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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접속
슬하는 취조실 맞은편의 거울로 마주하고 있는 방에서 범인으로 추정되는 용의자의 취조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용의자는 30대 초반의 여성이었고 체포된 뒤 아무런 말없이 취조에 응하지 않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곳만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형사들은 번갈아 가며 진술을 받아내려 했지만 용의자는 몇 시간씩 앉아있던 자세만 바꾸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고 있었다. 슬하는 그런 용의자의 태도만 관찰하며 용의자의 신상 기록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취조실에는 가끔씩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고성이 들려왔고 용의자를 설득하기 위한 부드러운 분위기도 형성되었지만, 용의자는 탁자를 치는 등의 과격한 행동에만 반사적인 반응으로 몸을 움찔거리는 것 이외에 아직 용의자의 입에서는 한마디의 진술도 확보하지 못했다. 형사들은 답답해했고 그것을 가장 먼저 표출한 것은 창완이었다.
“선배, 도대체 이런 경우는 뭐에요? 자신의 집에서 혈흔, 살해도구, 피해자 것으로 보이는 옷과 소지품도 다 나왔는데 이틀째 저러고 있는 것은 무슨 경우에요? 그렇다고 변호사를 불러달라는 것도 아니고.”
슬하는 여전히 용의자의 신상기록만 보고 있었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혹시 정신이상자로 판정 받기 위한 것은 아닐까요?”
옆에 있던 우반장이 창완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하지만 용의자에게는 정신이상자로 판단할 근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용의자는 패션 매거진 기자로 여성 뷰티에 관한 칼럼 등으로 그 업계에서는 꾀나 유명했고, 패션 트렌드나 여성의 화장에 관한 뷰티 뿐 아니라 피부, 성형에 관한 의학적 기초지식과 그것을 관리, 유지하는 등의 임상 경험에 대한 지식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사건을 범행하고 자신이 정신이상자로 판단 받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 하기에는 자신의 범죄와 달리 너무 허술해 보이는 행동이었다.
“기록에는 뭔가 나온 것이 있습니까?”
우반장은 슬하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듣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있기는 뭐가 있어요.”
창완은 우반장의 물음에 자신이 대답을 했다.
“나이 32세, 서울 출생. 외동딸로 형제는 없으며 10년 전과, 3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20년 전부터 제흥1동 현재 주소인 주택에 거주. 학창시절에는 학업 성적이 우수했고 피아노, 미술, 글짓기 등 각종 대회에 수차례 수상경력이 있으며 외모 또한 뛰어나 어릴 때부터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까지 출전할 정도로 주위에서 사랑 받으며 자라 왔고, 학창시절 교유관계까지 원만해 학업, 외모, 사교까지 두루두루 뛰어난 일명 엄친딸. 서울소재 유수의 대학에서 영문과를 졸업하고, 뷰티 매거진에 기자로 입사, 기자로서 진급 속도도 남들보다 빠른 편이었고, 업무능력도 좋았다는 평가로 주위에서 신망이 높은 편이며 사회생활에서도 별다른 특이 사항을 발견할 수 없는 전형적인 성공한 여성상. 다만, 용의자가 범행을 저지르고 일상생활에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다가, 마지막 범행이후 한 달간 휴가를 낸 상태로 집밖의 외출은 거의 없었으며 검거 당시에도 저항 없이 순순히 경찰서까지 동행.”
창완은 자신이 암기한 용의자의 신상을 읽어 내려갔고 그에 대한 결론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위 사항으로 보았을 때 사회생활에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전형적인 소시오패스로 의심되는 상황으로 그러한 정황에 비추어 용의자에게 PCL-R 검사를 요구했으나 용의자의 거부로 확인 불가인 상태.”
슬하는 창완의 말로 상황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있었다.
“앞선 상황과 정황 근거를 토대로 제 소견을 말하자면 용의자는 전형적인 사회적 인격 장애자로서 워낙 주목받고 살아온 삶에서 자신보다 더 관심을 받고 행복해 보이는 피해자들에 대한 질투로 범행을 저질렀고 정신이상자이든, 우리를 속 터지게 해서든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이라 의심 되는 상황으로 판단됩니다.”
창완은 자신의 의견까지 제시하고 나서야 용의자에 대한 브리핑을 멈추었다.
슬하는 창완의 말에 맞추어 용의자의 기록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고 창완에게 PCL-R테스트 지를 건네었다.
“백 형사에게 용의자로부터 이것을 작성하라는 요구를 다시 하라고 전해줘.”
창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슬하에게 테스트 지를 건네받고 옆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왜 살해를 했냐며 범행 동기를 수차례 묻고 있는 백 형사에게 PCL-R 테스트 지를 전해 주고 슬하의 말도 전달했다. 백 형사는 그 테스트 지를 용의자 앞으로 밀어 넣으며 작성하라는 말을 했지만 용의자는 그것을 눈으로 잠시 쳐다보고는 불편한 기색으로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오랜 시간 용의자를 취조하던 백 형사는 취조실을 나왔고 용의자는 같은 자세로 앉아있었다.
슬하는 더 이상 취조를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뒤, 몇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내고 나서야 처음으로 자신이 직접 취조실로 걸어 들어갔다.
용의자는 여전히 초점 잃은 눈빛으로 한 곳만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고 책상 위에는 백 형사가 두고 간 PCL-R테스트지만 놓여있었다. 슬하는 용의자 맞은편 의자에 앉았고 별다른 말없이 용의자만 바라보았다. 용의자는 누군가 들어오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고 슬하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렇게 둘은 말없이 한 참을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었고, 어느 시점이 지나서부터 용의자는 슬하의 존재를 의식하는 것 같았다. 용의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으나 슬하는 이미 그것을 알아차렸다.
“잊어버렸나요?”
슬하가 오랜 침묵을 깨며 말을 했다.
“당신이 피해자들을 살해한 이유, 그것을 잊어버렸습니까?”
슬하는 다시 한 번 질문했고 용의자의 시선은 슬하를 향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자신이 피해자들을 살해하면서 생각했던 이유들이 너무 하찮은 것이라 보입니까?”
용의자는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슬하의 말에 반응을 나타내었다.
슬하는 책상 위에 있는 PCL-R테스트 지를 용의자 앞에 재차 밀어 넣었다.
“당신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당신을 반사화적 인격 장애, 사이코패스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신을 불편하게 합니까?”
용의자는 시선은 테스트 지를 한번 쳐다보고 나서 슬하에게 돌아왔고 슬하가 어떠한 말을 할지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당신은 사이코패스가 아닌 정상인으로 판명 되는 것이 두렵습니까?”
용의자는 미세했지만 지금까지의 반응 중 가장 눈에 띄는 행동을 보였고 슬하는 그것이 놀라움을 표시한다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추측하기에는 당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범행 동기는 첫 번째 범행에 의해서만 성립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걸...”
용의자는 신음하듯 말을 했고 용의자의 첫 대답의 술렁임이 슬하의 뒤에 있는 거울 너머에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그리 어려운 건 아닙니다.”
슬하는 용의자에게 자신의 추측들을 나열해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발견된 범행 장소에는 다른 장소와 다른 특이한 것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우선 발견 된 위치가 다른 장소들에 비해 외진 곳이었습니다. 등산로와 거리도 멀었고 가파른 언덕 안쪽에 눈에 띄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 위해서 그러한 장소를 선택한 것이지 남들에게 발각당하기 쉬운 장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번째 피해자 발견 장소만 시신이 유기되고 가장 늦게 발견된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자신이 범행을 저지른 후의 은폐 방식이었습니다. 다른 곳과 달리 그곳에서만 흙과 돌이 시신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첫 번째 장소는 비가 오면 물이 고여 있을 정도로 지반이 단단했고 웬만한 남자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구덩이를 파기 쉽지 않은 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것을 깊이 파기보다는 흙과 돌을 올려놓고, 주위에 많은 낙엽과 나뭇가지들로 그것을 덮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것 역시 발견이 되기보다 자신의 범행을 숨기려는 의도가 컸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용의자는 슬하의 말에 의해 자신의 기억과 생각을 같은 흐름으로 따라오는 것 같았다.
“첫 번째 장소를 제외하고 다른 장소들은 전부 그와 반대였습니다. 산책로, 등산로와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했고 지반은 더 연약했지만 첫 번째 장소만큼의 깊이만 파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돌과 같이 범행을 숨기려는 행동보다는 나뭇가지 등의 주위 사물들로 잠시 덮어두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는 첫 번째 범행이후 그 흔적을 지우는 것에 비해 전혀 다른 사고방식으로 접근했다고 볼 수 있는 행동입니다.”
슬하는 평소의 냉정한 목소리로 변해있었다.
“다시 말해 당신의 첫 번째 범행은 자신의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 다음의 살인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의 연쇄살인은 두 번째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용의자의 얼굴은 울상으로 변해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책상에 머리를 숙이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용의자는 얼마동안 그렇게 울고 나서야 얼굴에 눈물자국이 남아있는 상태로 일어나 슬하가 건네주는 휴지를 받아들었다. 그렇게 용의자는 자신의 마음을 추스른 후에 말을 시작했다.
“첫 번째 사람은 제 칼럼을 좋아하는 팬과 같은 열렬한 독자였습니다.”
용의자는 음성에는 아직 울음기가 남아있었다.
“제가 다니는 회사의 잡지는 물론 제가 쓰는 칼럼 등을 자신의 블로그나 SNS에 올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강연장, 시연회에 참석을 하며 안면을 익혔고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으로 친분이 쌓이면서 개인적 만남과 SNS상으로 궁금한 것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그 사람이 제 칼럼을 이용해 사람들을 현혹해 성형수술과 피부 관리 등을 알선하는 브로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동의 없이 저와 친분이 있다는 말과 제가 추천했다거나 또는 제가 운영한다는 식의 거짓말로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 그 사람에게 그러한 행동에 대해 해명을 요구했지만 그 사람은 오히려 제게 저와 같이 계획한 것이지 않느냐며, 그동안 제가 보내준 SNS 답문이 증거라고 자신에게 불이익을 가할 시에는 저를 같이 걸고넘어질 것이라고 협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친분을 증명할 수 있는 더 많은 자료와 자신의 일에 유리한 기사를 내줄 것을 요구하는 등 그 협박의 수위도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저에게 하는 협박도 괴로웠지만, 그 사람이 사람들을 속이고 이용하는데 거리낌 없는 그러한 모습에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거짓된 말과 웃음 그러한 행동을 사람을 속이기 위해 매시간 올리는 SNS상의 사진들. 자신의 행복을 남들에게 전해준다는 식의 위선들을 보면서 그 증오는 더욱 것 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사람을 죽이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용의자는 아직 살해된 사람에 대한 분노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살인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저에게 그것을 실행하기까지에는 몇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제게는 짧게 느껴졌고 그 사람을 죽이기 위한 생각으로 그 사람으로 인한 고통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완벽히 준비되었다 싶었을 때 그러한 일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용의자는 자신이 범행을 저지른 이후의 기분으로 돌아간 것 같았고 거기에는 만족감과 허탈감이 공존하고 있는듯했다.
“하지만 형사님 말대로 한 가지 생각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미리 봐 두었던 땅이 너무 단단했고 제 힘으로는 사람을 묻을 구덩이를 팔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금 발견된 형태로 파기 시작했고 제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너무 빨리 발견된 것입니다.”
용의자는 지금까지 자신의 이야기에 감정을 몰입하는 모습과 달리 자신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처음의 모습과 비슷하게 변해있었다.
“그런데 신문과 방송에서는 제가 한 행동이 엽기적인 살인이라며 제가 아닌 남자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제가 그 사람에게 고통을 주기위해 했던 행동들은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추측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소식을 접하고 어느 순간부터 어쩌면 내가 그러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고 있었습니다. 전 범행이후 죄책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허탈하기는 했지만 분명 그것은 죄책감과 구분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제가 범행을 저지른 사람과 비슷한 사람들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용의자는 자신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자신의 허영과 위선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시기를 조장하고 그로인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신을 위해 남의 상황이나 삶은 안중에 없는 사람. 자신의 미모나 치장으로 여러 사람들을 쥐고 흔드는 사람. 저는 그 전의 사람이 제게 접근한 것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취향과 같은 지역에 산다는 것으로 인터넷과 SNS로 그 사람들과의 친분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제가 생각했던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이라 판단되어졌을 때 그러한 일을 반복적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용의자는 한 번 길게 숨을 들여 마시고 그만큼의 긴 숨을 몰아내 쉬었다.
“그런데 제가 그러한 일을 벌일수록 제 마음속에는 죄책감이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닐 것이라며 외면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똑같은 일을 반복 할수록 제가 왜 이러한 일을 벌이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다른 사람이 제 대신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처음으로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많은 일을 벌여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제가 왜 그러한 끔직한 일을 계속해서 해왔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상태로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만약 사이코패스와 같은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저는 지금 어떠한 사람이 되어있는 것인지에 대한 두려운 생각뿐입니다.”
용의자는 자신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슬하는 괴로워하고 있는 용의자 앞에 PCL-R 테스트 지를 바라보았다.
“확인은 해봐야겠지만 저 역시 당신이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들은 의외로 상황에 순응적입니다. 자신이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의 중요성 보다는 그로인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유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만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정신적 장애는 단지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용의자는 슬하의 말에 고개를 들고 슬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저는 그런 사람에도 속하지 않은 그냥 괴물인 것인가요?”
용의자는 참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슬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것은 제가 판단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어쩌면 자신이 괴물이라 말하는 것이 당신을 정말로 괴물로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용의자는 슬하의 말에 대해 처음으로 괴로운 감정 이외의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당신은 처음 범행을 저지르고 그 다음 범행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론과 매스컴에서는 당신을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로 정의하기 시작했고 그로인해 당신은 실제 자신과 다른 인격의 사이코패스라는 틀에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 결국 당신은 다른 범죄를 저지르면서 본인 스스로가 사이코패스가 되었고, 이러한 검사지 판단에 상관없이 그 누구보다 완벽히 그 역할을 수행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찾는 것은 또 다른 틀 속에 자신을 가두어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슬하는 자신의 마주하고 있는 용의자를 가리켰지만 그 용의자를 지칭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얼마 전 당신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당신 대신 체포된 사이코패스로 판명된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폭행치사에 가까운 범죄를 저질렀지만 연쇄살인은 범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러한 범행을 연속적으로 할 수 있는 범죄에 대한 지적, 환경적 인지 능력도 떨어졌을 뿐더러 자신이 그러한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형사님은 제가 그러한 언론을 통해 얻은 정보로 인해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인가요?”
용의자는 이제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본인 스스로가 만든 부분이 결정적이겠지만 일정부분은 그러한 작용을 하는 것에 언어적인 힘과 환경적인 외부 요소의 결합이 작용했다고도 생각됩니다. 모든 사이코패스가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듯 그것을 인지했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 또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상황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전에 말한 먼저 체포되었던 사람은 어려서부터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남들보다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속에서 교우관계도 원만치 않았고, 학교에서 문제가 발생되면 어머니는 아들에게 사탄이 들어와 그렇다며 종교적 기도를 통해 속죄를 시켰습니다. 어머님은 아들이 문제를 일으킬수록 사회봉사에 매달렸고, 자신이 봉사를 해야 자식이 원만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 남자는 그러한 어머니의 행동을 보며 무의식중에 자신이 사탄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러한 자신을 괴롭히는 어머니에게 해를 끼쳐도 된다고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 남자가 가지고 있던 사이코패스 성향과 결합하여 연쇄살인은 아니더라도 또 다른 비극의 일부분으로 작용했을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도 제 안의 내제된 무언가와 외부 환경이 결합하여 그러한 일을 벌인 것인가요?”
용의자는 형사인 슬하의 뜻밖의 이야기에 혼란스러워 했다.
“그건 저 역시 알 수 없는 일이고 섣불리 판단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환경과 처한 상황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그것에 따른 우선순위를 정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해를 입거나 타인의 잘못된 행동으로 피해를 입게 된다면, 자신이 그 사람에 대한 응징을 직접 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에게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경우에만 일어납니다. 그것은 법과 도덕이 있고 그것에 따른 절차라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응징하는 우선순위보다 사회적 합의에 따른 적법한 절차를 우선순위로 앞에 두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자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 앞의 칼로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을 찌르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할지는 결국 그 사람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그것이 안 좋은 방향으로 틀어졌을 때에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재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첫 번째 희생자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은 근본적인 차이일 것입니다.”
용의자는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서 있는지 잠시 잊은듯했지만 슬하의 방금 전 말로 현재의 상황으로 돌아온 모습이었다.
“형사님은 왜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겁니까?”
용의자는 일반적인 모습으로 돌아온 것만큼 의식 역시 일반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다.
“만약 환경과 자신의 잠재된 무언가 때문에 모든 죄가 성립된다면 아마 당신은 가중처벌 대상이 될 만큼 훌륭한 환경에서 자라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억울한 상황과 그에 따른 여러 감정들 속에는 사회적 정의감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에 대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본질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자신의 행동을 설명 할 수 있는 근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가 이해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에게 자신을 사이코패스라는 틀에 가두어 놓고 그것을 기반으로 범죄를 수행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 제 의견을 전달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제 일이고 이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행동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용의자는 슬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 같았지만 슬하의 말을 듣고는 이내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장황한 설명을 한 이유를 한 가지 더 설명하자면 개인적으로 경찰로서의 범죄에 대한 저항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경찰은 범죄가 이루어진 다음에 후속적 조치에 해당합니다. 그것은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되고 범죄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지더라도 그것의 오류나 한계는 존재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야기는 경찰 내부에서의 힘만으로 모든 범죄에 대해 예방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범죄 예방을 내부의 기술로 찾기 보다는 이러한 사건의 본질을 찾음으로써 외부에 영향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당신은 엄중한 범죄를 지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자신의 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면 자신이 한 행동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을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방지 위한 방법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용의자는 슬퍼보였으나 이틀 동안 취조실에 있을 때와 같이 자신만의 세계 속에 갇혀 묵묵부답을 고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저 대신 체포당한 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마 그에 합당한 죄 값을 치루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슬하는 자신 앞에 용의자를 보며 사이코패스를 욕망했던 사람과 사이코패스를 거부하고 싶어 하던 사람의 얼굴이 서로 닮아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슬하는 취조실을 나와 얼마간의 용의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고 그 이후 투입된 형사들의 질문과 용의자의 대답으로 조서가 꾸며지게 되었다.
슬하는 수사본부에 와있었다. 수사는 거의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검찰 송치 시점을 조율하고 있는 중이었다. 창완과 우반장은 점심을 먹고 수사본부에 들어왔고 슬하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슬하는 수사보고서 검토를 잠시 멈추고 다가오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건네었다.
“참 힘든 수사였는데 그래도 이제 거의 끝나갑니다.”
우반장은 슬하 책상에 놓인 수사보고서를 보며 말을 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전 아직 안심이 되질 않아요. 용의자가 어떻게 변할 지도 모르고.”
슬하와 우반장은 기분이 좋아 보이는 반면에 창완에게는 아직 불안감이 상존해 있는 것 같았다.
“처음 체포된 용의자도 그렇고, 갑작스러운 수사중지도 그렇고, 이번 사건은 워낙 변수가 많아서 끝까지 안심이 안돼요.”
우반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슬하는 그런 창완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수사를 개시하고 이틀 만에 용의자를 검거했을 때는 무언가 원하던 타이밍이 있는 것 같던 누군가에게 한방 먹인 것 같아 기분은 좋았는데, 용의자의 진술 거부로 프로파일러가 2명이 있는데도 자백을 받지 못하고 검찰에 넘길까봐 얼마나 조바심이 났는데요.”
창완은 며칠 전을 생각하며 몸서리를 쳤고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슬하에게 눈을 돌렸다.
“그런데 선배는 어떻게 안거에요? 그 용의자가 그러한 심리 때문에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는 걸요? 같은 여자로서의 직감? 뭐 그런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지.”
창완은 슬하의 대답이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뭐에요? 지난번 범인이 여자라는 추정도 그렇고 이번일도 그렇게 대답하고. 그럼 우린 남자라서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창완의 말에 우반장도 궁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응. 그 말이 맞아.”
창완과 우반장은 똑같은 표정을 지었고 슬하는 둘의 그러한 태도에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흔히 비밀에는 세 가지 속성이 있다는 속설이 있어.”
슬하는 수사보고서를 덮고 말을 시작했다.
“어린 아이의 비밀, 성인 남자의 비밀 그리고 여자의 비밀. 이야기로 설명하자면 간단히 말해서 이런 줄거리야. 어느 마을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어떤 남자가 자신이 주인으로 생활하는 집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어. 목격자는 그 집에서 일하는 어린 아이였는데, 그 아이의 진술로는 거인이 다가와 자기의 주인을 칼로 찔러 죽였다는 거야. 경찰은 주위에 덩친 큰 남자들을 찾아다녔고, 그 중에서 그 집안과 앙숙인 집안의 아들을 용의자로 지목하게 되었어. 가뜩이나 사이가 좋지 않은 집안이었는데 최근에 불화로 용의자로 지목된 남자의 아버지가 그 죽은 남자와 격렬한 싸움 끝에 상해를 입었다는 거야. 그래서 그 아들이 아버지 대신 복수를 했다는 것이 경찰의 생각이었지.”
창완과 우반장은 이야기의 의미는 알지 못했지만 슬하가 하는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지. 죽은 남자의 딸이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자백을 한 거야. 자신이 그 앙숙인 집안의 남자를 사랑해서 그것을 반대하던 아버지를 죽였다는 거였지. 하지만 경찰은 아이의 진술과 정황증거로 인해 사랑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딸의 진술을 믿지 않았어. 오히려 사랑 때문에 남자의 죄를 자신이 뒤집어쓰려 한다고 추측을 했어. 결국 남자는 그 여자의 아버지를 죽인 죄의 형벌을 받게 되었고, 그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이루어지 않았지.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여자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은 딸이었고 그 여자의 말이 사실이라는 거야.”
슬하의 말이 끝나고 창완과 우반장은 얼굴을 마주보며 슬하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경찰이 놓친 것들이 있지. 우선 아이의 진술. 아이는 가끔씩 그 주인 딸하고 놀아주었는데 주인 딸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거인 가면을 쓰고 그 아이를 뒤쫓는 놀이를 했다는 거야. 그 아이에게는 가면을 쓰고 범행을 저지른 주인 딸이 정말로 거인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거인이 자신의 주인을 죽였다고 말을 했지만 경찰은 그 아이가 말한 거인이 아니라 거인을 대신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찾아다닌 것이지. 두 번째로는 경찰의 용의자 선정에 있어. 아마 아이가 어떠한 누군가가 자신의 주인을 죽이는 것에 대해 구체적인 진술을 했어도 경찰은 그 앙숙인 집안의 남자를 용의자로 지목했을 거야. 설사 개가 와서 죽였다고 해도 말이야. 경찰은 나오는 증거들을 그 남자에게 적용시켜 합리화하는 일만 남았던 거지. 그리고 마지막은 이미 말했다시피 여자의 자백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이 남는 되겠지. 여자는 진실을 이야기했지만 경찰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믿기 힘든 이야기기에 그 진실을 거짓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지.”
“결국 경찰의 선입견이 그 사건의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이야기에요? 그리고 그 이야기에 나오는 경찰은 남자를 의미하는 것이고요?”
“그런 샘이지.”
창완은 슬하의 말을 이해했지만 아직 납득하기에는 모자란 것 같았다.
“처음 제흥동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범인이 여자라는 증거는 여러 곳에 존재했어. 하지만 그것을 여자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섬세하거나 치밀한 남자로 해석했고, 자연스럽게 어떤 증거든 범인이 남자라는 전제로 수사를 하게 된 것이지. 그리고 범인이 잡히고 네가 말한 대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라는 말을 하면서 그 표정을 읽어내긴 했지만, 결국 다른 해석을 내놓았지. 여자는 진실을 얼굴에 표현 했지만 너는 그것을 거짓을 만들어 버린 것이지.”
“그래서 남자들인 저희들로서는 이번 사건과 같은 수사는 해결하지 못한다는 건가요?”
우반장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하다 자신이 원치 않는 결론에 도달해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전 그것이 지금 이야기에서 가장 큰 함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감정적 차이는 존재하지만 이 이야기는 약간 고루한 느낌이 없지 않다는 겁니다. 분명 여성보다 감성이 우선되는 남성도 존재하고, 남성보다 이성(理性)이 더 확고한 여성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존재했고 특히 과학과 수학 같은 분야의 학업의 기회가 여성보다 남성 위주로 보편화 된 것도 그러한 관념을 정착시키는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사물을 사물로만 안보고, 말과 행동을 의미로만 해석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것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아니라 현대화로 인한 인간의 공통된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창완과 우반장은 그제야 슬하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러 사람을 죽인 것도 모자라 눈꺼풀을 잘라내고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시신을 유기한 것을 보고 정상적인 사람, 특히 여자라고 생각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잖아요.”
창완은 아직 사건에 대해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눈꺼풀은 공포감 때문이었을 거야.”
“공포감이요?”
창완은 놀라움보다 호기심에 가까운 말투였다.
“사람이 죽음을 마지 할 때는 대부분 눈을 감는다고 생각하는데 실제의 경우 눈을 뜨는 경우가 더 많지. 그것은 사람이 갑자기 사망했거나 충격에 의해 사망을 경우에도 발생하지만, 원론적으로는 죽음에 의한 몸의 이완 때문이지. 인간이 죽게 되면 몸이 이완돼 여러 현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신경 또한 이완이 되어서 눈은 오히려 떠지는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지. 문제는 다른 사람이 떠있는 눈을 감겼더라도 일정시간 2~7일 사이에 다시 눈을 뜨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지.”
“그러면 범인은 시신이 눈이 떠지는 것이 두려워 아예 잘라버렸다는 말이에요?”
“처음 피해자의 눈꺼풀의 혈액 응고 사태를 보면 사망한지 2~3일이 지난 상태였어. 하지만 그 이외의 피해자들은 사망 직후 바로 잘려진 것으로 판별할 수 있을 정도로의 혈액 응고가 더딘 상태였지. 결국 범인은 처음 피해자가 눈을 다시 뜨는 것을 보고 그러한 현상이 빈번히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낸 후, 그 외의 피해자들에게서는 바로 눈꺼풀을 제거한 것으로 추정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러면 얼굴은 왜 몸과 다르게 밖으로 향해 있던 겁니까?”
이번에는 우반장이 물었다.
“그건 추가 진술 때 확보해야겠지만 아마 얼굴을 밖으로 한 것이 아니라 몸과 팔, 다리를 뒤집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슬하는 아직 화이트보드에 붙여져 있는 현장 사진을 가리키며 말을 했다.
“처음 피해자의 현장은 발견한 시점도 늦었고 현장 보존이 잘 되지 않아 사진 상으로는 확신 할 수 없지만, 아마 첫 희생자는 애초에는 다른 신체도 얼굴과 같은 방향으로 누워진 상태였을 것입니다. 범인이 자백했듯이 처음에는 피해자를 땅속에 매장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신을 똑바로 뉘여 놓았지만 그러한 작업이 수월치 않자 혹시 발견되어졌을 경우를 대비해 여성의 신체를 밖으로 들어낸 모습으로 아닌, 안쪽으로 누어진 상태로 발견되어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피해자들에게서 발 부분이 돌출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좀 더 깊게 판 흔적이 첫 희생자에게서는 발견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이 저의 추론입니다.”
“자신이 살해를 해놓고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를 고려한 배려라...”
창완은 손으로 턱을 만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의 분노로 인해 살인을 했지만 그 상황이 끝나고는 죽음에 대한 연민이 생겨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니까. 역사적으로 전쟁 또는 내분과 같은 싸움 끝에 적으로서 죽임을 당한 사람을 수습하는 과정에 정성을 다하거나 그 이후에 위령제 등으로 그 넋을 기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 일이니까.”
슬하는 자신이 할 말은 여기까지라는 것 같았고 창완은 그런 슬하를 보며 말을 했다.
“확실히 여자, 남자의 문제는 아닌 것 같네요. 선배의 비정상적인 관찰력과 판단력의 차이인 것이지.”
우반장 역시 창완의 말에 공감하는듯했고 슬하는 그 둘의 시선을 외면하고 다시 보고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체포된 용의자는 추가진술과 현장검증이 이루어지면서 슬하가 말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슬하는 아직 못다 한 일이 남아 있음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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