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쓰는 에세이
씨앗을 읽다
김 영 자
씨앗은 숨길이다. 숨소리가 들리는 씨앗은 우주를 품고 있다. 그 씨앗의 품에서 생명의 숨길이 나고 물길이 열린다. 바로 씨앗 안에 우주가 들어 있다는 것은 내 몸도 하나의 씨앗이고 당신도 소중한 씨앗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열려있음과 닫혀있음 안에서 기다림과 희망을 이어가는 우리의 역사는 계속 이어 진다. 동시에 그 기다림과 희망은 우리를 깨어있게 하며 축제와 예술의 세계로 초대한다. 축제의 시간, 세상 한 복판에서 만나는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환희와 고통, 즐거움과 자유는 삶의 양분이 되고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그 자양분이 삶의 에너지가 되어 새로움과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에 우리는 삶을 가꾸어 간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듯이.
Covid19로 인하여 세계적인 재난의 시기가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종종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혹자는 코로나 이전의 삶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성찰의 시간과 진단, 전망을 반복한다. 혹자는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질 것이며 보이지 않는 사회적 갈등은 더 극명하게 나누어질 것이라고도 한다. 갈등과 고립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류가 빠져 나오지 못하는 수렁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잇다보면 탐욕의 바이러스, 인간의 탐욕 바이러스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현상을 몰고 올 것만 같다.
완두콩 꼬투리를 잡아 당겼다. 채소가게를 지나다가 싱싱한 완두콩이 자꾸만 내 눈길을 끌어당겼다. 좀 많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무작정 완두콩 한 자루를 사다 놓고 미루다가 이런 저런 생각을 털어버리고 싶어 완두콩 꼬투리를 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 ‘앗, 씨앗이구나.’ 한 줌씩 살며시 쥐어보며 부드러운 완두콩의 살갗과 속살을 느꼈다. 분명 완두콩은 씨앗인데 왜 씨앗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을까? 여느 씨앗처럼 단단하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꼬투리 안을 가득 채우며 정답게 몸 붙이고 있는 부드러운 씨앗들이 사랑스러워 한 가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지난 해 방문했던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시드 볼트」가 생각났다. 숲이 아름다웠지만 씨앗은 더 아름다웠다. 종자種子의 소중함을 간직한 숲의 아름다움과 인류의 보물인 씨앗의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었다.
씨앗의 영구저장고 시드 볼트
2018년 봄에 개장한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자리를 잡고 있다. 수목원 방문자센터에 도착해서 안내를 받는 동안 마음이 흐뭇해졌던 느낌이 되살아난다. 지친 마음을 치유 할 수 있는 쉼터, 안식처를 원하는 자에게 숨 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안내를 받는 동안 유독 내 마음을 빼앗은 것은 「시드 볼트」였다. 지하터널 형으로 건립된 지하2층 지상1층 규모의 아시아권 최초 영구종자저장 시설이다. 종자를 장기 저장하는 Seed Bank는 많이 있지만 영구저장 가능한 Seed Vault는 세계적으로 노르웨이와 우리나라 두 곳뿐임을 알게 되었을 때 자긍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1400km를 잇는 거대한 산줄기 백두대간에는 자생식물의 33%가 서식하는 중요생태 축이다. 3200여종의 다양한 식물을 보유한 대자연의 보물 창고인 것이다. 여기에 자리 잡은 수목원은 기후변화, 자연재해, 전쟁, 핵폭발과 같은 재난으로부터 주요 식물의 멸종을 막고 유전자원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종자 200만점 이상을 저장 할 수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야생식물 종자도 보관하고 있다.
지구 대재앙 이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하여, 지구 최후의 날을 대비하여 2008년 노르웨이 정부가 스발바르제도의 스피츠베르겐 섬에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를 완공했다. 1500만종의 씨앗 표본을 저장 할 수 있는 시설인데 현재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약 450만 종의 씨앗이 저장 되어 있다고 한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고 불리는 ‘최후의 날 저장고’다. 그러나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는 이 지구는 갈수록 심한 몸살을 앓고 있으니 어찌할 것인가.
이제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는 너무 많이 아파서 여기 저기 그 증상들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지구의 온난화로 빙하가 계속 녹고 있어 가장 안전하다는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 예기치 않은 위험 신호가 왔다는 것이다. 가장 안전하다는 시드볼트 입구가 침수되는 일이 발생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인가?’ 되새긴다.
시의 씨앗
가끔 ‘나’를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다. 내 안에 우주의 드라마가 들어 있음을 실감한다. 내 안에 우주가 들어 있음은 씨앗이 들어있음이요 나와 함께 했던 자연의 숨길이 들어있음이다. 나의 역사, 내가 살아 온 삶의 흐름길이 들어 있음은 바로 씨앗이리라. 씨앗의 신비, 그 오묘함을 생각하며 질문을 던진다. 그 많은 시인들은 왜 시를 쓰고 있을까? 그 많은 시인들은 왜 밤잠을 설치며 시와 씨름을 하고 있는가? 시의 씨앗은 무엇인가? 자꾸만 이어지는 물음을 반복하다가 부질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씨앗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시인들은 시를 쓰기 시작한다. 최후의 날에도 시인들은 좋은 시 한 편 쓸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다. 바로 시의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알라스카 마타누스카 육지빙하에서 얼음이끼를 만져 본 일이 있다. 안내자는 빙하이끼가 1500년 동안 잠을 자고 깨어나 푸르게 잘 살고 있다는 설명을 이어갔다.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설명을 마친 그는 이끼를 얼음 위에 살며시 거꾸로 뒤집어 놓는다. 내일 와서 보면 다시 일어나 하늘을 향하고 있을 것이라고 웃으면서 말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긴 잠을 자고 깨어났다는 얼음이끼에 대한 안내자의 설명이 어떤 과학적인 자료가 있는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400년 동안 잠을 자고 있는 이끼를 깨워 싹을 틔우고 있다는 캐나다 북극의 ‘눈물방울 빙하이끼’에 대한 연구보고는 잘 알려지고 있다.
씨앗을 깨우자, 시인이여
시인은 씨앗의 영구저장고, 시드 볼트다. 시인의 가슴에 저장되어 있는 씨앗은 자연이며 커다란 우주다. 그 씨앗을 싹트게 하는 일이 시인의 몫이다. 시인의 가슴은 인류 최후의 금고이며 그 가슴에 안겨 있는 씨앗을 흔들어 깨우고 싹트게 하는 자가 시인이다.
‘예술에는 오류가 있을지 모르나 자연에는 잘못이 없다’ 드라이든의 말을 빌리면서 자연은 인간과 연결되어 있음을, 시인과 자연이 이어져 있음을 생각한다. 굳이 불가佛家의 연기설을 말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그리고 시인은 우주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씨앗은 진실이다. 씨앗은 희망이고 미래다. 시인들이여 씨앗을 깨우자. 시인의 가슴에 있는 씨앗을 흔들어 깨우자. 씨앗이 싹 터 잎을 키우고 줄기가 튼튼해질 때, 꽃을 피워 열매 맺을 때 시인과 자연은 하나가 된다. 시의 뿌리는 점점 더 깊어지고 시의 씨앗은 또 하나의 커다란 자연을 이루고 우주를 불러온다. 어느 시인의 시는 새벽이슬이고 어느 시인의 시는 새가 되어 날개를 펴고 하늘을 힘껏 날아오른다. 어느 시인의 시는 세상 한복판에서 진실의 울림통을 세우고 정의의 비를 내리게 한다. 사람들에게 생명과 위로를 주는 숨 터를 만든다. 어느 시인은 오늘 밤 쏟아져 내리는 한 밤중의 아름다운 별이 되어 그 스스로 우주가 된다.
시인들이여, 씨앗을 깨우자. 바니안 나뭇가지의 줄기는 또 하나의 뿌리가 된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