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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10월 20일 화요일
[(녹)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시라며, 그분께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셨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한 가족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처럼 깨어 있는 종이 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2,12-22
형제 여러분, 12 그때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약속의 계약과도 무관하였고,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3 그러나 이제,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15 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16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17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멀리 있던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18 그래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5-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제가 병사로 복무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부대의 지휘관이 바뀌었는데 마침 천주교 신자라고 하였고, 근무를 잘 서는 병사에게 포상 휴가를 잘 준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마침 당직 근무에 들어간 저는 그 지휘관이 언제 찾아와 주려나 기대하며 중대 현황을 보고하는 연습을 열심히 하였고, 마침 부대를 순찰하던 지휘관을 만나 연습한 대로 성실하게 중대 현황을 보고하였습니다. 그런 제게 지휘관은 “너, 신학생이야?”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예, 맞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렇게 근무를 마친 뒤 취침에 들어가려던 저를 그 지휘관이 호출하였습니다. 중대 간부들은 제가 근무하다가 무슨 사고를 쳐서 불려 가는 줄 알고 걱정하였지만, 저는 혹시나 하는 기대와 함께 집무실로 갔습니다. 그런 저에게 그 지휘관은, 묵주 기도 바치는 법을 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근무 후 피로감에 더하여 실망감도 컸지만, 제 나름으로 묵주까지 그려 가며 열심히 설명하였습니다. 비록 기대하던 휴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신학생으로서 신자에게 신앙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 무척 뿌듯하게 다가왔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복음 속 종의 역할은 주인의 시중을 받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깨어 있으며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였기에 갑자기 찾아온 지휘관을 맞아 신학생으로서 도움도 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신앙인으로서 늘 깨어 있으려면 무엇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언제 어떻게 오시더라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자세를 청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김영송 알베르토 신부)
매일 아침 허리띠를 맬 때 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서품식 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장엄한 입당성가와 함께 입장 행렬이 시작됩니다. 저희는 장백의를 입고 허리에 띠를 매고 왼쪽 손에는 제의를, 오른손에는 큰 초를 하나 들고 초긴장 상태로 입장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손에 켜 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몸과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그때 당시의 가슴 설레고 떨리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언제까지나 사제품 때의 긴장과 설렘의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합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루카 12,35-36)
허리에 띠를 맨다는 것, 등불을 켜놓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오늘날 신발 끈을 동여매는 것, 손전등을 챙기는 것과 유사한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몸을 움직일 준비를 한다는 것, 머나먼 밤길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파스카 축제일마다 파라오의 압제를 피해 이집트를 탈출하던 기억을 되살리는 파스카 예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들은 허리에 띠를 매었습니다. 이유는 약속의 땅으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언제든지 응답하겠다는 의미에서의 행동이었습니다.
요즘 미사 전 제의를 갖춰 입을 때 허리에 띠를 맬 때 마음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우리 선배 살레시안의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주님, 지금 제가 봉헌하려는 이 미사가 제 생애 마지막 미사인 듯 봉헌하게 하십시오.”
매일 새벽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바지를 입고 허리띠를 맬 때마다 짧은 화살기도를 되풀이해야겠습니다.
“주님, 오늘 이 하루가 제 생애 마지막 날인 듯 살게 하소서. 만나는 모든 인연을 마지막 만남인 듯 소중히 여기게 하시고, 내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지상에서 완수하는 마지막 임무인 듯 정성껏 임하게 하소서. 오늘 매 순간 주님 은총 안에 깨어있는 하루를 살게 하소서.”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예전에 즐겨 보았던 만화 영화 가운데 ‘마징가 제트’가 있습니다.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우리들을 위해서만 힘을 쓰는 착한 이”라는 노래 가사도 생각납니다. 마징가 제트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고 악의 무리와 싸우는 정의의 사도였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힘센 영웅이 나타나 우리를 구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밝히는 참된 영웅은 무쇠로 만든 로봇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의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만이 아니라, 사랑으로 깨어 있는 평범한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일을 이루십니다.
제가 다른 일을 잠시 멈추고라도 꼭 가려고 하는 성사가 있습니다. 바로 병자성사입니다. 아픈 사람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청하기 때문입니다. 아침 산책길에 병자성사를 청하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봉사자와 함께 병원으로 가려 했는데, 그 봉사자에게 회사의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다행히 다른 봉사자가 와서 함께 병원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10분 동안 저는 환자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치료를 받기 위해 한국에서 멀리 미국까지 왔지만, 몸이 치료를 잘 견디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병원에서 만난 자매님의 증세는 조금 호전되어 있었습니다. 성사를 집전하는 저도 위로를 받았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들었습니다. 자매님의 통증이 갑자기 심해지자, 본당의 한 봉사자가 기꺼이 응급실로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 밤을 새우며 환자의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가족도 아니고 오래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지만, 아픈 교우를 자기의 가족처럼 돌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요 내 형제들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아플 때 곁을 지키며, 어려울 때 손을 내미는 하느님의 가족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저는 사제의 직무로 병자성사를 집전했지만, 밤새 환자의 곁을 지킨 봉사자는 삶으로 사랑의 성사를 보여 주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주님을 향해서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밤을 새운 본당 봉사자의 열정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던 장벽을 허무시고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외국인도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치료를 위해 낯선 미국에 온 자매님에게 병원과 언어와 환경은 모두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밤새 곁을 지켜준 봉사자가 있었기에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서는 국적과 언어의 장벽이 무너집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낯선 사람도 이웃이 되고, 이웃은 형제와 자매가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은 채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잠을 자지 않는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이웃의 아픔을 알아차리고, 누군가의 부르짖음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가식과 교만, 게으름과 분노의 등불을 들고 있으면 그 불은 자신과 이웃에게 상처를 줄 것입니다. 그러나 희생과 나눔, 겸손과 온유의 등불을 들고 있으면 어둠 속에 있는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병자성사를 청하는 문자를 받고 길을 나서는 것, 급한 환자를 응급실로 모시고 가는 것, 밤새 곁을 지키는 것이 바로 등불을 켜 놓고 주님을 기다리는 종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습으로 찾아오십니다. 때로는 배고픈 사람으로, 때로는 외로운 사람으로, 때로는 병상에서 고통받는 사람으로 찾아오십니다. 그때 우리가 사랑의 등불을 들고 곁을 지켜준다면, 우리는 이미 찾아오신 주님을 맞이한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우리도 매일의 삶에서 이웃의 아픔을 알아보는 깨어 있는 눈을 지니면 좋겠습니다.
<늘 바로 지금여기>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루카 12,36)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당신
언제쯤
오시나요
내일이나
모레나
글피
아니요
늘 바로 지금
믿는 만큼
바라는 만큼
사랑하는 만큼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당신
어디쯤
계시나요
하룻길이나
닷새길이나
열흘길
아니요
늘 바로 여기
믿는 만큼
바라는 만큼
사랑하는 만큼
오늘의 성인
성 말코 (Malchus)
활동년도 : +4세기경
신분 : 수도승, 은수자
지역 :
같은 이름 : 말쿠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의 말에 의하면 성 말쿠스(또는 말코)는 니시비아(Nisibia) 출신으로서 부모의 결혼 강요를 피하기 위하여 도망을 나왔다. 이윽고 그는 안티오키아(Antiochia) 교외의 칼키스(Khalkis)에 이르러 은수자들의 그룹에 끼어들어 수도자가 되었다. 그의 부친이 사망했다는 소문을 들은 그는 원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가서 수도자로서의 삶을 허락받으려 하였다.
그래서 그는 알레포(Aleppo)와 에데사(Edessa) 사이를 오가는 대상(Caravan)들을 따라 가다가 베두인족의 공격을 받았는데, 이때 그와 어느 한 처녀가 노예로 팔렸다. 그런데 그의 주인이 함께 팔려온 그 처녀와 자신을 결혼시키려 하자 그는 자신은 이미 결혼하였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 후 둘은 도망쳐서 성 말쿠스는 수도원으로 돌아가고, 그 여자도 집으로 가기로 하고 어느 동굴 속에서 숨어 살았다. 그러나 사자로부터 공격을 받아 죽을 고비를 잘 넘긴 후 성 말쿠스는 칼키스로 갔고, 그 처녀는 고향으로 갔으나 가족을 만나지 못하여 말쿠스의 움막으로 찾아왔다. 그녀 역시 그곳에서 은수자로서 살았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그들의 높은 덕은 비길 데가 없었다고 찬양하였다.
성녀 우르술라 (Ursula)
활동년도 : +연대미상
신분 : 동정순교자
지역 : 쾰른(Koln)
같은 이름 : 오르솔라, 우루술라, 우술라
성녀 우르술라는 4세기경 독일 쾰른(Koln)에서 11,000명의 소녀들과 함께 순교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들의 순교에 얽힌 이야기들은 중세기 때 “황금 전설”(Golden Legend)에 수록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우르술라는 영국에서 그리스도교 신자인 어느 왕의 딸로 태어났다. 우르술라는 이교도 왕의 아들로부터 청혼을 받았으나, 결혼을 하지 않고 동정녀로 살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3년이란 말미를 얻어서 귀족 가문의 처녀 10명과 함께 여행길에 나셨다.
우르술라와 10명의 처녀들은 각각 1,000명의 처녀들을 데리고 황해를 떠나 바다 건너 유럽 대륙의 쾰른에 도착하였으며, 그 다음에 육로로 로마(Roma)까지 갔다. 그들은 다시 쾰른으로 돌아왔는데, 이때 훈족의 족장이 우르술라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부당했다. 그러자 화가 난 족장이 우르술라와 그 일행에게 신앙을 포기하도록 요구하며 고문을 하였고, 우르술라의 지도를 받은 그들은 배교하지 않고 모두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1,000이란 숫자는 'XIMV'을 후대에 필사자가 잘못 읽은 데서 기인한다. 본래 이 표기는 '11명의 동정 순교자'(11 Martyres Virgines)라는 의미인데, 이를 '11,000명의 동정녀'(11 Milla Virgines)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1535년 성녀 안젤라 메리치(Angela Merici, 1월 27일)는 우르술라 성녀의 이름을 딴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성녀 우르술라는 오르솔라(Orsola)로도 불린다.
복자 디에고 루이스 데 산 비토레스 사제와 성 베드로 칼룽소 순교자 기념일(예수회 고유 전례력)
디에고 루이스 데 산 비토레스는 스페인 북부 부르고스의 귀족가문에서 1627년에 태어났다.
1640년에 예수회에 입회한 그는 1651년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해외 선교를 희망했던 그는 1659년에 필리핀 선교의 임무를 받았다.
다음 해 1660년에 스페인에 머물면서 선교를 위한 준비를 했던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거리에서 설교를 하였고, 1662년이 되었을 때 마침내 태평양을 가로질러 필리핀으로 출발하였다.
1666년까지 마닐라 대학(University of Manila)의 학장(dean)을 역임했던 디에고 루이스 데 산 비토레스는 라드 로네스 제도(오늘날의 마리아나 제도)의 선교 책임을 맡아서 활동하던 중에 원주민에게 살해를 당했다.
‘마리아나의 사도’ 디에고 루이스 데 산 비토레스는 선교자로서 이방 원주민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려던 노력을 통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베드로 칼룽소드(St. Pedro Calungsod (of Cebu) )
평신도 선교사,교리교사
베드로 칼룽소드는 필리빈 세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예수회 신부들에게 교육을 받았다.
스페인어를 비롯하여 그림, 노래, 연기, 목공 등을 배워 익혔으며, (라틴어로 사제와 주고받는 이전 방식의) 미사 복사에도 소질이 있었다.
이후 괌에서 예수회 선교사들과 함께 차모로 족에게 교리를 가르쳤고, 여러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신앙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괌에 망명한 한 중국인 범죄자가 '세례수에 독이 들었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일부 병약한 아기들이 병으로 죽자 이를 오해한 사람들이 선교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클룽소드와 디에고 루이스 데 산 비토레스 신부가 어느 아기에게 유아 세례를 주려 할 때, 아이의 아버비와 다른 원주민이 그들을 창과 칼로 공격했다.
클룽소드는 처음에 공격을 피했으나, 디에고 신부와 함께 결국 18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공격자들은 죽은 두 사람의 옷을 벗기고 발에 돌을 매달아 바다에 던졌다.
두 사람의 시복시성 절차가 진행되던 도중 정치적, 종교적 혼란 때문에 중단되었다가 디에고 신부가 먼저 시복되었고, 이후 잊혀졌던
클룽소드의 기록이 발견되며 그의 삶이 재조명되었다.
그의 전구로 인한 치유 기적이 인정되며 2000년에 시복되었고, 2012년 성인 반열에 올랐다.
성 힐라리온(Hilarion)
활동년도 : 291-371년
신분 : 수도원장
지역 : 가자(Gaza)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는 팔레스티나의 가자 남쪽 타바타(Tabatha)에서 태어난 성 힐라리온의 생애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이교도 부모에게서 출생한 성 힐라리온은 15세가 되어 문화와 지식의 위대한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공부하던 중 개종하여 세례를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사막의 성 안토니우스(Antonius, 1월 17일)를 만나 테베(Thebae, 나일 강 중류에 위치한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수도로 오늘날의 룩소르 Luxor)로 가서 두 달을 함께 산 뒤 가자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사이에 그의 부모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는 유산을 형제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준 뒤 세속의 모든 인연을 끊고 사막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악과 육신의 유혹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는 기도와 금욕, 고독의 삶을 살았다. 그가 은둔하던 장소는 마주마(Majuma)로부터 6-7마일 떨어진 바다 근처의 습기 많은 저지대였다. 그는 갈대와 골풀 등으로 만든 오두막에서 살았다. 나중에 작은 방을 지었지만 그것마저도 그가 편히 눕기에는 좁을 정도였다. 그는 일 년에 한 번, 부활절에만 머리를 깎았으며 작은 정원에서 직접 기르는 몇 개의 무화과와 약간의 야채를 먹으며 생활하였다. 그의 엄격한 생활 방식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추종자들이 그의 근처에서 생활하고자 모여 들었고, 그가 행한 몇 차례의 치유 기적으로 인해 많은 병자들도 찾아왔다. 그는 강론과 삶의 모범으로 많은 이교도들을 개종시켰다.
65세까지 성 힐라리온은 마주마에 살면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말보다는 삶의 실천을 통해 가르쳤다. 하지만 이제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끝났다는 생각과 자신이 없어도 주민들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의 자비를 얻기 위해 기도와 고통 속에 숨어 지내고자 하였으나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은 그가 떠나는 것을 반대하였다. 결국 실질적인 감금 상태에 있던 그는 단식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그들을 떠날 수 있었다. 360년경 마주마를 떠나 이집트로 향한 그는 먼저 40명의 제자들과 함께 테베에 있는 성 안토니우스의 무덤을 참배하였다.
성 힐라리온의 만년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이집트에서 괴롭힘을 당했고 또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의 체포 명령으로 인해 리비아의 사막으로 피신해야 했다. 그 후 그는 침묵과 낮은 자리에서 생활하기를 갈망해 두 명만을 동반한 후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바다를 건너 시칠리아(Sicilia)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장작을 패다 팔아 생활하던 중 그의 초기 제자인 헤시키우스(Hesychius)를 만났다. 곧 그의 명성이 널리 퍼져 또다시 많은 순례자들과 병자들이 그를 찾아 몰려들었다. 성 힐라리온은 쉴 틈조차 없을 만큼 바빠지자 제자 헤시키우스의 도움으로 자신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달마티아(Dalmatia) 해안에 있는 에피다우루스(Epidaurus)로 갔다. 그러나 또 같은 일이 반복되자 어둠을 틈타 헤시키우스와 함께 키프로스(Cyprus)의 파포스(Paphos)로 갔다. 그곳에서도 그의 기적은 계속되었고, 병자들과 신심 깊은 사람들 그리고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를 방문하러 왔다. 그래서 성 힐라리온은 다시 헤시키우스의 도움으로 높은 산에 있는 접근 불가능한 곳을 찾아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372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죽음을 앞두고 헤시키우스에게 편지를 써서 그의 재산의 전부인 성경과 짧은 망토의 상속인으로 정하였다. 그는 사망 후 파포스 근처에 묻혔으나 헤시키우스가 비밀리에 그의 시신을 마주마로 옮겨 안장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성 힐라리온은 당나귀를 타고 악마나 용, 도마뱀을 십자가로 제압하는 늙은 은수자로 표현된다. 그는 키프로스와 시칠리아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