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환의 돈황벽화로 읽는 불교경전
24. 화엄경변②-막고굴 제428굴 ‘노사나불법계인중상’
한 털끝, 한 찰나마다 자재하신 부처님 도상으로 표현
노사나불 법신에 도리천부터 지옥까지 육도윤회 담아
‘60화엄 입법계품’서 선재가 관찰한 ‘일체 세계의 현현’
삼각·원형 그려 형상·체성 따라 성립하는 세계 상징도
1)막고굴 제428굴 남벽 노사나불법계인중상. 가슴의 수미산을 중심으로 중생 6도를 여래의 몸에 그렸다.도상을 통해 일즉일체, 일체즉일(一卽一切, 一切卽一)의 교의를 읽을 수 있다.
2) 뉴델리국립박물관 소장 6세기 우전국 노사나불법계인중상.
“여래의 법신은 불가사의라. 색도 없고 상도 없고 견줄 데도 없도다. 그러나 중생 위해 색신을 드러내시니, 시방 어디든 그 모습 보이지 않는 곳 없다네.”(‘60화엄 노사나불품’)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 선정에 잠긴 채 정각(正覺)을 이룬 순간, 그는 ‘깨달은 자’ 불타가 되고, 동시에 법신으로서의 노사나불(비로자나불)로 현현한다. 석가모니불은 침묵하지만 동시에 교설은 보살의 입을 통해 끝없이 펼쳐지며, 그 속에서 불타를 말하고, 세계를 말하며, 중생을 말한다. 그렇다면 ‘화엄경’의 불타관과 세계관을 시각문화의 영역에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지난 회에서 언급했던 7처9회도와는 다른 도상적 방편이 요구된다.
북주(北周, 557~581년)시대에 조성된 막고굴 제428굴은 주실 중앙에 배치한 방형의 중심탑주 4면에 각각 조성된 설법인의 좌불상을 주존으로 한다. 중심탑주를 둘러싼 사방의 벽면은 석가·다보 이불병좌상, 열반도, 항마도, 경행도, 갖가지 본생도와 천불(千佛)을 장식했다.
남벽의 중앙에는 이색적 형식의 입불상이 그려져 있다. 입불상은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하고 왼손엔 가사를 쥐고 있다. 토홍색의 통견 가사에는 여래의 몸을 따라 다양한 장면이 채워져 있다. 가슴 중앙에 산중턱이 잘록하고 위로 갈수록 다시 넓어지는 형태의 수미산이 자리하고 있다. 산 정상에는 전통양식의 전각이 있고 안에 천인이 정좌하고 있는데, 이것은 도리천궁을 묘사한 것이다. 도리천궁의 위로 비천이 날고, 상단의 어깨 부분에는 선정인을 한 시방제불이 단좌했다. 수미산의 앞에는 양손을 들어 각각 해와 달을 받치고 있는 아수라가 보인다. 아수라 양팔 바깥쪽에는 각자 거처에서 마주한 두 인물을 배치했는데, 정황을 보아 유마경의 유마힐과 문수보살임을 추정할 수 있다.
수미산을 둘러싼 흉부와 팔, 복부에는 산줄기를 배경으로 인물들이 빼곡하다. 이들은 수행을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기도 한다. 저택 안에 사람들이 앉아있거나 활동하는 장면도 가득하다. 여래의 허벅지에 해당하는 하단에는 소, 말, 원숭이, 사슴, 새 등의 동물들이 모여 있다. 소의 왼편에는 헐벗고 야윈 몸을 드러낸 인물이 보이는데, 이것은 아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여래의 양 소매에서 흘러내린 가사자락은 U자형을 이루며 자연스레 경계선을 형성하는데, 하단에는 나체의 상태로 칼산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6인이 보인다. 전체적인 구도로 보아 짐작되듯이, 이것은 상단부터 차례로 하늘, 아수라, 사람, 축생, 아귀, 지옥의 육도(六道)를 표현한 것이다. 여래의 몸에 육도를 표현한 의미는 무엇일까?
“(선재는) 보현보살의 낱낱 몸과 낱낱 마디와 낱낱 털구멍을 관찰했다. 그리고 거기서 삼천대천세계의 풍륜·수륜·화륜·지륜과 큰 바다의 보배산·수미산·그를 둘러싼 금강산과 일체의 집과 묘한 궁전과 중생들과 모든 지옥·아귀·축생과 염라왕이 있는 곳과 모든 하늘의 범왕과 인비인(人非人) 등을 보았고, 또한 욕계·색계 및 무색계와 일체겁 수의 부처님과 보살이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 등 모든 일의 현현함을 보았는데, 시방 일체 세계에도 그와 같았다. 사바세계에서 노사나 여래·응공·등정각이 나타내는 자재한 신력이 이와 같다.” (‘60화엄 입법계품’)
‘화엄경’에서 보현보살은 노사나불의 본원력에 의지해 삼매에 들고 설법을 펼치는 것이므로, 선재가 관찰한 것은 곧 노사나불의 몸을 통해 현현한 일체의 세계다. 같은 이치로 428굴의 육도가 새겨진 여래는 곧 노사나불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노사나불법계인중상(盧舍那佛法界人中像)’이라 칭하는 이 불상 형식은 60권 ‘화엄경’이 번역된 후(422년)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고승전’은 비구 승전이 5세기 초엽 오나라에 당도해 ‘인중상’을 제작하여 호구산의 동사(東寺)에 봉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존하는 실물 자료로서 가장 이른 사례는 하남 안양 고한사 소장 북제시대 입불상(현재 소재불명)의 탁본이다. 법의의 정면에 천계에서 지옥까지의 육도의 도상을 차례로 새기고, 나머지 부분에 불전장면, 유마경변, 수달나태자 본생, 염자 본생, 전륜왕의 칠보, 연화 등의 도상을 새겼다. 이처럼 입불상에 법계도를 새기는 형식은 북제와 수대에 걸쳐 중원에서 상당히 유행했다. 막고굴 428굴의 노사나불도 이 같은 맥락에서 조성된 것이다.
노사나불법계인중상은 ‘화엄경’의 집성지인 우전국(于闐, Khotan)에서도 유행했다. 예를 들어 인도 뉴델리국립박물관에 소장된 6세기경 노사나불상도 마찬가지로 여래의 몸에 각종 도상이 새겨졌다. 상반신 중 양어깨에는 각각 해와 달을, 가슴에는 보주(寶珠)·화엽(花葉) 등의 도안으로 장식했다. 허리에는 말, 보관을 배치하고, 옆구리에는 금강매를 팔에는 범협(梵夾)을, 몸의 곳곳에 삼각형과 원형의 도안을 그려 넣었다. 이러한 도상적 내용은 역시 ‘60화엄 권3’의 내용에 근거하며, 갖가지 형상과 체성(體性)에 따라 성립하는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이를 통해 “끝이 없고 평등한 묘한 법계에 모두 여래의 불신(佛身)이 충만하다”는 화엄 교의를 천명함에는 중국의 법계인중상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다만 중국의 경우 육도라는 중생의 세계를 중심에 내세워 “불신이 제법계에 충만하여, 일체의 중생 앞에 두루 나타난다”는 교의에 더욱 충실하다.
첫머리의 경문을 돌이켜 보건대, 본래 여여한 자리인 법신이 그 색과 상을 갖추고 현현하는 이유는 오로지 중생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접하는 한 털끝, 한 찰나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자재함을 깨닫는다면, 그보다 신비롭고 환희에 찬 세상이 또 있으랴.
“이 법을 듣고 환희하며 신심을 가지고 의심이 없는 자는 속히 무상도를 이룩해 모든 여래와 같으리라.” (‘60화엄 입법계품’)
[1664호 / 2023년 1월 11일자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