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별 김유정소설문학여행]
제23차 김유정소설문학여행을 다녀와서
-2011.11.6
가을에 떠나는 [산골 나그네], [가을], [만무방] -김유정소설문학여행
-만무방들의 가을노래
글 : 권창순 (daum 카페 : 소양강 처녀와 김유정소설문학여행)
(김유정 소설문학여행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 떠나도 좋다. 소설을 읽고 이런 저런 상상을 해보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만나 행복해질 수 있다.)
일요일 아침, 가을비가 퍼붓는다. 그래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가을- 김유정소설문학여행.
전동차안은 산으로 가는 사람들로 시끌벅적. 시골 오일장 같지만 소설 [산골 나그네]를 읽는다. 산골의 가을은 왜 이리 고적할까! 부수수하고 떨잎은 진다.
경춘선의 색동역인 김유정역. 금병산을 찾은 사람들의 깔깔대는 소리도 금새 빨갛게 물든다.
김유정문학촌으로 가는 길. 텅빈 밭에 버려진 연탄재, 그리움으로 까맣게 멍든 가슴 활활 태웠으니 얼마나 가슴이 후련할까. 가랑비. 문학촌 돌담을 따라 노랗게 물든 생강나무 나뭇잎 하나를 또옥 따서 귀에 대니 또 닭싸움 소리!
아니나 다를까. 문학촌 대문을 들어서니 점순이가 닭싸움을 시키려 한다. 얼른 우산접어 방망이 만들어 헛매질. 두 수탉을 떼어놓고 작가님의 생가를 힝하니 한 바퀴 돈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서둘러 대문을 나선다. 그런데 이것 참!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찡그려진다. 저만치서 [소낙비]의 이주사가 지우산을 받쳐쓰고 응뎅이를 껍쭉거리며 내려오는 게 아닌가.
“아니, 이주사님 체통 좀 지키세요!”
“아니 이게 어때서?”
이주사는 누구든 보란 듯이 응뎅이를 더 크게 껍쭉거린다.
“왜, 아침부터 이러세요?”
“비가 오잖아!”
“여름 ‘그 소낙비’가 아니잖아요!”
“가을비면 어때? 비는 비지!”
“비가 오면 그렇게 지우산을 받쳐쓰고 응뎅이를 껍쭉거려야만 합니까?”
“그런 넌, 이렇게 가랑비가 내리는데 꼭 여기까지 와서 내 흉을 봐야만 하냐?”
“알았어요. 내 그냥 갈 테니. 쇠돌네집은 저 쪽이예요.”
“흥, 그걸 누가 몰라!”
이주사가 저 쪽으로 응뎅이를 껍쭉거리며 걸어간다.
그런데 이것 참! 한참 후에야 알았지만, 나도 모르게 이주사처럼 응뎅이를 껍쭉거리며 걷는게 아닌가.
깜짝 놀라,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다행이 아무도 없는 듯. 휴! 하고, 숨을 크게 내쉬며 다시 걷는데 언덕 위 바위 뒤에서 누군가 배꼽을 잡고 웃는지 요란하다.
얼떨결에 돌아보니 [만무방]의 응오와 [가을]의 복만이가 응뎅이를 껍쭉거리며 나온다.
“다 보았군요?”
“다 못 보았으니 다시 한 번 보여줘유!”
[만무방]의 응오가 모처럼 밝게 웃는다.
[가을]의 복만이도 얼굴에 내천자를 지우며 웃는다.
“응칠이 형님은 떠났는지요?”
“웬지 불안해유.”
“왜요?”
“전집 상권 101쪽을 보면 알겠지유.”
“시오리를 남쪽 산으로 들어가면 어느 집 바깥뜰에 밤마다 늘 매어있다는 투실투실한 그 황소 때문이지요?”
“그래도 내가 아우라고. 그때 응칠이형의 눈물을 보았지유.”
“응고개의 벼를 훔치던 그날 밤 말이지요?”
“내것을 내가 훔쳐야하는 얄궂은 운명때문에유!”
“아우의 그 얄궂은 운명에 매팔자요 만무방인 형인들 어찌 눈물이 흐르지 않겠어요.”
“어쨌거나 응칠이 형이 나 때문에 일을 저지르지 않았음 좋겠어유.”
“구메밥 또 먹을라구요. 아무일 없을 테니 걱정일랑 말고, 어서 [산골 나그네]의 주막으로 가서 한잔하지요.”
저 만치 뒤에서 얼굴에 다시 내천자를 그리고 따라오던 [가을]의 복만이가 한잔하자는 말에 귀가 번쩍했는지 달겨드니 어느새 밤도 깊었다.
“벌써 밤이 깊었네유.”
“그러게요. 참 이상해요. 실레에 오면 금방 아침이었다가 금새 밤이 되기도 하고, 여름이었다가 가을이 되기도 하고, 1930년대였다가 2010년대가 되기도 하고, 눈이 왔다가 금방 비가 오기도 하고!”
“그야,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여기저기서 꾸물거리니까 그렇치유.”
“[안해]의 똘똘이 엄마를 보면 겨울이었다가 [동백꽃]의 점순이를 보면 봄인 것처럼 말여유.”
“어쨌거나 밤도 깊었으니 [산골 나그네] 주막으로 어서 가지요.”
“그래유.”
응오와 복만이와 셋이 걷는 산골의 가을 길은 너무도 고적하다. 골을 휘돌아 맑은 샘은 흘러내리고 퐁! 퐁! 퐁! 쪼록 퐁! 야릇하게 음률을 읊는다.
자작자작! 신발소리에 덕돌어머니, 귀가 번쩍 띄어 방문을 급히 열어젖힌다.
“메누리냐?”
“덕돌어머니도 참! 달아난 게 돌아오겠어유.”
“난 또 내 메누린가 했구먼. 추울 테니 어서 들어와유.”
“덕돌이는 안말로 마실갔지유?”
“배도 고픈데 막걸리 좀 주세요.”
메누리가 가버리고 술꾼은 들지 않고 방안은 그때처럼 메주 뜨는 냄새와 같이 퀴퀴한 냄새로 쾨쾨하다. 웃간에서는 쥐들이 찍찍거린다.
덕돌어머니는 쪽 떨어진 화로 곁에서 쓸쓸한 대로 곰곰 생각에 젖는다.
“배고파유. 어서 막걸리 좀 주세요!”
“내 정신 좀 봐! 술 달라고 그랬지유? 내 부엌에 가 금방 거냉해 올께유.”
“그 들병이, 산골 나그네를 진정 잊지 못하나 봐유.”
“어찌 잊겠어유. 어떻게 얻었던 메누린데유.”
“가을이면 그리움이 더 하겠지요.”
덕돌어머니가 짠지에다 거냉한 막걸리를 가지고 들어온다.
셋이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를 마신다. 덕돌어머니는 북쪽 지게문에 뚫린 구멍을 헌 버선짝으로 틀어막는다. 그리고는 등잔 밑으로 받짓그릇을 끌어당기며 시름없이 바늘을 집어든다.
“술이 다 떨어졌는데유!”
덕돌어머니는 등잔불만 멍하니 바라다 볼 뿐이다.
“그래유. 옷이나 꿰매면서 시름이나 달래세유. 우리가 거냉해다 먹을게유.”
응오가 빈 주전자를 들고 부엌으로 나가 막걸리를 가져오고 또 주거니 받거니, 그래도 덕돌어머니는 뭐라 말이 없다.
이럴 땐 노래 한번 부르는 게 상책이리라. 올 가을에도 빗도 다 못 가린 응오가 먼저 ‘강원도 아리랑’을 부른다.
“덕돌어머니, 왜 메누리가 그랬는지 내가 불러볼께유.”
얼굴의 내천자를 지운 복만이가 언제 배웠는지 ‘소양강 처녀’를 부른다. 그러다 셋이 합창을 한다.
도적년! 모자는 광솔불을 켜들고 나섰다. 부엌과 잿간을 뒤졌다. 그러고 뜰앞 수풀 속도 낱낱이 찾아봤으나 흔적도 없다.
“그래도 방안을 다시한번 찾아보자.”
홀어머니는 구태여 며느리를 도둑년으로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거반 울상이 되어 허벙저벙 방안으로 들어왔다. 마음을 가라앉혀 둘쳐보니 아니나 다르랴, 며느리 베게 밑에서 은비녀가 나온다. 달아날 계집 같으면 이 비싼 은비녀를 그냥 두고 갈 리가 없다. 두말없이 무슨 병폐가 생겼다. 홀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덜미를 집히는 듯 문밖으로 찾아 나섰다.
-소설 [산골 나그네] 김유정전집 상권 142쪽
새야, 새야, 새야, 새야, 산골 나그네는 왜 그랬을까유?
♫
벽이확 확나가고 네기둥뿐인.
그속에 힘을잃은 물방아는 을씨년이.
거지도 고옆에서 홑이불위에.
거적을 덧쓰고서 누워누워 거푸진.
아 -신음신음 으으으흐응 으으으흐응.
♫
여보오 여보자우 일어나게유.
계집의 음성나자 그는꾸물 일어앉고.
홑적삼 깃을잡고 덜덜덜떤다
이이제 고만고만 떠날테야 쿠울룩.
아 -말라빠진 얼굴로계집 바라다보며.
♫
십분후 거지호사 달빛에번쩍.
번쩍인 겹옷입고 지팡이를 끌며끌며.
물방아 물방앗간 물방앗간을.
등지고 골골하는 거지거지 부축을.
아 -부축하고 뒤따른계집 술집며느리.
♫
이옷이 너무너무 너무머무커.
퍼얼쩍 잔말말고 어여어여 가십시다.
계집은 부리나케 그를재촉해.
그리고 연해연해 돌아보고 돌아봐.
아 -그들그들 개울을건너 산모퉁이를.
♫
“이렇게 떠난 산골 나그네이니 이젠 잊으세유!”
“다 목숨부지하려고 그랬으니까유!”
이때다. 앞뒤 울타리의 떨잎은 부수수지고 다시 바깥에서 자작자작 신발소리가 들린다.
“덕돌이냐!” 하고 반겼으나 잠잠하다. 앞뜰 건너편 수퐁을 감돌아 싸늘한 바람이 떨잎을 흩뿌리는 소리다. 덕돌어머니는 다시 화롯가에 앉는다.
“그래야겠지유?”
“그럼유.”
“그럼, 나두 한잔 주게유!”
막걸리 한잔을 마신 덕돌어머니가 ‘아리랑타령’을 부른다.
“농군들에게 이 막걸리가 없다면 어찌 살겠어유! 그리고 이 아리랑타령이 없다면 무슨 수로 이 세월을 버티겠어유.”
덕돌이가 돌아올 때까지, 동리에서 외떨어진 주막집의 가을노래는 끊어질 듯 이어지고, 멀리선 개짓는 소리가 앞 뒷산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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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을이 익었습니다. 함께 드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