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o 총수 김범수金範洙 (1966)】" 더 기빙 플레지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 기부서약"
전라남도 담양에서 농사를 짓던 평범한 서민층 집안에서 2남 3녀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난 전라도 출신이다. 자식들 교육을 위해서 서울로 올라왔지만 정작 김범수의 부모님은 한번도 뭘 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노는 것도 마음껏 놀고, 공부도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공부했다. 다만 '넌 잘하고 있다'며 항상 응원을 해줬다. 훗날 김범수 본인은 그런 격려와 지지가 큰 힘이 됐다고 술회했다. 김범수가 중학생 때 아버지가 정육 도매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작은 집을 장만하기도 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부도가 났고, 다섯 남매를 다 대학에 보낼 수는 없어서 결국 김범수 혼자만 대학에 가게 됐다. 그래서 재수를 할 때는 혈서까지 쓰면서 독하게 공부했다고 한다.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사혈기로 손가락을 따서 혈서를 쓰고 담배를 끊기 위해 낱개로 파는 담배 3개비를 사다 책상에 올려놓고 진짜 힘들 때만 피웠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상 금연에 성공했는지 대학 합격 후에 2개비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재수 끝에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하고 과외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학교를 다녔다. 보통 가정이 어려우면 공부를 독하게 할 법도 한데, 그 서울대 공대 학사, 동 대학교 대학원 석사 학위를 취득해 졸업했다. 1992년 석사를 졸업한 후 전문연구요원으로 삼성데이타시스템에 입사했다.
그해 양식편집기 ‘폼 에디터’를 개발했고 1993년 호암미술관 소장품 화상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1996년에는 PC통신 유니텔을 개발해 유니텔 에뮬레이터 유니윈2.0, 유니윈98의 설계와 개발을 맡았다. 1998년 정식으로 연구소 생활을 시작한 그는 삼성SDS에서 평생 가는 동지들을 얻었다. 문태식 마음골프 대표, SDS 입사 선배이자 네이버컴과의 합병을 제의했던 김정호 전 NHN 글로벌 게임사업 총괄 등이 대표적이다. 사업 외에도 기부, 사회 기여 등 소셜 임팩트에 관심이 많다고 알려졌다. 특히 사람에 투자하는데 관심이 많아 보이며 100명의 CEO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2016년에 스타트업캠퍼스 초대총장으로 청년들이 직장이 아닌 업을 찾는 걸 돕겠다고 했고 사회혁신가를 찾아 지원하는 아쇼카코리아에 기부를 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코로나19나 강원도 산불, 태풍 피해 복구 등 사건이 터질 때마다 수십억 원씩을 기부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카카오 김범수, 장애인 고용 위해 사재 100억 내놨다 카카오김범수, 강원도 산불피해 복구에 개인주식 10억원 기부 2021년 2월에는 더 기빙 플레지에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서약을 했다.
평소 ‘성공이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이라는 에머슨의 시를 자주 인용한다고 한다. 재산 절반 기부 선언 후 이를 실행할 브라이언임팩트 재단을 만들었다. 특이한 점은 보통 기부 재단은 기금을 조성해 해당 기금에서 나오는 수익을 바탕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다수인 데 반해, 본 재단은 기부금을 즉각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한국의 게이츠재단 목표… 과학기술로 사회문제 접근” 브라이언임팩트재단은 한국에서 빅벳 필란트로피라는 방식의 기부를 처음 시도하고 있다. 빅벳 필란트로피란 ‘거액의 판돈’을 뜻하는 빅벳(Big Bet)과 ‘기부’를 뜻하는 필란트로피(Philanthropy)가 합쳐진 말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치 베팅하듯이 큰돈을 내놓는 걸 의미한다. 해외에서는 빌 게이츠, 매켄지 스콧이 대표적이다. 2021년 2월 임팩트 그라운드라는 사업을 통해 재단 설립 이후, 21개 단체에 총 250억 원을 기부했다.
“세상을 위해 베팅하라” 2022년 3월 29일, 이사회 의장직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인 김성수에게 넘겨줬다. 의장직 사임후에는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으로서 카카오의 글로벌 사업 확장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카카오 의장 내려놓은 김범수 “글로벌 사업 전념” 2023년 8월 1일, 비상임직인 국립오페라단 이사장에 임명되었다. 2024년 1월, 카카오 컨트롤타워인 CA협의체 공동의장에 올랐다. 2025년 3월, 방광암 초기 진단을 받으면서 치료를 위해 CA협의체 공동의장에서 물러났고, 한시적으로 운영되던 경영쇄신위원회 활동도 마무리됨에 따라 경영쇄신위원장에서도 물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총수로서 고문 조언 활동은 한다.
1990년대 말 PC방과 온라인 게임 열풍이 불자, 삼성SDS에 재직 중이던 1998년 6월 김범수는 현재 카카오 대표 남궁훈과 함께 한양대학교 앞에 '미션넘버원'이라는 대형 PC방을 창업한다. 법인명은 미션엔터테인먼트.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인 데다 그는 한 자리에서 모든 컴퓨터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개업 6개월 만에 5천만 원을 벌 만큼 PC방은 승승장구했고 PC방 운영을 아내에게 맡기고는 1998년 9월 삼성SDS를 나왔다. 김 의장은 그해 연말인 1998년 11월 강남구 삼성동에 한게임을 창업했다. 김범수는 2000년 한게임을 삼성SDS 동기 이해진 사장의 네이버와 합병시키고 NHN 공동대표가 된다. 이후 2004년 NHN 단독대표를 거친 이후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대표를 맡는다. 그러다 2007년 8월 대표직을 내던진다. NHN에서 나올 때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닙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 후, 김범수는 다 털고 가족이 있던 곳으로 떠났다. 자녀들과 놀아주고 학교 데려다주면서 1년을 보냈다. 그는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다시 귀국해 음악에 빠지고, 책에 빠졌다. 그렇게 가족과 놀기를 3년,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가족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카카오톡이 탄생한다. “텔레비전에서 PC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오는 큰 흐름이 있었다. 거기서 스마트폰 시대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원론적 질문을 주고받았다. 결국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답을 얻게 됐고 전방위적으로 여러 앱을 출시한 뒤 어떤 게 성공하는지 지켜보려 했다.
딱 2개월 뒤 카카오톡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카카오톡에 올인했다.” 카카오톡은 PC메신저 일색인 시장에서 '모바일 메신저'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무료 서비스와 그룹채팅의 강점을 내세운 카카오톡은 출시 1년 만에 1,000만 명의 이용자를 모았다. 당시 카카오톡이 급속도로 성장했던 이유는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동통신사의 문자 메신저는 글자수 제한이 있었던 건 둘째 치고 별도의 통신비를 엄청 지불했어야 했다. 카카오톡은 인터넷에 연결만 되면 글자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었고, 후에 출시한 이모티콘과 부가 기능들이 유명세에 불을 붙여 흥행을 이끌었다. 2014년까지도 경쟁사들의 성장이 더딜 때라서 김범수 의장의 시장 선점이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당시를 보면 매우 과감하고 급진적인 투자이고 사업이었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문자 메신저 또한 통신망 투자를 한 상태에서 수익원이 되는 것은 당연한데, 카카오톡은 그것을 무료로 해주었던 것. 사용자 입장에서는 문자 메신저가 공짜여서 좋기는 한데,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카오톡 입장에서는 매달 10억 원 이상의 서버 투자 비용이 계속 들어갔다. 김범수는 카카오톡 초창기에 단 한푼의 수익도 없이 서버 투자로 매달 10억 원 이상씩 돈만 쓰고 있었다. 다만 SDS와 한게임 등을 통해 인터넷 사업을 영위해온 그간 경험에서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돈이 된다는 신념만을 믿고 지속적으로 투자금을 쏟아부었다. 이후 김범수 개인 돈마저 고갈되고, 카카오톡 사용자들은 메신저 렉 걸린다고 아우성이 들리는 상황이 되고, 결국 중국 텐센트에서 투자금을 지원받아 지속적으로 투자를 넓힌다.
다만 김범수의 막대한 돈, 텐센트의 투자금 계속 비용이 발생될 무렵, 카카오톡이 전 세계에서 최초로 메신저로 수익이 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냈는데, 카카오 게임을 통해서 메신저 사업에서 수익 창출 모델을 최초로 제시하였다. 이후로는 선물하기 기능 등등. 이후 김범수의 전략대로 인터넷에서는 사람이 모이면 돈이 된다는 이야기는 정설로 법칙처럼 되어버렸다. 카카오톡의 성공 모델을 보고, 네이버는 라인을 기반으로 한 메신저를 재빨리 론칭했고, 중국은 QQ를 만들었다. 이후 2014년 다음과 합병한다. 카카오는 처음에는 무료 서비스라 게임 업체와의 연동에 주력해 수익을 냈지만, 이후 준비했던 유료 서비스들과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 은행 사업이 대대적으로 성과를 내면서 2019년, 자산총액 10조 이상의 대기업 기준을 만족하며 9년 만에 대기업이 되었다.
그는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과 환경의 변화를 강조하는 메시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 도전과 환경 변화에 관한 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