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고등학생이었던 90년대 중반의 일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근린공원 산책코스에서 아래로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무속당으로 보이는 건물이 뒤쪽으로 하나 더 붙어 있었다.
밤에 야자를 할 때면 학교 불빛과 어우러져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겨내었으며
살고 있던 무속인은 학교 이사장의 먼 친척뻘이라 하였다.
무속인은 여러 가지 그림들을 그려서 만든 족자를 학교에 기증하였다.
탈 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묘한 그림들뿐이었으며
입김에 힘입어 교실마다 걸어놓을 계획이었지만
학부모들의 거센 반대로 각 동아리 부실이나 체력단련실 정도로 한정되었다.
생물부에 속해 있던 나는 커다란 거북과 백로가 그려져 있던 그림을
문 옆으로 지날 때마다 보게 되었다.
신령스러운 모습을 한 백로가 위에서 덮치려는 아래로
이상하리만치 섬뜩한 사백안을 지닌 거북이 반격하려는 듯한 자세를 갖춘 그림은
어딘지 모르게 치명적인 일격을 받기 직전의
다급한 거북의 모습을 묘사해 놓은 것 같기도 하였다.
사건이 터졌다. 남자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부분 그렇듯 대책 없는 장난을 치다가
해부용 메스로 족자의 반을 날려 버렸던 것이다.
거북이와 백로의 중간 부분을 정확하게 가른 족자의 아랫부분이 펄럭이며 땅으로 떨어졌다.
“아! 시X! 개 X됐네! 아! 이거 진짜!”
티격태격 서로 책임 전가를 하다가 찢어진 거북 부분만을 몰래 버리고
백로 부분의 반 정도가 가려지도록 상자를 쌓아 올리자는 결론이 나왔다.
존재 여부를 검사하지는 않는 데에다 족자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선생들도 많았기에
그냥 어떻게든 있다는 것만 잘 보여주면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집과 학교를 이어주던 길쭉한 다리 아래엔 생태공원이 있었다.
여러 개발과 조성 단계를 거쳐 현재는 깨끗한 명소 중 하나가 되었지만
당시엔 비포장도로의 산책코스와 이끼가 무성하게 쌓인 연못에 가로등도 하나 없어
밤이 되면 온통 새카만 어둠에 죽은 나무와 풀이 함께 뒤엉킨 정글 숲과도 같은 곳이었다.
다리 한가운데 멈춰선 채로 족자를 꺼내 잠시 바라보다 아래로 던졌다.
이리저리 휘날리다 어둠 속 어딘가로 완전히 자취를 감춘 후에 들었던 홀가분한 자기만족은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사라지기 직전 유난히 번뜩이던 사백안에 대한 개인적인 의문과
섬뜩함에 다시 먹힌 채 하굣길 머릿속을 온통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기에 이르렀다.
공원에 살고 있던 동물들이 죽어 나간다는 흉흉한 소문이 며칠 뒤부터 돌기 시작했다.
산책하는 사람들에 의해 퍼진 소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로 드러났고
하나둘씩 발견된 사체의 공통점은 흉측하게도 뱃가죽이 반절 이상 파먹힌 상태였으며
물고기나 작은 새의 뒤를 이어 간혹 물뱀의 사체가 껴 있기도 하였다.
민원이 제기되자 구청에서도 조사단이 파견되어 나왔으나
인위적으로 해코지를 가했단 증거도 없었기에
들고양이나 기타 비슷한 다른 포식자의 행동이라 생각하고
경고문을 붙여놓는 정도의 조치에 이르게 되었다.
2부에서
첫댓글 즐겁게 감상하고 2부도 기대되네요
2부 바로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상상속 무서움 같아요~~무서움도 내마음에서 우러나오지요~
상상속 무서움으로 볼수도 있겠군요
한번 그렇게 다시 만들어 봐야 겠습니다 ㅎㅎ
조범진 작가님,
무더운 날씨에 잘 지내시는지요?
시간은 잘도 흘러 어느새 한 해의 절반을 보냈습니다.
때 이른 무더위에 지치기 쉬운 날들입니다.
사백안을 가진 거북이라니
상상만 해도 섬뜩하네요.ㅎ
더울 때는 무서운 괴담이 심장을 서늘하게 하지요.
다음을 기대하며 글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장마와 더위에 건강관리 잘하시고
7월에도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더운 날씨에 수고 많으셨고
편안한 밤 되십시오.
답장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회장님
개인적으로 실제로 고등학교 때 체험했던 일을 바탕으로
재구성해봐서 만들어 본 것입니다.
사백안은 실제 가지고 있던 붉은귀거북의 눈이 형광등에 비쳐서
희한하게 번쩍이던 것을 떠올려서 만들어 본 것입니다 ㅎㅎ
건강 조심하시고 현장에 나가실 때도 수분 섭취 등등에 유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섬뜩하지만 다음편이 기대가 되네요~
조범진 작가님 재밌게 잘 보았어요
오늘 초복 몸보신 하시고 즐거운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지금 답글을 다는 시간때는
말복이 가까운 때군요 ㅎㅎ
회원님도 더위 조심 하시고 말복에 좋은 보양식 드세용
글을 보면서 온몸이 오싹해지네요~
재밌게 잘 보았어요 2부가 매우 궁금해지네요~기대할께요~
시인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곧 다가오는 말복에 맛있는 보양식 드시길 바랍니다
주위에 보면 부적을 하시는 분이 많네요
조범진 작가님의 사백안 잘 감상했어요
등짝이 오싹해지네요
비가 많이 내리고 있네요 빗길 조심하세요
개인적으로 대학 축제에서 장난으로 만든 부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가톨릭 신자로서 이것도 죄가 될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