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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묵상글 ( 성모 승천 대축일. - 은총으로, 은총으로, 은총으로!.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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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2024.08.15 02:41
- 은총으로, 은총으로, 은총으로!
“아들을 낳으실 때 아무 흠 없이 동정성을 간직하신 그분께서
사후 당신의 육신을 아무 부패 없이 간직하셔야 마땅했다.
태중에 창조주를 모셨던 그분은 하느님의 집에 거처하셔야 마땅했다.
성부의 정배가 되신 성모님께서는 하늘의 신방에 거처하셔야 마땅했다.”
성모 승천 교리를 믿을 교리가 되게 한 다마스쿠스의 요한의 이 선언은
흠 없이 주님을 낳으신 마리아가 부패 없이 승천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이 말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원죄 없이 잉태되시고 흠 없이 잉태하신 마리아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부패 됨 없이 하늘로 오르시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며,
은총으로 시작하신 주님께서 은총으로 끝맺음도 해주실 것이라는 얘기지요.
사실 오늘 축일의 의미도 마리아가 당신의 능력이나 공로로 하늘에 오르셨음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불러올리셨음을 기념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원죄 없이 잉태되어 나시고,
죽어 부패 없이 하늘에 오르실 때 마리아가 한 것은 없습니다.
적어도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한 것은 무엇입니까?
정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까?
무염시태와 승천에 있어서 마리아의 몫은
위대한 믿음과 위대한 수동태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대로 되어지는 것이고
하느님 명령에 순명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하고 내 힘으로 하려고 함으로써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그리고 나를 통해서 하시려는 것을, 하실 수 없게 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가장 완전한 수동태가 되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하신 다음,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셨는데 아버지 뜻이 땅에서 가장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이 마리아에게서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렇게 바꿔 기도하곤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제 안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아무튼 마리아는 자신이 주님의 종이 되겠다고 함으로써 주님의 어머니가 되는데,
종으로 낮추니까 하느님께서는 그를 주님의 어머니로 높여 주신 것이고,
주님의 어머니이기에 원죄 없이 잉태되기도 하셨지만
주님의 어머니이기에 부패 없이 승천하게도 하셨지요.
이 지점에서 다마스쿠스의 요한과 프란치스코의 같은 점과 차이점이 갈립니다.
같은 점은 두 분 모두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에 방점을 둔다는 점입니다.
교회의 오랜 전통은 마리아의 동정성을 너무 강조하면서
마리아를 따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정배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데
다마스쿠스의 요한이나 프란치스코는 주님의 어머니이심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다마스쿠스의 요한은 마리아가 성부의 정배가 되셨다고 하였지만,
프란치스코는 성령의 정배가 되었다고 했는데 이점이 차이점이고,
이보다 더 중요한 차이점은 동정을 간직함으로써 주님의 어머니가 되셨다고 함으로써 주님의 어머니가 되는 데에 마리아의 공로가 있었음을 암시하지만
프란치스코와 프란치스칸들은 은총으로 어머니가 되셨다고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굳이 마리아의 공로가 있다면
오늘 엘리사벳의 칭송처럼 주님의 말씀을 믿으신 것이고,
그럼으로써 천사의 말처럼 은총이 가득한 여인이요 어머니가 되신 점입니다.
은총으로 잉태되시고,
은총으로 어머니 되시고,
은총으로 승천하신 마리아를 기리며 본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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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머리카락 색깔 측정기’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단순히 전 세계의 모든 머리카락을 인종을 구별한 것이 아닐까 했더니, 사실은 인종 차별에서 나온 측정기라고 합니다. 1927년 오이겐 피셔는 아리아인(독일인)의 인종적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종 혼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인종적 순수성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이 ‘머리카락 색깔 측정기’였습니다.
이 인종 차별적인 이론은 곧바로 사람들에게 거부되었을 것 같지만, 반대로 뉘른베르크법에 영향을 끼쳐서 1930년대와 제2차 세계 대전에 이르기까지 나치 체계를 뒷받침했습니다. 유다인, 흑인, 로마니인 등을 표적으로 삼아 박해하거나 살해하는 행동을 합법화한 것입니다.
당시의 아리아인들은 이런 생각과 결정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많은 아리아인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집단주의에 빠져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던 수많은 박해, 지금은 분명 당시의 사람들이 잘못 판단했다고 말하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예수님이 잘못되었고 또 국가 반대하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했고 단죄했습니다.
지금의 내 판단이 무조건 옳을까요? 아닙니다. 그 기준을 이 세상의 테두리에 맞춰서 따져 들어가면 옳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주님 기준으로 따져보면 틀릴 때가 더 많습니다. 따라서 자기 기준에 맞추는 교만의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교만의 마음으로는 제대로 판단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겸손의 마음으로만이 세상의 기준을 접고 주님의 기준에 맞춰서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기준을 철저하게 지켰던 분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이십니다.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들었을 때도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겸손을 보여주십니다. 또한 태중에 하느님의 아드님이 계신대도 먼저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가십니다. 이에 엘리사벳은 깜짝 놀라서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 1,43)라고 말하지요.
이 밖에도 성모님의 겸손은 끝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성전에서 잃어버렸을 때, 카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했을 때,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으셨고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끝까지 지키시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하느님께 기준을 맞춰서 사신 분,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을 하늘로 불러올리셨습니다.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지를 묵상했으면 합니다. 세상이 아닌 철저하게 하느님께 맞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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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언: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 떼어 보면 모두 영리하고 분별이 있지만, 집단을 이루면 모두가 바보가 되고 만다(프리드리히 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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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오늘은 성모승천 대축일임과 동시에 우리 민족의 기쁨인 광복절이기도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성모송>에 언급되고 있듯이, “은총이 가득 하신 분”, 곧 참으로 복되신 분이셨습니다. ‘은총이 가득하다는 것’은 축복의 풍요로움과 구원의 완성을 말해줍니다. 사실, 마리아는 구세주를 낳아 인류를 구원하는 계기를 마련하셨으며, 그러기에 하느님의 가장 완전한 구원의 도구가 되셨습니다.
또한, 단순히 예수님을 낳으신 어머니라는 혈연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이 칭송하고 있듯이, “하느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던” 신앙의 여인이었기에 행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보면,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요, 비운의 어머니셨습니다.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시골 처녀로 어린 아기를 안고 피난길에 올라야 했고, 뼈를 깎는 가슴 아픈 예고를 들어야 했던 어머니였습니다. 어린 아들을 잃고 3일 동안 애태웠었고, 아들 예수에게 문전 박대를 당했었고, 아들이 십자가형에 처형당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고,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울부짖었던 어머니셨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십자가상에서 죽으시고 묻히셨지만 부활하실 것을 믿으셨으니, 이 부활이 바로 구원의 완성이요, 우리의 희망이요 기쁨입니다.
분명, 성모님께서는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시기 위해, 하느님의 특별한 배려로 원죄의 물듦이 없이 출생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원죄의 결과로 갖게 되는 죽음이 없이, 곧바로 승천하여 하느님께로 가심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셨습니다. 그러기에, 원죄 없으신 잉태가 진정 성모님께 베풀어진 자비라면, 이제 성모님의 승천은 온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진 자비입니다.
이토록,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의 삶과 미래가 하느님 안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우리 모두가 성모님같이 영광을 입은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성모님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자신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자비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구원을 노래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안에 살아 있다는 노래요,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삶을 바꾼다는 혁명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우리 안에서 큰일을 이루시는 주님을 찬미합니다. 욥처럼, 우리 안에서 그분께서 이루신 “측량할 수 없이 큰 일, 헤아릴 수 없이 놀라운 일”(욥 5, 9)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사부 베네딕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 자신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을 찬미”(규칙서 머리말 30절)하는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우리 안에서 이루신 측량할 수 없이 큰 일, 헤아릴 수 없이 놀라운 일들을 찬미합니다. 당신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시고 활동하심을 찬미합니다. 우리가 당신의 자비를 입은 존재요, 우리의 삶이 당신 안에 있음을 찬미합니다. 당신과 함께 저희에게 영광을 입혀주심에 찬미합니다. 복되신 성모님과 함께 우리 주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아멘.)
오늘, 우리는 성모님의 승천과 함께 우리 민족에게 베풀어진 기쁨인 광복을 기념합니다. 이 광복이 바로 우리에게 베풀어진 성모님을 통한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마치 제1차 세계대전이 파티마 성모님의 전구로 종결되었듯이,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동란 역시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승천대축일에 종결되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우리 안에 베풀어진 하느님의 자비와 축복을 찬미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또한 오늘은 해방의 기쁜 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북이 분단된 불행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형제적 화해와 평화를 이루지 못한 채, 많은 이들이 동포요 형제를 적으로 여기고 대적하며, 여전히 편협하고 경직된 사고로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평화를 원하고, 연대와 협력과 대화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때입니다. 상대방을 굴복시키려 하거나 내 편으로 변화시키려하기 보다, 상대방의 고통과 어려움에 공감하고 연민으로 다가가야 할 때입니다. 오늘, 성모승천 대축일에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특별히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루카 1,54)
주님!
제 안에서 활동하시는 당신을 찬미합니다.
제 안에 베푸신 헤아릴 수 없이 놀라운 당신의 자비를 찬미합니다.
오, 주님!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여 찬미하는 일이 제 삶의 전부가 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자비의 노래 외엔 아무 것도 아니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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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겸손함으로 하늘을 바라봅시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세주의 어머니를 우리에게 보내주셨고 어머니를 통하여 우리의 필요를 전구해 주시도록 안배하셨습니다. 오늘 성모승천 대축일을 맞이하여 성모님의 전구로 겸손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성모님을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모범이요, 안내자요, 동반자로 모실 수 있는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자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하늘로 불러올리셨습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0년 교황령에서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었던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친 다음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으로 들어 올림을 받았다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계시 된 신앙의 진리이다.” 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성모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이 장차 얻게 될 신분을 이미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모님께서도 예수님과 같은 운명을 하느님 안에서 누린다는 뜻입니다. 천국을 차지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성모승천은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 줍니다. 인간의 몸을 지니신 성모님께서 하늘로 올림을 받았기에 우리도 하늘로 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도 하늘로 올림을 받을 수 있도록 성모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초대이기도 합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믿음의 승리요, 모든 믿는 사람들의 예형이요, 모범으로서 죽음을 극복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모님과 더불어 하늘의 꿈을 이루기를 희망합니다.
성모님은 항상 아드님이신 예수님과 함께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철저히 다랐습니다. 성모님을 예수님의 첫 번째 사도라고 말합니다. 성모님은 예수님과의 특별한 일치 안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육신은 예수님의 육신처럼 썪지 않고 보호되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곧 육신과 영혼 모두를 구원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으로부터 받으신 몸과 함께 부활하셨으며, 변모되신 인성으로 하느님 아버지께로 올라 가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몸과 같은 몸으로, 하지만 변모된 몸으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창조된 인간이신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운명이 무엇인지 확증해 줍니다. 이미 그리스 철학자들은 인간의 영혼이 죽음 이후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고, 그들은 육신을 멸시했으며, 육신을 영혼의 감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육체가 하느님 나라의 행복 가운데서 영혼과 일치하도록 하느님께서 준비하셨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변모된 육체는 하늘나라에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계시이며 우리 신앙의 핵심인 “육신의 부활”입니다.
성모님 승천은 우리가 몸과 마음, 우리의 모든 존재를 통해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라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육신으로만 하느님을 섬긴다면 노예와 같은 행동일 것입니다. 단순히 영혼으로만 하느님을 섬긴다면 우리 인간 본성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성 이레네오 교부(220년경)는 말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이고, 하느님을 보는 것이 사람의 생명입니다.” 형제들을 향한 관대한 섬김으로 표현된 하느님께 대한 기쁜 섬김 안에서 살아간다면 부활의 날에 우리 운명은 우리의 천상 어머니의 운명과 같을 것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강론 요약). 우리의 구원은 육체와 영혼의 결합체인 인간 구원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몸의 신학’을 통하여 영육의 소중함을 일깨우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성모님은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루카1,46). 라고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눈길을 마리아에게로 끌어당긴 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모님을 바라보면서, 겸손이야말로 우리를 하늘로 이끄는 길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겸손을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재능, 재산이나 성과 때문에 우리를 들어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낮추는 사람, 섬기는 이를 들어 높이십니다. 사실 마리아는 자신에게 어떤 호칭이나 직함을 붙이지 않습니다. 그저 “주님의 종”이라고 부르실 뿐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겸손한가? 칭찬받고 인정받기를 좋아하는가? 성모님처럼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가? 아니면 주목받으려 하는가? 살펴야 합니다. 성모님은 자신의 작음을 통하여 먼저 하늘을 얻었습니다. 자신을 비우는 만큼 하느님으로 채워집니다. 자신이 보잘것없는 사람임을 깨닫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만큼 하느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바로 자신의 겸손 때문에 은총이 가득한 분이십니다. 성모님은 일평생 집안일을 하면서 평범하고 겸손하게 사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우리도 평범한 일상 안에서 하늘에 불러올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더 겸손하고, 더 낮아짐으로 하늘을 향하여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의 삶의 여정에 함께하여 누구보다도 철저히 주님을 뒤따랐던 성모님을 성자 예수님께서 누리신 영광에 동참하게 하늘로 불러올리셔서 천상 영광을 누리고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한 전구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기를 원하는 이는 성모님의 도우심을 청해야 합니다. 구지 성모님을 통하지 않아도 되지만 통하지 않으면 그만큼 “전구하심”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모님께 의탁함으로써 더 큰 은총을 입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잉태에서 죽음까지 그리고 성령강림을 기다리며 제자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아드님이 십자가에 매달려서 갖가지 모욕을 당하며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을 때 다른 모든 이의 믿음은 흔들렸지만, 성모님께서는 그분이 하느님이셨다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셨습니다.”(성 알폰소리구리오)
바로 성모님은 예수님의 삶의 여정에 누구보다도 가까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셨습니다. 믿는 이들의 모범이십니다. 그래서 “성모님을 통하여 모든 것을 예수님께로!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성모님께로!”입니다.
성모님의 시선이 늘 당신의 아드님을 향해 있었고 하느님의 뜻을 가슴에 품었기에 우리도 “성모님처럼 생각하고 그분이 바라신 것을 바라고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바를 행하고 그분이 지향하시는 바를 지향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님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먼저 성모님 안에 있으라는 뜻입니다”(알베리오네). 성모님 축일에 그분의 겸손과 믿음을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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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2008년 시흥5동 성당에 있을 때입니다. 목사님이 성당엘 찾아왔습니다. 대화 중에 목사님은 제게 몇 가지 물어보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성모님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가톨릭은 성모님을 믿느냐고 하였습니다. 개신교 신자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 해 줄 수 있지만,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배운 목사님이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답답했습니다. 먼저 흠숭과 공경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흠숭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공경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친 성인과 성녀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예수님을 낳으신 성모님께는 좀 더 큰 존경과 사랑을 표현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이분이 이제 너의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성모님에게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톨릭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성모님을 어머니로 존경과 사랑을 드린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교회를 위해서 전구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가톨릭은 성모님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은 저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성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저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5살 때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있습니다. 큰 길에 나갔다가 그만 버스에 타고 말았습니다. 내리고 보니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제가 얌전하게 생겨서 누가 데리고 갔을 거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길을 잃어버리면 파출소로 가라고 했던 아버님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눈에 보이는 파출소로 갔고, 거기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아버님은 실종신고를 했고, 제가 있는 파출소로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머물면서 사제들과 대화를 하셨는데, 저는 파출소에 머물면서 경찰 아저씨가 사주신 순두부찌개를 먹었습니다. 제가 사제가 되었을 때입니다. 인사이동으로 제가 가야할 성당이 정해지면 어머니는 저보다 먼저 성당에 가서 기도하였습니다. 아들 사제가 건강한 모습으로 사목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제가 외국으로 갔을 때를 빼고는 어머니는 언제나 저보다 먼저 가서 기도하였습니다. 4년 전에 하느님의 품으로 가신 어머니는 13년 전에 하느님의 품으로 가신 아버지와 함께 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는 교회에서 선포한 성모님께 대한 믿을 교리도 있지만 성모님께서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순명’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의 이야기를 들었던 성모님은 당혹스러웠지만 하느님의 뜻임을 알았고,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순명은 원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순명은 원하지 않는 것이라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따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열정’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마리아의 노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이신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열정이 있었고, 가야 할 길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 굶주린 이를 보살피시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세 번째는 ‘중재’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혼인 잔치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혼인 잔치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예수님께 부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때가 오지 않았지만 성모님의 청을 받아주셨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사랑하고, 공경하는 성모님의 승천 대축일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들 모두 언젠가 하느님의 품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의 표징입니다. 누군가 이야기했습니다. 영원한 것은 끝도 없는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영원한 것은 채워짐이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채워지고, 사랑이 채워지고, 믿음이 채워지는 것이 바로 영원함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끝도 없는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 속에서 우리는 모두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 신앙인이 가야 할 미래를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일생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충실한 응답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의 삶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으셨습니다.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자신보다는 이웃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는다면 이 세상에 더 많은 평화가 이룩될 것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지혜롭게 극복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성모승천 대축일은 광복절이기도 합니다. 분단된 조국은 절반의 광복입니다. 언젠가 하나 되는 조국으로 진정한 광복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면서 성모님의 전구를 청합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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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민동규 다니엘 신부님.
찬미 예수님
성모 마리아께서 자신의 친척인 엘리사벳을 방문하십니다.
사실 산모가 움직이는 것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편한 교통수단이 없던 시대에는 더 그렇습니다.
또한 아기가 생기면 제일 먼저 찾아 나서는 것은 자신의 어머니일 것입니다. 어머니가 이런 것, 저런 것을 알려주기도 하고 잘 돌봐줄 수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어머니가 아닌 엘리사벳을 찾아 방문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그 먼 길을 찾아 나서셨던 것일까요? 아마도 ‘동병상련’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만남과 더불어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신 두 분은 하느님을 찬미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을 찬미하고 하느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베푸신 사랑을 찬미했습니다.
두 분 모두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했음은 오늘 복음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성모 승천’ 또한 하느님을 찬미하는 신앙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 ‘성모 승천’을 ‘몽소 승천’이라 불렀습니다.
‘몽소 승천’의 뜻은 ‘들어 올림을 받아 승천하였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느님의 은총을 성모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어 하늘의 어머니가 되셨다는 뜻입니다.
복음도 오늘의 대축일도 모두 그 중심에 하느님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성모님의 삶 전체가 하느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의 삶은 성모님을 닮아 그 중심에 하느님께서 계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모든 신앙의 길 중심에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고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하루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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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볶음밥
볶음밥 첫걸음은 단연 ‘달걀 볶음밥’입니다.
입맛 없을 때 혹은 시원하고 잘 익은 김치나 깍두기가 있을 때 우리는 달걀 볶음밥이 생각날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냉장고에 잘 익은 김치가 있나요? 그럼, 달걀 볶음밥과 그 궁합이 딱입니다.
우선 밥 한 공기를 준비해 주세요.
대파도 썰어 준비해 주세요.
달걀 두 개를 풀어 밥과 섞어주세요. 섞을 때 맛소금을 두 번 꼬집어서 넣어주세요. 소금 멍들지 않게 살짝살짝….
웍이나 프라이팬에 기름을 3큰술 두르고 파를 먼저 넣어주세요. 어느 정도 파기름이 되었다 싶으면 노란색으로 달걀 코팅된 밥을 넣어주세요.
처음에는 죽 같지만, 나중에는 죽일 것입니다.
고슬고슬해질 때까지 볶아주시고 다 볶아졌다 싶으면 불을 끄세요. 그리고 참기를 2/1큰술을 둘러 섞어주세요.
이제 즐겨보세요. 아삭한 김치와 깍두기와 달걀 볶음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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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우리 교회의 영원한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오피르 황금으로 단장한 왕비,
당신 오른쪽에 서 있나이다.”(시편45,10ㄷㄹ)
오늘 화답송 후렴이 흥겹습니다. 작년 성모승천대축일 강론때는 강론중 광복절을 상기하며 애국가를 불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특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대목을 부를때는 성가처럼 일치의 숙연한 분위기였습니다. 작년 이날부터 만세칠창을 하기 만1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하듯 바쳤습니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온전한 독립국가가 될 때 까지, 아마 죽는 그날까지 집무실의 ‘십자가의 예수님과 태극기’ 앞에서 기상후, 기상전 바칠 것입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성령님 만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가톨릭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성 요셉수도원 만세!”
성모승천대축일이자 광복절에 참 잘 어울리는 만세칠창으로 오늘 따라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올해는 ‘빛을 되찾았다’는 광복(光復) 79주년이 되는 광복절이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가 지상생애를 마친다음,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상의 영광으로 들어 올림을 받았다’는 오늘 대축일은, 1950년 11월1일 교황 비오 12세의 사도헌장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을 통해 교황무류성으로 선언함으로써 믿을 교리로 지정됩니다.
광복 5년후 6.25사변중 1950년 제정된 성모승천대축일에서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를 깨닫습니다. 대한민국은 물론 한반도의 수호성인이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전구로 6.25 사변중에도 적화(赤化)되지 않았고 언젠가는 온전한 광복의 나라가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영원한 수호자이자 어머니가 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입니다.
오랜만에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요 납북자인 정인보 작사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43세 가난하게 살다가 죽은 ‘보리밭’과 ‘나뭇잎배’를 작곡한 윤용하 요셉 작곡의 광복절 노래를 불러 봅니다.
1.“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2.“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구원의 빛은 대한민국 한반도 예서 나리라 믿습니다. 성모승천 대축일 아침 성무일도 아름다운 찬미가와 시편 후렴들도 새삼스런 감동이었습니다.
1.“태양의 빛입으신 동정녀시여 열두별 머리위에 꾸미신이여
저달을 발판삼아 우뚝서시니 환하게 빛나도다 당신의광휘”
5.“우리의 동정성모 성마리아께 영광의 화관씨워 드높이시고
여왕과 어머니로 세운삼위께 영원한 찬미찬양 있어지이다”
오늘 제1독서 묵시록과 제2독서 코린도 전서 말씀을 근거로 한 찬미가입니다. “맏물”(1코린15,23)이신 그리스도께서, 미완성의 상태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이르게 될 완성을 보여주었으며, 이어 성모님의 승천이 구원된 우리의 미래를 분명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은 그대로 예수님, 성모님이 승천하신 영적승리와 희망을 상징하는 하늘길, 하늘문이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다음 시편 후렴도 은혜롭습니다.
“기뻐하라, 오늘 동정녀 마리아,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도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다스리시는도다.”
가사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동정녀 마리아께서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말그대로 하느님의 은총의 보답입니다. ‘동정마리아께서는 성부의 뜻과 성자의 구속사업과 성령의 모든 활동에 전적으로 헌신함으로써 교회를 위해 신앙과 사랑의 모범이 되심으로,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유일무이한 교회의 전형이 되신 것입니다’(가톨릭교리서967항). 참으로 우리 믿는 이들의 영원히 보고 배울 롤모델이 된 우리의 영원한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입니다.
첫째, 겸손과 섬김의 어머니입니다.
섬김을 받으로 오신 주님이 아니라 겸손히 섬기러 오신 주님입니다. 모전자전, 그 어머니에 그 아드님입니다. 보십시오. 오늘 마리아 성모님은 태중의 아기 예수님과 함께 엘리사벳과 태중의 세례자 요한을 찾아 나서지 않습니까? 섬기로 오신 겸손의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마리아 성모님의 겸손한 섬김의 자세에 감동한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외칩니다. 동병상련, 평생도반 두 어머니의 영적우정도 참 깊어졌을 것입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둘째, 감사와 찬미의 어머니입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은 우리 교회가 2000년 동안 저녁성무일도시 성모님과 함께 불러온 감사찬미가입니다. 말그대로 가난한 이들인 아나뵘의 노래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감사는 저절로 찬미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영혼의 건강과 치유에 감사와 찬미의 삶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습니다. 감사와 찬미의 삶과 더불어 성모 마리아의 주님 향한 믿음, 희망, 사랑도 더욱 증대되었을 것입니다. 참 아름답고 매력적인 찬미와 감사의 삶이요 성모 마리아가 그 모범입니다.
셋째, 순종과 믿음의 어머니입니다.
순종으로 표현되는 믿음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했던 순종의 어머니, 영원한 예스맨 성모마리아입니다. 앞서 예수님 탄생이 예고 됐을 때, 성모 마리아의 순종의 응답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의 순종의 믿음의 결정체같은 응답에 주님께서도 분명 감동하셨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마리아가 한없이 고맙고 사랑스러웠을 것이며 마리아에 대한 신뢰도 한없이 깊어졌을 것입니다. 역시 엘리사벳이 이런 마리아의 믿음을 격찬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제가 감동하는 것은 성모님은 십자가의 길, 제13처 피에타의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는 기도문입니다.
“구세주 예수님, 주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품에 안으신 성모님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성모님 품 안에서 효성스러운 자녀로 살다가 마침내 그 품 안에서 죽게 하소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품에 안으셨을 때, 순종의 비움(케노시스)을 통해 드러나는 성모님의 절정의 믿음은 그대로 아드님께 전수되었음을 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의 희망이자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감사송 고백처럼 오늘 하늘에 오르신 분, 하느님을 낳으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이 세상 나그넷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습니다.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를 닮아 겸손과 섬김의 삶, 감사와 찬미의 삶, 순종과 믿음의 삶에 항구한 노력을 기울입시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를 돕습니다.
“성모 마리아,
하늘에 오르시니
천사들의 무리가 기뻐하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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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하늘로 오르는 길>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네.”(루카 1,47)
내
앞에
길 하나
놓여 있으니
하늘로 오르는
길이라네
하늘로
부르시는
임의 손잡고
지금여기에서부터
하늘로 오르는
길이라네
믿음으로 한걸음
희망으로 한걸음
사랑으로 한걸음
더디더라도 쉼 없이
하늘로 오르는
길이라네
길 없다 외면하는
뭇사람들 틈바구니
행여 놓칠세라
임의 손 꼭 붙잡고
하늘로 오르는
길이라네
한걸음 한걸음에
나는 서서히 사라지고
임만이 오롯이 남아
임 품에 가벼이 안겨
하늘로 오르는
길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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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님.
✝️ 교부들의 말씀 묵상✝️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7-49)
하느님께서 겸손한 이에게 큰일을 하시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하리니" 여기서 ‘모든 세대’를 문자 그대로 읽으면 믿는 이들이 되겠습니다만, 좀 더 깊이 의미를 알면 그 세대의 하나됨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게 됩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이요,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복된 마리아의 겸손을 굽어보셨고, 그래서 전능하신 분께서 그 여인에게 큰 일을 하셨고, 그분의 이름은 거룩합니다.
-오리게네스-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9
하느님 나라가 다가온 줄을 아시오
하느님 나라가 다가온 줄을 아시오(루카 21,31),
우리와 돌, 혹은 우리와 나무, 혹은 우리와 노새, 혹은 우리와 말은 서로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이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은 존재를 지난 모든 것과 친밀하게 지내기 때문이다. 우리와 그들이 서로 다른 것은, 그들이 이 사실, 곧 하느님이 존재를 지닌 모든 것과 친밀하께 지낸다는 사실을 아예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알아챌 수 있고, 하느님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한 덩이의 돌맹이나 한 그루의 나무보다 더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면 알수록 나는 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고, 이 사실을 모르면 모를수록 나는 덜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내가 행복한 까닭은, 하느님이 내 안에 계시거나 내 곁에 계시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하느님이 얼마나 내 ‘가까이” 계신지를 깨닫고, 하느님에 관해 잘 알기 때문입니다.“(220)
✝️ 목요일 성모님의 날✝️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5 장 두 천사 세상을 떠나다
천국으로
히야친타는 루치아의 말에 잠깐 생각하더니,
“성모님께서 아직 우리에게 나타나시기 전에 오빠는 아버지의 10전을 꺼내 가지고 하모니카를 산 적이 있어. 그리고 또 한 가지, 알쥬스트렐의 아이들이 블래이로스 마을 아이들에게 돌을 던졌을 때 오빠도 몇 개 던졌었어"
동생의 이 대답을 들은 프란치스코는,
“응 그래. 그 죄는 고백했었지만 다시 한 번 하겠다. 틀렴 없이 나는 이 죄로 예수님을 퍽 슬프게 해드렸을 거야..... 지금 설령 내가 죽지 않는다 해도 그런 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테야. 난 그 잘못을 뉘우치고 있어" 라고 하면서 두 손을 합장하고
“아! 예수님,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 하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루치아에게 말했다.
“내 죄의 용서를 예수님께 빌어 줘."
“그럼, 꼭 빌께. 그러나 너의 잘못을 용서하시지 않았다면 요전번 성모님은 히야친타에게 곧 너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거야. 지금 나는 미사 참여하러 가는 길인데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 너를 위해 기도할께"
“아! 참 신부님께 내가 성체 모실 수 있도록 청해 줘"
“그래, 청할께"
루치아가 돌아왔을 때 거의 죽게 된 병자는 히야친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루치아를 보자 즉시 물었다.
“내가 부탁한 것을 청했어?"
“그래, 청했어"
“고마워, 천국에서 루치아를 위해 기도할께."
루치아는 여느 때와 같이 일하러 갔다.
4월 2일 올린삐아는 프란치스꼬의 병세가 더 위중해 가는 것을 알고 사제에게 청하여 고백 성사를 받게 하였다. 부활 축제도 다가오고 있었다.
신부는 병자를 문안하고 고해를 들은 후 다음날 영성체할 것을 약속하고 돌아갔다. 이로써 그는 첫영성체와 임종의 병자 영성체를 한꺼번에 영하게 되는 셈이었다. 프란치스코는 기뻐서 어떻게 할 바를 몰랐다.
저녁때 소년은 내일의 영성체 때까지 단식하고 싶은 소망을 어머니께 말하면서 죄인의 회개를 위한 마지막 희생의 허가를 청했다.(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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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1,48~49)
오늘은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하늘에 오르신 날,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을 효성스러운 자녀의 마음으로 함께 축하합시다. 오늘 대축일을 성대하게 기념하고 기억하는 까닭은 우리도 언제가 어머니 마리아처럼 흠도 티도 없이 하늘, 아버지의 나라로 나갈 수 있게 되길 간절히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모 승천 감사송에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축일의 의미를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늘에 오르신 분, 하느님을 낳으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이 세상 나그넷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나이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이 제정된 것은 1950년 11월 1일입니다. 이 축일이 제정된 시기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세계 곳곳에 전쟁의 상흔傷痕이 남아 있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이 땅에선 6.25전쟁이 발발한 해이기도 합니다. ) 20세기 들어 발발한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생명이 비참하고 참혹하게 죽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특히 유럽은 대부분 그리스도 국가였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땅에 떨어져 짓밟혔고, 인류의 미래는 절망의 어둠이 짙게 깔린 시기였습니다. 희망이 아닌 절망이 사람들 가슴 속에 깊이 베여 있었던 시기에 교회는 바로 성모 승천 대축일을 통해 세상에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상처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고, 인류의 미래는 하느님 손에 달려 있으며, 하느님만이 우리의 희망의 원천임을 밝히고자 제정한 것입니다. 더더욱 오늘은 우리 민족에겐 새로운 희망이 싹튼 날, 광복절이기도 합니다. 광복절은 한층 더 성모승천 대축일의 의미를 풍요롭게 해줍니다. 성모님의 전구로 참된 희망의 메시지가 이 땅, 특히 침묵의 땅인 북녘에도 희망의 빛이 가득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어머니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의 문안 인사의 말을 듣고(1,41) 엘리사벳에게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향해 노래한 “마리아의 노래”(1,48-55)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어머니 마리아께서 자신에게 큰일을 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이며, 아울러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던진 희망의 선포이기도 합니다. 이 희망은 단지 주님 잉태 기별을 받은 순간에 국한하지 않고, 당신 평생의 여정 곧 못 박히신 아드님의 십자가 아래까지의 여정을 통해 당신께서 마음에 새겨둔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어둠과 절망으로 힘겨워하는 세상을 향해 선포하신 희망의 찬가입니다. 마리아께서 주님을 찬송하고 기뻐하는 까닭은 바로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비천한 당신 종을 굽어보시고 보잘것없는 당신 종을 통하여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1,48.49참조) 이 찬가는, 마리아의 입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비천한 이들, 굶주린 이들과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도 당신에게 베푸신 자비와 은총이 영원히 세세 대대로 미칠 것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희망이 없고 힘없는 민중들에게 지금 보는 세상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머지않아 새로운 세상으로 바꾸리라는 것입니다. 이 찬가는, 온 존재로 겪고 체험한 사건들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신앙의 비전이며 희망의 선언과도 같습니다. 자신의 생애를 통해 겪었던 가난과 멸시, 거부와 차별, 절망과 고통을 체험한 어머니 마리아께서 세상에서 당신처럼 어렵고 힘들게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 모든 민중을 향한 따뜻한 위로이며, 확신에 찬 희망의 예언이고, 사랑을 바탕으로 한 믿음의 노래입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가 지금껏 비천하였기에 존귀하게 될 것이며, 겸손했기에 들어 높여질 것이며, 굶주렸기에 배부를 것이며, 가진 게 없었기에 모든 것을 다 가질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 얼마나 희망찬 선포이며 선언입니까? 그러기에 매일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마리아의 노래를 노래하는 우리 역시 희망의 사람으로 세상에 나가서, 동일한 음조音調로 희망의 노래를 들려줍시다. 희망의 사람만이 성모 마리아의 희망에 동참하게 되며, 마침내 이 모든 것이 실현되는 하늘에서 웅장한 하늘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행복과 기쁨에 넘쳐 영원한 희망의 찬가를 함께 노래하리라 믿습니다. 그날이 꼭 오리라 믿습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성모 마리아와 함께 질병과 재난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지치고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우리의 노래를 듣고,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모든 일이 다 잘될 것이다, 라는 희망과 꿈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하늘로 불러올리시고, 천상 모후의 관을 씌워 주셨음을 기억하면서 우리 또한 어머니 마리아께서 앞서가신 여정을 걷고 언젠가 성모님의 중재에 힘입어 천상 하늘로 나아갈 날을 희망으로 기다리며 살아갑시다. 이런 마음가짐이 진정한 성모 승천 대축일의 진정한 의미라고 믿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바로 우리의 미래이며 희망의 보증이십니다. “알렐루야. 성모 마리아 하늘로 오르시니 천사들의 무리가 기뻐하네. 알렐루야.”(복음 환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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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굿뉴스 게시판-우리 묵상 체험
■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늘에 오를 수 있도록 /
박윤식 [big-llight] 240815. 01:49 ㅣNo.175043
성모 승천 대축일인 팔월 십오일은 일제로부터 그 긴 압제에서 벗어난 광복된 날이기도 하다. 이 대축일은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님께서 지상 생애를 마치신 다음 마땅히 가야 할 곳인 하늘나라로 가신 날이다. 성모님 승천은 비록 성경에는 그 기록이 없다하지만, 초대 교회로 부터 내려오는 전승이었다. 1950년 비오 12세 교황님은 이 거룩한 신비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셨다.
이 대축일은 우리에게는 각별한 의미를 더해 준다. 바로 이날 우리 민족이 일제의 강압에서 벗어나는 영광의 해방을 맞았기에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한국 교회가 유달리 우리 성모님에 대한 강한 신심을 가진 오랜 민족 전통의 체험과도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 교회가 광복의 큰 기쁨을 성모 승천 대축일에 맞은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섭리로서 이해하고 간직해야 할, 우리의 매우 귀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어쩜 이 지구상에서 ‘어머니’란 이름이 가장 아름답단다. 어머니가 없다면 인류가 존속될 수 없을 정도로 어머니는 하느님의 손길과 같다. ‘신은 모든 곳에 계실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라고 할 정도로 어머니가 계시기에 인류가 계속해서 이렇게 하느님의 창조 섭리대로 이어지는 것일 게다. 여느 부모님은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모태에서 품어 주고 안으면서 키운 그 모정의 정을 통해, 깊은 친밀감과 사랑받는 걸 배우는 건 인륜이자 하느님 본래의 뜻일 게다.
오늘 하늘로 오르시는 성모님을 바라보면서, 그 옛날 마리아의 방문을 받은 유다 산악 지방의 엘리사벳의 큰 외침을 들어보자. 성령으로 가득 찬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이렇게 당신의 인사가 들리자, 저의 태 안의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성모님의 보호와 전구를 믿으며 주님의 길에 충실한 가운데, 고난을 이겨 내리라는 희망을 갖는 교회는 참으로 민족과 공동체를 위한 빛과 소금이다. 이러기에 성모 승천 대축일은 우리 민족에 대한 한국 교회의 소명을 소중하게 기억하게 하는 날이다. 승천하시어 하늘에 계신 성모님의 영광을 통하여 온 인류가 가지는 구원에 대한 희망은 한국교회에 넓고도 깊이 깔렸다.
이처럼 성모님께서는 우리 구원의 징표이자 지금 우리를 든든하게 지켜 주시는 보호자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의 길이란 언제나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며 그분을 통해 드러난 구원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열망하며 걷는 소박한 여정일 것이다. 그러기에 성모님의 승천은 믿음 안에 사는 모든 신앙인이 누리는 구원의 영광을 미리 보여 주는 위로와 희망의 표지이기도 할게다.
이렇게 성모님께서 하늘에 불려 올려 진건 우리에게도 늘 상 기쁜 소식이다. 하느님 백성인 우리는 아직도 지상을 순례하는 나그네이다. 우리가 묵주기도로 늘 그토록 전구하는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승천은 지상을 헤매는 우리에게도 천상으로 향한다는 위로와 확실한 희망의 표지이다. 우리도 성모님을 온 정성으로 믿었기에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그야말로 실천적이고 정성스러워야 할게다. 지상의 우리가 이곳의 삶으로만 끝나는 게 아닌, 성모님처럼 천상 세계로 인도된다는 걸 보여 주면서,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릴 수 있는 오늘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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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의 종착점을 보여 줍니다. 그 종착점은 예수님께서 당신 부활로 먼저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2독서는 성모님의 승천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차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맏물”(1코린 15,23)이신 그리스도께서, 미완성의 상태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이르게 될 완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다음 성모님의 승천이 구원된 이들의 미래를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우리는 어떤 희망을 품고 있습니까? 삶의 많은 근심 걱정이 우리를 얽어매는 것은 사실입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도, 한 달 후에 대한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말합니다. 하늘에 들어 올려지신 성모님께서는 오늘 감사송에서 말하듯이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시고, 성장하시며, 천사를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시는 데에서 어려움을 겪으셨고, 그 계획을 받아들이셨기 때문에 피난을 가시고 낯선 땅에서 사셔야 하는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하시는 삶에서도 이해할 수 없어도 그저 마음에 새겨야 하셨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나서야 하셨으며, 예수님의 죽음까지 보아야 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그 모든 미완성을 거쳐 가신 성모님께서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우리보다 앞서 하늘로 올라가셨기에, 우리도 우리의 삶 안에서 온갖 불완전함을 겪으면서도 하늘을 바라봅니다. 믿으셨기에 복되셨던 성모님처럼 우리도 믿음을 간직한다면 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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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자료는 보관을 위해 추가 첨가한 자료입니다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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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김명겸 요한 신부님.
마리아의 인사를 받고
엘리사벳이 외칩니다.
마리아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다고
말합니다.
그녀가 복되다고 말하는 이유는
마리아 태중의 아기가 복되기 때문인데
그 아기는 다른 아닌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으로 그녀가 아기를 잉태하였기에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복되다고 말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주님'이라는 단어는
성부 하느님께만 해당하는 단어였습니다.
유다인들의 유일신 신앙에 해당하는 단어로
그 단어는 두 명 이상에게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단어를 루카 복음사가는
자신의 복음을 시작하면서
바로 예수님께 적용하고 있습니다.
즉 마리아가 잉태하고 있는 아기가 주님이라는 것은
마리아가 이미 하느님과 함께있음을
고백하는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있음은
믿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지만
성령으로 아기를 잉태하리라는 천사의 말을
믿으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즉 믿음으로 마리아는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었고
그 일치로 마리아는 복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복된 사람이 누리는 행복을
마리아는 이어서 노래합니다.
마리아가 말하는 행복
하느님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잊지 않으신다는 것은
마리아의 행복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행복입니다.
우리의 어려움을 잊지 않으시고
더 나아가 그것을 해결해주시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기를
우리는 희망합니다.
마리아의 행복이 믿음에서 왔다면
우리의 희망도 믿음을 통한
하느님과의 일치에서 올 것입니다.
그 믿음은
말장난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와
언제까지나 함께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도 포함합니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면서
우리의 어려움을 굽어보시고
그 어려움에도 함께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정말 우리는 그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삶이 어렵고 힘들 때
우리의 삶으로 하느님을 초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힘들다고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고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초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삶으로 초대한다고 해서
일이 당장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느님과 함께할 수 있고
그렇게 복된 여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된 삶은 우리를
마리아가 말하는 행복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우리가 희망하는 것이
하느님을 우리의 삶으로 초대하는 것에서
시작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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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오늘 우리 모두는 또 다른 성모님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결핍과 흠결투성이인 저 자신의 모습, 백번 천번 결심을 하지만 크게 변화되거나
성장하지 않은 제 모습에 실망도 큽니다.
동료 형제들의 모습도 개진도진, 거기서 거기라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 가뭄에 콩나듯이 멋진 형제를 만납니다.
부족함과 미성숙을 극복하고 하루 하루 일취월장합니다.
주어진 탈란트도 잘 활용해서 자신의 능력치를 극대화시킵니다.
그런 능력치를 바탕으로 공동체와 교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봉사하고 헌신하니, 선배 입장에서 너무나 감사하고 뿌듯합니다.
성장은커녕 퇴보하고, 겨우겨우 현상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니
참으로 부럽습니다.
성장하지 않는 인생, 성장하는 않는 신앙, 성장하지 않는 공동체, 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지.
이런 면에서 오늘 우리가 예의주시해야 할 분이 계십니다.
오늘 대축일을 맞이하시는 성모님이십니다.
그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이 올라간 분이십니다.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서 가장 큰 진보를 이룬 분이십니다.
성모님은 오늘 우리에게 한 인간이 얼마나 변화될 수 있는지, 얼마나 성장을 거듭할 수 있는지,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화’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잘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은 우리 모두에게도 희망과 자극을 주는 축제입니다.
예수님의 잉태와 출산, 양육을 위한 성모님의 큰 희생과 노고도 대단한 것이지만, 우리가 좀 더 예의주시해야 할 부분은 성모님의 신앙여정입니다.
한 평생 다양한 위기와 고통, 큰 십자가와 험난한 가시밭길이 성모님 생애 내내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태도를 보십시오.
조금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머뭇거리지 않으셨습니다.
희미한 안개 속의 위험한 길을 걸어가시면서도 그 발걸음이 늘 당당했습니다.
천사를 통해 들려온 하느님의 약속을 마음에 새기고 매일 새롭게 결코 만만치 않은 신앙의 길을 기쁜 얼굴로 걸어가셨습니다.
성모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잉태하셨고, 사랑의 힘으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낳으셨습니다.
이제 성모님께 주어졌던 역할이 우리 모두에게 확대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 안에 예수님을 잉태하지 못한다면, 그 옛날 성모님의 아기 예수 잉태는 그저 오래전 이야기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 아기 예수님의 잉태는 되풀이되어야 합니다.
나도 힘들지만 미혼모가 낳고 떠난 아기 한 명을 입양하면 그것은 내가 아기 예수님을 낳는 일입니다.
우리 가족도 힘들지만 도움이 필요한 보육시설 아동들의 구체적 결핍을 채워주는 일은 어떤 면에서 내가 직접 또 다른 아기 예수님을 낳는 일입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필요에 응하는 일, 작지만 시간 내어주는 일은 또 다른 아기 예수님을 낳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어디 다른 하늘 아래서 멀리 계셔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늘 새롭게 거듭 태어나셔야 할 존재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는 또 다른 성모님이 되어야 합니다.
성모님처럼 아쉽지만 또 다시 나를 떠나고, 안타깝지만 어제와 결별하고, 늘 새로운 여행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부단히 다시 태어나실 것입니다.
인간 존재라는 것 때로 한없이 부족하고 나약하지만, 때로 작은 울타리에 갇혀 괴로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무한히 성장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으로 충만한 존재가 역시 인간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가 있음을, 성모님처럼 큰 도약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결국 우리 안에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늘 현존하고 계심을 굳게 믿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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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신 마리아
오늘은 육신과 영혼이 함께 영광을 받으신 동정 마리아의 승천 대축일이다.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마리아에게서 결정적으로 완성되고 있다. 마리아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에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마리아의 영광은 마리아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일어나게 될 일의 표징으로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을 준다.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인간 부활의 근거가 됨을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이 세상을 재건하는데 첫 결실로 다른 결실의 보증이 된다는 것과 둘째로 그리스도는 모든 구원받은 자들을 당신 안에 모아들이시는 새 아담이시다. 그러기에 모든 인간은 그분 안에서 죽음을 이길 것이다. 오늘 독서의 내용에 마리아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마리아도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로부터 부활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와 우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마리아는 죽음의 지배를 전혀 받은 분이 아니다. 죄가 마리아를 스쳐 가기조차 하지 않았다. 마리아에게 있어 마지막 원수(1코린 15,26)는 이미 원죄에 물들지 않은 잉태의 순간부터 파멸되고 말았다.
묵시록은 마리아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는 메시아가 태어나야 할 메시아 공동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메시아는 용, 사탄에 의해 죽음의 올가미를 쓰게 되지만, 하느님은 그를 보호하여 영광의 왕좌에 앉히실 것이고, 메시아 공동체에 신비스러운 광야의 피난처를 제공하시어 보호해주실 것이다(묵시 11,1-6). 여기에 여인으로 나타나는 메시아 공동체는 박해와 전쟁의 소용돌이에 직면한 교회이다. 이 교회의 모습을 나자렛의 마리아를 연상케 한다. 그것은 요한이 마리아에게서 교회의 이상적 표상의 실현뿐만 아니라, 항상 다시 태어나야 하는 메시아 공동체의 모성적 기능도 인식하여 교화와 마리아를 친밀히 결합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교회 헌장은 “은총의 계획 속의 마리아의 모성은 천사의 아룀을 듣고 충실히 동의하신 그 순간부터-이 동의는 십자가 밑에서도 망설임 없이 지속되었다-뽑힌 이들의 수가 찰 때까지 영구히 끊임없이 계속된다.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후에도 이 구원의 역할을 그치지 않으시고 계속하여 여러 가지 당신 전구로써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우리에게 얻어주신다. 당신 모성애로써 당신 아드님의 형제들이 지상 여정에서의 위험과 고통 중에 있는 것을 돌보시어 복된 고향으로 인도해 주신다.”(62항) 말하고 있다. 이제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야말로 아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과 승리 권세의 가장 고귀한 전리품이라 할 수 있다.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사실과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믿음과 신적 모성에 대해 찬양하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42-45절). 마리아는 다른 여인들과 다름없는 여인이었지만 주님의 어머니가 되셨다. 그것은 자신의 위대성을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선은 마리아가 엘리사벳과 요한에게 봉사하시지만, 나중에는 인류 역사 안에서 모든 사람을 섬길 것이다. 오직 생명과 사랑을 나눌 수 있을 때만이 어머니가 될 수 있다. 마리아는 자신 안에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을 받아들임으로써 이 모든 것을 나누신다. 마리아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신적 모성에 대한 소식을 알리는 순간에 발하신 동의로 이미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어 하느님의 가장 충실한 도구가 되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 마리아는 “사람이 되신 말씀”(요한 1,14)을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종이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승천에 이르기까지 마리아 안에서 충만히 실현되었다.
다음에 엘리사벳의 찬사에 대한 응답으로 “마리아의 노래”가 나온다. 모든 내용은 하느님께 다시 바쳐지고 있다. 그분만이 찬미를 받으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마리아가 이 세상의 역사의 한 가운데 있음을 깨달았음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48절). 그것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무슨 일을 맡기셨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마리아는 아무 쓸모 없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인간의 생각과 가치관과는 다른 하느님의 업적을 찬미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51-53절).
하느님은 인간들의 길을 따르는 분이 아님을 마리아는 알려 주고 있다. 마리아의 위대함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당신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시고, 다른 사람을 위해 당신의 것을 나누시는 구체적 사랑의 행위이다. 거기에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마리아 안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그 마리아의 모습이 모든 생의 의미를 현세에서만 찾으려는 우리가 깊이 알아들어야 할 점임을 생각하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항상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닮을 수 있는 삶을 노력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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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성모님께서 육체를 지니고 승천하셨다는 의미는?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성모 승천은 그리스도의 소명에 참여한 우리가
모두 미래에 받게 될 영광을 미리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광은 노력 끝에 얻어지는 열매입니다. 아무 공로도 없이 받을 수 있는 영광은 없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종목에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우리나라 선수들은 동메달의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군 생활이 면제되는 특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단 4분만 뛰고 군 면제를 받은 선수도 있었습니다.
바로 김기희 선수입니다.
그는 뛰어난 선수가 아니어서 단 한 번도 운동장에서 뛰어보지도 못하고 벤치만 지켜야 했습니다.
3·4위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홍명보 감독은 남은 교체 선수 카드 한 장을 김기희 선수를 위해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단 1분이라도 승리에 공헌한 선수라야 올림픽 메달의 영광을 받을 자격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의 영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치가 있는 일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자기 동네에서 아무리 골을 많이 넣어도 올림픽 메달을 따거나 군면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모님께서 육체를 지니고 승천하셨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육체도 하느님 영광을 위해 쓰였다는 뜻입니다.
저는 꾸준히 만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제가 있는 본당의 신자들이 아닙니다.
이전에 담당했던 본당이나 꾸르실료 등에서 봉사했던 분들을 만납니다.
제가 지금도 그들을 만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렇게 말하면 그분들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필요해서입니다.
예를 들면 제가 영성관에 있을 때 저를 도와주는 오산성당 자매들이 있었습니다.
영성관 사정상 사제관 도우미를 둘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세 분의 자매들이 매주 한 번씩 와서 청소도 해 주고 빨래도 해 주고 밑반찬도 해 놓고 가곤 했습니다.
사실 저도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 일을 도와주는 이들이라면 그 육체도 상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혼자 다 하지 않으시고 키레네 사람 시몬이 당신 십자가를 함께 지도록 하셨습니다.
모든 영광은 구원의 십자가에서 오기에, 예수님은 당신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소명을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 당신 영광에 참여시키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 구원에 육체적으로도 필요한 분이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 아드님이 인간이 되려고 하시는데 그 아들에게 인성을 내어줄 인간이 필요했는데,
흠 없는 육체를 지니신 분은 성모 마리아밖에 안 계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외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열매: karpos)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엘리사벳이 그리스도를 성모님의 ‘열매(karpos)’라고 표현한 데는 이미 성모님이
‘주님의 어머니!’가 되기에 합당한 분이란 뜻이 들어있습니다.
가지에서 열매가 맺히는데 그 열매는 분명 나무에서 수액이 흘러들어와야 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를 성모님의 열매라 표현한 이유는 성모님께서 그리스도께 무언가를 주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 죄가 없어야 하는데 그 나무에 죄가 있다면 열매가 온전할 수 없습니다.
성모님만이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시며 당신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봉헌하신 분입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내리신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니 죄가 없는 육체는 본래 썩을 필요가 없습니다.
생명 자체이신 분께 계속 생명력을 얻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의 성인 중에 몸이 썩지 않는 성인들이 매우 많습니다.
루르드의 성녀 베르나데트는 150년이 지났지만, 정말 아름다운 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성모님의 육신을 지닌 승천으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마음만 주님께 봉헌한 분들이 아니라 육신도 주님의 뜻에 봉헌하여 그만큼 주님께서 많이 필요로 하신 육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설교하실 때 사용한 성대가 썩지 않고 어떤 분은 세례 주던 오른팔과 선교하기 위해
다니던 발만 썩지 않고 어떤 분은 심장이 썩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그만큼 완벽히 봉헌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머리카락까지도 다 지니고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봉헌한다면 주님은 그것이 영원히 하늘 나라에서 영광을 받을 것으로 축성하여 돌려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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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송영진 모세 신부님.
<우리도 성모님처럼>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루카 1,46ㄴ-55).”
1)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예수님, 성모님과 함께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 희망이 이루어지려면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성모님처럼 사는 것.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희망하고,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성모님처럼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콜로 3,1-4).”
신앙인은 ‘위에(하늘에)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아래에(땅에) 있는 것’은 버리는 사람입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5-17).”
<이 두 권고는, 뜻으로는 ‘같은 권고’입니다.>
‘지나간다.’는, ‘허무하게 사라진다.’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는,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을 더 많이 가지려고 욕심 부리고 집착하는 일들은 모두 어리석은 일이 될 뿐이다.”입니다.
먼지처럼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만 사랑하고 추구하는 사람은, 그것들과 함께 허무하고 허망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2) ‘마리아의 노래’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교만한 자들, 통치자들, 부유한 자들’은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실제로는 들어가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교만한 자들’은 하느님의 계명들과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입니다.
‘통치자들’은 여기서는 ‘모든 통치자들’이 아니라,
“백성 위에 군림하고, 백성에게 권세를 부리는(루카 22,25)”, 어리석고 교만한 통치자들을 가리킵니다.
‘부유한 자들’은 하느님이 아니라 재물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없는 것일까? 있습니다. 회개하면 됩니다.
교만한 자들은 회개하고,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지면 됩니다.
어리석은 통치자들도 회개하고, 권력을 내려놓고, 자신을 낮추고, 백성을 섬기는 참된 지도자로 변화하면 됩니다.
부유한 자들은 회개하고, 재물에 대한 탐욕과 집착을 버리고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만 섬기면 됩니다.
3) ‘마리아의 노래’에 언급되어 있는 ‘비천한 이들’과 ‘굶주린 이들’은, 가난하고 힘없고 인간 세상에서 소외당하는 소외계층 사람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작은 이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무조건 자동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까?
그것은 아닙니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또 소외계층에 속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가난해서 재물에 대해서 더 집착하고, 더 탐욕스러운 경우가 있고, 자신도 인간 세상에서 소외당하고 차별 당하면서도 자기보다 더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은 이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도 회개해야 합니다.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만 섬겨야 합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도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말고, 끝까지 인내하면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루카복음 16장에 있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마리아의 노래’에 나오는 ‘교만한 자들, 통치자들, 부유한 자들’이고, ‘라자로’는 ‘비천한 이들, 굶주린 이들’입니다.
그 비유에서,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한 말,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라는 말은(루카 16,25), 지금 ‘가난하고 힘없는 처지에 있는 작은 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고, 신앙생활을 끝까지 할 수 있는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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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함승수 세례자 요한 신부님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오늘은 우리가 사랑하고 공경하는 성모님의 승천 대축일입니다. 즉 성모님께서 지상 생애를 마치고 하늘나라에 올라가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지요. 옛날에는 성모님의 승천을 예수님의 승천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입을 ‘몽’자에 부를 ‘소’자를 써서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고 불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맡기신 소명을 ‘다 이루신’ 후 당신 스스로 하늘나라로 오르신 것과는 달리,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총과 축복을 받았기에 승천하실 수 있었다는 겁니다. 또한 성모님께서 오르신 하늘은 우리도 올라가야 할 하늘이고, 또한 올라가게 될 것임을 믿고 희망하며 오늘 이 축일을 지내는 것이지요. 오늘 전례의 감사송은 그런 우리의 믿음에 대해 이렇게 노래합니다.
“오늘 하늘에 오르신 분 하느님을 낳으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이 세상 나그넷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나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승천과 성모님의 승천 사이에 스스로냐 아니면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서냐라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성모님의 승천과 우리의 승천 사이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으며 이는 교리적으로는 물론 신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기에, 우리는 이에 대해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차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육신의 부패를 겪었는가 아닌가의 차이입니다. 우리 인간은 죽은 다음 육신의 부패를 겪고 난 뒤에야 종말의 순간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지만, 성모님은 육신의 부패를 겪지 않고 하늘로 불려 올라가신 겁니다. 오늘 전례의 감사송은 그런 우리의 믿음에 대해 또 이렇게 노래하지요.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의 아드님께서 동정 마리아의 몸에서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태어나셨기에 주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이 무덤에서 썩지 않도록 섭리하셨나이다.”
성모님의 ‘육신이 썩지 않았다’는 내용 때문에 성모님에 대한 다른 ‘믿을 교리’들처럼 성모 승천에 관한 믿을 교리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이견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평생 동정’을 그저 순결이라는 육체적 의미로만 바라보지 않고 ‘평생동안 변치 않고 한결 같았던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라는 영적 의미로도 이해하는 것처럼, 성모님의 시신이 썩지 않았다는 말도 그저 육신의 부패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물질적 의미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성모님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리고 평생을 사신 다음에도 죄에 물들지 않았기에 죄로 인한 영적 부패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영적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지요. 그랬기에 지체 없이, 즉시 하늘로 올라가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알게 모르게 짓는 죄 때문에, 그리고 제대로 보속하지 않고 남아있는 죄의 흔적 때문에 바로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하고 연옥에서 정화의 시간을 거치는데, 성모님은 그런 고통스런 정화의 시간을 거치지 않도록 특별한 은총을 입으신 겁니다.
어머니 뱃 속에서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도록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받으셨고, 심지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연옥을 거치지 않고 즉시 천국에 오르시도록 특별한 은총을 입으셨다고 하니 그런 성모님이 너무나 부럽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또한 ‘영적 금수저’인 성모님과 ‘영적 흙수저’인 나 사이에 결코 따라잡을 수 없어 보이는 큰 격차 때문에 포기하거나 절망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아주 큰 오해입니다. 원죄에 물들지 않도록 보호받는 은총은 우리도 세례성사를 통해 받았고, 본죄에 물들지 않도록 인도받는 은총은 우리도 고해성사를 통해 받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이 ‘직천당’하신 건 그분만 ‘특별대우’를 받아서가 아니라, ‘무염시태’ 때 받은 은총의 씨앗을 평생동안 잘 간직하고 가꾸신 것이 승천 때에 열매를 맺은 것이지요.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지니고, 그분의 뜻이 내 안에서 내 삶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철저히 순명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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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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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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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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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성모 승천 대축일.
하나님의 소유된 자로 살아가는 삶
<2024.8.15> 아침을 여는 묵상 (렘 50:11~20절)
❝하나님의 소유된 자로 살아가는 삶❞
❚ 하나님의 자녀가 타락하고 배신했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1~13절).
하나님은 유다를 공격하여 멸망시킨 바벨론을 ‘나의 소유를 노략한 자’로 규정하면서 바벨론의 심판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은 한 때 고대 근동의 패권을 차지하고, 유다를 비롯한 주변 민족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범죄한 열방을 심판하기 위한 도구로 삼으신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자신의 악함에 따라 타작하는 송아지같이 유다를 짓밟고 유다의 멸망을 즐거워하고 기뻐했습니다. 또한 열방의 정복이 오직 그들의 능력의 결과로만 알고 교만했습니다(11절). 그러므로 ‘너희의 어머니가 큰 수치를 당하리라 너희를 낳은 자가 치욕을 당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바벨론 성읍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심판으로 바벨론의 중심인 바벨론 성읍이 수치와 모욕을 당할 것(12절)이라는 말씀입니다. ‘광야, 마른땅, 거친 계곡(사막)’ 열국의 으뜸에서 열국의 마지막으로 추락한 바벨론의 상태를 묘사한 표현들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 부어지면서 바벨론은 황폐하게 되어 아무도 거하지 못하는 황무지가 될 것입니다(13절).
하나님의 약속은 단 한 번도 취소되거나, 변경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이라도 하듯이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결국엔 포로와 멸망이라는 참담한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여전히 ‘나의 소유’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즉 당신이 택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적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완전한 사랑을 베푸십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사람은 이 세상 누구도 해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백성은 어느 곳에 있든지 그분의 사랑을 힘입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 자신이 고통의 순간, 고난의 자리에 서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여전하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보호하시며 구원을 이루시며 궁극적인 선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거하므로 이 땅에서 누릴 수 없는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4~16절).
하나님은 바벨론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메대, 바사의 연합군에게 숙련된 활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라고 명령하십니다(14절). 또한 바벨론이 함성을 지르며 유다를 점령한 것처럼 대적들이 소리를 지르며 바벨론을 공격할 것을 명합니다. 그럴 때에 바벨론은 항복할 것이고, 요새들은 무너질 것입니다. 바벨론은 대적들의 공격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공격이 바벨론의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신다...’(15절)는 것입니다. 나아가 바벨론의 농토 역시 황폐화가 될 것이고, 대적들의 칼날이 두려워 각기 고향으로 도망하므로 비옥한 바벨론의 땅은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16절).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그 어떤 존재도 피하거나, 막을 수 없습니다. 바벨론의 멸망 원인은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과 우상 숭배 및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을 넘어 선민 이스라엘을 학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위해 싸우시고 정의를 세우실 것입니다. 공의의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사랑과 두려움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 되심을 믿고, 삶의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7~20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당한 고통과 회복에 관한 예언을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흩어진 양 떼처럼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삼킴을 당했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뼈가 꺾였습니다(17절). 그리하여 하나님이 앗수르의 왕을 벌하신 것 같이 바벨론의 왕과 그 땅을 벌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8절). 바벨론의 멸망은 곧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회복의 선언이 됩니다. 하나님이 친히 목자가 되어 주셔서 흩어진 자기 양떼를 안전하고 좋은 목초지로 유명한 ‘갈멜과 바산으로...’ 그리고 ‘에브라임과 길르앗 산’(19절)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회복된 이스라엘이 목자되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풍족하고 번창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든 죄에서 용서함을 받는 은혜의 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20절).
오늘 우리 자신들이 이처럼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역을 통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의 결과임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 떼를 찾는 목자의 마음으로 우리를 대하실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의 영혼을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지었을 때 회개해야 하겠고, 주홍같이 붉은 죄도 용서하시고 죄로 인해 망가진 우리 삶을 회복시키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영혼을 보호하시며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힘입어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주홍같이 붉은 죄도 용서하시고 죄로 인해 망가진 우리 삶을 회복시키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렘 50:11~20절)...
행복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
빛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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