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그해 수능은 역사상 가장 어려웠다. 2002년 수능의 쇼크는 대단했다. 수능 시험 보는 중에도
어렵다는 불평이 학생들 사이에서 계속 나왔고 , 실제 모의고사에 비해 80~100점 까지 낮게 나온 학생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이 되었다. 심지어는 수능역사상 최초로 수능시험 보던 도중
쉬는시간에 학교 옥상에서 자살한 여고생까지 발생한 사상역대 최악의 수능이였다.
채점을 매기고 계산을 해보니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획득한 점수에 비해 무려 20점이 떨어져 있었다.
겨우 상위 0.5% 라는 성적이였던 것이다.
물론 0.5%라는 성적이 그리 나쁜것은 아니지만 원래 내 실력이였던 0.1~2%에 비해 너무 많은 성적하락이였던 거는 사실이다.
사실상 원래는 서울대 공대를 목표로 했지만 한번 수능을 실패하고 나니 대학에 가서도 실패할 수 있다는
마음이 크게 나를 휘감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원래 목표와 달리 안정된 미래를 보장하는 이유만으로 생각조차 안하던
의과대학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붉은 피도 싫었고 병원이라는 답답한 공간에서 평생을 살기도 싫었다. 흰가운도 싫었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환자들을 대하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다. 하지만 이때 나에게 의대가 최고의 곳으로 보였다.
다른 전공은 경쟁을 또 하여야만 했고 수능에 실패한 나에게는 당시 무언가에 경쟁은 다시는 하기 싫었다.
법대에 간다고 해서 모두 판검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영대를 간다고 해서 모두 경영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공과대학을 간다해서 모두 경영자나 훌륭한 연구자가 될 수 없는게 당시 내가 생각할 수 있던 생각의 한계였다.
당시 의대 경쟁률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서울대 공대,자연대등은 미달 사태를 피할수가 없었다
언론은 연신 의대 열풍이란 단어로 현사회를 때리면서 비판했고 9시 뉴스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나는
묻지마 ㅡ이대 열풍의 1세대가 된 것이다. 대부분의 의과대학은 당시에 총점을 반영했고 나는 비싼 학비때문에
6년 전액 장학금을 나에게 내걸었던 XX 의대를 지원하였고 경쟁률 7대 1을 넘어갈 정도로 치열했지만
의대 6년 장학생으로 최종 합격을 하였다.
나의 XX의대에서의 생활은 이중적이였다. 학교 친구들과의 생활은 행복했던 반면에
학점적인 측면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매일매일 계속되는 실험과 실험 보고서에 지쳐만 간것이다.
대학에서 자유롭게 학문을 배우고 자유롭게 과학,사회 서적들을 읽고 싶었지만 그때 나는 병원이라는 작은 곳에 틀어박혀
배우기 싫은 공부를 강요 받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었따. 또한 의대에서도 피부과,안과,성형외과 등 인기학과를
가기 위한 또 다른 경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적성에 맞지도 않은 공부를 하기 위해 매일 밤을 새다시피 했고 커피 3잔을 연달아 마시면서 밤을 새보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재미있었던 공부가 한순간에 재미 없는걸로 둔갑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의대가 비록 다른 학과에 비해선 확실한 세계이지만 , 결국엔 의대에서도 불확실한 경쟁은 펼쳐지고 있었다.
의대에서 인기전공을 받기 위한 경쟁.학점 경쟁. 부속병원에 남기위한 경쟁. 개업 경쟁 등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가든 경쟁은 피할 수 없다고 비로서 그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순수한 학생일때
여기만 오면 어느정도 안정된 삶을 영위할수 있을거라 믿었는데 현실은 또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당시 나는 적성에 맞지도 않은 공부를 하며 피할 수 없는 경쟁속에 부딪히며 그렇다고 안정된 삶을 보장받는다는
안정감까지도 느낄수가 없었다. 의대에 왔지만 그 힘들다는 경쟁속에 6년 장학생이지만
과연 나는 행복한가 ? 이 시절때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다.
의대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군의관 3년 모두 합해서 14년 후에 적성에 맞지도 않은 의사가 되는 것이 과연 좋을까 ?
아니면 한번뿐인 인생,내 젊은 청춘을 꿈을 향해 도전하는 것이 더 나을까 ?
수많은 고민끝에 수능을 다시 보기로 결정했다. 많은 것 바라지 않고 , 그냥 적성에 맞는 학문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적성에 안맞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드는 줄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대가 좋은 곳이긴 하지만 내게 의대는 더이상
좋은 곳이 아니였고 다시 한번 원래 목표였던 서울대 공대를 노려보자 라고 내 꿈을 위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어렸을때부터 과학을 좋아했으며 무엇을 탐구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의대에 휴학계를 내고 광주 재수학원에서 수능 공부를 늦게 시작했다. 수능이 다가옴에 따라 서서히 긴장이 되기 시작했으며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 생각되어 이번에 실패하면 말없이 다시 복학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몰기 시작했다.
정말 원 없이 몇년만에 행복하게 공부했던 것 같다. 점심시간,저녁시간,공휴일 모든 형태의 자투리 시간을 동원해 공부했다.
모의고사 성적은 학원에서 1등을 유지했으며 하지만 지난 수능의 악몽을 겪어봤기에 모의고사 성적을 도무지 신뢰할 수 없었다. 언제 수능에서 망칠지 몰랐고 그게 가장 두려웠던 것 같다. 수능 며칠 전 부터 최대한 수능에 초점을 맞추어서 모든 환경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자연계 상위 0.1% 고민없이 서울대 의과대학이 아닌 서울대 공과대학을 선택했다.
수만휘나 오르비,유니드림,다음 카페 등 온갖 입시 사이트를 둘러봐도 나보다 점수 높은 사람이 서울대 공과대를 지원한 경우는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합격을 낙관하기에는 일렀다. 서울대에서 실시하는 면접은 변별력이 높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광주 지역
수능 수석이 면접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극단적인 예가 많았기 때문에 나는 매순간 합격하는 그 순간까지 긴장을
놓을수 없었다.
다른 대학은 이미 합격자 발표를 다 했는데 , 서울대만 유독 합격자 발표가 느렸다. 드디어 2월 4일 합격자 발표 날 , 발표는 오후 5시부터 한다는데 , 오전부터 안절부절 못했다. 오후 2시 오후 3시 오후 4시 시간이 점점 다가올수록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드디어 오후 5시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자 " 축 합격입니다" 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서울대 공과대 학생이 된 것이다. " 그것도 장학생 " 으로....
후회없는 삶을 살기 위해 나는 이런 파란만장한 현역 의과대학 6년 장학생에서 몇년 뒤 서울대 장학생으로 둔갑했다.
지금 이 수기를 읽는 많은 수험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 당신이 진정 원하는 학문이 무엇인가요 ? "
첫댓글 조낸길다;; 자퇴를 왜함;; 그동안 들인돈 적어도 억넘을텐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돈돈돈 ^^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잣대로는 이해안되겠지만..이 글 쓴 사람이 나한테는 정말 대단하게 다가온다. 용기가 있는 사람같다. 돈이 중요하긴하지만 전부는 아니잖아???
의훌들에겐 푸드닭 말이 이해 안될걸?? 대갈통에 염산을 뿌려도 이해 못할걸?ㄲㄲㄲㄲㄲㄲ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