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말이었다. 더벅머리 청년이 강릉으로
가기 위해 대관령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었다.
길가 숲속에 한 노스님이 발가벗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괴이하게 생각해 그 까닭을 물었다.
“스님, 거기서 뭐하십니까?”
“중생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있네.”
“먹을 것이라니요?”
“모기와 벌레들에게 내 몸과 피를 먹이고 있다네.”
뜻밖의 대답에 크게 감동한 청년은 스님을 따라
오대산 월정사로 입산했다.
모기와 벌레들에게 보시를 행한 노스님은
구산선문(九山禪門:신라 말 고려 초에 선종을 일으킨
아홉 갈래의 대표적 승려집단) 중 하나인 성주산문
(聖住山門:통일신라 말 무염선사가 충남 보령시
성주사에서 개창한 산문)을 일으킨 무염(無染)선사였다.
무염선사는 자신을 따라온 청년이 어느 정도의 그릇인지
시험을 해보기로 했다.
“행자야. 수행은 밥을 먹으면서 해야 한다.
밥을 지어야 하니 솥을 걸어라.”
청년은 하루 종일 정성을 다해 솥을 걸었다.
이만하면 흡족하다 싶었다. 해거름이 되자
외출하신 무염선사가 돌아오셨다.
그런데 솥 걸어놓은 것을 본 무염선사가 갑자기
호통을 치며 솥을 걷어 차 버렸다.
“네 이 놈, 이걸 솥이라고 걸었느냐?
이래가지고 어떻게 밥값을 하겠느냐? 다시 걸어라!”
다음 날 아침, 청년은 날이 새자마자 곧바로 일어나
솥을 다시 걸기 시작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성심성의껏 걸었다. 그러나 무염 선사는 이번에도
역시 불같이 화를 내며 꾸중만 하셨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아홉 번째 솥을 걸었을 때였다.
그때까지 계속 야단만 치던 무염선사가 흐뭇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흐음, 네 놈이 조금 쓸 만하구나.” 청년은 멀쩡하게
잘 걸려 있는 무쇠솥을 아홉 번씩이나 트집을 잡아
새로 걸게 해도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스승의 뜻을 받들었다.
그에게는 ‘구정(九鼎)이란 별명이 붙었다.
구정선사는 문자를 모르는 완전 까막눈이었다.
다른 행자들처럼 경전을 읽거나 염송할 수가 없었다.
까막눈 구정이 무염선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즉심(則心)이 부처이니라.”
워낙 무식했던 구정의 귀에는 ‘즉심이 부처’라는 말이
‘짚신이 부처’로 들렸다. ‘짚신이 부처’라니…. 의아했지만
워낙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깊었기 때문에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구정선사는 자나 깨나 ‘짚신이 부처’라는 가르침을
화두 삼아 의정(疑情=의심)을 일으켰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산에 나무하러 가서 깊은 삼매에 들었다.
그때 홀연히 불어오는 바람에 지게가 넘어지면서
들고 있던 짚신의 끈이 걸려 뚝 끊어졌다.
그 순간 구정선사는 확철대오(철저하게 크게 깨달음)했다.
많은 지식보다 한결같은 믿음과 정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일화다. 퍼온 글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첫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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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