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법 정비사업 규제완화 필요하다 - ⑫ 갈등 부추기는 주공 시행규정(2)

[박장원속기사]

정비사업 규제완화 필요하다 - ⑫ 갈등 부추기는 주공 시행규정(2)

“공신력 있다” VS “가치 떨어뜨린다” … 민 · 관, 추진위·주민대표회의 절충점 없는 대치

∥주거환경 개선만으로 만족 못해

대한주택공사의 도시정비사업 참여는 지난 1989년 마련돼 2004년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 「도시저소득주민의 주거환경개선을 위한 임시조치법」에 따른 주거환경개선지구 사업에서 비롯됐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주민들의 동의에 의한 정비사업을 전제로 하는 반면 주거환경개선 임시조치법은 공공 지원에 의한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의 측면이 컸다.
당시 주거환경이 열악한 것으로 정평이 났던 성남시를 비롯해 안양·인천시 등이 주거환경개선 임시조치법의 수혜 대상으로 꼽혔다.

이에 대해 한 지방자치단체의 주택정책 담당자는 “주공이 일정 부분 공신력과 행정 노하우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작금의 정비사업은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것 못지 않게 자산 가치 상승을 위한 목적이 크다. 공공이 나서서 정비사업을 주도할 만큼 열악한 주거환경을 가진 지역도 많지 않다”며 “따라서 주택의 브랜드가 주민들이 추구하는 정비사업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주공이 이에 대한 대응논리를 개발하지 못한 상황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지자체는 주공 끌어들이기 분주

이처럼 민간이 주공의 정비사업 참여에 대해 우호적일 수만은 없는 상황에서 관은 오히려 주공의 자금력과 행정 노하우에 대한 기대치가 큰 편이다.

주공 및 한국토지공사와 도시재정비촉진사업을 위한 총괄사업관리자 협약을 맺은 경기도와 도내 지자체 역시 이러한 공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기도내 일부 지자체에서 주공이 초기 기반시설 계획 등에 선 투자하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일부 사업을 보장해줄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도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성남시의 본의는 별개로 하더라도, 성남시가 구도심 정비사업에 ‘순환개발방식’을 채택한 것이 주공에 의존해 손쉽게 정비사업을 추진하려 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단적인 예다.

도시정비법에 의한 사업은 물론 재정비촉진사업까지도 비교적 주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서울시와 달리 경기도를 비롯한 광역지자체들은 지방정부가 주도적으로 속속 주공과 총괄사업관리자 협약을 체결하면서 주공의 입지를 강화시켜주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도 커지는 양상이다.


∥주공, 시행으로 수익 낸다

주공의 저평가된 브랜드 때문에, 주민들의 ‘주공 사업참여 반대’는 주공의 시공 참여 반대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최근 주공의 정비사업 참여는 시공보다는 시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 제18조는 “재정비촉진계획의 결정·고시일로부터 2년 이내에 재정비촉진사업과 관련하여 당해 사업을 규정하고 있는 관계법률에 의한 조합설립인가를 받지 못하거나, 3년 이내에 당해 사업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관계법률에 의한 사업시행인가를 받지 못한 경우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이를 직접 시행하거나 총괄사업관리자를 사업시행자로 우선하여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8조 제4항 제7호에 따르면 “당해 정비구역 안의 토지면적 2분의 1 이상의 토지소유자와 토지등소유자의 3분의 2 이상에 해당하는 자가 시장·군수 또는 주택공사 등을 사업시행자로 지정할 것을 요청하는 때” 시장·군수가 직접 정비사업을 시행하거나 주택공사 등을 사업시행자로 지정해 정비사업을 시행하게 할 수 있다.

아직까지 사례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주공이 사업시행자가 되는 경우 시공까지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민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시공회사 선정은 주민투표에 의한다’는 것이 주공의 홍보방식이다.

아파트 브랜드 역시 이렇게 뽑은 시공사의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이 주공이 시공을 배제한 상태에서 사업성 좋은 곳을 위주로 시행에 눈독을 들이는 것을 공공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라고 보기는 상식 선에서 어렵다.

하남시의 가칭 덕풍10(E)구역 주택재개발 추진준비위원회에 따르면 주공은 재개발예정구역 인근에 사무실을 개소한 이후 홍보직원을 동원하는 등 시행 수주전에 적극적이다. 추진위는 자체 소식지에서 20여 주공 홍보직원의 용역비가 50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공이 시행만으로도 충분히 수익을 거두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비용 절감은 ‘부풀리기’

주공은 자체 사업에 대해 정보공개를 꺼리고 있어 주공 시행에 대한 손익을 정확하게 끄집어내기는 어렵다. 다만 덕풍10(E)구역에서 주공이 제시한 자료를 근거로 제시해 본다.

주공에 따르면 주공 시행시 ▲국가계약법에 의한 경쟁입찰 등으로 공사비 156억원 절감 ▲마감재 및 추가공사비를 엄격한 원가기준에 의해 산정 50억원 절감 ▲컨설팅 주공 직접 시행 21억원 절감 ▲감리비 주공 자체감리로 31억원 절감 ▲분양보증 수수료 정부 보증에 따른 62억원 절감 ▲설계 낭비요인 제거로 17억원 절감 등 337억원이 절감되고, ▲조합 시공방식에서는 시공사 공사비에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시행자 인건비와 일반관리비 등 50억원을 비용 책정해 이를 차감하면 287억원이 절감된다.

이에 대해 덕풍10(E)구역 추진위는 주공의 ‘원가정산’이 과대 홍보라는 주장이다.

추진위는 주공이 시행한 신림 제1구역 관리처분계획인가서의 자금운영계획서를 인용해 주공이 시행자로서 지출한 비용이 ▲시행자의 사업추진비 6억3566만원 ▲재개발사업 관리비 105억3241만원 ▲시행자 투입금에 대한 비용 437억8만원 ▲행정용역비 6억1057만원 등 554억원에 달했다고 밝혔다.

또 주공이 주장한 분양보증 수수료 절감액 62억원에 대해서는 “보증금액은 주택재개발사업의 일반분양에 해당하는 면적에 잔금 20%를 제외한 계약금 및 중도금을 곱한 일반분양금액을 말하는데, 주공이 계산한 3만9000평은 조합원 및 일반분양분과 임대아파트 면적을 모두 포함했을 뿐만 아니라 분양가 1200만원도 계약금 및 중도금과 잔금까지 포함해 보증수수료를 부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질적 저하로 자산가치 하락

주공이 컨설팅을 직접 시행해 비용을 절감한다는 데도 업계에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주공이 전국을 상대로 사업을 챙길 수 없는 것이 분명한데 컨설팅을 직접 시행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반면 “주공이 정비사업체들을 협력업체라는 명분으로 등록시켜 줄 세우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은 보다 현실적이다.

이에 대해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 설계업체 등 정비업계 관계자들은 “주공이 다소 과장한 측면이 있으나 주공의 사업비가 저렴한 것은 사실일 수 있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용역비를 적게 책정하는 대신 용역업체 또한 적은 용역비 안에서 수익을 남겨야 하는 만큼 주공이 시행한 주택의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D건설사 관계자도 “주공이 시행한 아파트단지는 대형업체의 우수 브랜드를 부착하더라도 주공이 시행했다는 이미지가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며 주공 시행방식과 조합 시행방식에 차별을 뒀다.

이와 관련 주공의 자체 감리방식은 ‘원가 절감’ 차원보다는 주택 품질 면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높다.

경실련은 “국민들은 주공이 철저하게 자체적으로 감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으나 사실은 일부 공사는 감리를 외부에 용역을 주는 등 주공아파트는 공정하고 철저한 감리를 받고 있다고 볼 수 없다”면서 “결국 자체 감리라는 특혜를 누리면서도 아파트 관리감독은 소홀히 함으로써 질 낮은 아파트만 양산해내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껍데기 공영개발 방식 확대’라는 특혜까지 얹어줌으로써 주공의 몸집만 키워주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정부의 ‘보호’ 속에 주공 영향력 확대 추세

정비사업 시장에서 주공의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주공 산하 주택도시연구원에 ‘도시재생사업단’을 발족시키고 향후 7년간 1500억원을 투자해 연구·시범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물론 정비사업이 큰 틀의 재생사업으로 논의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일 수 있다. 하지만 재생사업의 주체가 주공이 돼야 하는가는 별개의 논제다.

주공의 공공성이 재평가를 받아야 하고, 앞선 우려들에 대한 불식 노력과 함께 주공의 경쟁력에 대한 의문도 풀어야 할 숙제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주공이 시행하는 정비사업의 절차가 조합 시행방식 이상으로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합 방식은 모든 안건이 대의원회의, 추진위, 주민총회 등 규정된 절차에 의해 처리되는 반면 주공 시행은 시행자 선정시에만 주민 다수의 동의를 구할 뿐 시행자 선정 후에는 합리적 근거도 없는 5∼15인의 주민대표회의가 주민들을 대표해 대부분의 사안을 결정하게 된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주민대표회의는 주공의 거수기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있으며, 대표성을 상실한 주민대표회의의 결정은 주공과 주민, 주민과 주민의 갈등으로 치닫게 된다.
시공사 선정의 수의계약 조항은 조합 방식과 비교해 납득할 수 없는 절차이고, 특히 최근 재정비촉진예정지구 등에서 정비기반시설을 두고 주민과 지자체의 줄다리기가 심화되고 있어 주민 소외는 집단 민원을 야기할 수도 있다.

부천시재정비촉진지구연합회 최준식 위원장은 “심지어 사업시행인가를 위한 사업시행계획서는 관리처분의 기초자료로서 비용 분담금 등을 산정하는 중요한 절차인데도 불구하고 주민 동의를 생략함으로써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고 말한다.

주공 정비사업 시행규정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해 보인다.

      (출처 : 주거환경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