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금요일, 받아놓은 날은 빨리 다가온다더니 이삿날입니다.
20 여일 전부터 짐 정리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미진한 느낌입니다.
항상 바빠서 시간 내기가 어려운 작은 아들 방은 그대로 옮겨야 하고 안 입는 옷은 선별했다가 4일 날 헌 옷 수거하는 사람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무게가 자그마치 100kg이 넘더군요.
한 번도 입지 않은 투피스도 여러 벌... 남동생이 여성복 공장을 했기에 샘플로 만든 것은 대부분 내 차지였습니다.
앞으로 입을 일이 없겠다 싶은 것은 가차 없이 헌 옷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아이고! 대박입니다. 몇 집을 다녀야 할 것을 한 곳에서 일당이 나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헌 옷 수거하러 오신 분이 아주 만족해하며 하신 말씀입니다.
당일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하루를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섭니다.
8시가 조금 지나자 포장 이사를 하러 다섯 분이 오셨습니다.
남자 네 분에 여자 한 분이 한 팀입니다.
여자분이 주로 주방 쪽을 맡습니다.
100kg에 육박할 것 같은 육중한 몸매의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의 첫 멘트가
"아~유~ 저 많은 물건 다 들어가지 않겠는데..."
싱크대 안의 그릇을 다 꺼내 종류별로 상자에 넣고 남은 것을 보고하는 말에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나 정확히 알고서 하는 말인지...
"모닝커피부터 마셔야 하는데요." 가 두 번째 멘트.
"입주 청소는 하셨어요?" 가 세 번째 멘트
"새 집인데 청소를 왜 하나요? 깨끗하던데요." 내 말에 아주머니의 대답이
"오 마이 갓!"
어이가 없습니다.
주로 젊은이들이 아무 때나 쓰는 듣기 싫은 그 감탄사를 이 아주머니로부터 들을 줄이야...
싱크대에 나란히 걸려있던 원피스 수세미 6개를 가리키며
"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색깔로 두 개만 골라 하세요."라는 내 말에
"여섯 개 다 하고 싶은데요. 다 주시면 안 되나요?"
예상을 빗나간 아주머니의 당돌한 댓구에 잠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보통 수세미를 드리면 예쁘다는 말과 함께 고맙다며 감동하는 수준까지... 여러 모습들을 보이는데 이런 넉살 좋은 아주머니는 처음 봅니다.
"그럼 세 개 드릴게요, 나머지는 나도 써야지요."

포장이사 경력 25년이라는 팀장은 인상이 밝고 싹싹하고 유능해 보입니다.
'이케아'에서 사서 조립한 침대도 쉽게 해체하고 커튼이며 세탁기도 한치의 실수 없이 시원시원하게 처리합니다.
다른 세 분의 남자들도 말없이 맡은 바 책임을 묵묵히 했습니다.
일사불란하게 짐을 싸고 차에다 싣는 작업이 12시가 지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짐을 차에 다 싣고는 점심 식사하러 간다기에 점심 드시라며 팀장에게 점심값을 드렸습니다.
물론 계약에는 이런 조항이 없었지만 내 살림을 열심히 옮겨주는 사람들이라 고마운 마음에 섭니다.
이사를 와서 보니 가스 연결이 안 되어 있는데, 아주머니는 일하시는 분들에게 뜨거운 차를 끓여 줘야 한다며 가스 연결부터 하라고 합니다. 대한 도시가스에다 전화를 하니 너무 늦게 신청을 해서 가장 빠른 시간이 내일 오전 11시라고 합니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라며 전화를 끊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주머니가 다시 전화해서 자기에게 바꿔 달라고 했습니다.
"여보세요 대한 도시가스죠? 지금 백일도 안된 갓난아기 우유를 타야 하는데 빨리 와주세요.
왜 신청이 이리 늦었냐고요? 지방에서 오다 보니 그러네요. 지방 어디냐고요? 부산에서 왔어요."
눈도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유창하게 잘도 합니다.
거짓말처럼 잠시 후에 가스 연결하러 기사가 왔습니다.
간단하게 연결해주고 주의사항을 말하고 35,000 원을 받아 갔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아주머니를 쳐다보았습니다.
아주머니는 아주 만족한 듯 득의에 차서 만면에 미소를 띠며 하는 멘트가
"이런 방법 또 쓰면 안 돼요,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방법이 있는 줄도, 이렇게 하면 예약이 밀려서 안된다던 기사 출장이 바로 되는지도 몰랐습니다.
앞으로 이런 경우에 처한다고 해도 그 아주머니처럼 아주 태연하게 거짓말을 할 자신도 없고 할 마음도 없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아주 점잖게 조언을 하고 있었습니다.
포장이사 도우미 분들은 남편에게는 '사장님'이란 호칭을 쓰면서도 나에겐 '어머니'라고 하더군요.
잔금 받는 시각이 두 시간 늦어지는 바람에 연쇄적으로 늦어져 이삿짐을 미리 보냈는데도 해가 저문 시각에도 완전하게 상자를 다 개봉하지 못 했습니다.
팀장님이 환하게 웃으며 "이 댁 아드님은 공부를 굉장히 잘한 모양인데 우리 딸내미는 중간밖에 못 합니다."
우리가 듣기 좋은 말로 마지막 하루 일을 마무리 하려는 의도가 살짝 엿보이는 멘트였지만, 남편은 선선히 지갑을 열어 오늘 수고가 많았습니다. 가시면서 따뜻하게 좀 드시고 가십시오.라며 계약금 외에 수고비를 더 얹어 드렸습니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새 집에서 부~자 되세요."
"오늘 수고가 많았습니다. 안녕히들 가세요."

그리고 6.7.8일... 토요일부터 오늘 월요일까지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밤에 자러 누울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잘못 넣은 수납장 정리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아주머니의 그릇 정리는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해야 했습니다.
남자분들은 표시를 했다가 같은 곳에 짐을 갖다 놓는데 아주머니는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완전히 엿장수 마음대로 뒤죽박죽으로 그릇 정리를 하다 말고 갔습니다.
드레스룸은 창고가 되어 발 들여놓을 자리가 없습니다.
내가 미리 싸놓은 박스는 그대로인 채 차곡차곡 쌓여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걸려야 할지 예상도 못 하겠습니다. 최악의 경우 2년 뒤에는 또 이사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마음이 착잡합니다.
우리 희망사항은 우리 아파트가 재건축을 마칠 때까지 여기서 계속 살았으면 좋겠는데 집주인 사정에 따라야 하니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같은 경상도 분들이라 말씨와 정서가 비슷해서 좋아뵈는데... 우리의 기대가 현실로 되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첫댓글 너무 힘드셨겠어요.이사 한번하기가 얼마나 힘드는데요.건강 생각하셔서 천천히 정리 하시고
좀 쉬세요~~~
옮겨다 주는 것까진 포장이사에서 해주고, 그 다음은 내 차례지요
천천히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이사가 옛날에 비하면 시워졌는데 그대신에 이사 한번 하는데 깨어지는 돈이
만만치 않으니 돈 생각하면 이사도 자주 못하겠드라구요. 옥덕아 수고 많이했다
이제 집안에서 하는 일이니 천천히 하고 새집에서 새기분으로 새해에는 좋은 일이 있을꺼야...
건강도 챙기고 편하게 살아요.
언니, 덕담 고맙습니다.
이사하는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천천히 조금씩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 풍경을 볼수 있겠네요.
매일 조금씩 정리하시고 무리하지 마세요.
이제는 무리를 하면 몸에 이상이 오더라고요.
'오늘은 요기까지.' 하고 정해놓으시고 정리하시면 ..
풍경이래야 산자락이니 양재천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밋밋하지요.
무리하면 바로 신호가 오니 조금씩 천천히 하고 있습니다.
언니 날씨도 많이 추웠는데 이사하시느라 힘드셨겠어요.. 이사가 정말 힘드시죠?
한꺼번에 다 정리하려고 하지마시고 천천히 하세요....새집에서 새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덕담 고맙습니다.
조용하고 최신 설비로 제어기능이 되어있고 살기는 좋은데 아들 출퇴근이 불편해 아들에게 미안하네요.
추운날씨에 이사하느라 고생했겠다 정리하는게 주부 몫이라 아우님이 수고가 많았지
건강 챙기고 푹 쉬고 영양 충분히 취하고 내년에는 더 건강하고 행운이 있기를.....♥♥♥
언니, 덕담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의 연속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