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곳]
시작된 건가? 이미 늦었다.
다른 이는 어떠한가? 이미 시작한 자도 있다. 죽어버렸지만.
그런가. 그렇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지? 각자의 숙주를 찾으면 된다.
그런가. 그렇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가자.
[???]
나를 잡아먹고 있어. 나는 사라지고 있어.
그의 먹이가 되어서 나의 몸과 정신은 하나도 남지 않고 모조리 사라져가고 있어.
잡아먹히고 있어. 그러나 나에게는 힘이 없어. 나에게는 권한이 없어.
이런 것은 싫어. 영혼만이 남고 기억을 상징하는 육체가 사라지고 있어. 영혼조차
더렵혀지고 있는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하지? 아. 정신이 희미해진다.
모든 것이 잊혀진다.
온, 마흔 아홉, 스물 하나, 스물, 열, 일곱, 셋...
사라져가고 있어, 잊혀지고 있어. 온은 마흔 아홉이 되고 스물 하나가 되며 결국은 스
물도 다시 열로 그런 후 일곱, 셋. 이제는 없어.
나는 없는 건가? 모든 것은? 싫어.
[내부]
어디로 가야하지? 발길이 닿는 곳으로 가야될까.
일단은 그렇다고 해야지. 역시 그런 건가...
둘이니 외롭지는 않은 거겠지. 아니야 둘은 아니야. 하나일 뿐이야.
그런가. 그렇지.
어쨌든 가자. 그러지.
[룩셈-1]
나는 왜 이곳에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내 기억에 남아있는 단편적 지식으로는 도시는 외부인이 출입 할 수 없는 곳이라 알고
있는데...
나는 지금 이곳에 있다.
모든 것이 통제되는 곳, 모든 것이 지배자의 마음대로 움직이는 곳.
모든 사람은 꼭두각시 모든 사람은 지배자의 하인.
그러나 난. 모든 것을 초월하여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
[룩셈-2]
한이 누워있는 이곳에 빛이 들어오고 있다. 찬란한 해의 출현. 이 세계에 몇 남지 않
은 희망의 상징이다. 이 도시의 모든 이들은 하루하루를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으며
바쁘게, 의미 없게 살아가고 있다.
서로를 믿을 수 없으며 결혼조차 형식적일 뿐이다. 노는 아이들은 없어진지 몇 백년이
며 몸이 유전자의 변형으로 흉악하게 변한 자는 도시에서 '청소자'에게 깨끗하게 청소
된다.
그런 이 도시에 한은 들어와 있다.
한이 눈을 떴다. 그의 보랏빛 눈동자에 초점이 맞춰진다. 눈에 빛이 들어가며 사물을
구분 할 수 있게 된다.
이곳은 한이 누워있는 곳, 도시의 쓰레기장 중하나이다.
......
......
그리 긴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었지만 눈을 감았다 떴다하며 단순하게 누워있는 한에
게는 긴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한이 누워있는 쓰레기장을 향해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왼손과 오른손에는
쓰레기가 들려있었다.
한은 그를 봤지만 그는 한을 보지 못하였는지 그냥 쓰레기를 놓고 가버렸다.
첫 번째 사람은 그렇게 떠나갔다.
......
......
역시 긴 시간은 아니었다. 다시 또 한 명이 왔다. 이번에는 그는 한을 봤지만 한이 그
를 보지 못하였다. 그도 역시 쓰레기를 버리러 온 이 도시의 구성원 중에 하나였다. 그
도 사람인지라 마음속으로는 한에게 동정심이 느껴지고 호기심도 느껴졌으며 두려움도
느껴졌지만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규격에 맞지 않고 그런 것을 밖으로
내보내면은 규격에 맞지 않는 '쓰레기'가 되어 '청소부'에게 '청소'되어질 것이기 때
문에 그는 한을 도울 용기를 전혀 내지 못하였고 그것은 그가 이 도시의 규율을 지킨
하나의 착실한 도시민이 되게 해주었다.
......
......
정확히 49분. 49분이 흘렀다. 한은 잠이 들어있었다. 이른 아침. 모두가 일을 나갔을
때이다. 그러나 이 때도 쓰레기를 버리러 오는 사람이 있었다. 세 번째 사람. 한은 눈
을 떴다. 세 번째 사람도 눈을 한에게 가져다댔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룩셈-3]
한은 '청소부'의 '쓰레받기'에 들어가 '쓰레기 처리함'으로 불리는 도시 밖으로 나가
게 되었다. 한을 쓰레기장에서 다시 주워온 도시의 규격에 어긋나는 또 하나의 '쓰레
기'는 이미 '소각'된지 오래이며 아무도 그들에게 동정을 보내지 않고 증오만을 보내
여 왔다. '동정', '사랑', '친근감'이라는 거짓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도시의 규율
에 안 맞는 '쓰레기'들이나 하는 짓이기에 당연히 소각되어 마땅하다. '증오' '경쟁'
'대립' '자신을 위한 협동'만이 있어야 하기에 그런 거짓된 '인간의 신'이라 불리우는
자의 헛소리에 나오는 것은 도시의 3대 죄악일 뿐이다.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만
족을 위해, 남의 괴로움을 위해. 모두는 일하며 그것으로 그들은 그 무엇보다 큰 행복
과 즐거움, 쾌락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그들에게 밖에서 흘러 들어온 '먼지'인 한과 한
을 도운 내부의 '쓰레기'는 소각, 폐기, 분리수거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한
도 '청소'되어지고 있다.
"외부에서 들어온 먼지. 남의 동정을 받은 죄. 남에게 친근감을 느낀 죄. 이 3가지
큰 죄악으로 너는 지금 당장 소각되어 마땅하나 너는 너무나도 더럽기에 소각으로도
정화할 수 없어 추방의 죄를 즉결 심판으로 내리게 되었다. 앞으로는 절대 이 신성한
도시에 들어오지 말고 '동정', '사랑', '친근감'이 3가지 대죄를 짓지 말라."
미지의 목소리. 출처가 없는 목소리가 사방이 암흑으로 갇혀있는 공간에 있는 한의
귀로 흘러서 들어왔다. 한마디 한마디는 한의 뇌속에 단단히 각인 되었으며 그 여파로
한은 몸을 한동안 부르르 떨었다. 한이 몸을 마지막으로 떨은 뒤 다시 미지의 목소리
가 이어졌다.
"너에게 신성한 도시 룩셈의 출입을 영원히 금하며 규격에 안 맞는 쓰레기로 규정하여
도시 밖으로 버린다."
한이 들은 마지막 말, 현재 한에게 가장 강하게 각인 된 말, 현재 한에게 가장 잔인
한 말이었다. 한에게서는 눈물조차 흐르지 않고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되었으며 또 하나
의 저주받은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돔]
구름과 먼지에 가려 해는 보이지 않는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둠만이 존재하는
이곳.
도시도 마을도 아닌 바깥지역. 돔...그곳은 드래곤이 산다고 전해지는 저주받은 곳.
그곳에 어둠이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한줄기 빛이 어둠을 뚫고 땅으로 내려왔다.
백색의 날개를 가진 '빛'이 모든 것을 굽어보며 두려워하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백색의 날개를 가진 '빛'. 즉 사도가 말했다.
"이제부터 나는 너이니라"
빛은 그의 앞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그의 얼굴은 회색 빛으로 질렸다.
그는 말했다.
"너...넌 뭐지?"
그의 말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으며 답변 또한 나오지 않았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
으며 한줄기 빛도 사라져 있었고 둘은 하나가 되었으며 하나는 하나가 아니게 되었다.
구름은 더욱 더 짙어졌고 사방은 더욱 더 어두워 졌다.
사도의 강림. 그것은 한 생명의 재탄생과 전생. 그리고 기억의 정화를 의미했다.
이것으로 두 번째 사도의 강림.
신의 힘은 그렇게 인간들을 조여오고 있었다.
[...의 안]
"당신은 누구지?"
"나는 너다"
"당신은 누구지?"
"나는 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나는 나일 뿐이야. 당신을 밝혀"
"나는 너다"
"언제까지나 거짓말만 할 것이지? 너는 침입자야. 나를 해치려 드는 침입자!"
"나는......네가 될 것이다"
"진실을 밝혀. 너는 내가 되서는 안돼. 나는 네가 아니야. 너도 내가 아니야"
"첫 번째 신의 사자 미카엘. 너의 새 이름이다"
"나는 싫어. 나는 너 따위가 아니란 말이야"
......
두 정신체들의 끝없는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
균형은 무너진 지 오래고 똑같은 말들이 반복된 지 오래이다.
그러나 진정 인간의 힘으로 신을 이기기는 힘든 것인가?
결국 3%의 차이로 주도권은 사도 미카엘에게 넘어가고 그전까지의 주인인 그는 모든
기억과 능력과 몸과 생각을 빼앗겨 버리고 잠들어 버렸다. 미래를 포기했지만 마지막
불씨는 남겨두려 노력한 채로...
[밖-1]
어두워 어두워.
난 쓰레기? 아냐 아냐. 난 쓰레기가 아니야.
그러면 왜 버려졌지? 몰라. 그들의 규격에 맞지 않았을 뿐이야.
난 쓰레기가 아니야. 난 사람일 뿐이라고. 그 도시의 규격에 맞지 않았던 사람일 뿐.
[밖-2]
도시의 성곽이 높게 쌓여져 있다. 마치 하늘까지 달 것처럼, 신의 권한에 도전할 것
처럼 끝없이 높게 높게 도시의 성곽은 쌓여졌고 또한 쌓여지고 있다.
도시에는 밤이 없다. 영원한 낮일 뿐. 그곳의 사람들은 끝없이 일하고 일하며 또 일한
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다른 이의 괴로움을 위해. 끝없이 일만 할 뿐. 그들 자신은 어떻
게 사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남을 밟고 남의 위에 서며 밟힘을 복수하기 위
해 다시 남을 밟고. 지도자의 꼭두각시. 단순한 인형. 그들의 모습. 단순한 연극의 하
나일 뿐인 도시. 이 세계의 모든 도시, 모든 저주받은 도시중의 하나 룩셈.
그것이 한의 앞에 펼쳐져있다. 성곽으로 덮힌채로 두려움에 스스로를 구속한 채 룩셈
은
인공의 구조물로 덮여있었다.
한은 칡흙같은 어둠에 눈을 떴다. 도시 윗부분에서는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지만 도시
밖의 사람에게는 단지 도시 윗부분에 이상한 빛이 있다는 것 정도밖에는 알아차릴 수
없었다.
단 한줄기도 없는 빛, 단 한줄기도 내리지 않는 비 모든 것은 멈춰있는 것 같았
다. 그러나 도시의 외곽은 위험하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들이 다른 이의 생명을
위협하고 위협 당하고 서로 죽이는 곳. 모든 것이 적인 지옥의 공간. 그러나 어떤 면
에서는 도시보다는 들 지옥화된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역시 도시 외곽의 밤이다. 미지의 존재들이 한의 기운을 알아차리고 하나 둘 씩 조
용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작은 새 정도만이 한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그때까지는 한도 그리
긴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지나며 한은 자신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느
꼈고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새가 단순한 새가 아니라는 것도 느끼기 시작했다. 도망
칠 곳은 없었다. 사방이 적의 터전이었고 모두가 적이었다.
한의 앞에 그들이 나타났다. 돼지의 머리를 가지고 인간의 몸을 가진 흉폭하고 징그
러우며 상대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생물. 이른바 '오크'라고 불리는 3차 대전 이후에
출현하기 시작한 미지의 생물 중의 하나. 지금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회의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 회의를 끝마쳤는지 한
에게로 서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손에는
칼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한은 멍할 뿐이었다. 기억도 없이 이상한 도시에서 추방을 당하고 바로 미지의 생물
들, 즉 괴물들에게 공격을 당하게 되었으니 멍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었다.
"크르르르......"
오크에게서 한에게는 이런 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배고픔에 절은 자의 소리...그것은 한에게는 두려움의 소리. 모든 것을 절망하게 되고
한에게는 괴로움을 줄 것이다.
-타닷
-툭툭툭
한에게 한 오크가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어둠에 익숙한 오크와는 달리 한에
게는 자각 능력이 부족하여 아직 어둠에 적응하지 못했기에 한은 오크에게 너무
나도 쉽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끄아악!"
한에게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오크의 칼이 한을 찌른 것이었다. 한에게는 다행히도 타격은 거의 입지 않을
부분을 찔리기는 하였지만 고통스러운 것은 어디를 찌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
이번에는 비명소리조차 없었다.
오크가 한의 새끼손가락을 깨물어서 한의 새끼손가락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오크들에게서 빛이 나오는 듯 했다. 그 빛은 다시 한에게 흡수되는 것 같았으
며 오크들의 눈에는 이상한 광채가 돌았다.
-!!!!!!
한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틀려졌다. 한의 몸에서는 알 수 없는 힘이 피어오르
기 시작했다.
오크들의 눈에는 한의 손에서 빛이 나오는 것이 비춰졌다. 빛은 오크들을 덮
쳤고 오크들은 녹아버려서 형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견딜 수 없는 끝없는 고통
속에 오크들은 타올랐다. 아니 정확히는 타오른다고 오크들은 믿었다. 한의 새끼
손가락이 사라진 이후부터는 한의 환각이었기 때문이다.
무언가의 이유-아마도 오크에 의해 손가락이 잘린 것-으로 한은 어떤 힘을 깨달
았고 지금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것으로 오크들은 땅에 쓰러져있다. 이제 그
들은 아무런 힘도 없고 다시는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한의 배에 찔렸던 상처는 어느 사이에 없어져 있었고 한의 왼손 새끼손가락에서
도 피는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다만 다른 경우와는 달리 왼손 새끼손가락은 재
생되지 않고 두 마디가 끊어진 채로 둥그렇게 살로 덮였다.
......
......
한은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새끼손가락 하나를 잃고 얻은 자신의 능력에
당황하고 능력을 저주하며 또한 기뻐할 것이었다. 한이 그러는 중에 죽어있는 오
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역시 또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죽었던 오크의 반정도
인 2마리가 죽은 시체로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그들에게 환각을 걸려고 했으나 죽은 자는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았다. 두뇌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혼조차 사라져서 바이러스
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조종될 뿐이었다.
"......"
한에게는 도망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좀비화된 오크는 이
동속도가 살아있을 때보다는 느린지라-그렇다고 해도 한은 뛰어서 도망쳐야했다.
느리다고 해도 인간보다는 빠르니까- 도망치기가 수월하였다. 그러나 도망치고 또
도망치는 사이에 한의 체력은 점점 떨어져 갔고 한계에 이르기 시작하였다.
한에게서 전기가 튀겼다. 좀비들에게 전기력이 공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무용지물이었다. 불 이외의 것으로 좀비를 이기리란 힘든 것이었다.
좀비는 한에게 한발자국 한발자국 걸어왔다. 바이러스들의 비웃음 소리가 한의 귀
로 들리는 듯 싶었다.
-탕!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우연적인 순간이었다. 아주 절묘한 시간에 한발의 총성이
좀비를 향해 울렸다. 두 마리 좀비의 머리는 한 방의 총알에 수박이 깨지듯 명쾌
하게 깨졌으며 한의 얼굴에 좀비의 피가 튀겼으나 한에게는 별 상관이 없는 듯 싶
었다. 한에게는 이번에 좀비를 없앤 자가 적인지 적이 아닌지가 더 중요한 것이었다.
멀리서부터 한 사람이 한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점점 한에게 가까워졌고 한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선 다음 경
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이제 한의 바로 앞에까지 와있었다.
한은 여차 하면 우연히 습득한 자신의 능력을 그에게 발휘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에게 별 관심이 없는지 좀비에게 다가가서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든
다음 으깨어져있는 좀비 둘의 머리를 포개놓고 총을 쏘았다.
-펑!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심하게 좀비의 머리가 으깨졌다. 이제는 아에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 피바다 속에서 그는 손으로 시체의 잔해를 뒤적이며 은빛으로 빛
나는 총알 3발을 주운 다음 자신의 옷에 대충 피를 닦고 다시 총알을 장전하였다.
그는 한에게 말했다.
"후훗. 이런 곳에 사람이 있을 줄이야. 뭐, 심심하던 차에 잘 된 건가? 너 나랑 같이
좀 다니자. 세상을 믿을 수 없다지만 오크 따위에도 당하는 너 같은 녀석은 별로 위험
하지 않겠지. 아닌가? 이것은 너의 계략일지도? 하하하"
한은 경계를 풀었다. 이 자는 강했고 한은 이 자를 환각으로써 사로잡을 자신이 없
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를 따라다닐 준비를 하였다.
"그래, 뭐 아무래도 좋잖아? 이런 세상. 아무도 믿을 수 없다지만 나는 믿어야지?
난 처음 만난 너에게서 느껴진 이 느낌이 좋았어. 내 느낌은 최고의 진리. 너는 이제
부터 나와 같이 다니면 되."
억지 같은 말이었지만 자신의 느낌을 믿는 것이 중요한 이 세계에서는 그리 틀린 결정
이라 할 수는 없었다.
둘은 서로 통명성도 안하고 당연히도 그가 앞장서서 어딘 가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뒤로 좀비들이 불에 타오르고 있었다.
[황야]
해가 아직은 떠오르지 않아 어두운 이곳. 이곳에는 두명의 사람이 모닥불을 가운데에
놓고 앉아있었다. 불 때문에 적이 올 수도 있겠지만 불이 없어도 올 적은 반드시 오는
것이 이곳의 법칙이므로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는 것 정도는 그리 신경쓸 일이 아니었다.
"그래. 너의 이름은 무엇이지? 이런 황야에 혼자 있는 것도 그렇고 내 마음을 끈 것도
참으로 신기하단 말이야."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권총을 잡고 모닥불 건너편 한에게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한은 그의 질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제 이름은 한입니다. 그것 이외에는 저도 모릅니다. 나는 나를 찾고 있지요."
한의 질문은 한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대답한 것이었고 그것은 그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냥 자신의 소개를 하기로 했다.
"음. 그렇군. 참 재미있는데... 아, 내 소개를 안 했군. 뭐 이런 세계에서 내가 길게
목숨을 유지할 수 없지는 하겠지만 내가 죽을 때까지 너를 데리고 다닐 생각이니 소
개 해두는 것이 좋겠지.
내 이름은 '제인'이라고 한다. 일단은 코카소이드이지. 뭐, 나이는 나도 모르고
내 부모란 인간들은 누군지 모르니까 말이야"
"버림받은 것인가요?"
한이 중간에 이야기를 끊으면서 질문했다.
"난 버림받은 게 아니야. 내가 그들을 버린 거지. 그리고 다른 이가 말할 때 말을 끊
으려면 자신보다 약한 자의 말을 끊으라고. 너에게서 느껴지는 친근한 느낌만 아니라
면 너의 머리는 이미 깨진 수박이 되었을 테니까.
어쨋튼...음...어디까지 소개했더라. 그래 이제 내 직업에 대해서 말해줄까나.
내 직업은 일단 '사냥꾼'이라고 해둬야겠지. 실제로 그러니까 말이야.
나는 '천사'를 잡고 있지. 천사는 돈이지. 돈은 좋은 거잖아? 그래서 나는 천사를
잡지. 천사의 날개는 의외로 쓸모가 상당히 많거든. 가끔씩 도시 앞이나 안에
들어가서 거래상에게 넘기면 상당히 많은 돈을 얻을 수 있지. 이 총도 천사의 날개로
구한 거고 말이야. 뭐...내 소원은 천사의 멸종이지만 말이야. 천사 따위는...멸종 되
어야 하는 것이니까. 내가 단지 돈 때문에 천사를 죽이는 것은 아니거든...그렇지...
후우..."
"......"
"음. 그래. 칼 다룰 줄 알고 있니?"
한은 말없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런가...뭐 가르쳐줄 수는 없고 그래도 그냥 하나쯤은 가지고 다녀라"
그는 그렇게 말하며 한 손에 잡은 칼을 놓고 자신의 등뒤에 매고 있는 가방에서
한 자루의 짧은 칼을 꺼내들었다.
"이 칼은 '가디언 백업'이라고 하는 칼인데 매끄럽고 다루기 쉬워서 너같은 초보자에
게는 안성맞춤일 것이라고 생각되기에 너에게 그냥 하나 준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은
매우 가볍고 칼집에서 넣거나 뺄 때 필요한 힘의 양을 조절해주기도 하니 편리할 거다.
실력만 있으면 웬만한 몬스터들은 한방에 보낼 수도 있을 정도로 날카롭기도 하니까 말
이야"
말을 하며 그는 가디언 백업이라 하는 칼을 한에게 건내주었다.
한은 두 손으로 그 칼을 받으며 칼집에서 칼을 꺼내보았다.
칼자루와 칼날의 길이가 비슷할 정도로 짧은 칼이었다. 그러나 검회색을 띄는 칼날은
그 무엇이라도 자를 듯이 모닥불의 불에 비춰져 빛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가벼운 것
이 큰 장점인 칼이었다.
한의 눈에 황홀함이 떠올랐다.
"대단...한 것이군요"
"아니, 그리 대단한 칼은 아니야. 내가 그냥 너에게 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잖아.
다만 너 같은 초보자에게는 아무리 좋은 칼을 쥐어줘도 이런 칼만 못할 거라서 일단
은 그 칼을 줬다. 실전을 몇 번만 겪다보면 자연스럽게 칼의 사용법을 익힐 수 있을
꺼야. 조언을 하나 하자면은 심장이나 머리, 목 부분을 노리라고. 그것이 한방에 상
대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이니까 말이야. 사망확인도 해야겠지? 특별한 일이 아
니라면은 상대의 목숨이 확실히 끊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심장을 다시 한번 찔러보
라고. 그건 그렇고...너의 눈이 빛나는 군. 아마 이 칼을 금방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저...지금 제인님이 쓰시는 단도를 좀 볼 수 있을 까요?"
한이 제인에게 요청했다. 그것에 제인은
"뭐 별로. 이것도 네가 쓰는 거랑 거기서 거기인 칼이지만 확인할 때 편해서 쓰
고 있는데 보려면 봐. 여기 줄께"
이렇게 승낙하며 자신의 칼을 한에게 건네었다.
그러는 도중에 정말 전문가답지 않은 실수로 자신의 손을 약간 베었다.
제인의 손에서 피가 약간 흘러나왔다.
"아. 피가..."
"이런, 내가 잠시 정신을 홀렸었나. 칼을 잡은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군. 미안. 그
칼은 네가 만져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미안"
제인은 처음과 다른 말을 하면서 한의 손에 거의 넘어간 칼을 다시 가져왔다.
한은 별로 불쾌하지는 않은 듯 보였다.
"...뭐 할 수 없겠지요."
[하늘]
어디서부턴가 듣는 사람을 주눅들게 하고 두렵게 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의 근원지는 한 늙은 노인이었다.
날개도 없이 하늘 위에 서서 각각의 휘황찬란한 사도들을 지휘하는 이. 그가 말했다.
"때가 되었다. 라파엘이 그 신호탄이었다. 비록 라파엘은 죽었지만 지금 미카엘이
두 번째로 동화에 성공하여 인간의 육체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의 몸으로는 그들을 이기지만 그들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하기에 그들의 육체를
얻어 보다 약한 힘일지언정 그들의 운명을 바꾸는 일을 시작할지어다."
"때가 되었다."
[황야-2(이른 아침)]
두명의 인간이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고 그 뒤를 하늘에서부터 하얀 날개가
달린 천사가 쫓고있다. 학살자 '천사' 그들은 인간을 사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다, 다시 보니 사냥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투였다.
인간과 천사의 전투.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그것이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었다.
"감히!"
제인의 목소리와 함께 한 천사의 날개에서 불이 피어올랐다.
깃털이 타며 적은 중심을 잃은 체 천사는 추락하고 있다.
"미천한! 신의 하수인 주제에"
제인의 분노가 서려있는 목소리에 떨어지는 천사는 살기어린 눈빛을 보내보지만 너무
나도 간단히 당해버린지라 그것 이외에는 그에게 할 일이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죽음 뿐.
-퍽!
천사가 땅에 추락하여 내는 소리였다. 몸이 약간 으깨어졌지만 천사는 아직 죽지
않았다. 희미하게나마 심장은 뛰고 있었던 것이다.
-타다다
한이 그런 천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푹
제인에게 받은 자신의 칼 '가디언 백업'으로 심장부분쯤이라 생각되는 곳을 한번
찔렀다.
그러나 천사는 비명소리 하나 내지 않고 눈을 한에게 향하고 있었다.
한은 두려웠던 걸까, 피에 빠져버린걸까? 그 즉시 자신의 칼로 천사의 가슴 모든 부분
을 칼로 찌르고 빼고 찌르고 빼고 하기 시작했다. 천사의 가슴은 완전히 걸레가 되어버
릴 때까지 한은 계속 찌르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제인은 천사와 계속 싸우고 있었다.
이 천사는 방금전의 천사와는 달리 전투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인지 제인의
초능력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총도 몇 방 써봤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고위급의 천사
일 수도 있었다.
"신의 하수인 따위한테 이런 것을 써야하다니..."
제인이 말하자마자 제인에게서는 기의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인의 머리색깔이 약간 흐릿해졌으며 제인조차 약간 흐릿해진 듯 했다.
천사는 흠칫 했고 천사만의 언어로 뭐라고 뭐라고 절규하기 시작했다.
제인의 뒤에는 또 하나의 태양이 떠 있었다.
그 엄청난 열기와 위압감에 아직도 천사를 난도질하고 있던 한조차 고개를 돌려 제인
을 바라봤고 두려움에 떨었다.
하나의 태양은 하나의 천사에게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고 천사는
피하기는 커녕 자신이 그 태양에 맞았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녹아버렸다.
제인은 아주 조그마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죽어...죽어...죽어..."
아무도 못 들었지만 그 자리의 공기조차 그 말에 얼어붙었다. 태양이 지나갔건만 그
태양은 마치 붉은 달이었던 것처럼 이곳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 태양이 모든 열
을 빼앗았던 걸까?
[황야-3]
제인과 한. 역시 그 둘뿐이었다. 그 둘은 끝없이 걷고 있었다.
한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제인님. 머리 색깔이..."
한의 말을 중간에 제인이 가로채며
"괜찮아. 괜찮아. 원래 힘좀 쓰면 이렇게 되. 뭐 상관없지. 어쩌피 죽을 목숨 조금
더 일찍 죽는다고 뭐 나뻐지겠어?"
겉으로는 이렇게 말했지만 얼굴에는 슬픈 듯한 표정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한은 그에게 아무런 말도 안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이번에 천사는 쓸모가 없게 됐어. 너무 흥분했었나봐.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너는 천사를 죽은 천사가 아니라 걸레 천사로 만들어 놨더구나."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말하지마. 이 세계에서 진정 미안하다면은 아무런 말도 안 하는 것이
법이야. '미안하다' '죄송하다'이렇게 말하는 것은 상대에게 약해 보이는 것밖에는
안돼."
"그런 건가요..."
"응. 그런 것이지. 세상은 원래 그래"
"......"
그 말이 끝난 후 한동안 그 둘은 아무런 말이 없이 걷기만 하였다.
즈마로 가는 길. 그 길은 강을 하나 건너야만 했다.
탐욕스런 뱃사공에게 금이나 무엇인가 그에게 이득될만한 것을 주고 건너는 것이
이곳의 법.
만약 뱃사공을 위협해서 건너려다가는 뱃사공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라도 함께
고깃밥이 되어버릴 곳이 강이라는 곳이었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 둘은 즈마로 갈 수 있는 강에 도착했다.
강에서는 조그마한 나룻배가 떠있고 그 위에 미소짓고 있는 뱃사공이 보였다.
간만의 손님인걸까? 하긴 이런 곳에서 장사가 될 리가 없다.
생존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든 곳이 이곳 도시 바깥이니까 말이다.
[강을 건넌 후 즈마로 가는 길]
뱃사공은 제인에게서 무엇인가를 몇 개 건내받더니 적에게서 도망치듯 배를 타고
반대편으로 가버렸다. 그에게는 무엇인가 사정이 있었을 것이기도 했지만 어쩌피
자신의 일은 데려다 놓는 것뿐이었으니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후환을 회피하
자는 뜻일 수도 있었다.
"강을 건넌거군요."
"그래. 후우...일단...나는 윗쪽으로 올라가야 하니...들어갈 수 있다면 즈마로
가보기로 하지"
d
"네..."
말을 하면서도 둘은 걷고 있었다.
사실 즈마는 그리 멀지도 않고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일명
개구멍이라 불리는 뒷구멍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서두를 필요도
이유도 없기는 했다. 그렇지만 둘에게는 미지의 힘이 영향을 끼치기라도 하는지
둘은 즈마를 향해 걷는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어쩐지 느낌이 안 좋아. 꺼림칙한 느낌이랄까?"
제인에게서 말이 나왔다.
과연 분위기가 이상하기는 했다. 너무나도 조용했고 너무나도 싸늘했다.
"그렇군요. 저도 약간은 그런 것 같기도..."
"더이상 말하지 말자. '불길한 것은 생각하지도 말라' 계속 생각하면 왠지
진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
"......"
다시 말은 멈췄지만 여전히 그 이상한 기운은 그 둘을 감싸안고 있었다.
어머니의 품속을 아이가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듯이...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아주 멀리 즈마가 둘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해는 떠오르려하고 있었다.
덕분에 주위는 싸늘해서 어쩐지 오싹한 기분도 둘에게 다가갔지만은
그 둘은 애써 그 기운을 무시하였다.
"...온건가?"
결국 제인의 입에서는 불안의 끝과 두려움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 튀어나왔다.
사실 제인은 아까부터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그들을 생각했지만 결국 그들이
오자 다시 한번 두려움을 겪었다.
제인이 그들을 죽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번과 같은 강력한 천사가
아닌 이상에야 큰 힘을 쓰지 않고서도 이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천사는 인간에게는 가장 큰 두려움을 주는 대상이고 제인도 인간이기에
신의 하수인들에게 느끼는 본질적인 두려움의 족쇄는 제인에게 조차 유효했다.
단지 한만이 그런 본질적인 두려움에서 벗어나 야릇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
소리 없이 그들은 등장했다. 다섯. 그들의 수였다. 그들 모두는 맨손이었지만
맨손이기에 제인에게는 더 두려웠다. 분명 고위급의 천사는 아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공포가 점점 그를 옭아매었다.
천사와 대적하면서도 한번도 느끼지 못한 강렬한 공포였다.
천사 다섯 마리에게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더 강력한 존재이다.
그는...
"인간들. 지켜보겠다."
마침내 그가 나타나서 말을 하였다.
"!!!!!!"
제인과 한은 동시에 놀랐다. 비록 제인은 두려움과 공포의 극으로 놀랐고
한은 알 수 없는 감정에 놀란 것이었지만은 둘다 아주 크게 놀랐다.
"다...당신은..."
제인이 말꼬리를 잇지 못했다. 두려움과 경이. 존경과 증오. 모든 것이
교차하는 순간.
결국 그가 온 것이다.
"나는 위대하고 전지전능하신 신의 사도이신 에슴님을 존경하며 따르는
두 번째 팔. 가브리엘. 에슴님의 명령에 따라 이곳에 왔도다"
[......]
하늘에서 신이 내려오사 여러 동물들을 보시와 두발로 걷는 동물 있기에
이름을 물으시니 사피언스라 하더라 신이 그 동물을 가히여기시와 유한 삶의
선물을 주시며 말하시길
"너희는 색이 셋으로 나뉘며 좀 더 뛰어나게 될지어니 각각 남매를 만들어
주오니 축복 받은 유한 삶을 사리라."
그리하여 그들은 남매끼리 관계하여 자손을 낳아 여러 종족으로 나뉘니
그들은 서로 다른 곳에 가서 그 곳의 지배자가 되고 다른 동물들을 괴롭히며
자신들끼리 싸우니 신께서 노하시와
"그들에게 적이 생기리라"
하시니 각종 동물이 난폭해져 맹수가 되어 인간을 괴롭혀서 인간들이 균형을
잡자
"이것으로 되었노라"
하시고 한동안 거동을 안 하시고 고민에 잠기시와
금지된 원형 변형의, 신의 영역에 인간들이 접근하와 신께서는
"내 하수인을 만드리라"
하셔 천사와 십이 사도를 손수 만드시고 각각 이름을 정하시고 자신의 왼쪽
새끼손가락을 자르시어서 에슴님을 창조하시니 에슴님을 따라 사도와 천사가
모두 기쁘더라.
그러던중 인간이 금지된 힘으로 전쟁을 벌여 신께서 사도를 보내시니
인간들은 굶어죽고 모든 것을 잃은 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여 일그러진 관계
를 보이더라.
사피언스에게 주신 선물을 빼앗으시려 인간의 종말을 고하시니 인간들은
두려워해 신의 말씀을 듣는 자는 귀가 멀고 안 듣는 자는 눈이 멀어
아비규환으로써 괴로워하더라.
신께서는 하수인을 시켜 인간을 치게 하시니 이것이 어찌 아니 성스러우리오?
[즈마로 가는 길-2]
피로 몸을 붉게 물들인 제인이 힘겹게 서있다.
한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전투의 처음부터 계속 서 있었다.
천사들은 제인에게만 공격을 했고 한은 무시된 듯 싶었다.
한과 가브리엘은 그 전투에서 마치 소설의 화자처럼 단순한 관전자였다.
천사들의 수는 줄어있었다.
처음의 다섯 마리에서 네 마리는 모조리 제인의 힘에 의해 죽고 한 마리만이
살아남아 있었다.
그러나 제인 역시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 천사들은 고위급의 천사들이
었는지 제인의 머리색은 이미 바뀐 지 오래였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아에 하얀색
으로 완전히 색이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눈동자 또한 초점이 많이 흐릿해져
있었다.
제인은 무언가에 홀린 듯한 몸짓으로 칼을 들고 천사에게 다가갔고 천사는 무덤
덤한 표정으로 다가가는 제인을 공중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천사에게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천사는 제인을 스쳐지나갔다.
제인의 왼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손가락의 절단. 제인에게 내려진 숙명.
새끼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하지만 피로 인해 있기는
했었다는 것을 알아 볼 수 있게 사라져 있었다.
비명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짧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펑!
이번에도 폭발음만이 나왔다.
천사는 머리서부터 하나하나 터지고 있었다.
-펑!
-펑!
-펑!
이제 천사는 사라져 있었고 단지 이리저리 흩어 나부라진 고깃덩이들과 깃털,
그리고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피만이 제인과 그 주위에서 시냇물이 되어 졸졸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
제인에게는 말할 힘도 없었는지 입은 움직였지만 힘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놀라움을 표시하고 경악을 표시한다는 것은 그 누가 봐도 분명했다.
"어리석은 자. 자신의 숙명을 탓하리니."
계속 관전만 하던 두 번째 사도 가브리엘이 계속 놀리고 있던 그의 날개를 접고
한을 노려보며 사형선고를 내리는 판사처럼 말했다.
소리도 없었다.
비명도 없었다.
단지 흐르는 피 덕분에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가브리엘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있었고 한은 고깃덩어리와 핏덩이로 되어버렸으며
그런 한의 뒤에는 커다란 바위가 솟아나 있었다.
제인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쓰러졌다.
그것이 자살행위임을 알면서도 그런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런 그의 눈이 감기고 한참 후에...
바위에 처박혀있는 고깃덩어리와 피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