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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변곡
슬하는 아침회의 전 신문기사들을 보고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처럼 시끄러웠고 이곳저곳의 사회적 갈등도 심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난데없는 창완의 등장으로 자신에게도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었음을 예견할 수 있었다.
“선배는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이런 게 눈에 들어오나 봐요.”
창완의 머리는 슬하의 면전 앞으로 튀어나와 신문 기사를 읽는 것을 가로막았고 슬하는 창완의 머리를 한 손으로 치우며 기사들을 다시 훑고 있었다.
“그래도 요즘은 좀 심한 것 같아요. 이쪽저쪽에서 고소, 고발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경찰, 검찰, 관계기관까지 수사다, 조사 착수다 난리인 것 같아요.”
창완은 슬하의 자신에 대한 무관심을 끊어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슬하는 신문을 덮었고 창완의 말을 들어주는 자세로 바뀌었다.
“몇 가지 큰 사건들 말고는 나머지 이슈들은 정쟁의 도구나, 여론 몰이 같은데 이것에 너무 열들을 올리고 있지는 않은가 해서요.”
“그거 말고 진짜 하고 싶은 말.”
창완은 슬하의 말에 억울해 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배는 이번 사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로 봐서는 수사진행은 잘 진행 되어가고 있는 것 같고, 다들 부정탈까봐 말은 안하지만 정황증거로 보았을 때 이제 이쪽저쪽에서 데이터가 넘어오면 유력 용의자들 가운데 진짜 범인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그건 자료가 넘어와 봐야 알겠고 그동안 정황증거와 용의자 사이에 관계가 성립되어야 확신 할 수 있는 일이겠지.”
창완은 슬하의 말에 실망한 것처럼 슬하에게 불평어린 눈빛을 쏘아 붙였다.
“선배도 입방정 떨면 범인을 놓쳐 버린다는 미신 파에요? 다들 분명 분위기가 좋긴 한 것 같은데 내색을 하지 않으니 이게 잘 진행되고 있는 건가도 싶고, 연쇄살인이 멈춰서 여유를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헷갈리기까지 하단 말이에요.”
창완의 불만은 눈에서 입으로 전해오고 있었다.
“아마 그 만큼 신중해서이겠지. 수사기간도 길었고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으니까. 일종에 범인을 잡기위한 집단의식을 행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지 .”
슬하는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사무실 형사들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우리가 무슨 어디 아프리카 부족이에요? 범인을 잡기위해 금언기도를 올리게?”
“비슷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슬하는 창완의 부아 섞인 말투에 미소로 응대했다.
“과거 부족들은 사냥을 나가기 전에 자신들이 사냥하게 될 동물들에 대해 위령제와 같은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 그만큼 자신들에게 절박하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반대로 사냥당하는 동물들 또한 필사적인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는 일로 이해한 것이지. 그래서 부족 사람들은 신성한 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안전과 사냥당하는 동물들을 위로 하려던 행위로 그러한 의식을 치룬 것이겠지. 장소와 시대, 상황이 다르고 동물 사냥과 범죄를 다루는 것은 질적으로 다를지 몰라도 결국 그 서로간의 간절한 바람이 비슷한 의식을 낳고 있는 지도 모르는 일이 되는 거지.”
창완은 슬하의 말에 자신의 불평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좀 전의 네 말대로 지금의 사회는 혼란이 가중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시대나 상황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갈등과 혼돈 속에서 두려움이나 공포를 대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반응과도 무관하다 볼 수 없겠지.”
창완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었는지 떠올리고 있는듯했다.
“두려움 또는 공포는 사람들을 변화나 새로움을 추구하게 하는 것보다 안전함의 필요성을 가중시키는 성향이 있는 게 사실이지. 사회적 법과 질서에 위배되는 범죄와 또는 도덕적 회의가 증가되어 사회가 혼란스럽게 보이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을 키우고 확장하는 것은 사람들의 작위적 또는 시스템적인 것으로도 가능한 일이 되어 버린 것도 사실이지.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 구조를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지금의 현실이고 말이야. 어쩌면 우리는 자신들의 적을 적으로 만들지 않음으로써 공포를 극복했던 원시부족보다, 더 과거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지. 인간은 두려움과 공포에 취약하고 그것의 본질을 바라보기보다는 회피 또는 합리화하고 그로인해 발생한 또 다른 공포로 그것을 대신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할 거야. 네가 나에게 매일 좋은 소리 못 들으면서도 이렇게 자신의 불안감을 달래러 찾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슬하는 아침 회의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고 창완은 그런 슬하에게 재차 물었다.
“그래서 잘 되어가고 있다는 거예요. 아니에요?”
“그야 모르는 일이지. 일단 범인을 잡고 나서 말 할 수 있는 것이겠지.”
슬하는 자신의 수첩으로 창완의 머리를 가볍게 쳤고 창완은 그런 슬하 행동에 불만보다 어딘지 모를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선배 요즘 좋은 일 있어요?”
“아니.”
슬하는 창완의 말에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냥 요즘 기분이 좋아보여서요. 뭐랄까. 말투나 행동은 비슷하긴 한데 주위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나 할까? 이전에는 분명 무엇인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는데 최근 며칠은 그 위화감이 없어 진 것 같아서요.”
“좋다고 할 만한 일은 없어.”
슬하는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짐작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고 창완은 그런 슬하를 향해 미심쩍은 얼굴을 거둬드리고 있지 않고 있었다.
“요즘 연애해요?”
결국 슬하는 창완을 한 대 더 때리고 나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회의를 시작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수사진행은 뜻밖의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활발히 움직여야 할 수사본부는 며칠 동안이나 한산한 기운만 맴돌고 있었다.
조용한 수사본부에는 밖에서 내리는 비 소리만 들리고 있었고 슬하는 사무실에서 홀로 나와 사건 자료들을 회의 테이블에 펼쳐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선배는 속도 좋아요. 수사 중지 명령까지 받아놓고 아직도 이렇게 혼자 열심히 수사를 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창완은 회의 테이블 위에 걸터앉으며 말을 했다.
“그러는 너야 말로 아직 교대시간이 아닌 것 같은데?”
“선배혼자 이러고 있을까봐 와본 거죠. 왜 다들 3교대인데 선배 혼자 당직에 철야까지 하고 있는 거예요?”
“시비 걸고 싶으면 다른 곳에서 알아봐.”
슬하는 창완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회의 테이블에 펼쳐놓은 현장사진들만 주시하고 있었다.
“선배는 화도 않나요?”
창완은 아무렇지 않게 일하고 있는 슬하를 보며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경찰이 범인을 잡겠다는데 격려는 못해줄망정 수사중지가 뭐에요? 이러고 있다가 범인이 또 살인을 저지르면 어떻할 것이고 그 책임은 누가 지는데요?”
사무실에는 창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럼에도 창완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본청 사람들도 말은 안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에 불만이 많아요. 열심히 일을 해도 모자랄 판에 위에 사람 눈치나 보고, 위에서는 어딘가에 눈치를 보려고 밑에 있는 사람만 오락가락하게하고, 이건 경찰이 아니라 주인집 마님 모시는 머슴 같다는 분위기예요.”
“그래서 너는 지금 누구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건데?”
“몰라서 물어요? 이쪽저쪽 눈치만 보고 수사를 중지시킨 고위 간부들이죠.”
창완은 테이블에서 일어나 의자에 주저앉았다.
“고위직간부라는 통칭으로 불특정 인물에 대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상황으로 화를 내는 것은, 네 상상으로 만들어낸 분노일 가능성이 높고 그것은 지금의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아.”
“상상으로 만들어낸 분노요? 선배, 지금 우리는 정직 또는 강제 휴가 받은 샘이나 마찬가지에요. 그럼 이건 꿈속에서도 근무하고 있는 끔직한 악몽인거에요?”
창완은 슬하의 말에 감정이 더 격해지고 있었다. 슬하는 사진 한 장을 창완을 향해 들어 올렸고 그제야 창완의 격분은 잠시 멈추는듯했다.
“피해자를 이렇게 만든 범인의 생김새는 어떨 것 같아?”
창완은 대답이 없었고 첫 희생자로서 살해당한 뒤 가장 늦은 시간에 수습되어 가장 참혹스러운 모습을 한 피해자 사진만 응시하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옆모습이라도 찍힌 CCTV 화면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이 범인의 얼굴은 우리 머릿속에 뿔이 달린 악마 같은 이미지로 형성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가 발견한 용의자는 평범해 보이는 20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성이었고, 뿔이 달린 악마와는 거리가 먼 얼굴이었지. 우리는 어쩌면 영화에서나 나오는 으스스한 분위기의 살인마나 악마와 같은 얼굴을 한 사람을 이미지화 해 놓고, 그러한 사람을 쫓아야 우리가 하는 일이 더 정의롭고, 사회를 위해 기여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일이지. 네가 경찰간부들을 주인마님으로 형상화해서 분노하고 있는 것처럼.”
“그럼 선배는 이번일이 위에서 정당한 명령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아니”
슬하는 피해자 사진을 내려놓고 테이블 위의 다른 사진을 훑어보며 이야기했다.
“이번 일은 분명 잘못된 일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 하나의 사실 만으로 어떠한 상황들을 연계하고 상상해서 미워하고 분노하는 것은 그만큼의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창완은 슬하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 때의 모습이 있었다.
“너는 누군가를 미워 할 때 머릿속에 어떤 모습을 이미지화할거야. 보통 그것은 그 사람의 얼굴이거나 그 사람이 미워하는 행동을 하는 순간일 테지. 그 말은 사람의 뒤통수, 뒷모습을 보며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는 거겠지. 결국 네가 분노하는 ‘위에 사람’이라는 것은 부당한 명령을 내린 것에 대한 악의적 감정으로 이렇게 생겼을 사람이, 이러한 마음으로, 이렇게 명령을 내렸을 거라는 네가 만든 이미지와 해석이 더해진 미움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그래도 선배 말대로 부당한 명령이라면 그 사람을 어떻게 이미지화 했건, 어떠한 마음으로 해석을 했건, 어떻게 행동을 했다는 것을 직접 보지 못했더라도 그 사람을 미워하는 이유는 충분한 것 아니에요?”
창완은 슬하의 말에 물러서지 않았다.
“미워할 만한 이유가 생겼더라도 그 강도에 의한 차이가 생겨날 수 있다는 거야. 이러한 명령을 내린 사람의 살아온 시간, 의지 그리고 그 마음을 변화시킨 외부 환경과 그에 따른 저항 정도에 따라 그 미움의 정도는 달라지겠지. 그리고 그것을 네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최종적으로 그 분노의 수위가 결정 될 테고. 나름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큼 저항하다가 어쩔 수 없이 이러한 명령을 내린 사람보다, 어릴 적부터 가부장적 집안에 태어나 웃어른이나, 선생님, 교수, 직장상사의 명령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따르던 사람이 네가 말한 ‘위에 사람’이라면, 넌 앞서 부당한 명령에 저항한 사람보다 오히려 화를 내고 있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슬하는 다시 사건 파일을 집어 들었고 서류를 넘기며 무언가를 확인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같이 얼굴 없는 범인을 찾아야 하는 경찰에게는 그러한 선입견이 독이 될 때가 많고, 특히 프로파일러에게는 사건이나 범행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방해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창완의 분노는 잦아드는 것 같았지만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선배하고 이야기하면 말은 되는 것 같지만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한 건 왜일까요?”
“난 의사가 아니야. 병원에 가봐.”
슬하는 자신의 겉옷과 우산을 챙기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홀로 남은 창완은 수사본부에 어지럽게 펼쳐있는 회의 테이블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슬하는 첫 번째 희생자가 발견된 현장 근방에 도착해 있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차를 세워둔 곳과 멀지 않았지만 다른 시신이 발견된 장소와 달리 등산로와 멀리 떨어져있었고 가파르고 거친 오르막을 통과해야만 했다. 슬하는 몇 번 왔던 길이라 거침없이 현장에 다가가고 있었고 그곳에 도착해서는 먼저 와있던 뜻밖의 사람과 마주치게 되었다.
박현호 과장은 우산을 쓰고 시신이 발견된 장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슬하는 비탈져있는 곳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추어 섰고 박현호 과장은 멀리에서부터 슬하가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인지 슬하의 등장에 어색함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박현호 과장은 슬하를 잠시 보고는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는 듯 한곳만 응시하고 서 있었다.
주위의 나무들로 인한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피해자가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 시신위에 올려져있던 자갈들과 나뭇가지들은 낙엽에 덮여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새벽부터 비가 내려서인지 땅은 이미 젖어 있었고, 시신이 있던 구덩이는 물이 고여 웅덩이로 변한 상태였다. 그리고 시신이 놓였던 자리는 물위에 떠 있는 낙엽과 함께 그 윤곽은 더 명확히 보이고 있었다.
“나도 아직 형사의 기질이 남아 있나보네. 동료의 무덤보다 사건현장을 찾게 되는 것을 보면.”
슬하는 박현호 과장 옆에 섰고 물이 고인 웅덩이를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수사본부 분위기는 어떤가?”
“좋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런대로 잘 견뎌내고들 있습니다.”
박현호 과장은 슬하와 눈과 마주하고 않았지만 비스듬한 자신의 시선 끝에 슬하를 남겨두고 있었다.
“자네를 보니 그러 것 같군. 자네는 이마저도 예감하고 한 것 같지만.”
슬하는 자신이 우려했던 것의 현실화에 대해 방금 전 창완에게 했던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김동욱 경감도 이런 사태를 예견했을지 모르겠네. 그래서 요즘은 김동욱 경감의 그러한 결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
그렇게 박현호 과장은 말끝을 흐렸다.
슬하는 며칠 전 수사 정지 명령을 내리던 침통한 박현호 과장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한 박현호 과장의 모습은 슬하에게 자신이 굳게 믿고 있던 신념의 본질이 한 풀 벗겨져 그 실체를 직면하고 좌절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리고 자신이 믿고 있던 신념대신 다른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왜 그때 내게 묻질 않았나? 누가, 왜 그러한 수사 정지 명령을 내렸했는지.”
“만약 제가 어떠한 것을 들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면 누구에 의해서 이러한 명령이 지시된 것인지 보다 이것이 시작되었을 그 처음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듣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슬하의 말끝에 박현호 과장은 긴 한 숨을 내쉬고 한 동안 말이 없었다.
“데이터가 있었네.”
박현호 과장은 의외의 담담하게 시작했다.
“90년대 중반 경찰청 자료를 전산화 하는 과정에서 방대한 데이터가 방치되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네. 그 출처에 대해서도 알 수 없었고 그 내용도 처음에는 어떠한 데이터인지 확인 할 수 없었네. 그렇게 십 수 년이지나 그것이 사람들을 분석한 자료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쩌면 범죄자 유형을 분석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네. 그래서 본청에서는 서울에 있는 한 경찰서에 그 자료를 넘겼고 그것이 실제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데이터인지 검증해보라는 명령으로 그 자료에 대한 연구는 시작 되었네. 처음에 그 데이터를 넘겨받은 경찰관 둘은 그 자료가 사실에 입각해 작성된 것이라면 그것이 불법적인 방법에 의해 수집된 것임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대한 자료에 매료돼 평소 자신들이 해보고 싶던 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 것이네. 그리고 점차 그것이 누구에 의해 어떠한 목적으로 수집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잊어버리게 되었네. 그 경찰관 둘은 그러한 연구 분석을 토대로 실존인물들과의 현재 상황과 일치하는지 확인 하는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네. 데이터는 한 사람의 개인 신상에 관한 것 뿐 아니라 유년기, 청소년기의 정신분석학적 소견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의사가 대상자를 직접 진단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 졌으며, 그것을 토대로 통계학적 분석으로 분류작업을 시도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네. 결국 그 경찰관 둘은 그 데이터가 사실에 근거해 작성되어졌고 그것을 이용해 사이코패스와 같은 사회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여러 가지 인격 장애를 구별 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 할 수 있다는 결론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네.”
박현호 과장은 웅덩이의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그 데이터로 각 범죄에 대한 범죄자 유형이나, 속성 그리고 대처에 대한 연구로 보다 신속히 범죄 사건에 대해 해결 방법을 제시 할 수 있고, 그러한 자료를 기초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프로그램개발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게 되었네. 하지만 위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지기 시작한 것 같았네. 어쩌면 처음부터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갔고 출발한 것이 아닌 것처럼 이것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길 원했고 우리는 그들에게 면죄부를 쥐어주는 꼴이 되어있었네.”
박현호 과장은 나무사이로 보이는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마포구 부녀자 사건의 진범을 잡을 수는 있었지만 그러한 운이 다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음을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네. 그때부터 김동욱 경감은 변하기 시작했고 제흥동 연쇄살인 사건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이용하기 위한 명령을 지시받고는 결국 모든 데이터를 지워 버리고 그러한 일을 벌이고 만 것이네.”
슬하는 박현호 과장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되어졌음에도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점이 있었다.
“그럼 제게 주신 5명의 파일은 복원 되어진 것이었습니까?”
“그렇지는 않네. 그것은 김동욱 경감이 자신의 책상위에 남기고 간 것이네.”
슬하는 박현호 과장의 이야기와 김동욱 경감의 행동에 서로 일치하지 않는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박현호 과장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나도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네. 왜 이하윤 소장을 다시 용의선상에 포함시켰는지는 나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네. 처음부터 이하윤 소장은 마포구 부녀자 사건과도 무관했지만 김동욱 경감은 그 사람의 데이터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네. 어려운 가정 형편도 아니었고 학업성적도 우수했으며, 교육 또한 사회에서 인정받을 만큼의 이루어진 상태로 사회생활에도 전혀 문제없이 생활했지만 청소년기까지 생명에 대한 인식이 기존에 사람들과 다른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네. 생명을 경시한 다기 보다는 생명에 대한 관념이 다른 전혀 색다른 의식으로 보였네. 결국 김동욱 경감은 마포구 사건에서 그 사람을 용의자로 포함시켰고, 직접 만나 보고난 후에도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더 커지는 것 같았네. 그리고 이번 사건의 용의자 파일에 그 사람의 자료를 같이 남겨 두고 간 것이네. 마치 정답들 가운데 일부러 틀린 답을 내놓은 것처럼 말이네.”
“그래서 이하윤 소장에 대해 윗선에 보고하신 겁니까?”
슬하는 우산으로 가려진 박현호 과장을 향해 말을 했고 우산의 움직임으로 박현호 과장이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보고하지 않았네. 비록 김동욱 과장이 나와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그것까지 보고 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네. 아마 내사를 통해 알게 된 것 같네. 그리고 그와 별도로 나 역시 아직 그 사람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고 있네. 그 사람은 김동욱 경감과 마지막 만난 사람이자 통화자인 것은 변함이 없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각별했음에도 이하윤소장이 장례식장에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내 의심은 분명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네.”
슬하는 장례식장에서 전화로 보고를 하던 사람이 박현호 과장의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고, 슬하 역시 박현호 과장의 의견에 동감하는 부분이 상존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슬하는 여전히 우산 사이로 박현호 과장을 바라보고 있었고 왜 이러한 이야기를 자신에게 하는지 대해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본청, 서울청 고위직 경찰 간부들 사이에서는 이미 이러한 데이터가 존재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인 되어버린 것 같네. 그리고 그 데이터가 가져다 줄 막강한 힘에 관심을 쏟고 있는 중이네. 누가 그 면죄부를 손에 넣고 권력을 쥐어 다른 기관들과 최고 권력기관의 대화 창구가 될 것이냐 하는 상황만 남은 것이네.”
박현호 과장은 슬하에게 당부와 경고를 동시에 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열흘이네. 다음 주 초 수사가 속계 되면 열흘의 시간이 주어질 것이네. 내가 지금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범인을 체포하는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열흘이라는 기간으로 만들어 놓는 것뿐이네. 만약 그 안에 범인을 잡지 못한다면 자네가 여기서 처음 했던 일을 반복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 되네.”
슬하와 박현호 과장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우산에 부딪치는 빗소리를 들으며 웅덩이가 조금씩 차오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박현호 과장이 슬하의 어께를 두드리며 언덕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슬하는 그런 박현호 과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박현호 과장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슬하는 물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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