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작가 마이클 루이스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상 최대의 금융 사기 사건과 그 중심에 있는 문제적 인물 샘 뱅크먼프리드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룬 책 《고잉 인피니트》를 펴냈다. 기업가치가 55조 원(2021년 기준)을 넘었던 세계 제2의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급작스러운 파산은 전 세계인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고, 암호화폐업계의 '크립토 겨울'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전까지 FTX의 설립자 샘 뱅크먼프리드는 세계에서 가장 젊은 억만장자로 암호화폐의 천재로 추앙받았으며 대기업 CEO, 각국의 지도자, 유명 인사 등이 앞다투어 그와 친해지고 싶어 할 정도로 세계적인 셀럽이기도 했다. 그의 급상승에서 급하강까지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머니 볼 》《빅 숏》 등 경제 논픽션의 대가이자 금융 전문 저널리스트로 알려진 마이클 루이스가 샘 뱅크먼프리드를 취재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그전부터 암호화폐에 대한 그의 글을 읽고 싶다는 독자들의 요청은 쇄도했지만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마이클 루이스는 특별히 FTX 설립자 샘 뱅크먼프리드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카고 반바지에 헐렁한 흰색 양말을 신은, 산만한 억만장자를 만나게 된다. 마이클 루이스와 처음 만났을 당시 샘 뱅크먼프리드는 암호화폐의 왕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부를 축적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단순히 엄청난 부자였기에 마이클 루이스가 샘에게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첫 만남에서 핵 전쟁, 전염병, 인공지능의 공격 등 인류의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한대의 돈(infinity dollars)'이 필요하다고 자신의 계획을 거침없이 말하는 샘에게 저자는 깊은 호기심이 생겼고, '당신이 어디까지 갈지 지켜보겠다'고 말하게 된다.
그리고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마이클은 샘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밀착 취재한다. 샘이 FTX의 열광적인 상승세 속에서 어떻게 225억 달러(약 31조 원)의 재산을 모았는지, 그 모든 것이 10일 만에 0원이 되는 광기와 패닉의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책에 담았다.
미국에서 이 책은 샘 뱅크먼프리드의 재판 바로 전날에 출간되어 세간의 엄청난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재판이 진행된 후 마이클 루이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샘에 대한 후일담을 추가로 집필했다. 2024년 7월 출간된 한국어판은 세계 최초로 그 후일담을 담아내고 있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실화,
집필 전 이미 500만 달러 영상화 판권 계약!
미국 <포브스>에 따르면 샘 뱅크먼프리드는 전 세계 30세 미만의 인구 중에서 최고 부자일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부를 축적한 인물로 기록될 것으로 보였다. 그가 부를 쌓는 속도는 페이스북(현 메타)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에 비견될 만했다. 또한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지도부에서는 샘의 후원과 관심을 갈구했다. 월가 대형 은행의 수장들은 샘을 궁금해했으며, 실리콘 밸리의 주요 벤처 캐피털 심사역들은 샘에게 투자할 수 있기를 바랐다. 미국의 스포츠 스타 톰 브래디는 샘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세계적 싱어송라이터 테일러 스위프트는 샘의 암호화폐 거래소를 홍보하는 계약을 협상했다. 농구선수 샤킬 오닐은 샘과 손잡고 바하마의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기를 꿈꿨고 영화배우 올랜도 블룸은 샘에게 영화 출연을 제의했다.
최고의 논픽션 작가 마이클 루이스는 단지 샘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과연 그의 종착지는 어디일지 궁금해 그에 대한 전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1년 후, 샘은 역사상 최대 금융 사기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금융 사기 사건,
그 사건의 배심원석으로 독자를 초대하다!
이 책은 샘 뱅크먼프리드의 특이한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 첫 회사를 퇴사한 후 창업하여 세계 최고 부자의 반열에 올랐다가 체포되기까지 롤러코스터처럼 급상승과 급하강을 거듭한 그의 인생을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이 고객의 예탁금 100억 달러를 유용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샘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스로가 가장 가까이에서 샘을 취재한 만큼 타 매체에서 오히려 이 책의 내용을 발췌해 왜곡하지는 않을지를 걱정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이 책을 통해 독자가 그저 샘을 ‘유죄’ 혹은 ‘무죄’로 단정하는 대신 촘촘한 평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일반적인 배심원들은 절대 접할 수 없는 샘에 대한 세세한 우여곡절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가 동일한 평결에 도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야기의 묘미는 읽는 이들이 제각각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데 있다. 이 사건은 양자택일의 결정을 내리기에는 너무나 복잡했다. 샘 뱅크먼프리드는 언제, 무엇을, 또어떻게 알고 있었는가? 샘 뱅크먼프리드가 고객 예탁금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한 일은 무엇이며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같은 책을 읽어도 누구나 혼란을 겪을 이 복잡한 사건에서 취할 교훈은 각자 다를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과연 어떤 평결을 내릴 것인가.
2021년 11월 〈포브스〉는 샘의 순자산을 225억 달러로 평가하여 루퍼트 머독보다 한 단계 아래, 로린 파월 잡스보다는 한 단계 위에 위치시켰다. 225억 달러는 세계적인 벤처 캐피털 회사에서 FTX의 암호화폐 거래소 기업 가치를 400억 달러(약 55조 원)로 평가한 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샘은 FTX의 지분 60퍼센트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400억 달러의 60퍼센트는 240억 달러다. 〈포브스〉가 부자들의 자산을 추적한 40년 역사에서 샘은 아웃라이어에 속했다. 피터슨위돈은 “샘은 자수성가해 손꼽히는 부자가 되어 〈포브스〉 목록에 새로 등장했는데 전례가 없던 일”이라면서 “자산 규모를 훨씬 크게 평가할 근거도 있었지만 가급적 보수적으로 평가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샘의 자산 규모 추정치가 믿을 만한 수치였기에 〈포브스〉의 경영진은 혹시 샘이 언론사를 인수할 의향이 있을지 궁금하게 여기기까지 했다. _‘1장 옙’ 중에서
금융시장과 그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사람들이 시장을 만든 후에는 시장이 사람들을 만들어간다. 샘 뱅크먼프리드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시장은 과거 수십 년에 걸쳐 효과음을 줄이는 방향으로 재편되었다. 그 책임이 전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금융위기가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었다. 한때 가장 흥미로운 트레이딩 위험을 졌던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 같은 투자은행의 투자 스타일은 투박하게 바뀌었고 엄격한 규제를 받는 대상이 되었다. 이들은 과거에 월가의 대형 상업은행이 하던 단조로운 역할을 하도록 내몰렸다. 이에 따라 매매 활동의 중심이 베일에 싸여 있는 민간 매매업계로 이동했다. _‘4장 인류의 발전’ 중에서
초기부터 거래는 혼돈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처음 두 달 동안 번 돈의 대부분이 단 두 건의 매매에서 발생했다. 비트코인의 수요가 광적으로 증가하면서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에서 기이한 왜곡이 일어났다. 2017년 12월 한국의 소매 투기자들은 비트코인 가격을 미국 거래소보다 20퍼센트 높은 수준까지 밀어 올렸으며 격차가 더 벌어질 때도 있었다. 한국에서 암호화폐를 매도하는 동시에 한국 외부에서 매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엄청난 이익을 거머쥘 기회였다. 하지만 말처럼 간단하게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_‘5장 ‘밥’에 대한 사고실험’ 중에서
샘의 세계에서 일어난 많은 일은 일반적인 견제와 균형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벌어졌다. 외부 세계에 있는 다른 이들은 두드러지게 불만을 제기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거래 자금은 오로지 샘의 주머니와 관련된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샘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투자를 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그럼에도 인류 역사를 통틀어 20대에 샘과 같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면서 성숙한 감독이나 기업의 일반적인 규정에 크게 제한을 받지 않는 경우는 드물었다. 샘은 “실질적인 이사회를 구성해야 하는지 불분명하다”면서도 “이사회가 없으면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 때문에 세 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트위터 회의 직후 샘은 이렇게 말했지만 다른 두 사람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 “구성원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직무의 주요 요건은 새벽 3시에 도큐사인에 서명하는 데 개의치 않는 것이다. 도큐사인 서명이 주요 업무다.” _‘8장 용의 보물 창고’ 중에서
FTX가 붕괴하고 몇 주 뒤에도 오키드 펜트하우스에는 진열장을 깨고 물건을 훔쳐간 범죄 현장의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각 침실은 방 주인이 떠나던 순간 그대로의 상태였다. 방에는 개인 물품뿐 아니라 당시의 마음 상태도 보존되어 있었다. 캐럴라인의 방은 새로운 남자친구와 휴가를 떠나며 들떠서 한바탕 어질러놓은 상태였다. 짐에 넣지 않기로 한 옷가지가 침대에 널려 있었다. 니샤드의 방은 흐트러짐 없이 깨끗했다. 바하마를 떠나기 위해 설득 작업을 벌였기 때문에 체크인을 기다리는 호텔 방처럼 정리할 시간 여유가 있었다.
샘이 쓰게 된 게리의 방은 특별하고 복잡한 사연을 담고 있었다. 짐이 가득 찬 가방 세 개가 구석에 남아 있었다. 게리는 짐을 싸기로 결심했다가 가방을 두고 떠났다. 하지만 모든 짐을 싼 것은 아니었다. 세탁할 옷가지가 아직 방 안에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책상에는 기름에 튀긴 면이 반쯤 먹다가 남긴 상태로 포장지에 담겨 있었다. 칫솔도 세면대에 그대로 있었다. 떠날 준비를 하다가 마음을 바꿔 며칠 더 머무른 뒤 떠난 듯했다. 가지 않기로 했다가 생각이 바뀌자 최대한 빨리 짐을 정리한 모양새였다.
_‘9장 만프레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