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람하는 집
백은선
가장 미끄러운 것은 왼쪽 귀
만지면 이상해 이상해져
춥다고 했어. 결정된 부력이라서 그냥 떠올랐어. 멈춰지지 않는. 이것이 당신이 원한 물과 참의 숭고인가.
나는 자꾸 눈을 생각하고
호르몬처럼
수식 없이 주어를 주고받는
날개들 예감 없이 이뤄지는
염력을 쓸 때 주의할 몇 가지 감정. 당신은 반드시 돌아봐야 하고 돌아본 채 돌아봄의 견고를 견뎌야지. 그런 작명으로 사건이 시작된다.
차갑고 긴 것
이봐. 정말 추운 것은 그런 게 아냐. 물의 씨앗들이 핏속을 떠다닐 때. 발아에 복종할 때. 몇 개의 구멍들, 고개를 내밀고 초록이 뒤틀릴 때
처음이라고 말하는 사람
미끌미끌한 포도 냄새
불속을 지나가는 새의 무리
물 위를 떠가는 뒤집힌 얼굴
녹슨 사슬을 끌고 멀어지는 시선. 숲에 잠겨. 통제할 수 있는 불의만 남으면 더 간단할 높이에서.
색과 색의 밖에서
발끝을 세우고 듣는다.
추락하지. 가속도를 이해한다는 건 어렵지 않지. 바다로 걸어들어가는 앙상한 나무들이라고 해둘까. 쉽게 말하고 쉽게 잊는 것이 좋지. 물론
외침. 속삭임
이 장면에는 흑백이 필요하다.
월간 『현대시학』 2015년 5월호 발표
1
백은선 시인
1987년 서울에서 출생. 2012년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