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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3 : 15 첫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계 13 : 15 첫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주어 큰 군대가 됨을 모방하여,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우상이 말하게 하고, 경배하지 아니한 자들을 무참히 학살할 것이다.
15. 생기를 주어 -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 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 짐승의 생기
적그리스도를 위해 우상을 만듦으로 적그리스도로부터 권세를 받는다.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이적을 행하여 우상에 생기를 주어 우상으로 말하게 하는 일을 이룬다.
우상이 이적을 하고 말을 한다는 것은 고대 문헌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시몬 마구스(Simon Magus)는 동상에 생명을 준 사람으로 알려졌으며, 로마의 종교를 집행하는 제사장들은 마술을 하고 입을 벌리지 않고 말하는 술법을 사용하여 황제의 동상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기만하고 권력자들과 야합하며 생활하였다.
* 행 13: 6-8 –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 행 16: 16 -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러나 본 절에서 언급되는 짐승의 우상이 생기를 얻는 것과 로마의 제사장들이 기만하는 행위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할수록 전 세대에 걸쳐 거짓 선지자들이 기사와 표적을 행하여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며 지상의 정부 권력이 사탄의 도구가 되어 교회를 더욱 탄압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Hendriksen).
* 마 24: 24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즉 우상에게 '생기'(*, 프뉴마)를 주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과 짐승의 미혹하게 하는 행위와 우상 숭배 행위가 활발하여 극에 달함을 암시한다. (Johnson).
이처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대변자들이 되고,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면서 그들을 섬기게 하는 우상 숭배가 성행할 것을 말한다.
본문에서 언급되는 짐승의 우상은 거짓 스승을 말하니 거짓 지도자들을 섬기는 것이 우상 숭배다.
* 합 2: 18 -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1) 거짓 선지자가 사탄으로부터 놀라운 권세를 받는다.
①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넣어 준다. - 이 생기는 사탄의 생기다.
이 사탄의 생기를 받은 우상은 살아 있는 물체처럼 움직이게 되는데 그 입으로 말까지 하게 된다.
② 사탄이 그 우상 안에 들어가 친히 사람들의 경배를 받는다.
③ 이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치 아니하는 자는 다 죽임을 당한다.
이때 모든 인류는 이 같은 적그리스도의 권세와 기적에 심히 놀라게 되며 그들 스스로가 자진하여 짐승의 우상 앞에 경배하게 될 것이다.
(2) 경배하지 않으면 다 죽인다. -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① 거짓 선지자가 죽이는 일에 나선다.
계 6: 8에 '땅의 짐승으로 죽인다.'는 이야기는 바로 거짓 선지자가 이 같은 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인다.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를 다 죽인다는 것은 그 시대의 법이다.
계 13: 8을 참고해 보면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뿐이기 때문이다.
거짓 선지자는 적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우상을 만들어 생기를 주어 우상이 말까지 하게하는 놀라운 일을 벌일 것이다. 그리고 우상에게 모두 경배케 하며 그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모두 죽이는 상황까지 이른다.
그 거짓 선지자가 짐승으로부터 받은바 우상에게 넣어 줄 생명력은 아주 특별한 것으로 우상이 말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까지 침범하는 일이며 생명 공학적으로 위대한 업적이 되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② 생기를 주어- 악령.
* 창 2: 7 -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 겔 37: 10 -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 계 11: 11 -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구별 - 생령.
③ 말하게
사람의 행세
④ 경배하게.
하나님에 대한 도전
⑤ 다 죽게.
* 계 13: 8 -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2) 땅에서 올라온 짐승 [ 13 : 11-15 정리 ]
(1) 여러 견해.
① 교황으로 본다.
첫 번째 짐승을 로마로 보는 자들은 두 번째 짐승을 교황으로 본다.
칼뱅[Calvin], 루터[Luther]등이 지지한다.
② 이교의 제사장으로 본다.
첫 번째 짐승을 네로로 보는 자들은 두 번째 짐승을 제사장으로 본다.
마운스[Robert H. Mounce] : 제사장적 역할 때문에 둘째 짐승을 종교적인 세력으로 본다. 황제 숭배를 위한 지역 제사장들이거나 아시아 각 지역에서 황제 숭배를 책임 맡은 지방 의회를 말한다.
③ 성직자들의 박해 세력이다.
알포드[Henry Alford] : 성직자들을 박해하는 세력들이다. 겉모양이나 말에는 온유함이 있으나 행동은 잔악하였다. 제국의 법률, 신도, 특권을 장악하였다. 기적으로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미혹하여 세속 권력을 유지 하였다.
④ 거짓 선지자이다.
첫 번째 짐승을 적그리스도로 보는 자들은 두 번째 짐승을 적그리스도를 도와 거짓 교리와 이적, 기사로 사람을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로 본다.
래드[G. E. Ladd] : 둘째 짐승이 짐승의 숭배를 도와준다. 나중에 거짓 선지자라고 불린 다. 첫째 짐승은 사단의 영감을 받은 사회적인 세력을 상징하고, 둘째 짐승은 사회적인 세력을 도와주기 위해 사용된 종교적인 세력을 상징한다. [래드, 반즈 성경주석 요한 계시록, p. 234]
(2) 저자의 견해
마지막 대환란기에 적그리스도를 도와 사람을 미혹하여 용을 따르도록 하는거짓 선지자이다.
① 짐승의 출처로 입증된다.
구 분 : 사 단 (용) : 첫째 짐승: 둘째 짐승
서있는 위치 : 바다 모래 위 : 바다에서 올라옴 : 땅에서 올라옴
상징의 의미 : 이 세상 임금 : 이 세상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육적인 거짓 선지자.
* 요 12: 31 -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 요 14: 30 -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하나님의 질서(마 11: 27. 요 16: 14) : 사단의 질서
아버지께서 권세를 그리스도에게 : 사단이 보좌, 권세, 능력을 적그리스도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 : 적그리스도가 마흔 두 달 동안 통치한다.
성령이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림 : 거짓 선지자가 적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림
* 마 11: 27 -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 요 16: 14 -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② 본서의 내증으로 입증된다.
* 계 16: 13 -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 계 19: 20 -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 계 20: 10 -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 성경의 증거로 입증된다.
ⓑ 사역적 특징으로 입증된다.
'새끼 양같이 두 뿔' : 두 증인을 모방.
ⓒ 거짓된 사역으로 입증된다.
아마겟돈 전쟁의 결과.
③ 예수님의 말씀으로 입증된다.
* 마 24: 24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 마 7: 15 -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산상수훈에서나 종말장에서(마 24장) 거짓 선지자임을 알 수 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 박 조준 목사 ) 저자와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13장 1~10절에서,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적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땅에서 올라온 짐승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한마디로 말하면 거짓 선지자입니다. 마태복음 24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사람들을 속이려 일어났으며 오늘날도 이 땅 위에 거짓 선지자가 있지만, 환난 때에 그 절정에 도달하게 될 주님의 예언하심이 이처럼 성취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종교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독재자들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종교성을 발산할 출구를 제공해 주어야만 합니다. 앞에서 적그리스도가 환난 날에 나타나 세계를 다스리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한 바가 있습니다. 이제 17장에 보면 적그리스도가 권세를 잡아 통치력을 다져가고 있는 환난기의 절반 3년 반 동안에 그가 지배하게 될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환난기 중반에 적그리스도가 교회를 멸망시키고 자기에게 경배하도록 만든다는 사실로 보아 그가 교회를 내버리고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적그리스도는 그 경배를 계속 받기 위해 특별한 사람을 등장시키는데, 그것이 곧 오늘 본문에 나오는 “땅으로부터 나온 짐승”입니다. 이 두 짐승, 그러니까 첫 번째 짐승은 바다로부터 올라온 적그리스도를 말하고, 둘째 짐승은 땅으로부터 나온 짐승인데 환난기의 종말에 가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들에게 일어날 사건으로 보아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20절을 보면 두 짐승에 대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정치 지도자로 자신을 하나님처럼 내세우던 자요, 거짓 선지자는 종교 지도자로 적그리스도를 섬기도록 사람들을 유혹해 온 자입니다.
본문 11~12절을 읽어 보십니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여기서 우리는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했습니다.
대개의 성경학자들은 이것이 그가 첫 번째 짐승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의 무리 중에서 나오지 않음을 가리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통하지 않고 땅에서 나온다는 것은 그가 유대인이라고 주장도 합니다. 이것은 환난기 전반인 3년 반 동안 이스라엘로 하여금 적그리스도와 동맹을 맺게 하고 환난기 중반까지 그의 배교 행위를 숨김으로써 사람들을 속이는 배교자 유대인으로, 그때 가서는 자기의 배교적인 신앙과 행동을 드러내 보임으로 자기 목적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땅에서 올라왔다”는 것은, 땅은 죄악 세계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짓 선지자는 죄악 세상에서 출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외부에서 권력으로 박해하고 거짓 선지자는 내부에서 죄악으로 유혹합니다.
둘째로, “거짓 선지자는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더라” 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서와 계시록을 통해서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지신 분입니다. 이 땅에 온 거짓 선지자들은 두 뿔이 달려서 그 어린양과 비슷하게 보일 것입니다. 어린양은 권위를 상징하는 뿔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 대신 순하고 연약한 짐승입니다. 산상보훈에 보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앞에 양의 옷을 입고 나타날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양의 형상으로 이스라엘 앞에 나타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가리켜 “짐승”이라고 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양의 가죽을 둘러쓰고 들어온 이리인 것입니다(마 7:15). 고린도후서 11장 14절에는 이 거짓 선지자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기도 합니다. 거짓 선지자는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유혹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유혹이란 선한 것을 약속하며 악한 것을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혹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면 대개는 “육신의 정욕이 넘치는 시선과 인간의 성욕을 충동하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옳은 대답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소문을 퍼뜨리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불평을 품거나, 거짓말을 하는 유혹도 있습니다. 유혹은 여러 가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유혹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높은 담 안의 수도원에 거하는 수도사나, 서울이나 부산이나 대구같이 큰 도시에 살며 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다 동일하게 자기 자신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생존 경쟁이 심한 삶의 대열 속에서 투쟁하는 봉급 생활자나, 선교 사업에 열심을 내고 있는 복음 전도자나, 마음의 욕심과 싸우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유혹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는 양의 가죽을 쓰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거짓 선지자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혹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에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라”고 했습니다. 유혹에 우리를 범죄하도록 만드는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유혹을 당해 따라갈 때 범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혹된다’는 말의 원어는 낚시에서 쓰는 말입니다. 우리가 낚시를 할 때 고기가 잘 물게 하기 위해서 낚시바늘에 고기들이 좋아하는 생생한 미끼를 끼웁니다. 그래야 고기들이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고기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아주 맛있어 보이는 먹이가 떨어집니다. 이때 물고기는 잠시 생각해 봅니다. 물고기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이런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야, 이거 굉장한데!’ 이렇게 생각하면서 먹이 가까이로 다가오면 이 물고기는 거의 잡힌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며 주님께로부터 능력을 공급받아 살아 갈 때 우리 주위의 마귀들은 우리 앞에 여러 가지 미끼들을 떨구지만 우리는 그런 미끼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저 ‘여기 미끼가 있구나’하고 생각할 뿐입니다.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주님의 말씀과 그 권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찾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미끼를 좇으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마귀는 거짓 선지자를 시켜서 택한 자라도 미혹하려고 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유혹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불의와 타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양의 탈을 쓰고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미혹되기가 쉽습니다.
셋째로, 거짓 선지자는 “용처럼 말하더라”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12장에서 용으로 나타나 있는 마귀로부터 말하는 권세를 얻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거짓 선지자들은 양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속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결국 사단의 말입니다. 사단이 신앙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은 방해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짐승은 계시록 17장에 기록된 대로 산에서 권세를 가지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용이 가진 권세는 대단합니다. 거짓 선지자 또한 용에게로부터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세력이 대단합니다.
넷째로, 거짓 선지자는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거짓 선지자는 적그리스도 자신의 능력을 그대로 가졌다는 말입니다. 거짓 선지자의 목표는 적그리스도를 만족시킬 만한 종교의식을 포함해서 이 세상을 적그리스도가 완전히 지배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적그리스도의 하는 일을 종교적으로 합리화시킵니다. 거짓 선지자는 적그리스도의 장식품에 불과합니다.
다섯째로, 거짓 선지자는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했습니다.
적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권세와 마귀로부터 얻은 말로 인간들에게 적그리스도를 경배하게 만드는 것이 거짓 선지자의 목표입니다. 환난기 중반부에 사단이 거주하게 된 적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인 양 위장하여 사람을 속이며 사람들로부터 경배를 받으려 할 것입니다. 이런 형태의 경배는 둘째 짐승, 그러니까 거짓 선지자를 통해서 전파될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거짓 선지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그리스도를 경배하지 않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 놓고 다 거기에 절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을 거역하는 사람은 풀무에 넣어 타 죽게 하는 일까지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을 섬기는 유다 사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왕이 바벨론 도를 맡겨 다스리게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왕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할 수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갈대아 사람들이 느브갓네살 왕에게 충성을 표현하는 뜻으로 아부하면서 “왕이시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고 아뢰자 이 말을 들은 느브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게 하였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풍악이 울릴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어느 신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비상한 자세로 대답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해서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가 풀무 가운데서 타 죽는 일이 있어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저는 성경의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감격하고 흥분하곤 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이런 하나님의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본문 11절과 12절은 하나님의 성품과 유사한, 환난 시대의 악령의 세 가지 종류를 보여줍니다. 말하자면 용은 적하나님이고, 첫째 짐승은적그리스도이고, 둘째 짐승은 적성령에 해당됩니다. 거짓 선지자는 자신을 경배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그리스도를 경배하도록 하기 위해서 애씁니다. 더구나 거짓 선지자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요? 본문 13절에 “그가 큰 이적을 행하리라” 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여러 종교도 마술이나 마력을 통해 초능력을 행하므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사람들을 속이려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종교는 엄격히 말하면 미신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신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앞에서 여러 가지 나쁜 성품을 가진 인간에게 평안과 자신감을 갖게 해 주실 수가 있으며, 이것은 미신적이거나 기사나 이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적을 나타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심령을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왜 거짓 선지자들이 이적을 행합니까?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속이려는 것입니다. 이적은 행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가 큰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바로 왕 앞에서 지팡이를 던졌을 때 그것이 뱀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거짓 선지자들도 그 지팡이를 던져 뱀으로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사람이 한 것과 똑같이 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가 만든 뱀이 그들의 뱀을 잡아먹게 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10절을 보세요. 환난기 동안 적그리스도는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와 모든 속임”을 행할 능력을 갖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11장에 기록된 대로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특별히 세우심을 입은 증인들이 행하는 기적을 그대로 행하며 거기다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까지 행한다는 것은 별로 놀랄 만한 일이 못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적을 행하는 능력이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보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경고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가르침을 시험해 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거기에 따르는 표적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가르침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면 무슨 이적이 나타난다고 하여도 거짓된 것입니다.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선지자 엘리야만이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거짓 선지자들도 불을 내리게 할 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것을 보고도 놀라지 않으려면 우리는 이 거짓 선지자들의 배후에 있는 사단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욥의 양과 그 종들을 살랐던 욥기 1장 16절의 사건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손에 그런 능력을 주셨습니까?”하는 의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환난기에도 인간이 하나님께 믿음으로 경배 드리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에 초능력이 한쪽에서만 일어나게 되면 믿음이 없이도 그 힘의 근원 쪽으로 쏠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믿음 위에 서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적그리스도의 우상을 만들게 하며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줄 능력도 갖게 됩니다. 환난기 중반에 인간들로 하여금 느브갓네살이 만든 우상과 같은 우상을 만들고 거기에 경배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더구나 거짓 선지자는 말하는 능력을 적그리스도와 용인 사단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는 이 짐승에게 절하지 않는 자는 모두 죽임을 당한다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계시록 20장 4절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단두대에서 죽임을 당할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환난 시대에는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영접하는 데 많은 희생이 요구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신명기 13장에 보면 모든 선지자를 시험하는 법을 모세에게 보이셨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이적을 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못하고 그 선지자가 하는 말을 들어봐야 합니다.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신 13:2~3).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거짓 선지자들의 행동이 아주 활발해지고 이적과 기사를 행해서 사람들을 현혹하게 되는데, 여기에 속지 말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판단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7장 11~12절에 보면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베뢰아 사람들처럼 신사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본문 13장 16~18절에 보면 “짐승의 표적”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 짐승의 표적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여기 ‘666’이란 숫자가 나옵니다. 여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여섯은 사람의 수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완전수 일곱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수이며, 인간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학적으로 여섯은 인간을 가리키는 수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알 수 없는 세 단위를 썼을까요? 거짓 선지자들은 이것을 사람들에게 적그리스도를 경배하도록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매매하기 위해서는 그 이마나 손에다 짐승의 표적을 가져야 한다고 명령을 내릴 것입니다. 이 경제적 압력은 연약하고 세속적인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버리고 적그리스도에게 돌아서게 할 것입니다.
환난 때에 적그리스도가 경제권을 쥐고 있어서 그를 경배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살아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볼 때는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가져야만 살아갈 수가 있겠지만 영적인 면에서 볼 때 그것은 죽음을 택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양으로부터 구속하심을 입어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들이 짐승의 표적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우리는 보아 왔습니다. 예수님도 “인자가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 오실 때까지 믿음을 지킵시다. 조금만 더 참으십시다.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워옵니다. 신앙을 끝까지 지키려고 힘쓰는 사람에게 “온 땅에 임하게 될” 시험을 면하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음을 지키느라고 애쓰다가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나 감격할 생각을 해 보세요.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더구나 우리가 믿음 때문에 고생하면 우리 주님이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격려하시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끝까지 믿음을 지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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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쾌유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