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환의 돈황벽화로 읽는 불교경전
23. 화엄경변-막고굴 제12굴 ‘칠처구회도’
지상·천상 오가며 펼친 가르침 “한 화면에 담아라”
보리수 아래 정각 이루신 부처님 지상·욕계 넘나들며 설법
삼매 상태서 펼친 일…방대함·공간제약 극복 화공들의 난제
심오한 내용도 당대 화엄대가들이 ‘칠처구회도’ 그렸던 이유
막고굴 제12굴 화엄경변.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마갈제국(摩竭提國) 아란야법보리도량[阿蘭若法菩提場]에서 처음 바른 깨달음[正覺]을 이루시었다.”
장장 80권에 달하는 ‘대방광불화엄경’(실차난타역본)은 이 한 구절로 시작한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석가모니부처님이 보드가야 보리수 아래 적멸도량에서 깨달음을 이룬 순간을 말한다. 이 정각의 순간 “여래의 지혜는 삼세에 들어가 모두 평등해지고, 몸은 모든 세간에 가득하며, 음성은 시방세계에 두루 퍼지니, 마치 허공이 만물을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모든 경계에 차별이 없는 것과 같다.”
‘화엄경’은 지루가참역 ‘불설도사경’, 지겸역 ‘불설보살본업경’, 축법호역 ‘보살십지경’ 등 단편적인 내용의 경전이 일찍부터 중국에 유포되었다. 나중에 집성본(集成本)의 ‘화엄경’이 번역되었는데, 동진(東晉) 말엽(418-421), 불타발타라에 의해 번역된 60권 ‘화엄경’과 당 측천무후 집정시기 중인 699년 실차난타에 의해 번역된 80권 ‘화엄경’이 대표적이다. 특히 80권 ‘화엄경’이 번역된 직후 중국불교에서 화엄학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이후 동아시아 불교를 대표하는 주요 경전으로 자리 잡았다.
돈황석굴에서는 화엄경변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화엄경’이 중국불교에 미친 영향이 지대한 만큼 다수(29개)의 석굴에서 그려졌다. 그러나 가장 이른 시기의 변상이 성당(盛唐)에 조성된 막고굴 제44굴인 것으로 보아 다른 경전의 변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출현하였으며, 80권 ‘화엄경’ 번역 이후 화엄학의 성행과 시기적으로 맞물림을 알 수 있다. 이후 등장한 화엄경변은 대체로 정형화된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일례로 만당(晩唐) 시기에 조성된 막고굴 제12굴 북벽의 화엄경변을 보자. 화면의 하단에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대연화(大蓮花)를 배치하였는데, 이것은 ‘화엄경’에서 드러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를 대표한다. 경에서는 풍륜이 바치는 향수해(香水海)에 떠 있는 이 연꽃에 티끌 수만큼 많은 세계가 그물처럼 얽혀 세계망을 구성하며, 그 가운데 각각의 부처가 출현한다고 하였다. 석가모니불은 그 입과 치아에서 광명을 비추어 티끌 수 같은 세계해에 두루 비추니, 저 세계의 보살 대중들이 모두 이 광명 속에서 화장장엄세계를 볼 수 있었다고 하였다.
화장세계해를 기단으로 대부분 화면을 차지하는 것은 아홉 칸의 격자에 배치된 각각의 설법도이다. 이것은 이 변상이 80권 ‘화엄경’에 근거한 7처 9회를 표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9회의 배치는 각 석굴의 화엄경변 마다 다소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어느 것이든 하단의 중앙공간인 제1회의 설법장소를 보리도량, 즉 석가모니불이 정각을 이루신 자리로 배치한 것은 동일하다. 제1회에서 보현보살이 설주가 되어 화장세계와 비로자나불에 대해 설하고 있다.
경에서 설하는 제2회에서 제9회까지 설법회의 장소와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제2회는 보광명전에서 문수보살이 설주가 되어 믿음[信]을 설한다. 제3회에서부터 제7회까지는 장소를 하늘로 옮겨 보살도를 강설한다. 제3회는 도리천궁에서 법혜보살이 설주가 되어 보살의 십주(十住)를 설하며, 제4회는 야마천궁에서 공덕림보살이 설주가 되어 십행(十行)을, 제5회는 도솔천궁에서 금강당보살이 설주가 되어 십회향(十回向)을, 제6회는 타화자재천궁에서 금강장보살이 십지(十地)를 설한다. 제7회는 다시 보광명전으로 내려와 보현보살이 주요 설주가 되어 등각과 묘각의 계위에 해당하는 정각의 세계를 설하며, 제8회는 역시 보광명전에서 보현보살이 설주가 되어 보살도를 총괄한다. 마지막으로 제9회는 서다림(기원정사)에서 보현보살이 설주가 되어 선재가 53선지식을 역참하는 과정을 통해 보살행을 제시한다.
앞서 언급했듯 화장세계해의 바로 윗자리는 제1회 보리도량의 자리이다. 그리고 보리도량의 바로 윗자리이자 9칸의 정중앙 자리의 설법도는 그 밑을 깎아지른 산세가 받치고 있는 형세이다. 이것은 곧 수미산을 나타내며, 여기에는 대체로 수미산 정상과 맞닿은 도리천궁에서의 제3회 설법회가 자리한다. 즉 보리도량과 수미산정의 제3회 설법장소를 중심으로 보자면, 화면의 상단은 하늘에서의 설법회를 배치하고, 나머지 지상에서의 설법회는 그 하단에 배치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예컨대, 오대(五代, 907-960)에 조성된 막고굴 제61굴이나 제76굴 화엄경변의 경우 이러한 작례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많은 경우 제1회 보리도량과 제3회 수미산정의 자리를 제외하고는 각 석굴마다 배치에 차이를 보이고 있어, 형식을 규정하기가 힘들다. 12굴의 경우에도 방제의 내용으로 볼 때, 제3회가 수미산정이 아닌 다른 곳에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원인이 당시 화공의 ‘화엄경’에 대한 부족한 이해에 기인한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한국에 남아있는 송광사, 선암사, 통도사 등의 조선후기 화엄경변에서는 천상과 지상에 준한 도상적 안배를 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정각(正覺)의 삼매 속에서 지상과 욕계의 천(天)을 오르내리며 보살도에 대한 설법을 펼치셨다. 그러나 이 모든 설법은 석가모니불이 여전히 보리수 아래에서 삼매에 잠긴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다. ‘화엄경’은 곧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통하여 불타의 화장세계를 드러내는 것이며, 또한 광대무변하면서도 미진(微塵)한 세계를 광명변조(光明遍照)하는 세존의 위대한 깨달음을 설하는 것이다.
연화장세계해와 7처 9회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화엄경변은 어찌 보면 매우 단조로운 도상적 구성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이 화공을 더욱 혼란에 빠뜨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이 방대한 분량과 심오한 사상의 경전을 달리 어떻게 하나의 화면에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의미에서 법장(法藏), 징관(澄觀), 사조(嗣肇)와 같은 당시의 화엄대가들이 칠처구회도를 그렸다는 기록은 유념할 만하다.
[1661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