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적 균형? 이란전쟁의 현황...이해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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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Young Lee 5시간
<‘파국적 균형? 이란전쟁의 현황>
‘파국적 균형’ (catastrophic equilibrium) 이란 안토니오 그람시의 개념이다. 기존 지배질서도 신흥질서도 어느 쪽도 완전히 승리를 거두지 못한 일종의 전략적 교착상태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그람시가 기본적으로 국내정치 특히 1차 대전이후의 이태리정세에서 발전시킨 개념이다. 기존의 지배계급은 더 이상 사회질서를 유지할 능력도 정당성도 상실했다. 하지만 예컨대 노동자계급등 신흥세력은 낡은 체제를 무너뜨릴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런 ‘파국적 균형‘에서 제3세력 즉 파시즘세력이 출현했고 그리고 승리했다. 파국적 균형상태는 고도로 불안하고 취약한 상태를 말하고, 언제든 위기가 재발할 수 있고 이 때 그 상태는 어렵지 않게 전복될 수 밖에 없다.
지금 서아시아 역내 질서를 나는 파국적 균형상태라고 본다. 외형상 전략적 교착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주간의 휴전이 그 전형이다. 40일간의 타격전에서 미국은 일만회가 넘는 폭격을 통해 이란의 주요 시설에 대한 공격을 감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트럼프가 말했던 바의 그런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다. 주요시설의 지하화를 통해 이란은 이 충격을 ’흡수‘했다. 군사적 목표뿐만 아니라 미국은 전쟁의 ‘정치적’ 목적 또한 달성하지 못했다. 즉 레짐체인지 말이다. 40일 전쟁은 제국의 도덕적 권위 나아가 정당성 뿐만 아니라 또한 제국의 군사적 효능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역내에 배치된 군사기지가 이란의 미사일에 무력화되는 것을 지켜보는 역내국가들은 미군기지를 더이상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전략적 부채’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반면, 이란은 대대적 반격을 통해 역내 미군의 전력투사 거점인 거의 모든 군사기지를 무력화시켰고, 이스라엘에 대한 전략적 약화와 관련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들였다. 사실상 미국을 협상테이블에 불러 앉힌 쪽은 이란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협상조건을 일방적으로 강제할 정도는 아니었다.
전쟁이란 상대의 저항력을 무력화시켜 나의 의지(이익)를 관철하기 위한 폭력행위를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어느 한 쪽도 상대방의 저항력을 결정적으로 파괴해 평화협상에서 자신의 조건을 강제할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즉 지금의 상태는 말그대로 임시휴전에 불과한 것이다.
더군다나 현재 분쟁의 임시 동결 속에는 전쟁의 종결 나아가 평화체제의 안착으로 가기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 자체가 결핍되어 있다. 즉 상호간 신뢰도는 사실상 제로라는 말이다. 따라서 어떠한 양보도 결국 패배로 해석된다. 일종의 전략적 제로섬 게임상태다. 이것이 분쟁의 종결을 가로막는 첫번 째 요인이다.
둘째, 이란의 역내 동맹세력 특히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휴전이 사실상 사문화된 조건에서 레바논전선의 분쟁격화는 다시금 미-이란전쟁으로 역피드백된다. 이는 다시금 협상의 합의 수준을 제약하는 조건이 된다.
셋째, 특히 해협에서의 봉쇄 대 (역)봉쇄 대결상황은 리스크의 세계화를 가져오고, 이 상황의 유불리는 다시금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현재의 2개 봉쇄간의 충돌은 미국의 핵심동맹국, 즉 유럽과 한국 및 일본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가져다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상태는 대미에너지 종속을 통한 동맹국(봉신국)에 대한 미국의 통제그립의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최소한 이탈가능성을 견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동맹의 고통은 미국에겐 차라리 플러스요인이다.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국내 유가인상이 중간선거 성패에 미칠 영향뿐이다.
넷째, 그 어느 쪽도 공식적으로 인정하거나 발언한 적이 없는 또 하나의 차원이 있다. 이 번 전쟁은 미국중심의 일극체제 대 이를 거부하는 다극체제의 충돌이자 전략 경쟁이다.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전쟁과 유사한 흐름과 경향속에 위치한다. 우크라이나전쟁을 사실상 지휘, 지원하면서 미국은 러시아의 ‘전략적 약화’를 기도했다. 하지만 이제 이란전쟁을 지원하면서 중국, 러시아는 미국의 ‘전략적 소모’를 관찰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이란전쟁을 보자면, 국지차원(local), 지역차원(regional), 글로벌 차원이 서로 부정적으로 피드백 운동하면서 문제를 해결의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분쟁의 순환구조를 만들어, 제자리에서 뱅뱅돌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도무지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그런 상황이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다른 조건이 불변이라면, 교전당사국들이 합의할 수 있는 것은 최대 프레임웍 합의(framework agreement) 즉 세부사항에 대한 합의는 최대한 지연시킨 채 큰 원칙과 틀에 대한 ‘모호한’ 합의일지 모른다. 그래서 해협, 핵, 제재, 배상과 같은 치명적인 디테일은 그때 그 때분쟁이 재발될 때 마다 그 때 만들어진 현상(status quo)을 사후 승인하는 그런 방식에 내맡겨 버리는 일이다.
혹은 양측 모두 군사적 빌드업이 준비된 만큼 또 한 번의 타격전을 전개하는 것도 옵션이다. 물론 이 번에는 해전이 주전장이 될 지도 모른다.