽤 멋진데?
" 안돼... 오지마... "
왠지 진영의 그 말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절대 안 된다는 듯이.,. 마치 자신에게 말하는 듯이..,
" 갈 거야- "
크레인의 굳센 의지가 담긴 말에 진영은 체념한 듯 돌아서며 말했다.
" 죽고 싶으면 맘대로 해- 얼간이. "
" 뭐..,뭐야?? 너- "
크레인은 따지기 위해 진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물론 진영은 그런 크레인을 깡그리 무시하며 세레나를 향해
말했다.
" 세레나님. 세레나님은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
" 왜요? 전 안되나요? 저도, 저도 가고 싶어요... "
세레나는 두 손을 꼭 쥔 채 애절하게 말했다.
" 하지만, 세레나님이 가시기에는 너무 위험하다는 걸 세레나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 그래도 저도 카르딘님을 따라 갈 거예요!! "
결국 진영은 내게 눈길을 보냈다. 그 눈길에 담긴 뜻은 안
봐도 훤∼ 했다. 그러니까 나보고 알아서 하라 이거지? 정말
너무해- 세레나가 얼마나 고집불통인데... 그 때 옆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빠-? 가지 않으면 안돼? 꼭 그들을 막아야 해? 오빠와는
상관없잖아?? "
린은 큰 눈을 깜빡이며 진영에게 물었다- 순간 린을 쳐다보는 진영의 눈에서 분노와 경멸을 느꼈다.
" 대답할 가치를 못 느끼는 질문입니다. 가야만 합니다- 그들을 막아야만 합니다. 나와는 상관없지 않습니다. 이곳에
제가 살게 된 이상. 이것은 그들의 문제만이 아닌 제 문제이기도 합니다. 내게 책임이 주어진 이상- 전하께서, 날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날 믿고 있는 이상 전 가야합니다. "
지...진영? 왜 린에게 존댓말을?
" 그럼, 오빠가 이 곳에 살지 않는다면? 만약 그들과 같은 종족이 아니었다면? "
" 그렇다면 난 가지 않았겠지요. 그건 정말 나와 관계없는 일이니까- 그들이 날 모르고 나도 그들을 몰랐더라면 가지 않았을 겁니다. 알지도 못하는 이들을, 나와 관계도 없는 이들을 돕는 다면 그것 정말 바보 같은 짓이겠지요. 하지만 내가
그들과 한 세계, 한 시간에 공존하는 이상 난 도울 겁니다. "
진영의 눈에는 더욱더 분노가 들끓었다. 진영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 린님. 인간은 그런 것입니다- 어리석고 나약하기 때문에
공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 서로를 도울 수밖에 없는 존재. 그래서 서로를 돕는데 당연함을 느끼는 존재. 한 세계에,
한 시간에 공존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 도울 이유가 충분한 존재입니다. "
"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인간도 있잖아? "
어느새 린의 말투가 바뀌어 있었다. 좀 더 딱딱하면서, 약간
화가 난 듯한 어른스런...
" 물론 있지요. 인간을 어리석고 나약해서 쾌락에 그 무엇보다 쉽게 빠지지요. 물질적인 쾌락에 빠진 이들은 그 쾌락 속에 빠져 잊게 되지요.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왜 우리가 서로를 도와야 하는지, 나만 잘 되면 되는데- 나만 좋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그래서 잊지 않기 위해 인간은 항상 후대에 가르치는 거겠지요- 서로 도와야 하는 거라고. 쾌락에
빠지는 건 어리석은 거라고. 물론- 어린아이가 그걸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지만요. "
" 이해할 수 없어- "
동그란 눈으로 진영을 똑바로 쳐다본 채 린이 말했다. 무거운 분노가 실린 진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 난 당신께 이해를 강요하는 게 아닙니다- 여태껏... 그 긴긴 세월동안 이해하지 못할 걸 보면 당신은 아마 평생가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당신을... "
우리는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마치 진영과 린 둘만 존재한다는 듯이 둘을 서로 그렇게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말을 잠시 멈췄던 진영이 화를
억누르기 힘든 듯이 주먹을 꽉 쥔 채 린을 노려보며 말했다.
" 난... 증오합니다. "
진영의 마지막 말이 끝남과 동시에 린은 텔레포트를 써서
어디론가 가버렸다. 모두들 궁금한 것 천지였지만 진영의 분위기상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 진영은 왜 린에게 존댓말을 썼을까? 우리보다 훨씬 어린데- 왜 린은 갑자기 사라진 걸까? 진영은 왜 린을 증오한다고
했을까? 린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
결국 나는 수많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누군가를 죽일
듯한 분위기로 앉아 있는 진영에게 조용히 물었다.
" 저기... 도대체 린은 누군 거야? "
고요한 방에 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작게 말했는데도 엄청 크게 들려서 순간 나도 당황했다. 내 물음에 모두의 시선은 진영에게로 향했고 진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무감각한 말투로 말했다.
" 우리의 운명을 바꾼― 우리의 16년간의 삶을 허상으로 만든― 우리의 결정을 원하는― 아름다운 은빛의 날개와 눈을
가진 악마. "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공허한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는 진영을 쳐다보던 나는 고개를 돌려 다른 얘들을 돌아보았다. 모두 알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낸들 아나?
그 뒤로 진영은 무엇을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결국은
모두 그 대답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0분간의 정적-
" 저...기... 내일 어쩔 거야? "
은지의 조심스런 질문에 진영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 내일이 아니고 오늘부터 움직여야 해- 시간이 촉박해. 일단 네르오빌로 출발할거야. 나는 스승님께 연락해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볼게- 다들 출발 준비하도록 해. 한시간
후 다시 이곳으로 모이자. "
말을 끝낸 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고 그 후 다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난 세레나를 설득시키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 세레나- 위험하니 오지마. "
" 시...싫어요∼ 딘님. 딘님이 위험하신 데 어찌 저 혼자... "
" 괜찮대두!! "
결국 실랑이는 30분 이상으로 이어졌고 나는 세레나를 떼버릴 좋은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난 강경책을
쓰기로 했다.
" 세레나, 모르겠어? 넌 방해만 될 뿐이라는 걸. "
난 짐짓 심각한 말투로 말했다. 세레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푹 수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좀 더 화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솔직히 화가 났다. 조를 걸 졸라야지.
" 가봤자 오히려 우리 쪽에 피해만 돼! "
" 그...그렇지만... 그래도 나도 가고 싶어요... "
세레나의 고집은 아무래도 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좀 잔인한 방법이긴 해도.. 확실한 방법을 쓰기로 결정했다.
" 세레나- 이제 그만 좀 해. 난 네가 너무 싫어. 정말 짜증난다고. "
" !! "
" 왜 맨날 귀찮게 굴어? 네가 날 좋아한다고 치자, 그럼 나도
널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어?? 너 때문에 짜증나 죽겠어. "
" 지...진심이세요? 절 떼 놓으시려고 거짓말하시는 거죠? "
반은 진심이고 반은 가짜라고 해야 하나? 아니, 실은 70%가 진심 같은데? 말이 좀 심하긴 했지만 진심이긴 진심이라고.
" 그래- 난 네가 너무 싫으니 그만 좀 귀찮게 굴어. 짜증나-
"
" ...... "
세레나는 아무 말 없이 방밖으로 나갔다. 세레나가 정말 날
좋아하는 지는 의문이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난 네가
너무 싫으니 그만 좀 귀찮게 굴어. 짜증나-」라는 말을 듣는
다면 기분이 어떨까...
" 딘! 무슨 일이야? 세레나님 왜 저렇게 힘없이? "
막 방을 들어오면 영이가 말했다. 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더러웠다.
얼마 후 얘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고 이내 모두 모이게 되었다.
" 스승님께 연락 해보았는데... 힘들 꺼라 하시더군. "
" 어째서? 나라를 위한 일이잖아-? "
" 모르겠어- 어쨌든 우리라도 막아야해. "
다들 표정이 엄숙했다. 비장한 가운데 진영이 말했다.
" 시간이 촉박하니 텔레포트로 가자. "
저...저것이... 또 피 토하고 난리를 치려고.
" 부작용은 어쩌려고? 또 쓰러질 거라면 사양이야- 난 치료
안 할거야! 우리 7명을 치료하는데는 보통 남들 치료하는 것보다 몇 배나 더 힘들다고! "
은지가 질색이라는 듯이 말했다. 진영은 약간 웃으며 말했다.
" 나도 물론 더 이상 그런 일 겪고 싶진 않아- 자학이 취미인
것도 아니고. 그래도 네르오빌에 어떻게 내일모레까지 도착해? 흠- 지금 우리가 8명이지. 그렇다면 내가 나까지 5명을
맡을 테니, 하나 네가 너까지 한 명 더 맡아. "
" 아니. 내가 나 빼고 2명 맡을 게 그 정도는 될걸? "
처음 우리는 무슨 소린가 했다. 잘 생각해 보니... 저 말은
하나가 텔레포트를 쓸 줄 안다는 말이고, 텔레포트는 소서러
이상이 쓸 수 있는 상급마법이니까...
" 네타! 너 텔레포트를 구사할 수 있는 거야? "
내 물음에 하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 응-! "
" 그...그럼... 소서러란 말이야? "
" 아니- 그건 아냐- 그냥 몇 개 중요한 마법 먼저 배운 거야- "
하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우리를 보고 진영이 말했다.
" 너희도 열심히 했으면 네타만큼 될 거 아냐? 최소한 자기
몸 정돈 자기가 이동시켜야하지 않겠어? "
진영의 따가운 눈초리에 하나 둘 고개를 돌렸다.
" 시간 있을 때 네타나 나한테 좀 배워-! "
" 네- "
우리는 모두 저음의 늘어지는 목소리로 합창했다. 그리고 정확히 5분 뒤 우리는 네르오빌에 도착해 있었다. 하나는 아직 여러 명을 장거리 이동시키는데 익숙하지 못한 탓인지 도착하자마자 부작용을 호소했다. 제대로 중심도 못 잡고 비틀거리는 거를 겨우 부축해서 여관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방의 침대에 쓰러져 잠들어버렸다. 물론 한밤중에 이동한 것이었기에 하나가 잠든 지 얼마 안 되어서 다들 잠이 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