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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교 분의 질문까지 모두 답을 하고 나니 약속한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군대가 감옥이 되느냐 마느냐는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이야기를 스님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잖아요. ‘아이고, 그래도 너희 때가 좋다. 너희야 무슨 걱정이 있냐? 그래도 청춘이 좋지.’
그런데 왜 자기가 청춘일 때는 청춘이 고달프다 그래 놓고 자기가 늙으면 ‘그래도 청춘이 좋지’ 이럴까요? 이게 잘못이라는 거예요. 늙어서 청춘이 좋아 보이면 청춘일 때도 청춘이 좋아야 하는 거예요. 어릴 때는 어릴 때가 좋고, 청소년 때는 청소년이 좋고, 청년 때는 청년이 좋고, 장년 때는 장년이 좋고, 저처럼 늙으면 ‘늙은 게 좋다’ 이렇게 생각해야 해요. 이게 자기를 사랑하는 거예요.
군대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군대 생활이 좋다’까지는 못 가더라도 ‘힘들다, 괴롭다’ 이건 아니어야 해요. 군대 생활을 힘들게 보내면 본인 손해잖아요. 아무도 그걸 보상해줄 사람이 없어요.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면 자기만 하루하루 손해예요.
여러분들이 생각을 딱 바꿔서 여기 있는 동안 자기에게 필요한 걸 하겠다고 마음먹어보세요. 체력 단련을 하자든지, 인간관계를 연습하든지요. 이렇게 해서 현재에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세요.
대학 가서 공부할 거리를 군대 안에서 아무리 생각해봐야 현실에서 이루어지는데 한계가 있어요. 여기서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우리의 삶은 늘 이렇게 한계가 있어요. 그 한계 내에서 제일 유용한 것을 선택해서 할 때 자기 삶을 가장 온전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니 너무 지루해하지 말고, 자꾸 제대할 날만 손가락 꼽지 말고요. 안 꼽아도 조금 있으면 저절로 나가게 돼요. (모두 웃음)
제가 그걸 언제 깨달았는지 알아요? 절에서 참선하다가 깨달은 게 아니에요. 감옥에 있으면서 깨달았어요.
제가 집시법 위반으로 감옥에 가게 됐어요. 안에 들어가니까 저더러 잘못했다고 반성문 써라 하길래 ‘나는 잘못한 거 없다!’ 이렇게 버텼더니 징벌을 줘요. 집시법을 위반한 소위 ‘양심수’들을 징벌하는 방법은 소위 ‘잡범’이라는 한 사람들과 같은 방에 집어넣어 버리는 거예요.
거기 갔더니 한 방에 12명이 있는데 죄다 사기 친 사람, 간통해서 들어온 사람, 도둑질 한 사람 등등이었어요. 개중 6명이 개신교 신자, 4명이 천주교 신자였고 불교 신자는 저를 제외하면 한 명 있었고요. 그런데 불교 믿는 사람이 제 신분을 알고는 자기한테 불교를 좀 가르쳐 달라는 거예요. 그때는 책이고 볼펜이고 아무것도 없으니까 지금까지 제가 아는 것의 핵심만 다 정리해서 이 사람한테 매일 한 시간씩 가르쳐줄 스케줄을 짜 놨어요. 그런데 어느 날 검사가 부르더니 나가라는 거예요. 공부가 덜 끝났는데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검사님, 일주일만 더 있다 가면 안 될까요?’
‘왜?’
‘지금 공부를 가르치다가 놔둔 게 있으니 마무리를 좀 하고 나갔으면 좋겠습니다.’그렇게 말하니까 별 웃기는 놈 다 있다는 식으로 쳐다보더니 그날로 내보내 버렸어요. 그 때 제가 탁 깨달았어요. 감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안에서 밖으로 나오겠다 하는데 상황 때문에 못 나오면 그게 감옥이에요. 내가 안에 있겠다 하면 그건 감옥이 아니에요. 제가 이걸 감옥에 있으면서 탁 깨쳤어요.
거기서 배운 게 많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정말 나쁜 놈들이지만 그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안 그래요. 우리는 죄가 없는데 어쩔 수 없이 형을 받는 거라고 해서 이름도 우리 스스로 ‘양심수’라 그러고 다른 사람들은 진짜 죄가 있는 놈이라고 해서 ‘잡범’이라고 불렀어요.(모두 웃음) 그런데 거기 가서 같이 살아보니까 그 사람들도 전부 다 죄가 없어요. 전부 다 억울해서 들어온 거예요. 교통사고 내고 들어온 사람은 상대가 합의를 안 해줘서, 간통죄로 들어온 사람은 마누라가 어떻게 해서, 도둑질하다가 들어온 사람은 하필 그때 방범대원이 나타나서 억울하게 됐다고 해요. 전부 재수 없어서 그렇게 됐고 다 억울한 거예요. 제가 그때 크게 반성을 했어요.
‘와, 내가 너무 건방졌구나. 나는 죄가 없는데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이 사람들은 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들도 다 재수 없이 들어와서 억울하게 있는 것이지 각자는 아무도 죄가 없는 거구나.’
그때 이후 제가 교도소에 가서 설법할 때 법문 내용이 달라졌어요. 요즘은 안 그렇겠지만 옛날에는 교도소나 군대에 가면 떡이나 빵을 가져가서 나눠주니까 다들 그걸 먹으러 모여요. 다들 그걸 먹으러 모이기 때문에 법문은 잘 안 들려요. 그런데 저는 교도소에 가면 첫마디가 이래요.
‘여러분들 다 억울하죠?’
그러면 얼굴들이 확 펴집니다.(모두 웃음) 이 세상에 자기들 억울한 심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저도 옛날에 가서 강의하면 강연 요지가 ‘당신들은 비록 한때의 실수로 잘못을 저질러서 죄인이 됐지만 앞으로 정신 차리고 참회하고 잘 살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늘 이랬어요. 그런데 제가 직접 감옥살이를 해보고 나와서 한다는 소리가 ‘다 억울하죠?’ 이러니까 그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이 되겠어요?
감옥에 안 가봤으면 죽을 때까지도 이렇게 말할 줄 몰랐을 거예요. 저는 서너 달 있었는데, 그 서너 달 있었던 동안 배운 것이 밖에서 보낸 어떤 서너 달보다 많은 거예요. 이걸 두고 ‘크으, 억울하다! 결국은 죄 없이 내보내 줄 거면서 아무 죄 없는 나를 집어넣었잖아’ 이렇게 생각하면 제가 막 불만이 생기고 술 마시고 욕도 해야 하잖아요. 그러면 승려의 품위에 안 맞잖아요.
그런데 이거 하나만 딱 깨친 것만 해도 ‘아, 내가 너무 잘 갔다!’ 이렇게 됐어요. 그때 그 경험을 한 덕분에 저는 인생에 있어서도 깨친 게 있고, 법문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날 때도 교감을 하기가 참 좋았어요. ‘아,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고 있구나’ 이런 걸 알 수 있었죠.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들이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삶의 소중함을 알아주길 바라서예요. 앞으로 넘어지고, 뒤로 자빠지고, 애인과 헤어지더라도 다 지나 놓고 보면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고 소중한 삶이에요. 그걸 고통과 상처로 안고 있으면 부채가 되고, 그걸 교훈과 경험으로 안고 있으면 자산이 돼요.
그래서 실패가 좋은 거예요. 모르던 걸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실패해야 다시 실패하지 않을 길을 찾을 수 있어요. 그런데 성공을 하게 되면 그때 당장은 기분이 좋지만 교만해져서 다음에 더 큰 실패를 불러옵니다. 이런 걸 여러분들이 좀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제 요지는 이왕 하는 군대 생활을 즐겁게 하자는 거예요. 수처작주(隨處作主), 즉 어떤 곳에 처하든 주인이 되세요. 내가 이 상황을 주도하는 적극성으로 바꾸십시오. 그럴 때 개인에게도 우리 군 전체에게도 활기가 돌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마치겠습니다.”
장병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외동으로 자란 청년들이 많아 군대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단체로 생활하는 것이 많이 힘들 것인데, 오늘 스님의 강연이 큰 활력소가 되었길 바래봅니다.
다섯시 반에 강연을 마친 스님은 곧바로 서울 구로구민회관으로 강연을 하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퇴근길 차가 막혀 저녁은 먹지 못하고 시작 전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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